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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64화 (86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64화

‘언니, 말해도 될 것 같아.’

LA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후, 며칠이 지나 그레이스 웰튼이 그렇게 말했다.

‘다들 열심히 하잖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일반인인 동생의 얼굴이 알려질까 봐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열심히 영화를 준비한 사람들을 보니 도움이 되고 싶다고 그레이스 웰튼이 이야기했다.

‘나도 흥행하길 바라니까.’

[망클립스]의 리메이크작이라서 더욱 그랬다.

‘준이랑 찰리는?’

‘둘 다 괜찮대.’

작가가 언니인 그레이스와 달리, 찰리는 프랑스 친구라고 말하면 더 밝혀질 일도 없었다.

‘그럼 내가 뉴 에이지에 말할게.’

하고 말했던 게 4월이었는데, 어느새 7월이 다 되어갔다.

말하는 걸 깜빡한 것이었다.

‘이제라도 말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로라 웰튼의 귀로 뉴 에이지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얼떨떨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레이스와 준이 친구라는 건 알고 계시죠?”

-네, 네.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런 사이인 줄 알았다면 로라 웰튼에게 부탁이나 한번 해봤을 텐데, 하고 윌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쪼오끔은 여자친구가 아닌가, 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레이스와 준이 만난 곳이 프랑스 핼러윈 축제였거든요.”

그리고 이어지는 로라 웰튼의 이야기에, 메이저리거 잭 스미스처럼 서준 리가 미국에서 살 때 뉴욕이나 LA에서 만났다고 추측했던 뉴 에이지 담당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같은 시각.

LA, 실내 스튜디오.

“그동안 고생했어, 잭.”

미야옹-

헤일리 로지의 말에 오후 촬영을 끝낸 고양이 잭이 울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뉴 이클립스]촬영은 내일이 마지막이지만, 고양이 잭의 촬영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만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지 슬프게만 들려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준, 잭이 쿠키 달래.”

고양이 잭의 시선이 서준에게서, 정확히는 서준이 든 쿠키 봉투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저 조그마한 봉투에서 맛있는 생선 모양 쿠키가 나왔다는 걸 알고 있는 잭의 얼굴은 곧 침이라도 흘릴 것만 같았다.

하하하.

서준과 잭의 보호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 여기.”

노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옮! 하고 생선 모양 쿠키를 콱 무는 잭에 다시 웃음이 나왔다.

고양이 릴리, 벨라와의 마지막 촬영도 끝났고 오늘로 고양이 잭과의 촬영도 끝났다.

다른 고양이들도 그렇지만, 특히 잭과의 이별은 아쉬웠다.

‘잭이랑 이름이 같아서 그런가.’

앞으로는 만날 일이 없을 검은 고양이를 쓰다듬던 서준이 잭의 보호자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아뇨. 전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뭘.”

쑥스러워하는 보호자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아니다.

고양이와의 촬영을 위해, 최대한 줄였다고 해도 촬영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거기에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고양이에게 스트레스가 되었을 터였다.

그것을 다음 촬영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고양이가 무리하지 않도록 잘 돌봐준 것이 바로 보호자들이었다.

“그럴 리가요. 집에서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눈에 선한데요.”

서준의 뒤를 이어, 헤일리 로지도 그동안 많이 친해진 보호자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 파티하면 꼭 와주세요!”

“그럴게요.”

그렇게 조금 이야기를 나누니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직 다음 촬영도 남아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서준은 보호자에게 안긴 고양이 잭을 바라보았다. 생선 쿠키는 어느새 잭의 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잭, 잘 지내.”

“건강해야 해! 잭!”

앞서 릴리, 벨라와 헤어질 때도 그랬듯, 서준과 헤일리 로지, 그리고 스태프들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미야옹!

씩씩하게 대답하는 게 고양이 잭다웠다.

그런 잭에게 서준은 다른 고양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능력을 사용했다. 정확히는 능력을 사용한 쿠키를 먹였다.

[(선/제작)가타의 건강식-중하급]

해당 요리를 먹은 고양잇과 동물의 건강이 좋아집니다.

앞으로도 튼튼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고양잇과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고양이 수인 ‘가타’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건강식이었다.

과거 아팠던 후유증을 치유해 주고 현재 아픈 곳들을 치료해 주며 미래에 아플 것을 예방해 주었다.

‘물론 평생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만…….’

반려동물이 있는 이들에게 정말 꿈같은 능력으로, 집고양이 수명이 보통 15년이라고 하니, 5년은 더 살 수 있을 터였다.

고양이 잭이, 그리고 릴리와 벨라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서준은 바랐다.

“그럼 이제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인사하고 떠나는 보호자와 잭을, 서준과 헤일리 로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배우들과 달리, 고양이들은 조금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런지 미련이 남아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벌써부터 보고 싶네요.”

“그러게 말이야.”

가볍게 숨을 내쉰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촬영하러 갈까요?”

“그래. 그러자.”

헤일리 로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뉴 이클립스] 마지막 촬영 날.

오전 촬영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점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서,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차분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싱숭생숭한 분위기였다.

“이제 늑대 귀도 제법 잘 움직일 수 있는데 말이에요.”

점심 식사를 끝낸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준이 준비한 쿠키 트럭의 쿠키를 먹으며 다음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끝이라니…….”

뼈다귀 모양 쿠키를 씹어먹으며 브라이언 구델이 말했다. 그에 따라 브라이언 구델의 머리 위에 장착된 늑대 귀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게 말이야. 지금 촬영하면 늑대인간 연기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면 평생 촬영 못 끝낼걸.”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그대로 늑대 귀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직 오후 촬영이 남아 있어, 다들 오전 촬영부터 붙어 있던 늑대 귀 분장을 풀지 않은 상태였다.

“근데 여기 쿠키 맛있다.”

“그러게. 유명한 곳인가?”

작은 뼈다귀 모양 쿠키들이 아그작아그작 늑대인간들의 입에 씹혔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도 껄렁껄렁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짝 경계하면서도, 배우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마치 무리를 지은 늑대들처럼.

그 묘하게 자유롭고 야생적인 분위기에 서준은 키득키득 웃으며 생각했다.

‘다들 야생에 물들었어.’

평소에는 평범한 사람 같은데, 늑대 귀가 장착되고 촬영을 시작하면 다들 늑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선)드리머의 꿈여행]을 해제한 게 몇 주 전인데, 아무래도 다들 더 훌륭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 깊게 집중하고 몇 번이고 꿈을 되새기고 있으니 영향이 오래가는 것 같았다.

‘나랑 연기하는 것도 좀 영향이 있을 거고.’

서준이 하는 연기에 다들 이끌려 더더욱 몰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이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인간이 되는 꿈으로 바꿔 다시 능력을 발동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거 준이 만든 레시피래. 아까 트럭 사장님한테 물어봤어.”

“오! 정말요?!”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먹게 되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맛있다며, 다들 맛있게 뼈다귀 모양 쿠키를 먹었다.

그 모습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이번엔 ‘늑대인간’들이 있어서 일부러 뼈다귀 모양을 선택하긴 했지만.

“다들 진짜 뼈 씹는 것 같네요.”

“그러니까.”

무리 중 홀로 늑대귀를 달지 않은 마녀 헤일리 로지가 감탄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응? 그런가?’ 하고 배우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러 쌍의 늑대귀들이 쫑긋쫑긋 움직였다.

서준과 헤일리 로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준은 8월까지 미국에 있는 거야?”

“네. 팬미팅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그럼 7월은 미국에 있는 거지? 심심하면 연락해. 같이 놀자.”

브라이언 구델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도 갈래요! 뭐 하고 놀 거예요?”

“게임이나 야구?”

“그러고 보니 요새 준의 친구 잘하더라.”

그에 LA다저스의 골수팬, 댄 켄드릭이 눈을 반짝였다.

“잭 스미스 선수 대단하지! 리그 초반에 헤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경기 연속 홈런이야. 한 경기에서 2타석 연속으로 홈런을 날린 적도 꽤 있고.”

오.

열정적인 그 모습에 서준과 배우들이 작게 웃었다.

“다저스 경기 보러 갈 땐 나도 꼭 불러줘, 준.”

“네. 그럴게요.”

그렇게 촬영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잡담을 했다.

마지막 촬영날이지만 평소와 같은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때,

휙-

하고 서준과 배우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뜬 헤일리 로지를 빼고.

그리고 또 한 사람,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춘 이가 있었다.

서준 리를 만나러 온 뉴 에이지 담당자였다.

스튜디오에 들어와 서준과 배우들을 발견하고는 대화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걸어왔는데, 어느새 다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늑대귀들이 쫑긋거리며 빤히.

묘하게 식은땀이 흘렀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보고만 들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은 진짜 늑대처럼 보였다. 자신은 늑대들 앞에 서 있는 초식동물이 된 것 같았고.

아그작-

하고 뼈다귀 모양 쿠키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새하얀 송곳니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 어서 오세요.”

그 짧은(담당자에게는 길었던) 침묵을 서준이 깼다. 동시에 바짝 서 있던 경계가 흐물흐물 풀어졌다.

상황을 파악한 헤일리 로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너무 몰입한 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한 거였어.”

“맞아. 반사적으로 움직인 거야.”

저도 모르게 경계했던 배우들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뉴 에이지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뉴욕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어쩐 일이세요?”

“로라 작가님께 핼러윈 축제 이야기를 들어서요.”

핼러윈 축제?

다들 고개를 갸웃할 때,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고 계셨어요? 말씀 안 하시길래 알고도 안 쓰시는 줄 알았는데.”

“몰랐습니다. 어제 들었어요.”

그리고 바로 뉴욕에서 LA로 날아왔다.

“그 이야기를 알고서도 안 쓰면 홍보팀에게 욕 듣습니다.”

“하하.”

그건 그렇다.

웃음을 터뜨리는 서준에 헤일리 로지와 배우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이야기야, 준?”

“무슨 일인데?”

“그게요.”

서준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클립스가 저랑 그레이스랑 제 친구가 만났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소설이거든요.”

……뭐라고?

“제가 아홉 살 때, 프랑스 오르체 시의 핼러윈 축제에 참여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늑대인간 분장을 했었고 친구도 늑대인간 분장을 했었는데, 걔가 꼬리가 없었어요. 귀찮다고 안 했거든요.”

꼬리 없는 늑대인간.

“그리고 그레이스가 마녀 분장을 했었어요.”

마녀.

“그리고 길을 잃은 그레이스를 저랑 제 친구가 도와줬죠.”

허어!

서준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눈이 커졌던 배우들이 탄성을 뱉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로라가 이클립스를 썼죠. 그레이스를 모델로 클레어 매닝을, 저랑 제 친구를 모델로 테오 레이필드를요. 길을 찾아준 이야기가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어요.”

작가라는 게 그렇다.

누구는 지나칠 법한 한 문장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와.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

“진짜 신기하다.”

“이건 홍보 기사로 내야지.”

뉴 에이지 담당자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쓰는 게 멍청한 거였다.

‘캐스팅 논란도 각오하긴 했는데…….’

방금 전, 완전히 늑대에 몰입했던 배우들을 보면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홍보에 써도 될까,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준.”

“당연히 괜찮죠. 그때 찍은 사진도 보내드릴까요?”

“그럼 감사하죠.”

그렇게 말한 담당자는 하나 더 용건을 꺼냈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드릴 이야기였는데 지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준만 괜찮다면, 준이 만든 쿠키 레시피를 활용해서 홍보할까 생각 중입니다. 자세한 계획은 나중에 에이전시를 통해 전해드릴 테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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