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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67화 (86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67화

그 평온한 모습에, 잠시 살펴보던 보디가드들이 뒤로 물러서고 최태우도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아무래도 놀랄 팬들을 위해 조금 전 장면은 잘라내야 할 것 같았다.

“정말로 준을 알아보는 모양이군요.”

이래도 킁 저래도 킁, 하던 켈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메이슨 프랭코는 놀랐던 마음을 진정하고 감탄했다.

늑대 켈리로서는 3월 중 하루 겨우 한 시간쯤 본 게 전부일 텐데, 그냥 알아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주 반가워하고 있었다.

끼잉- 낑-

이제는 철창 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서준에게 닿으려고 철창을 머리와 몸으로 누르기도 했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철창을 긁기도 했다. 하지만 단단한 철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켈리가 낑낑 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메이슨,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그에 서준이 고개를 돌려 메이슨 프랭코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켈리의 모습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던 메이슨 프랭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켈리의 상태를 보면 목줄도 필요 없겠네요.”

그렇다고 진짜 목줄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메이슨 프랭코가 먼저 우리에 들어가 켈리의 목에 목줄을 채웠다. 목줄의 길이가 적당해서 크게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목줄 하는 거 익숙해 보이네요.”

서준의 말대로 켈리는 익숙한 듯 가만히 앉아 메이슨 프랭코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켈리의 풍성한 꼬리만이 지칠 줄 모르고 팔딱팔딱 움직여댔다.

시선은 계속 서준에게 향하는 걸 보면, 어쩌면 목줄을 해야 사람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걸 아는 건지도 몰랐다.

“치료를 할 때나 건강검진을 할 때 몇 번 해봤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얌전히 있는 건 처음입니다. 공격하지는 않는데 몸에 뭔가 닿는 걸 싫어해서 피해 다니거든요.”

목줄을 단단히 고정한 메이슨 프랭코가 그런 켈리를 아주 약간의 배신감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까 준을 반긴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동안 널 돌봐준 건 나라고 켈리……!”

킁.

뭐래, 하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내가 밥도 주고! 사냥 훈련도 같이 해주고! 다치면 치료도 해주고!”

메이슨 프랭코의 한탄은 한 귀로 흘려 버린 켈리는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철창 너머에 있는 서준을 보고 있었다.

“크흠.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에 무안해진 메이슨 프랭코가 걸어와 입구를 열었다.

“한 분씩 들어오세요. 갑자기, 너무 많이 들어오면 켈리가 경계……할 것 같진 않네요. 그냥 준만 있으면 몇 명이 들어와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

어쩐지 그럴 것 같아 서준과 최태우, 보디가드들이 작게 웃었다.

그래도 매뉴얼은 매뉴얼.

보디가드 한 명이 먼저 들어와 켈리의 컨디션을 살피고, 이후 서준과 최태우, 또 한 명의 보디가드가 차례대로 켈리의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켈리는 서준 이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걸어오는 서준을 바라보며 열심히 꼬리만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서준이 가까워지자, 발라당- 배를 드러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커다란 두 앞발이 얌전히 모였고 꼬리가 파닥파닥 땅을 쳐댔다.

“진짜…… 켈리, 너…….”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켈리의 눈치를 보며 움직여야 했던 메이슨 프랭코는 이제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포기했다.

“그래. 준이 제일 좋다는 거지.”

한숨과 함께 흘러나오는 많은 것이 담긴 메이슨 프랭코의 목소리에 다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잘 지냈어?”

서준이 웃으며 늑대 켈리를 쓰다듬었다. 그에 켈리가 기분 좋은 듯 소리를 냈다.

그렇게 발라당 누워 쓰다듬을 받다가 몸을 일으켜 서준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다시 쓰다듬을 받고 또 서준에게 치대고. 늑대가 아니라 그냥 대형견인 것 같았다.

그런 켈리를 활짝 웃으며 쓰다듬던 서준이 물었다.

“여기 좀 더 있어도 될까요?”

그에 켈리의 컨디션을 고려해 짧게 만나게 하려고 했던 메이슨 프랭코는 해탈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서준과 켈리를 떼어놓는 게 더 문제일 것 같았다.

* * *

서준과 메이슨 프랭코, 그리고 카메라를 든 최태우가 풀이 파릇파릇한 땅바닥에 앉았다. 늑대 켈리는 빠르게 서준의 옆자리를 차지해 서준의 다리 위에 머리를 올려두었다.

서준은 마치 반려견처럼 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자막을 넣어야 할 것 같네.”

“자막이요?”

“응. 어른들과 어린이들은 따라 하지 마세요, 하고.”

“하하.”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메이슨 프랭코는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편이 좋겠습니다. 앞뒤 모르고 따라 하는 무모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요.”

“늑대인데요?”

“늑대가 아니라 사자여도 따라 할 겁니다.”

음. 그럴지도.

서준도 납득했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는 잘 찍었는지, 켈리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켈리가 앞으로 살아갈 엘리드 국립공원은 어떤 곳인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서준은 풀 내음을 맡으며 켈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어릴 적 함께했던 흰 늑대의 감촉이 이랬을까 싶었다.

켈리가 크게 하품을 했다.

서준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두고 옆으로 드러누워 꼬리만 파닥거리고 있었다. 잠이 들 것만 같은 평온함이었다.

“늘어진 게 아주 편안해 보이네요. 개인지 늑대인지 참…….”

“하하.”

메이슨 프랭코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메이슨!”

그때, 우리 밖에서 훈련사로 보이는 여자가 메이슨 프랭코를 보며 손목시계를 가리키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에 메이슨 프랭코가 자신의 시계를 보고는 서준에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야겠습니다. 준.”

“무슨 일 있나요?”

“이제 곧 켈리와 늑대들이 만나는 시간이거든요.”

그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나는 시간이요?”

“네. 서로 어울리지는 못하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죠.”

메이슨 프랭코가 빙그레 웃었다.

“최대한 서로 익숙해지도록 국립공원에 갈 때까지 매일 서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만요.”

그저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전문가다워 보였다.

“켈리를 위해서군요.”

훈련사를 보던 서준이 고개를 내려 늑대를 바라보았다.

다 자란 모습이었지만, 어릴 때 한 번 봐서 그런지 전생에 흰 늑대여서 그런지 어리게만 보였다.

돌봐줄 사람이 있는 더 마운틴에서는 혼자서도 지낼 수 있었지만,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국립공원에서는 혼자 지내기 어려울 터였다.

그래서 더 마운틴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켈리는 전혀 알아주지 않지만요.”

쓴웃음을 짓는 메이슨 프랭코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알아주지 않더라도 건강하게 지내기만 해도 좋습니다.”

애정이 듬뿍 담긴 말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메이슨 프랭코가 일어나고 서준과 최태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안하게 있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게 된 켈리 또한 네 발로 섰다.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서준이 그런 켈리를 바라보았다.

“켈리, 나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아.”

컹?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알 것 같았다.

몇 달 전 대장을 처음 봤을 때도 이랬다.

그 이후로 대장이 오랜 시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켈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끼잉- 낑- 울었다. 귀와 꼬리도 축 내려가 있었다. 큼직한 두 앞발을 뻗어 서준의 다리를 끌어안기도 했다.

서준은 그런 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기 위해 선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 다른 늑대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힝-

진정은 했지만, 켈리의 표정은 여전히 울망울망했다.

* * *

서준은 메이슨 프랭코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켈리와 늑대들이 만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늑대들은 서로를 의식했다.

“저쪽 늑대들은 켈리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네요?”

서준의 말대로 반대편에 있는 늑대들은 제법 켈리에게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켈리가 워낙 뛰어나서요. 켈리만 받아준다면 아마 켈리가 무리의 대장이 될 겁니다.”

그와 반대로 바닥에 엎드려 있던 켈리는 잠시 고개를 들어 다른 늑대들이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는 이내 포옥, 한숨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발 위에 올려두었다. 프로펠러 같던 꼬리도 미동조차 없었다.

“켈리는…… 원래 저런가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서준이 묻자, 쓰게 웃은 메이슨 프랭코가 대답했다.

“오늘은 준 때문에 조금 더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보통 저런 모습입니다.”

그것참.

서준은 한숨을 삼키고 켈리를 바라보았다.

진짜 다른 늑대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켈리의 모습은 예상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트레이닝 센터에서의 만남이 얼마나 인상 깊었던 건지.

본의는 아니었지만, 켈리와 무리를 떼어놓아 버린 것 같았다.

‘그럼 해결해야지.’

“메이슨. 켈리가 국립공원에 갈 때,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서준의 말에 메이슨 프랭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준!”

더 마운틴에서 이러이러한 일을 한다고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영상으로 보여주는 편이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질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메이슨 프랭코와 약속을 잡은 서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늑대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켈리를 보았다.

켈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을 가진 삶의 책들이 떠올랐다.

* * *

그날 밤.

바람결에 따라 맡아지던 대장(서준)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켈리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 구석에 박혀 있다가 저녁도 먹지 않고 홀로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파릇파릇한 풀들로 가득한 땅과 하늘 높이 뻗은 나무들.

푸르른 하늘과 몽실몽실한 구름들.

몸을 가득 채우는 신선한 바람.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를 켈리나 다른 늑대들처럼 생겼지만 털의 색은 전혀 달랐다. 마치 구름과도 같은 색이었다. 덩치도 켈리보다 몇 배는 더 커서, 켈리는 그저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켈리.’

그 존재가 켈리를 불렀다.

애정이 듬뿍 담겨 부드러우면서도 의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굳건했다.

‘네, 네!’

바짝 기합이 들어간 켈리에 흰 늑대가 웃었다. 아주 상냥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미소였다.

‘출발하자.’

‘네!’

켈리는 앞뒤 상황도 몰랐고 이 흰 늑대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꿈속에서는 누구나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흰 늑대를 따라 달렸다.

빠르게.

더 빠르게.

꿈이라서 그런지 덩치 차이가 몇 배나 나는데도 불구하고 켈리는 흰 늑대를 쫓아 달릴 수 있었다.

‘켈리! 잘 달리는데!’

‘더 빨리 달려!’

어느새 또 다른 늑대들이 합류했다. 다들 쾌활하고 유쾌했다. 켈리도 어느샌가 웃으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와 함께 힘차게 초원을 가로질렀다. 사냥도 했다.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서로 몸을 부딪치며 놀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도 켈리는 흰 늑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흰 늑대는 초원에서도 사냥에서도 가장 앞에 섰으며, 이리저리 뒹굴며 노는 늑대들을 지켜주었다. 모두 흰 늑대가 있어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보였다.

켈리도 그랬다.

서준을 만났을 때 그랬듯 마음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니, 더 편안한 것 같기도 했다.

‘멋지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켈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렸을 때 더 마운틴에 구조되어 ‘무리의 대장’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켈리의 앞에, 가장 이상적이고 멋진 ‘대장’이 나타난 것이었다.

* * *

[(선)드리머의 꿈여행이 발동됩니다.]

“지금쯤 꿈꾸고 있으려나?”

생의 도서관.

의자에 앉은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무리와 어울리려면 그전에 ‘무리’가 어떤 것인지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서준은 무리 중 가장 멋진 무리를 알고 있었다.

‘흰 늑대의 무리.’

물론 거기에는 샤벨타이거나 붉은여우 같은, 늑대 이외 종족들밖에 없어서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주 멋진 대장을 만났으니 어쩌면 국립공원에 가는 날 다시 켈리와 만나게 되면 자신은 뒷전이 될지도 몰랐다.

‘그건 좀 슬프네…….’

그래도 켈리를 위해서니까.

작게 웃은 서준이 들고온 삶의 책을 펼쳤다.

그동안 훑어보기만 했지 제대로 전부 읽지는 않아서, 아직 능력이 담긴 구슬이 나오지 않은 책이었다.

[알비노 늑대]

켈리를 위한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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