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66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준과 최태우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장 앞에서 사람들을 맞이해 주는 본관 건물로 향했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서준보다 일찍 온 무리들이 보였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아마도 가족인 것 같았다.
더 마운틴도 씨 세이브처럼 개인이나 가족끼리 방문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람이 꽤 있네.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있고.”
최태우의 말에 잠시 사람들을 구경하던 서준이 멍멍 짖는 소리가 듣고 고개를 돌렸다.
털이 반질반질한 대형견, 골든리트리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자, 골든리트리버의 꼬리가 마치 프로펠러처럼 움직였다.
그 거대한 꼬리에 다리를 맞은 보호자가 ‘왜 그래? 줄라이.’ 하고 고개를 돌렸고 서준을 발견했다.
아.
서로 눈이 마주친 서준과 보호자는 웃으며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우리 줄라이가 많이 귀엽긴 하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보호자가 히죽 웃었다.
“반려견 훈련소도 있어서 그런가 봐요.”
더 마운틴은 도시 바로 옆에 붙어있는 씨 세이브 센터보다 접근성이 떨어져서, 반려견 훈련소라는 것을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돈을 써서 반려견 훈련소를 보낼 정도면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 보통 사람들보다 야생동물들에게도 좀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는 판단일 터였다.
반려견 훈련소에 갔다가 야생동물들에게 기부하고 왔거나 야생동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들을 보면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본관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자를 고쳐 쓴 서준과 최태우, 그리고 평상복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보디가드가 한 일행인 듯 모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 역사를 지닌 것과 달리, 깨끗한 더 마운틴의 본관에는 야생동물들을 모델로 만든 인형이나 엽서 같은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과 과자나 음료수를 살 수 있는 가게, 그리고 안내소가 있었다.
물건을 사는 금액의 일부가 기부된다는 기념품 상점은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서준은 안내소 앞에 가득한 팸플릿을 하나 들었다.
팸플릿에는 씨 세이브 센터보다 더 오래된 더 마운틴에 대한 설명과 야생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어디서 구조하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어떻게 야생에 적응시키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에 방생하는지.
‘씨 세이브 센터랑 비슷하네.’
간략하게 적혀 있는 것들을 보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오세요. 준.”
그때, 트레이닝 센터에서 만났던 훈련사가 서준의 이름을 작게 부르며 나타났다.
“더 마운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훈련사가 손을 내밀자 서준이 웃으며 마주 잡았다. 딱딱하고 거칠지만 그만큼 야생동물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손이 느껴졌다.
“오늘 안내해 주신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이슨.”
그제 연락을 했을 때 직접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 훈련사, 메이슨 프랭코가 웃으며 말했다.
“저야말로 더 마운틴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준. 트레이닝 센터 때 오실지도 모른다고 해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아, 일단 먼저 밖으로 나갈까요?”
그사이 최태우가 티켓을 끊어왔다.
최태우와 보디가드들과도 인사를 나눈 메이슨 프랭코가 앞장섰다.
“왜 보호소에서 입장료를 받느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적은 돈이라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오거든요. 그럼 관리도 힘들고, 문제도 생겨서 말이죠. 쉬고 있는 야생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고요.”
“이해해요. 씨 세이브 센터도 그렇죠.”
서준의 말에 메이슨 프랭코가 활짝 웃었다.
“씨 세이브 센터!”
본관에서 조금 멀어져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지자, 메이슨 프랭코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준에게 선택받은 씨 세이브 센터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선택이라니…….”
민망함에 서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건데요.”
“‘우리’의 구조는 우연이겠지만, 그 이후에 씨 세이브 센터에 간 것과 다큐멘터리를 찍은 건 준의 의지였죠. 아니, ‘우리’의 구조도 준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음.
서준은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고, 최태우와 보디가드들은 그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홍보도 엄청 하고! 기부금도 왕창 받고! 구조도 잔뜩 하고! 배도 새로 사고! 같은 캘리포니아주에 있어서 매번 살펴보게 되는데, 준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구조 건수와 활동량이 천지 차이더라고요! 정말 부러웠습니다!”
크으, 하며 말하는 메이슨 프랭크의 모습과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것 같았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씨 세이브 센터는 다큐멘터리 [우리는 지금/바다에 있다]로 일반인들의 관심도 듬뿍 받았고, 그 이후에도 전 세계의 새싹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우리 더 마운틴도 준에게 선택받았으니, 야생동물들을 잔뜩 구조할 수 있겠습니다. 흐흐흐!”
여력이 부족해 미처 구하지 못한 야생동물들도 구조하고, 새로운 치료 기계들도 구입하고, 영양제도 사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히죽히죽 웃으며 중얼거리는 메이슨 프랭코는 약간 광기에 찬 것처럼 보였다. 묘하게 씨 세이브 센터의 케이트 오하스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에 정신을 차린 메이슨 프랭코가 크흠,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다큐멘터리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진만 잘 찍어주셔도 충분합니다, 준.”
그런 솔직한 모습이 서준은 싫지 않았다.
서준과 새싹들이 기부한 금액이 대략적으로 알려지고 나서부터(물론 알려지기 전부터 그랬긴 했지만) 여기저기서 기부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단체들을 살펴보면 제대로 된 곳이 별로 없었다. 기부금의 아주 약간만 실제로 사용하고 나머지 전부 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것보다야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게 좋지.’
게다가 자신이 가지는 것도 아니고, 아픈 야생동물들에게 쓴다지 않나.
오히려 메이슨 프랭코가 분위기를 타서 자기 재산까지 털어 넣을까 봐 걱정이었다.
‘……벌써 털어 넣은 건 아니겠지?’
앞장 서서 걸어가던 메이슨 프랭코가 철창 너머 여우를 다정하다 못해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우리 애셔는 말입니다……’ 하고 말하는 모습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어쩐지 애셔라고 불린 여우도 이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닌지 흥, 하고 콧바람을 내쉬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애셔가 좀 새침한 성격입니다.”
그저 당신에게 질린 게 아닐는지.
서준과 최태우, 보디가드들은 생각했다.
* * *
서준은 메이슨 프랭코와 함께 더 마운틴 안에 있는 야생동물들을 둘러보았다.
“같은 동물들이라도 성격과 무리에 따라서 우리를 나누어 놓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싸울 위험이 있거든요.”
최태우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너튜브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방치된 동물원에서 구조할 때도 있고, 다른 야생동물에게 상처를 입은 동물들이나 차에 치인 동물들을 구조할 때도 있습니다. 어미가 죽고 새끼들만 남은 경우도 있죠. 아, 새끼들은 저 건물 안에 있습니다.”
그 설명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마른 동물들과 붕대에 감긴 동물들, 다리가 하나 없거나 상처가 깊게 남은 동물들이 있었다.
“그래도 다들 건강해 보이네요.”
“네. 보호소 직원들 모두 열심히 돌봤습니다.”
서준의 말에 메이슨 프랭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뿌듯함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그럼 이제 늑대를 보러 가실까요?”
더 마운틴을 제법 둘러본 후, 늑대 우리로 향하는 메이슨 프랭코를 따라가며 서준이 물었다.
“늑대도 이름이 있나요?”
여우 루시나 다른 동물들처럼 말이다.
“네. 다른 늑대들도 있어서 관리하기 편하도록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저희는 켈리라고 부르죠.”
켈리.
서준은 아직 어렸던 늑대를 떠올려보았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켈리도 다른 늑대들과 함께 지내나요?”
“아뇨.”
서준의 물음에 메이슨 프랭코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켈리는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 차가 있어서 그런 건지, 성격이 안 맞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영 어울리지를 못하더라고요.”
무리 짓는 게 특성인 늑대로서는 꽤 특이한 일이었다.
‘약해서 따돌림을 받는 건가?’
어쩌면 다 자란 모습이 왜소해서 따돌림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서준은 생각했다.
‘성격이야 뭐.’
서준을 빽으로 그 큰 울프독 알파에게 짖어댔던 녀석이니 큰 걱정은 없었다. 어디서 호되게 당하지 않았으면 그대로일 터였다.
“그래서 계속 방생을 미뤄왔는데 이제는 정말 내보내야 할 때죠. 몸도 건강하고 사냥 훈련도 잘 받았는데, 걱정입니다.”
“국립 공원으로 방생한다면서요?”
서준의 말에 메이슨 프랭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작년 말에 불이 난 곳이 있습니다. 그 불로 최상위 포식자가 다 죽어서 초식동물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곳이죠. 초식동물이 더 늘어난다면 국립공원의 환경에도 영향을 끼칠 테니, 그전에 늑대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을 방생하기로 한 겁니다.”
“그럼 켈리만 가는 게 아니겠군요.”
“네. 저희 보호소에 있는 늑대들과 다른 보호소에 있는 늑대들까지 합해서 총 13마리의 늑대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열셋.
무리를 이루기에 좋은 숫자였다.
하지만 더 마운틴에 있는 늑대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켈리에게는 몇 마리가 됐든 큰일이었다.
“여깁니다. 준.”
메이슨 프랭코의 말에 서준이 앞을 보았다.
늑대의 우리치고는 작지만, 혼자 지내기는 넉넉한 크기의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늑대, 켈리가 있었다.
“와아.”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많이 자랐네요.”
서준의 무릎 정도에 크기였던 게 몇 달 전인데, 덩치가 산만 해진 늑대 켈리가 한가롭게 누워 있었다. 발도 큼지막하고 입도 큼지막하고, 하품하며 보이는 송곳니도 날카로운 게 딱 봐도 강해 보였다.
“다 컸죠. 알파보다는 작지만 다른 울프독들보다는 큽니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왜소하게 자랐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니 무언가 떠올랐다.
“……설마 쟤가 다른 늑대들을 따돌리는 거예요?”
“맞습니다.”
메이슨 프랭크가 웃으며 말했다.
“늑대들뿐만이 아니라 저희도 무시하죠. 하하.”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늘어져 있던 켈리가 눈을 떴다.
표정을 봐서는 뭐가 이렇게 시끄럽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켈리의 시선이 서준과 메이슨 프랭코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준과 만난 것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하고 메이슨 프랭코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 켈리가 빠르게 달려왔다.
!!
그에 메이슨 프랭코가 반사적으로 서준의 앞을 막아섰다. 보디가드들도 어느새 서준을 자신들의 뒤로 이끌고 있었다. 서준은 힘을 빼고 순순히 그 손길을 따라 뒤로 물러섰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조치였다.
차앙!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늑대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철창과 가볍게 몸통박치기를 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뒤늦게 허억! 하고 최태우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 있던 늑대가 단숨에 바로 눈앞까지 달려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서준아!/”
그래도 매니저답게 최태우는 빠르게 정신줄을 잡았다.
“/괜찮아?/”
“괜찮으십니까? 철창이 튼튼해서 나오지는 못할 겁니다.”
“저는 괜찮아요.”
그에 최태우와 메이슨 프랭코, 보디가드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훈련사와 보디가드들의 재빠른 대응에 잠시 속으로 감탄한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켈리가 반가워서 달려온 모양이에요.”
“네? 켈리가요?”
서준과 함께, 뒤로 물러난 메이슨 프랭크가 ‘걔가 반가워한다고?’ 하는 의미가 가득 담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켈리를 바라보았다. 최태우와 보디가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동도 없던 늑대의 꼬리가 마치 프로펠러처럼 아주 세차게 돌고 있는 모습을.
“……아까 본 골든리트리버랑 비슷한데?”
최태우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사람 좋아하는 대형견도 아니고, 거대한 늑대가 서준을 보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서준을 바라보는 눈동자도 아주 빛나고 있었다. 온몸으로 ‘우와아아! 대장! 반가워! 어디 갔었어?’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늑대을 보며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안녕. 잘 지냈어, 켈리?”
크헝!
사람도 늑대도 무시한다던 늑대 켈리가 크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