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 865화 (865/1,055)

  865화

쿠키라.

먹어보고 싶다던 새싹들이 떠올랐다.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레시피만 필요하다고 해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다면 레시피의 수정이나 맛의 조절이 필요할 터였다.

‘나도 신경 써야겠지.’

좀 바빠질지도 모르겠지만, 새싹들이 쿠키를 먹고 행복해한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준! 그럼 빠른 시일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준의 긍정적인 대답에 활짝 웃은 뉴 에이지 담당자가 이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얼른 가서 홍보팀과 이 재미나고 신기한 이야기를 언제 풀어놓을지 회의를 해야 했다.

멀어지는 담당자의 발걸음이 들떠 보여 서준과 배우들은 웃고 말았다.

“근데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네. 준이랑 작가님 동생이 어렸을 때 만났다는 거.”

“홍보는 확실하게 되겠다.”

“지금 소설 읽으면 왠지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지 않아요?”

헤일리 로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었는데, 이런 비하인드까지 알게 되니 다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테오는 자동적으로 준이 떠오를 것 같네.”

“준을 모델로 했다면 어떤 점을 본떠 만들었을까요?”

브라이언 구델의 말에 배우들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음. 잘생긴 거?”

“그거네.”

“맞아. 그건 거 같아.”

“200%.”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고, 배우들도 이내 웃고 말았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준.”

“감독님.”

뉴 에이지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들은 윌마 감독도 얼굴 한가득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배우들의 수다에 합류했다.

“오르체시 핼러윈 영상을 봤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오르체시 핼러윈 영상이요?”

“잠시만요. 보여 드릴게요.”

의아해하는 배우들에 서준은 웃으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너튜브 채널[JUN]에 있는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서준이 아홉 살일 적, 늑대인간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올랐을 때의 영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

안개가 깔리고.

멀리서 네 발의 짐승이 달려왔다.

그리고 곧 빛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어린 늑대인간.

각자 휴대폰으로 보면 될 텐데 굳이 옹기종기 모여 서준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던 배우들은, 그 짧은 동영상이 재생될 동안 잠시 숨을 죽였다가 토해냈다.

“……와아. 이런 것도 있었어?”

“준이 아홉 살 때라고 하지 않았어요?”

“진짜 연기력, 감탄만 나오네.”

늑대인간 ‘테오’를 연기를 하는 서준을 봐왔던 터라 잘 알 수 있었다.

‘테오’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지만, 영상 속 꼬마 서준 리도 인간과 다른, 진짜 늑대인간처럼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단한 연기력과 표현력이었다.

아홉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영상을 보던 헤일리 로지가 조금 묘한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준.”

“네?”

“너 진짜 늑대인간이지?”

헤일리 로지의 말에 배우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게. 진짜 그런 거 아니야?”

“말해봐, 준. 우리만 정체 알고 있을게.”

“맞아요. 비밀로 할게요.”

장난기가 약간 스며든,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배우들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 아니라고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 것 같은데?”

“역시 그랬군요.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기였어요.”

윌마 감독까지 납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제법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던 배우들까지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휴식시간이 지나고.

촬영할 시간이 되었다.

세트장 위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서준의 눈에 세트장 밖에 서 있는 스태프들이 들어왔다.

긴 촬영 일정에 조금 지친 모습이지만 표정만큼은 다들 묘하게 가뿐하면서도 보람차 보였다.

그에 새삼 마지막 촬영이라는 게 느껴졌다.

‘물론 아직 작업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스태프들이 담당하고 있는 ‘촬영’은 마지막이었으니, 다들 ‘이것만 하면 끝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서준은 고개를 돌려, 자신과 함께 세트장 위에 서 있는 배우들을 둘러보았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브라이언 구델부터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댄 켄드릭, 그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헤일리 로지와 다른 배우들까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조금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시원섭섭함이랄까.’

마지막 촬영이라는 게 기쁘면서도 아쉬움이 조금 깃든 모습이었다.

열심히 연기하긴 했지만, 지금 다시 찍으면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조금의 미련이 남은 것이었다.

‘나도 그렇고.’

매번 온 힘을 다해 연기하지만.

할 만큼 했으니 만족스럽긴 하지만.

좋아하는 일인 만큼 더 잘하고 싶어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재촬영할 수는 없지.’

그랬다가는 평생 한 작품도 제대로 못 찍을 거다. 아직 영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재미난 작품들도 아깝고.

언제나 그랬듯 지금 최선을 다하자.

작게 웃은 서준이 후우- 숨을 내쉬며 집중했다.

“레디,”

오늘로 마지막일 윌마 에반스 감독의 외침이 들렸다.

“액션!”

* * *

다음 날.

오늘부터 출근할 일이 없는 서준이 느지막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얼굴이 풀려 히히 웃었다.

1층 거실 벽.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생일 현수막이, 마치 패브릭 포스터처럼 벽에 걸려 있었다. 그것도 새싹들이 받은 에코백만 한 크기가 아니라, 더 큰 크기의.

갖고 싶다는 서준의 말에, 에코백으로 제작하기 전 빼돌린 것이었다.

물론 새싹들이 서준에게 주는 선물이니 빼돌렸다고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이걸로 만들 수 있는 에코백들과 그걸 받았을지도 모르는 새싹들을 생각하면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서준아!!’, ‘내 에코백!!’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소파에 앉아 뭔가를 하다가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붙여놓은 생일 현수막을, 서준은 한국까지 가져갈 생각이었다.

“또 보고 있어?”

“하하. 네.”

촬영이 끝난 서준을 따라 이제 좀 느긋하게 쉬게 된 최태우였다.

그렇다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팬 미팅에서 할 연극은 정했어?”

“네. MOEB-436 하려고요.”

“거울이 아니라?”

최태우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아무래도 [MOEB-436]은 후반부가 조선 시대인 데다가 ‘장산범’이라는 존재를 모르면 재미가 조금 떨어지는 작품이니, 미국에서 공연하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게다가 대사를 영어로 고치는 것도 문제일 거고.

‘영어 자막이 있긴 하지만.’

그걸 말로 뱉어내며 연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저도 처음엔 거울을 할까 생각을 했는데요, 거울은 436보다 시간이 짧잖아요. 더 오래 보여주고 싶어서요.”

미국 새싹들과는 처음 만나는 것인 만큼 더 오래,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하고 싶다면 상관없지만…….”

서준에게는 언제나 OK만 외치는 코코아엔터 직원답게 대답하면서도 염려하는 기색은 영 지우지 못하는 최태우였다.

그에 서준이 웃었다.

“그리고 팬 미팅 티켓팅에 성공할 정도면, 모두 제가 한 사극이랑 436도 보지 않았을까요?”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납득했다.

“그러네.”

몇 초 만에 매진되어 버린 피켓팅을 성공할 정도라면 아마 서준 리의 모든 작품과 활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한국어와 한국사, 한국 민화까지 공부했을 것 같았다. 덧붙여 영화객 리뷰도.

“그럼 배우들은? 생각해 둔 배우들이 있어?”

“일단 조선이 배경인 후반부는 친구들에게 부탁하려고요. 여름방학이라서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우주가 배경인 전반부는 미국 지인들을 부탁할 생각이에요.”

“오…….”

서준의 말에 최태우는 잠시 서준의 미국 지인들을 떠올려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반 블록과 리첼 힐부터, 스왈린 애넘(쉐도우맨), 캐서린 밀러, 폴 오든(오버 더 레인보우), 데이비스 가렛, 밀란 첼런, 앤드류 워커, 바네사 올슨(생존자들) 등등.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후보들이…… 어마어마한데?”

“하하. 아직 생각만 하고 있어요. 다들 스케줄이 있을 테니까요. 다들 바쁘면 아예 새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할 수도 있고요.”

“알았어. 내가 일정 문의해 볼까?”

“아뇨. 제가 할게요.”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부터 세트장이랑 의상 준비할게. 436은 객석에서 등장하는 장면도 있으니까 이동통로도 찾아두고…… 안전에도 유의해야겠네.”

“부탁드릴게요. 태우 형.”

“팬 미팅에서 더 하고 싶은 건 없어?”

나중에 정리해서 코코아엔터에 보내기 위해 휴대폰으로 메모하던 최태우가 서준에게 물었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토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작품 속 캐릭터의 모습으로 연주도 하고 연극도 할 예정이었다. 시간이 모자랐으면 모자랐지 남지는 않을 터였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알았어.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각나면 말해줘.”

“네. 그럴게요.”

웃으며 대답하는 서준에게 최태우가 말했다.

“그럼 이제 뭐 할 거야?”

8월 초에 있을 팬 미팅까지 시간이 제법 남아 있었다. 그동안 배우가 뭘 할지 매니저는 알아둬야 했다.

그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늑대 보러 가려고요.”

* * *

“꽤 머네.”

“그러게요.”

운전대를 잡은 최태우와 조수석에 앉은 서준이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건물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를 보디가드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하고 있는 야생동물 보호소(겸 반려견 훈련소), 더 마운틴은 아무래도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었다.

원래는 혼자 올 생각이었는데, 걱정된다고 말하는 태우 형과 함께 오게 되었다.

기나긴 도로를 보니 잘한 것 같았다.

‘같이 가면 더 재밌기도 하고.’

서준은 들뜬 얼굴로 더 마운틴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알림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늑대 직접 보니까 어땠어, 서준아?”

트레이닝 센터에서 늑대와 만난 것을 알고 있는 최태우가 물었다.

“아직 어려서 좀 작았어요. 울프독보다도요. 그래도 지금은 다 컸을 거예요. 그제 전화로 훈련사님이 며칠 후에 국립공원으로 방생한다고 이야기해 주셨거든요.”

더 마운틴에 방문하기 전, 미리 받았던 명함으로 연락을 한 서준이었다.

훈련사는 늑대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쁜 목소리로 언제든 와도 된다고 했다.

최태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국립공원에 늑대를 방생해?”

“우리나라랑은 규모가 다르잖아요.”

미국의 국립공원은 거대한 호수가 있고 들판이 있고 산이 있고 산맥이 있었다. 또 어떤 국립공원은 지리산 7배의 크기이기도 했다.

그 넓은 산의 7배라니,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게다가 우리도 산에 반달가슴곰 방생하고 그러는데요, 뭘.”

“아, 그러네.”

그건 미처 생각 못 했다.

“늑대가 워낙 무시무시해야지. 반달가슴곰은 좀 귀엽지 않나?”

“그건 그래요. 다 큰 반달가슴곰은 180㎝에 150㎏쯤 되지만요.”

“……걔가 그렇게 컸어?”

놀라는 최태우에 서준이 키득키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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