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68화
“켈리가 국립공원에 가는 날이 4일 후니까.”
오늘을 포함하여 4번의 밤밖에 남지 않았다.
서준은 가져온 삶의 책들을 보았다.
10권의 책.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책꽂이에 남아 있는 책들이 더 있었다. [알비노 늑대]의 책은 중상급 능력답게 양이 꽤 됐기 때문이었다.
“그걸 4일 만에 다 읽어야 한다는 거지.”
대본과 삶의 책 독서로, 책 읽기에 익숙해진 서준에게도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깨어나지 않고 잠만 자면서 생의 도서관에서 읽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근데 그러면 태우 형이 걱정할 거다. 부모님이나 다호 형도 단번에 LA까지 날아오겠지.
능력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저번에 봤던 것 같은데……”
서준은 쓸 만한 능력이 담긴 삶의 책들을 모아둔 책장으로 향했다. 썼던 능력들과 쓰지 않은 능력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서준은 하나를 선택했다.
[(선)몬트족의 달시계-중급]
달의 종족 몬트족의 성인식 때 사용하는 달시계입니다.
범위 내의 시간을 최대 3배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제한: 밤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달의 종족 몬트족은 성인이 됐을 때 밤새 만월의 달에게서 힘을 부여받는데, 그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힘을 받을 수 있어 더 강해지고는 했다.
그 때문에 몬트족은 더 강해지기 위해 성인식의 시간을 늘릴 방법을 궁리했고, 마침내 달시계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이제 최대 3배의 시간 동안 달빛을 받은 몬트족은 최대 3배로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달시계 또한 몬트족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늘어나는 시간이 달라서, 3배로 강해지는 몬트족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찾아보기 힘들어서 거의 전설 속 이야기처럼 내려오는, 그 3배로 강해진 몬트족 중 하나가 바로 서준의 전생이었다.
“이걸로 시간을 늘리면 되겠다.”
범위 내 1시간을 최대 3시간까지, 최대 3배로 늘려주는 능력.
야간촬영이 있을 때 시간이 부족하면 쓰려고 했던 능력이었다.
‘이번 촬영 때는 안 썼지만.’
이 능력을 사용하면 느리게 가는 시간에 ‘아직 이것밖에 안 지났어?’하고 촬영장의 사람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거였다.
재미있는 것을 하면 빠르게, 지루하고 힘든 것을 하면 느리게 가듯이, ‘촬영이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터였다.
“문제는…….”
생의 도서관 안에서 사용하는 거라서, 능력이 지금을 밤으로 생각할지 낮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밖이 밤이니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한 서준이 [(선)몬트족의 달시계]를 몸에 새기고, 능력을 발동했다.
[(선)몬트족의 달시계가 발동됩니다.]
다행히 밤으로 여겨진 듯했다.
뭔가 달라졌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능력의 범위 안에 있는 서준이 느낄 수 있는 이질감은 없었다. 시간은 평소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읽어볼까.”
서준은 다시 책상에 앉아 [알비노 늑대] 1권을 펼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집중했다.
중상급의 삶의 책이지만, 이미 아는 내용이고 훑어본 적도 있으니 처음 보는 책들보다 빠르게 정독할 수 있을 터였다.
* * *
“잘 잤어요, 태우 형?”
조금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기사들을 살피고 있던 최태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작게 웃고 말았다.
서준이 평소 깔끔하게 준비하고 내려오는 모습과 달리 막 일어난 듯한, 잠옷을 입은 모습 그대로 1층에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부스스한 머리도 조금 눌려 있었다.
‘촬영이 끝나서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촬영이 없는 날에도 평소와 같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준비하는 서준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이었다.
“아주 푹 잤나 보네.”
웃음기 담긴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민망한 듯 하하 웃었다.
너무 열심히 책을 읽은 데다가 능력으로 시간까지 늘린 것 때문에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알람도 켜두지 않은 상태라서 지금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좋은 꿈을 꿔서 일어나기 싫었나 봐요.”
대장의 삶의 제대로 정독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
“좋은 꿈이라. 복권 사 볼까, 서준아?”
“복권이요?”
“응. 마침 이번 당첨금이 1조가 넘는다고 기사 떴더라.”
1조.
어마어마하다.
“그래요? 한번 사 볼까요? 당첨되면 반 나눠드릴게요, 형.”
“허어. 반이나? 10%만 줘도 돼.”
서준과 최태우가 키득거렸다.
“아침 먹을 거지?”
“네.
서준도 내려왔으니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최태우가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서준도 부스스하고 조금 눌린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서준과 최태우는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고 끓여두었던 미역국을 다시 데우기 시작했다. 노란 계란말이도 만들었고, 따끈한 밥도 그릇에 적당히 담고 수저도 놓았다.
금세 아침상이 차려졌다.
“436에 나올 배우들은 정해졌어?”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떠먹으며 최태우가 묻자, 서준이 계란말이를 집으며 대답했다.
“2부는요. 주모 역에는 주희가 해주기로 했고요, 보부상1은 재한이가, 보부상2는 성민이가 해주기로 했어요.”
“보부상1은 졸업공연이랑 똑같네.”
“네.”
졸업공연에서 강재한이 M에게 죽는 보부상1을 연기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배역을 연기할 예정이었다.
“원래 후배들이 하지 않았어?”
“둘 다 축제 준비로 바쁘대요.”
아하.
고개를 끄덕인 최태우가 작게 웃었다.
“엄청 아쉬워했겠네.”
“단톡방이 아주 눈물바다가 됐다니까요. 볼래요, 형?”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두드리고는 최태우에게 보여주었다.
>박연지: 아ㅠㅠ
>박연지: 미리 말해주셨으면 일정 쫙 비워뒀죠ㅠㅠㅠ
>김영찬: 저두요ㅠㅠㅠ
>김영찬: 올해 내내 비워뒀을 텐데!ㅠㅠㅠㅠ
서준의 말대로 눈물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다른 친구들은 뭐래?”
“다른 애들도 이제 졸업이 얼마 안 남아서 바쁘대요. 섭외된 작품들도 있고요.”
여름방학인데도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난 언제 졸업하지?’
휴학으로 미뤄진 졸업을 생각하며, 서준이 허허 웃었다.
“1부 배우는 정했어?”
“아직 못 정했어요.”
달달한 진미채 볶음을 입에 넣은 서준이 말을 이었다.
“리첼이랑 바네사랑 멜리사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스케줄이 있대요.”
과학자 배역을 맡아줄 여배우들이 모두 바빴다.
좋은 일이다. 다들 잘나간다는 거니까.
서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새로운 배우를 캐스팅해야겠네? 오디션 준비할까? 아니면 캐스팅 디렉터를 부를까?”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듯 쏟아져나오는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요. 과학자 역을 아버지로 바꾸면 어떨까 싶어요.”
“아버지로?”
최태우가 눈을 끔벅였다.
“네. 원래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배역이었거든요.”
김주경이 합격하고 연기해서, 졸업공연에서는 ‘어머니’였었지만 원래는 과학자가 아버지든 어머니든 상관없는 역할이었다. 모집공고도 남녀 무관으로 냈었고.
“첫 공연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미국에서 보여주는 첫 연극이니까 조금 특별한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음.”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준의 팬들이라면 [MOEB-436]을 수없이 봤을 거다. 물론 직접 연극을 보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조금의 변화를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괜찮을 것 같네.”
“그쵸?”
서준이 들뜬 얼굴로 웃었다.
* * *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후.
최태우가 코코아엔터에 연락해 양주희와 강재한, 전성민을 섭외했다는 것을 알리는 동안, 깔끔하게 씻고 내려온 서준이 휴대폰 연락처를 살폈다.
알파벳 순서대로 저장된 수많은 이름들이 보였다.
과학자. 아버지.
누가 가장 어울릴까.
서준이 볼을 긁적이다 작게 웃고 말았다.
‘역시 이분밖에 안 떠오르네.’
약간의 사심도 있긴 했다.
‘같이 연극하고 싶어.’
언제든 한 번 더 함께 연기하고 싶었는데, 그게 연극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설렜다.
[스왈린 애넘]
할리우드의 역사와 함께하는 대배우이자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존경하고 있는 롤모델.
서준은 잠시 그 이름을 바라보다 헤헤 웃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니 나중에 연락하기로 했다.
“다른 후보도 정해둬야지.”
자식이 있어 과몰입할 수 있는 밀란 첼런도 좋을 것 같았고, [쉐도우앤나이트]에서 호흡을 맞췄던 커크 로렌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 커크는 스케줄이 있다고 했지?”
영화가 개봉하면 재미있게 봐달라고 연락을 했던 게 떠올랐다.
‘아쉽지만 커크는 제외하고…….’
그렇게 서준은 과학자 역을 맡을 후보 배우들을 정해갔다.
“그럼 다음은 진짜 유진.”
과학자의 진짜 아들이자, 사건의 발단.
재수 없는 모습을 한껏 보여줬으면 좋겠다.
“데이비스가 괜찮을 것 같은데…….”
서준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물론 진짜 성격이 아니라 이미지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 연기를 잘하기도 하고.’
일단 1순위로 정해두기로 했다.
물론 나이 차가 있으니까, ‘진짜 유진과 똑같은 M을 만들었다.’는 스토리는 조금 바꿔야 하겠지만.
‘데이비스랑 같이하면 쉽겠지!’
영화 [생존자들]의 스토리도 바꾼 적이 있는 두 배우에게는 가뿐한 일이었다.
‘재미있겠다!’
히히 웃은 서준이 다른 이름들을 살펴보았다.
[에반 블록]
‘음. 에반도 9월까지 쉰다고 들었는데…….’
영화는 같이 많이 찍었지만 연극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같이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서준은 고심하며 두 배역의 후보들을 하나둘 정해갔다.
* * *
이틀 후.
서준과 최태우는 조금 이른 시간에 저녁 식사를 했다.
왜냐하면 내일은 켈리와 더 마운틴의 늑대들이 엘리드 국립공원으로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마운틴은 최대한 빨리, 최대한 조용히 이동하기 위해 해가 뜨지 않은 새벽부터 움직일 예정이었고, 서준 일행도 거기에 맞춰 일찍 움직일 계획이었다.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니 일찍 잠들어야 했고, 그 때문에 저녁도 조금 이른 시간에 먹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2부 배우들은 이제 다 정했어?”
“네. 승낙도 다 받았어요.”
최태우의 물음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누군지 알려줘. 나머지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네. 과학자 역은 스왈린이고요.”
들떠서 말하는 서준에, 반찬을 집던 최태우가 젓가락을 멈추고 멍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입이 쩍 벌어진 것 같았다.
“……스왈린 애넘?”
“네. 맞아요.”
“하시겠대?”
“네. 흔쾌히 수락해 주셨어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여쭈어보자마자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준과 연극이라니. 기대되는구나.’
‘저도요. 엄청 기대돼요!’
스왈린 애넘과의 전화 통화를 떠올리며 서준이 히히 웃었다.
서준가 배우 지인들에게 부탁한다고 했을 때부터 조금 각오하긴 했지만.
‘그 스왈린 애넘이 출연하다니.’
그 누구도 팬미팅에서 하는 연극에 대배우 스왈린 애넘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거다.
“아, 태우 형. 스왈린이 나온다는 거, 팬미팅날까지 숨겨서 다들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요.”
“그거 좋겠네. 알았어.”
서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 보안을 철저히 해야겠다.
“그럼 진짜 유진 역은 누가 하기로 했어?”
“1순위는 데이비스였는데, 일정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할리우드 스타들.
여배우들도 남배우들도 엄청 바쁘게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에반한테 물어봤는데, 같이 해주기로 했어요.”
에반 블록.
서준과 가장 친한 배우(리첼 힐도)를 떠올리며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에반 배우 쪽에도 연락할게.”
그렇게 연극 [MOEB-436]의 배우들이 모두 정해지고, 서준과 최태우는 팬미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최태우가 움찔했다.
“……잠깐만. 서준아.”
“네?”
“스왈린 배우가 아버지고, 에반 배우가 진짜 아들이고…… 서준이 네가 가짜 아들이라고?”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인데?
거기다 [MOEB-436]의 줄거리를 떠올려보면…….
최태우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크게 진동했다.
그 모습에 서준이 히히 웃었다.
“그렇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