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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74화 (87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74화

시간이 흘러, 팬미팅 전날이 되었다.

팬미팅이 열릴 공연장에서 마지막 리허설까지 끝내고 돌아온 서준과 아이들이 소파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신나게 떠들어댔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양주희가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옛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배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에 이야기한 펜팔 상대 말이야?”

강재한의 물음에 양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 할리우드가 있기도 하고.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직업적으로 관련이 꽤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캘리포니아가 많이 넓긴 하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 배우인데, 저쪽이라고 배우가 아니라는 법은 없었다.

“그럼 누굴까?”

“난 잠깐 스왈린 배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

오?

양주희의 말에 서준과 강재한, 전성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이 네가 연주 공연 준비로 나갔을 때, 에반이랑 같이 와주셨잖아. 되게 상냥하시더라. 영어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쉬운 단어로 말해주시고.”

서준이 팬미팅에서 새싹들에게 보여줄 것은 연극만이 아니었다.

혼자 하는 무대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무대가 있어서 연극 준비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서준이 자리를 비울 때면 친구들만 집에 남아 있었는데, 그럼 LA를 여행하거나 집에서 연습하거나 하고는 했다. 그런 사정을 알았는지, 감사하게도 에반 블록과 스왈린 애넘이 몇 번 와 주었었다.

“그게 좀 펜팔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스왈린 배우도 서준이 널 좋아하시잖아.”

웃으며 말하는 양주희에 서준이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음. 그렇긴 하지.

“그럼 진짜 스왈린 배우인 거 아니야?”

강재한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세상에!

내 친구랑 펜팔 하던 사람이 대배우 스왈린 애넘이라니!

서준과 전성민도 흥미진진한 얼굴로 양주희를 바라보았다.

그에 양주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닌 것 같아.”

“왜? 맞을 수도 있지 않아?”

“나도 그런 것 같아서 빙 둘러서 물어봤거든. 근데 스왈린 배우가 서준이한테 관심을 갖게 된 작품은 쉐도우맨이래. 악령이 아니라.”

에이. 아쉽다.

김이 팍 샌 얼굴의 친구들에 양주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누굴까?”

후보에 잠시 스왈린 애넘이 올라서 그런지 양주희의 펜팔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어쩌면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이민 온 한국인일지도 몰라.”

서준의 말에 친구들이 의문을 가졌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악령이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서.”

“? 유명하잖아?”

천만영화는 아니더라도 이서준과 이지석이라는 대단한 배우들이 출연한 덕분에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유명한 영화 [악령]이었다.

“그러니까 외국인들한테는. 쉐도우맨이랑 오버 더 레인보우도 있는데, 첫 작품으로 만나긴 쉽지 않다는 거지.”

아하.

서준의 말에 다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외국인이라면 악령보다 쉐도우맨이나 오버 더 레인보우가 더 접근성이 좋겠네.”

“그럼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나이 좀 있으신 상냥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건가?”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가졌고.”

진짜 펜팔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추리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소파에 앉아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최태우가 허허 웃었다.

내일이 팬미팅인데, 다들 긴장되지도 않나 보다.

* * *

-서준이 오늘 팬미팅ㅠㅠ 미국 간 승리자 있나요?

=(팬미팅장 앞에서 찍은 사진) 으헤헤헤. 저요!

=22 저도요!!

=좋겠다ㅠㅠ

-준비기간이 짧아서 한국 때랑 구성 비슷하려나?

=완전히 똑같을 것 같진 않음.

-연극도 하겠죠?

=당연히 하겠죠!

=제발 너튜브에도 올려줬으면!

=22 같은 연극이라도 배우들 바뀌고 시간 지나면 다른 연극이니까ㅠ 콬아 제발 올려줘ㅠ

=33 다른 무대도 보여주고ㅠㅠ

=44 팬미팅 DVD 팔아줘ㅠ

미국 시간으로 8월 1일 토요일.

날짜가 바뀌자마자, 아니, 날짜가 바뀌기 전부터 [새싹부터]와 SNS는 서준의 팬미팅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미국에서 처음 열리는 서준 리의 팬미팅.

게다가 어쩌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여줄지도 몰랐다.

“완전 좋아!”

조수석에 앉아 발을 동동 굴리는 딸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연예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니, 언제부터 이렇게 팬미팅에 갈 정도로 서준 리를 좋아하게 된 거야?”

엄마가 알고 있기론 딸, 조이는 오컬트적인 것들을 좋아했었다. 점술이나 마녀나 외계인 같은 거 말이다. 조이가 들으면 전혀 다른 거라고 말했겠지만, 오컬트의 ㅇ 자도 관심 없는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나 음악도 그런 장르에만 관심이 있었지.’

한때는 마녀가 되기 위해 수련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정들과 카드들, 이상한 장식물들로 꽉 차있던 조이의 방은 서준 리의 사진과 작품의 포스터로 가득해졌다. 스노우볼들과 응원봉도.

‘배우인데 응원봉은 왜 있는 걸까?’

하여튼 오컬트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엄마는 생각했다.

“유나 알지?”

“알지. 네 친구.”

유나 주.

딸 조이의 한국인 친구로, 미들스쿨에 입학했을 때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가족과도 아는 사이였다. 지금도 조이와 함께 팬미팅에 당첨된 유나 주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고.

“유나가 악령이라는 영화를 보여줬거든.”

“제목부터 오컬트적인 느낌이 팍팍 풍기네.”

엄마의 말에 조이가 헤헤 웃었다.

조이는 엘리멘터리 스쿨에 다닐 때부터 오컬트에 관심이 많았는데, 미들스쿨에 입학하기 전에는 동양의 오컬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갓 이민 와서 허둥지둥대는 유나 주에게 말을 건 것도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주유나가 오컬트에 대해 뭘 알겠나.

기껏 해봐야 무당이나 굿, 부적 정도? 그래서 찾아본 것이 바로 한국 영화 [악령]이었다.

다른 오컬트 영화보다 덜 무서우면서도 미국에서도 유명한 이서준 배우가 출연하는!

‘서준 리? 이름은 들어봤어.’

‘……오…….’

어쨌든, 그렇게 [악령]을 봤고 서준 리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고, 조사(?)를 하게 되었다.

진짜 오컬트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오르체 시 핼러윈 축제 영상인 [늑대인간의 변신]은 조이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결국 굉장히 연기를 잘한다는 결론이 나왔지.’

[악령]을 보게 된 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방 안이 서준 리의 사진으로 가득 찼다. 그때서야 조이는 자신이 한 일이 조사를 가장한 덕질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건 민망하니, 엄마한텐 비밀로 하자.

유나의 입도 막아야지.

“악령 보니까 관심이 생겼는데, 다른 영화에서도 연기를 엄청 잘해서 팬이 된 거야.”

“그래? 재밌나 보네?”

“내 인생 영화야!”

그 이후로 보게 된 [쉐도우맨]도 [오버 더 레인보우]도 좋았지만, 역시 서준 리를 알게 해준 [악령]이 가장 좋았다.

그런 조이의 모습에 엄마가 빙그레 웃었다.

“조이!”

“유나!”

조이를 태운 차가 유나 주의 집 앞에 멈춰 서고, 차를 발견했을 때부터 열심히 손을 흔들던 유나가 상기된 얼굴로 차에 올랐다. 뭐가 들었는지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조이는 얼른 조수석에서 내려 뒷자리로 옮겨 탔다.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조이 너도 엄청 준비한 것 같은데?”

“첫 팬미팅이니까!”

꺄르르 웃는 딸과 친구를 보며 엄마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목적지는 서준 리의 팬미팅장이었다.

* * *

“끝나면 연락해.”

“응!”

“네!”

차에서 내린 조이와 유나가 활짝 웃으며 대답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팬미팅장 앞은 마치 축제처럼 떠들썩했는데, 팬미팅 티켓이 없는 새싹들도 온 것 같았다.

다들 상기된 얼굴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코코아엔터에서 준비한 서준의 굿즈를 사고, 서준이 준비한 푸드트럭들에서 무료로 간식도 받고, 새싹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사진이나 배지 같은 것도 나눠주고, 포장한 간식도 주고받고, [새싹부터]나 SNS에서 알게 된 새싹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우리도 얼른 가자.”

“응!”

조이와 유나도 얼른 준비해 온 것들을 나눠주었고,

“아니,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되는데!”

“괜찮아. 괜찮아.”

그 배로 간식과 선물을 받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많은 관심과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가방이 두둑해진 조이와 유나는 코코아엔터에서 준비한 듯한 서준의 등신대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 많이 세워져 있어서 조금 기다리니 찍을 수 있었다.

“가져가고 싶다.”

“나도.”

다른 새싹들도 애절한 눈빛으로 서준의 등신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신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팬미팅 시간이 되었다.

피켓팅에서 승리한 새싹들이 하나둘 팬미팅장 안으로 들어갔고, 혹시 잃어버릴까 싶어 깊숙이 넣어두었던 티켓을 꺼내 손에 꽉 쥔 조이와 유나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팬미팅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조이! 나중에 봐!”

“그래!”

운이 좋아서 같은 날 팬미팅에 올 수는 있었으나 두 사람의 자리는 떨어져 있어 입구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혼자 남게 되어(유나도 그렇겠지만) 조금 긴장하고 있었던 조이였지만, 곧 옆에서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새싹들 덕분에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첫 무대는 뭘까요?”

“뭐든 좋을 것 같아. 성녕대군마마의 연주도 좋고, 정가람의 연주도 좋고.”

조이의 물음에 옆자리에 앉은 새싹이 대답했다. 그에 주변에 앉아 있던 새싹들이 작게 웃었다. 어째 그렇게 눈물을 쏙 빼는 캐릭터들만 말하는 건지. 어쩐지 취향을 알 것 같았다.

“연극도 하겠지?”

“거울 했으면 좋겠어요. 거울 엄청 좋아하는데.”

“전 436이요. 딱 옆에서 등장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에 조이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통로와 가까운 자리였다. 서준이 걸어가면 잘 보일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준을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근데 그게 M이라서…….”

“아…… 영상으로 봐도 무시무시했는데, 직접 보면 더 오싹하겠지?”

“그래서 더 좋지 않아요?!”

한 새싹의 위험한 대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삐---

소리와 함께 관객석부터 무대까지 천천히 어두워졌다.

“시작한다!”

어디선가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이도 같은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눈도 깜빡 안 해야지.

천천히 무대가 밝아졌다.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풀과 나무들이 나타났다.

‘풀? 나무?’

공원인 것 같았는데 새싹들이 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무대 옆에서 남자가 걸어나왔다.

검은색 모자를 써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서준일 터였다. 묘하게 익숙한 모습이었으니까 알 수 있었다. 근데 좀 낯설기도 하고…….

‘뭐지?’

기묘한 기분에 새싹들이 눈을 끔벅이는데, 서준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활을 들어 바이올린 현을 크게 내려긋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

엉망진창인 연주였다. 누가 들어도 눈살을 찡그릴 만한.

어? 이거?!

하지만 새싹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서준이 나왔던 반대쪽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평범한 옷차림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있는 두 사람.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지만, 새싹들에게는 다른 이야기로 더 유명한.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이었다.

세상에!

새싹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LA공원에서 찍어온 듯한 배경, 서준이 쓰고 있는 까만 야구 모자, 서준이 입고 있는 색이 바랜 옷.

너튜브 영상으로 수십, 수백 번을 봤으니 익숙할 수밖에 없었고, 어렸던 모습이 훌쩍 커버렸으니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서준 리의 팬미팅 첫 무대는, LA공원 버스킹 영상을 재현하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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