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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72화 (87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72화

오.

하고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당발 양주희의 인맥이 미국까지 뻗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근데 펜팔?”

양주희가 웃으며 설명했다.

“실제로 편지를 보내는 건 아니고, 옛날 영화를 주로 리뷰하고 추천하는 곳이라서 쪽지를 주고받는 거나 게시글 올리는 형식을 펜팔처럼 하는 곳이야. 이 사이트의 컨셉이랄까.”

아하. 컨셉.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쪽지를 보내는데도 시간이 걸려.”

“시간?”

“응. 최소가 1일이고 최대가 일주일. 보내는 사람이 도착 날짜를 설정할 수 있거든. 예를 들어 내가 한국인이고 상대방이 미국인이라면, 진짜 한국에서 미국까지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쪽지 보내는 시간을 5일 이후로 설정할 수 있다는 거지.”

쪽지를 보내는 데 5일.

1초 만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처음 듣는 강재한과 전성민도 서준과 같은 의문을 가졌다.

그에 양주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게 사이트 컨셉이니까. 아까 내가 공항에서 미국에 도착했다고 연락한 것도 내일쯤 도착할걸.”

우와…… 컨셉.

같은 단어지만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감탄이 나왔다.

조금 전이 ‘옛날영화 리뷰 사이트 쪽지 형식이 펜팔이라니, 잘 어울린다.’ 하는 귀여운 느낌에 감탄이었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은 질린 느낌이 슬쩍 들어간 감탄이었다.

“근데 왜 하루야? 5일이 아니라?”

전성민의 물음에 양주희가 대답했다.

“내가 미국에 있으니까. 미국에서 미국으로 보내는 편지잖아. LA에 사는 사람은 1일, 뉴욕에 사는 사람은 3일 후에 쪽지가 도착하게 설정해뒀어. 다들 그렇게 하거든.”

다들 그렇게 한단다.

“진짜…… 컨셉에 진심인가 보다.”

“그러게.”

덕 중 덕은 양덕이라고 하더니.

인터넷으로 하는 펜팔까지 이렇게 진심으로 할 줄은 몰랐다.

영화 리뷰 사이트라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가졌던 서준은 생각보다 펜팔에 진심인 느낌에 흥미를 반쯤 접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이야기는 바로바로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찾아보는 게 취미인 서준에게 감상이 가득 담긴 쪽지가 며칠 후에나 온다는 건 굉장히 답답한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기다려?’

서준에게는 맞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영화 리뷰 사이트라서 나중에 한번 들어갈 볼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

양주희가 웃으며 말했다.

“시간 차가 있어서 진짜 펜팔 느낌도 나고 시간이 넉넉해서 영어로 답장 보내는 것도 편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어. 아, 서준이 팬분도 있어.”

“내 팬?”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악령보고 서준이 네 팬이 됐고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대. 그러다가 옛날 영화도 볼까 싶어서 사이트에 가입했고.”

“악령이라면…… 서준이 어렸을 때 찍은 거?”

“응, 그거. 그래서 영화 중에 한국영화에 가장 관심이 많대.”

서준의 팬이 양주희와 펜팔을 주고받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인데?”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캘리포니아에 산다는 것만 알아. 근데 나이가 좀 있는 분 같았어.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 답장도 되게 상냥하게 해주고.”

“악령으로 서준이 팬이 됐다는 걸 보면 그럴 것 같았어. 거의 20년 전 영화잖아.”

전성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LA로 여행 간다니까 추천해 준 LA 음식점들이 있는데, 나중에 같이 가 보자.”

“그래. 그러자.”

양주희의 말에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아실까. 자신이 추천해 준 음식점에 서준이가 간다는 걸.”

강재한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펜팔을 주고받던 한국인이 배우 서준 리의 친구일거라고는 절대 상상조차 못할 터였다.

잠시후.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에 ‘여긴 누가 살고, 저긴 누가 살고.’하고 마치 가이드처럼 할리우드 주택가를 안내하던 서준과 스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우와! 우와아아!’ 감탄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여기가 숙소야. 다른 사람들은 없으니까 편하게 지내면 돼.”

다른 스타들의 집 못지않게, 큰 2층 저택이 양주희와 강재한, 전성민의 눈에 들어왔다.

“엄청 크네.”

“그러게. 사진으로 본 것보다 큰 것 같아.”

“뒤에 수영장도 있으니까 쓰고 싶으면 말해.”

“와! 수영장!”

“우리 지호한테 자랑하자.”

으하하하!

‘나도 미국!’ 하고 데굴데굴 구를 한지호가 떠올라, 서준과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저택 안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푹 자고 일어난 세 사람이 2층에 배정받은 각자의 방에서 1층 거실로 내려왔다.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 테니까 오늘까지는 푹 쉬어.”

먼저 일어나 소파에 앉아 파인패드를 보고 있던 서준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응. 알았어. 근데 생각보다 푹 잔 것 같아.”

“나도. 비행기에서 많이 자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침대랑 이불이 푹신푹신해서 그런가? 완전 호텔 침대 같더라.”

“그치?”

시차 적응이라는 건 이야기로만 들어서 많이 힘든가? 했는데 생각보다 평소와 다를 게 없네, 하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잠이 잘 오게 하는 능력을 쓴 보람이 있었다.

“뭐 보고 있었어?”

“436 세트랑 소품이랑 의상 제작하고 있는 거, 보고서.”

“오.”

눈을 빛낸 아이들이 서준의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파인패드를 보았다.

어디까지 진행되었다는 글과 함께 사진들도 있었는데, 여러 기계장치들이 있는 걸 보니 1부의 배경이 되는 우주선 내부인 듯 보였다.

그것만 봐도 감탄이 나왔다.

“하나도 안 쓰는 버튼들인데, 되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네.”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만드는 거니까. 고등학생들이 만드는 거랑은 다르겠지.”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했던 거랑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아무래도 연극이 주가 되는 건 아니라서.”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건 서준의 팬미팅이었다.

다음 차례를 위해 연극 끝나자마자 치워야 하니, 크고 화려하게 만들지는 못할 터였다.

전성민이 물었다.

“근데 1부는 SF 배경이라서 상관없겠지만, 2부는 괜찮아? 조선 시대가 배경이라 외국인들이 만들기에는 느낌이 조금 다를 텐데. 의상도 그렇고.”

주막과 주막에 쓰는 소품들, 보부상의 옷, 주모의 옷 등.

한국이나 조선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아니라면 제작하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양식이 다르지만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다 같은 동양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조선과 관련 없는 소품들이 연극 무대에 올라왔다가는 팬미팅의 주인공인 서준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괜찮아. 담당자로 한국계 분을 섭외했거든.”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436을 만들 때 조사했던 자료들도 드렸어.”

“그렇다면 다행이네.”

역시.

소품 제작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서준이었다.

그렇게 [436] 소품팀에서 보낸 보고서를 읽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준이 아, 하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1부 대본 조금 바꿨는데 읽어볼래?”

“2부 말고 1부?”

“응. 1부.”

2부에만 출연하는 세 사람이 눈을 끔벅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많이 바꿨어?”

“아니, 조금만 바꿨어. 휴대폰으로 보낼게.”

서준이 파인패드를 눌러 바나나톡으로 친구들에게 1부 대본을 보냈다.

소파에 앉은 세 사람은 각자 휴대폰을 들어 서준이 보내준 1부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서준도 다시 보고서를 보며 수정할 곳은 없나 살펴보았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길지 않을 텐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다 읽었어?”

“하아…….”

그말이 신호가 된 듯 양주희가 저도 모르게 멈췄던 숨을 뱉고는 입을 열었다.

“나 진짜 캐스팅 보고 식겁했거든.”

강재한이 허허 웃으며 휴대폰을 내렸다. 묘하게 힘이 빠져 보였다.

“나도. 서준이가 무슨 생각인가 싶었어. 스왈린 애넘이랑 에반 블록이라니.”

그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그래. 그건 이해해.”

전성민이 해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네가 후보로 생각한 배우들이 대부분 할리우드 스타니까. 다들 바쁠 수도 있지.”

“맞아. 스왈린 배우랑 에반밖에 시간이 안 될 수도 있지.”

“솔직히 그것도 굉장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응응.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이거 읽어보니까, 그냥 서준이 네 의도가 굉장히 의심스러워졌어.”

“나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바꾼 거야?”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보는 친구들에 서준이 헤헤 웃으며 답했다.

“이러면 재미있겠다?”

그 해맑은 대답에 친구들이 뒷목을 잡았다.

“재미는! 재미는 있겠지. 세 사람 다 연기 완전 잘 할 테니까.”

서준 리와 에반 블록과 스왈린 애넘이라니.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는 캐스팅이었다.

“연극 다 끝나고 쉐도우맨 시리즈랑 비교하면 팬들이 다 통곡할걸. 이거 쉐도우맨 절망편이냐고 하면서.”

[436] 대본 그대로 가도 그렇게 생각할 텐데, 서준이 ‘조금만 바꿔볼까?’ 하고 살짝 바꾼 내용은 더욱 그랬다.

아주 [쉐도우맨-절망편]이 따로 없었다.

“쉐도우맨 시리즈 팬으로서 이건 너무하다고…….”

라고 말하며 힘이 쭉 빠진 듯 소파 위로 널브러지는 친구들을 보며 서준이 짐짓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다시 원래대로 바꿀까?”

“진짜로 바꿀 거 아니면서 그렇게 묻지 마라.”

……어떻게 알았지?

서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히히 웃었다.

* * *

친구들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수정된 1부 대본을 다시 읽었다. 안 보고 싶어도 저절로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매운맛에 중독되는구나.”

“우리 괜찮은 건가…….”

그런 친구들을 보며 서준이 키득키득 웃었다.

친구들이 각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대본을 읽고 있는 동안, 서준은 팬미팅 준비 상황을 살펴보았다.

팬미팅에서 부를 노래들과 음악 공연들. 갈아입을 옷과 크고 작은 이벤트들. 그리고 새싹들에게 나눠줄 선물들과 간식들을 체크했다.

그때, 대본을 읽고 있던 전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이 쓴 대본을 보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평소랑 비슷하기도 했고.

‘물론 1부에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안 나오지만.’

연습 때는 어떤 역할을 해도 상관없지 않나.

과학자. M. 진짜 아들.

연기하고 싶은 매력적인 배역들이 있고, 함께 연기할 배우들이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자신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강재한과 양주희를 보고 씨익 웃은 전성민이 서준을 불렀다.

“서준아. 연습실은 어디야?”

“응? 연습실?”

“어. 연습실.”

“지하에 있는데…… 연습실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어제는 방만 알려줬는데?

눈을 끔벅이는 서준에 전성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서준이 너희 집이니까 당연히 있을 것 같았지.”

“그건 그러네.”

“없는 게 이상할 것 같긴 해.”

양주희와 강재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계단 내려가면 바로 옆에 연습실 있어. 그런데 연습실은 왜?”

“1부 대본 재미있어 보여서, 한번 연기해 보려고.”

오.

그에 양주희와 강재한도 들뜬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재미있겠다!”

“여기 과학자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런 친구들을 보며 서준은 잠시 고민,

“나도 갈래.”

조차 하지 않고 말했다.

이미 전성민이 ‘연기’라고 말했을 때부터 파인패드를 끈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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