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69화
아직 별이 빛나고 있는 이른 새벽.
차 두 대가 더 마운틴의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연락을 받고 마중 나와 있던 메이슨 프랭코가 그 차에 탄 서준과 최태우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준. 태우.”
“안녕하세요. 메이슨.”
차에서 내린 서준은 나흘 만에 보는 메이슨 프랭코와 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자신들도 일찍 온 것 같은데, 더 일찍 온 것 같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다들 일찍 나오셨나 봐요.”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아예 어제 집에 안 간 직원들이 있거든요. 또 근처에 사는 직원들도 있고요.”
메이슨 프랭코가 웃으며 말했다.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요?”
서준이 물었다.
최태우는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었다.
“저기 컨테이너 트럭 보이시죠?”
메이슨 프랭코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컨테이너 트럭 2대가 보였다. 하나는 컸고 하나는 작았다.
“저 차들을 이용해서 늑대들을 국립공원으로 옮깁니다. 아무래도 늑대들에게 컨테이너는 낯설 테니, 안쪽에 늑대들의 냄새가 묻힌 것들을 옮겨두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불편하지 않게 이것저것 넣어둬야 하죠. 아무래도 이동하는 중간에 컨테이너를 열 수는 없으니까요.”
아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메이슨 프랭코가 서준 일행을 더 마운틴 안으로 안내했다.
새벽의 더 마운틴은 저번에 왔을 때보다 어두웠지만, 더 활기차 보였다.
“어쩐지 그때보다 더 활기차 보이네요.”
“야행성인 애들이 꽤 있어서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여우와 늑대도 야행성이죠.”
서준의 말에 메이슨 프랭코가 대답했다.
“하지만 애셔나 켈리처럼 낮에 일어나고 밤에 잠드는 동물들이 꽤 있습니다. 아무래도 더 마운틴의 생활이 주행성인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죠. 그래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면 금세 원래 패턴에 적응하곤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물었다.
“켈리는 잘 지냈나요?”
며칠밖에 안 지났지만 낑낑거리던 켈리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 걱정이 됐다. [(선)드리머의 꿈여행]이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도 궁금했다.
“네. 잘 지냈습니다. 요즘은 다른 늑대들하고도 조금이나마 시선을 마주치는 것 같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서준이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무언가 떠오른 듯 메이슨 프랭코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잠꼬대도 합니다.”
“잠꼬대요?”
“네. 준이 왔다 간 날, 켈리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늦게까지 살펴봤는데, 네 발을 허공에 허우적거리고 있더라고요. 아마 꿈속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하.
옆으로 드러누워 네 발을 허우적거리는 거대한 늑대를 떠올린 최태우와 보디가드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함께 웃었다.
흰 늑대와 함께하는 꿈여행이 정말 즐거웠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도착한 곳은 서준이 처음 오는 곳이었다.
사방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보통의 우리와 달리, 한쪽이 벽과 철제문으로 막혀 있는 우리였다.
“여긴 어디예요?”
켈리의 우리로 갈 줄 알았는데?
그 의문을 알고 있는 듯, 메이슨 프랭코가 웃으며 설명했다.
“여긴 동물들이 컨테이너로 이동하기 전 머무는 곳입니다. 저쪽 벽 너머에 컨테이너 트럭을 준비해 두고 입구를 열면 바로 컨테이너의 입구와 연결되는 거죠.”
아하.
서준이 막혀 있는 벽과 그 중앙의 문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을 컨테이너로 손쉽게 이동시키기 위해 만든 곳인 모양이었다.
“켈리와 다른 늑대들도 여기 있군요?”
“네. 바로 옆 우리에 켈리가 있습니다.”
조금 옆으로 이동하니, 천천히 밝아지는 하늘 아래 두 개의 노란 불빛이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켈리의 눈동자였다.
“안 자고 있었네요?”
“네. 이제 이곳을 떠나는 걸 아는지, 벌써 야행성이 되살아나는 것 같더라고요.”
서준의 말에, 메이슨 프랭코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결에 서준과 사람들의 냄새가 흘러갔는지, 야행성인 본능 덕분에 새벽에도 생생한 켈리가 번뜩,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서준을 발견했다.
메이슨 프랭코와 최태우, 보디가드들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며칠 전처럼 켈리가 달려 나올 것을 걱정한 것이리라.
‘우리가 튼튼한 건 알지만.’
하지만 그런 추측과 달리, 켈리는 서준이 반가운 듯이 꼬리를 열심히 흔들면서도 느긋하게 철조망 앞까지 걸어왔다.
“……얌전해졌네요?”
“그러게요? 며칠 전에 봐서 그런가?”
최태우와 메이슨 프랭코가 눈을 끔벅였다.
서준이 작게 웃으며 켈리를 바라보았다.
켈리는 노란 눈동자를 반짝이고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릴 정도로 여전히 서준을 좋아했지만 그 위치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계속 함께 있고 싶은,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대장’이었다면 지금은 함께 있으면 좋은 ‘동료’나 ‘친구’ 같은 느낌.
‘좀 아쉽긴 하네.’
한없이 쏟아졌던 애정이 옅어져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의 사이가 늑대인 켈리에게 좋을 터였다.
“안녕, 켈리.”
컹!
반가움이 듬뿍 담긴 씩씩한 켈리의 대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안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서준의 물음에 잠시 켈리의 상태를 살펴본 메이슨 프랭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컨테이너로 들어간 후에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지금 작별인사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준.”
“알겠습니다.”
저번처럼 메이슨 프랭코가 켈리의 목에 목줄을 한 후, 서준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컹!
켈리가 반가운 듯, 다가오는 서준에게 머리와 몸, 꼬리를 부딪쳐댔다. 서준도 하하 웃으며 쭈그리고 앉아 그런 켈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어주었다. 제어가 안 되는 켈리의 꼬리가 여기저기 때려왔지만, 기분 좋은 웃음만 나왔다.
“잘 지냈어, 켈리? 꿈여행은 재미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서준이 조용히 속삭였다.
“대장 정말 멋있었지?”
그 말을 알아들은 듯 켈리의 눈이 반짝였다. ‘엄청 멋있었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켈리 너라면 대장처럼 될 수 있을 거야.”
그런 켈리를 쓰다듬으며 서준이 능력을 발동했다.
[(선)알비노 늑대의 울타리-중상급-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등급을 낮추었다.
[[(선)알비노 늑대의 울타리-중상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알비노 늑대의 울타리(중하급)이 발동됩니다.]
[(선)알비노 늑대의 울타리-중하급-]
무리를 지키고 적을 경계하는 울타리입니다.
사용자와 같은 종족이 사용자에게 친밀함과 편안함, 위엄을 느끼게 해줍니다.
무리와 함께 있을 때 사용자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적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심어줍니다.
중상급의 능력을 그대로 사용하면 흰 늑대가 붉은여우나 샤벨타이거 등을 무리로 삼았던 것처럼 ‘다른 종족’까지 무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큰일이지.’
전생의 경험이 많고 지능이 뛰어난 흰 늑대라면 적당히 조절해서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그저 평범한 동물일 뿐인 켈리는 달랐다.
늑대는 물론이고 다른 포식자들까지 무리에 넣어 국립공원에서 활동한다면 초식동물의 수가 금세 줄어들면서 끝내 국립공원의 생태계가 파괴될 터였다.
‘그건 앞으로 국립공원에서 살아갈 켈리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야.’
적당한 균형이 중요했다.
‘능력이 평생 가는 것도 아니니까.’
능력을 발동시키는 마나는 건전지처럼 계속 줄어들 테고, 끝내 켈리에게서 능력이 사라지는 날이 올 터였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능력을 도움을 받더라도 나중에는 켈리 네가 잘해야 해. 능력이 사라져도 다들 널 따를 수 있게 말이야.”
서준은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켈리가 무리와 함께 잘 지내기를 바랐다.
컹!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켈리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 * *
“국립공원에서도 잘 지내야 해, 켈리.”
여전히 대형견 같은 켈리를 한바탕 신나게 쓰다듬고 꼭 안아주며 작별인사를 한 서준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 늑대들을 컨테이너로 옮길 시간이었다.
더 마운틴의 직원들이 나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곧 켈리와 늑대들이 있던 우리의 벽에 달린 전등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컨테이너 트럭이 지금 저쪽 벽 건너편에 주차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메이슨 프랭크가 설명해 주었다.
“불이 꺼진 건 주차가 완료됐다는 거죠. 초록불은 문이 열린다는 신호입니다.”
그 말대로 초록불이 켜지자, 우리의 한쪽을 막고 있던 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문 사이로 풀과 나뭇가지, 그리고 바위 등으로 꾸며진 컨테이너 내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늑대들이 저기에 들어갈까요?”
“동굴처럼 보여서 그렇게 거부감이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게다가 늑대들이 좋아하는 특식도 넣어뒀으니, 시간은 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들어갈 겁니다.”
메이슨 프랭코의 말대로, 조금 지나자 늑대들이 하나둘 자발적으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에 혼자 있던 켈리도 작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내부의 CCTV를 확인한 더 마운틴 직원들이 조용히, 그러나 신속하게 두 컨테이너의 문을 닫았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서준과 최태우는 더 마운틴 측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같은 캘리포니아주에 있지만 더 마운틴과 엘리드 국립공원은 꽤 멀어서, 중간에 잠시 미리 준비한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적당히 배를 채웠다.
운전대를 잡은 메이슨 프랭코가 서준에게 물었다.
“준은 엘리드 국립공원에 가 본 적 있습니까?”
“네. 어렸을 때 가 본 적 있어요.”
잭 스미스 가족과 함께 캠핑도 했었다.
“곰이 가끔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본 적은 없어요.”
“전 곰도 정말 좋아하지만, 일반인은 안 만나는 게 좋죠.”
웃으며 말한 메이슨 프랭코가 말을 이었다.
“그럼 엘리드 국립공원이 얼마나 멋진지도 알고 있겠네요. 놀라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몇 번을 봐도 멋있죠, 엘리드 국립공원은. 아, 태우 형은 처음 볼 거예요.”
“오, 그래요?”
메이슨 프랭코가 활짝 웃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태우. 분명 감탄하실 겁니다!”
잠시 후.
더 마운틴은 엘리드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 합니다.”
엘리드 국립공원에 도착해서도 미리 찾아두었던 구역까지 이동하기 위해, 더 마운틴은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부르릉-
서준이 탄 차는 켈리를 실은 컨테이너 트럭을 따라갔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서준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풀 내음이 가득할 것만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안쪽으로 향하는 길은 가지와 잎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아침 햇볕에 반사된 초록색 나뭇잎들이 반짝였다.
“준. 태우.”
그때, 메이슨 프랭코가 서준과 최태우를 불렀다.
“앞 좀 봐주시겠습니까?”
앞?
웃으며 말하는 메이슨 프랭코에, 눈을 끔벅인 최태우가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컨테이너 트럭이 가고 있어서 컨테이너밖에 보이지 않는……!
“오……!”
최태우가 눈을 크게 떴다.
앞서가던 컨테이너 트럭이 우회전을 하면서, 가려져 있던 풍경이 나타난 것이었다.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로 새파란 하늘.
그 아래 솜털처럼 새하얀 구름들과, 그 구름과 맞닿을 듯이 서 있는 커다란 산들.
그 아래 넓은 하늘처럼 거칠 것 하나 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 초원의 끝에 있는 커다란 호수.
그리고 그 호수를 감싸고 있는 듯한 길쭉한 나무들.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최태우의 감탄을 들으며, 서준 또한 눈을 반짝였다.
‘여전히 멋지네!’
언제 봐도 감탄만 나오는 엘리드 국립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