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63화
한바탕 아쉬움을 토해내며 우정을 든든히 다진 송유정과 임예나는 이내 기운을 차렸다. 다행히도 지금 두 사람의 손에는 슬픔을 위로해 줄 물건이 있었다.
“에코백 당첨돼서 다행이야.”
“응.”
서준의 생일 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미국 팬미팅 티켓팅을 하는 오늘 배송이 되었다.
아무래도 티켓팅이 열리는 미국과 한국은 시차가 있는 터라 송유정과 임예나는 그냥 연차를 내고 하루를 쉬었다. 겸사겸사 같이 모여 서준이 작품들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미국 티켓팅 실패로 아쉬운 기억으로 끝을 맺을 뻔했다.
에코백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럼 열어보자. 내 거부터 열까?”
“그래.”
두근두근.
송유정과 임예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임예나의 택배 상자를 열었다.
택배송장이 붙은 평범한 택배상자를 안에는 새싹 마크가 그려진 하얀색의 네모난 상자가 있었다. 제법 튼튼해 보이는 상자는 송유정과 임예나의 마음에 꼭 들었다.
“여기에 서준이 굿즈 넣어둬도 되겠다!”
“그러게!”
새싹 마크가 그려진 서준이 굿즈는 상자 하나도 소중했다.
코코아엔터에서 이 포장상자를 굿즈로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임예나는 상자가 상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봉인테이프를 뜯었다.
“연다?”
“응응!”
그깟 상자 여는 게 뭔가 싶지만, 두 새싹의 심장은 마구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새하얀 상자가 열렸다.
상자의 안에는 어두운 색깔의 에코백이 들어 있었다. 평범한 에코백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와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꽃길만 걸어! 서준아!]
하고 적힌 새하얀 글자가 두 새싹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 너무 좋다!”
자신들과 같은, 서준을 좋아하는 새싹의 메시지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우리가 적은 것도 이렇게 보겠지?”
“좋아했으면 좋겠다!”
물론 비슷비슷한 메시지겠지만.
임예나는 히히히 웃으며 조심스럽게 에코백을 꺼냈다.
앞쪽이 어두운색이었던 것과 달리 뒤쪽은 밝은색이었다. 메시지도 적혀 있었는데, 평소였다면 어느 나라 글자인지는 잘 몰랐을 것 같았다.
“프랑스어인 것 같은데?”
Je t'aime(쥬 뗌므)
메시지를 읽기 위해 미리 ‘사랑해.’이라는 문장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공부하지 않았으면 말이다.
전세계 새싹들이 올려주는 자료에, ‘사랑해’라는 단어만큼은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읽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된 송유정과 임예나였다. 다른 새싹들도 그럴 터였다.
“완전 좋아!”
앞에 적힌 한글 메시지와 뒤에 적힌 프랑스어 메시지를 읽는 임예나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유정아! 너도 열어봐!”
“응!”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도 얼른 택배상자를 열어 새싹마크가 그려진 하얀 상자를 꺼냈다. 속도는 빨랐지만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봉인테이프를 떼고 상자를 열자, 마치 물빛 같은 파란색의 에코백이 나왔다. 앞뒤로는 이탈리아어와 태국어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미친! 완전 예뻐!”
물론 하얀색이든 검은색이든 파란색이든 초록색이든 다 예뻤겠지만.
송유정은 상기된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으아아아!
그렇게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자신의, 그리고 서로의 에코백을 핥듯이 아주 샅샅이 살펴보던 송유정과 임예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빠르게 휴대폰을 꺼냈다.
“이게 어느 부분이지?”
에코백의 재료인 현수막이 어느 캐릭터의 사진인지, 그리고 또 어느 부분인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검은색이면 진 나트라인가? 뒤쪽이 하얀색이니까 배경이 하얀색인 캐릭터겠지?”
“눈동자일 수도 있지 않아? 흰자 검은자.”
“와. 그러네? 그럼 범위가 넓어지는데…….”
“난 파란색이니까 블루문 서준이겠지?”
“어. 이 연한 파랑은 블루문 서준이 머리카락밖에 없어.”
임예나와 송유정이 열심히 에코백의 출처 이미지를 찾고 있을 때, [새싹부터]에서도 에코백의 출처를 묻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예 따로 게시판이 열릴 정도였다.
[제목: 색알못 좀 살려주십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에코백이 왔습니다ㅠ
너무너무 예쁜데 검은색이라서ㅠㅠ
도대체 어느 캐릭터의 현수막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인지 모르겠네요ㅠ 검은색이 안 쓰인 현수막이 없어요ㅠㅠ
(에코백 앞면 사진)(에코백 뒷면 사진)
최대한 실물과 가깝게, 메시지까지 찍어봤습니다.
제발 어디 현수막인지 알려주세요ㅠㅠ새싹들ㅠㅠ
-와ㅠㅠ에코백 부러워ㅠ
=22 당첨 축하해요!
-음. 아예 검은색은 아닌 것 같은데?
=ㅇㅇ약간 다르네요. 색상코드는 #◇◇◇◇◇◇인 것 같아요.
=……예?
=음. #◇◇◆◇◇◇◇ 아님?
=……네에?
=아, 죄송. 모니터에 햇빛 비쳐서 잘못 봤네요ㅎ
=????
-ㅎㄷㄷ위에 새싹분들 뭐하는 분들이시죠?
=22 어떻게 색상코드를 알고 있는 거야?
=33 게다가 저 한 끗 차이를 구분해내는 눈이라니;;
-#◇◇◇◇◇◇랑 #◇◇◆◇◇◇◇ 검색해봤는데, 무슨 차이가 있음? 그냥 같은 검은색 아님??
=그러게요. 다른 건 숫자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기대한 댓글: 아마 진 나트라 옷 아닐까요?
실제 댓글: (분석중)>>색상코드 #◇◇◆◇◇◇◇
=ai냐고ㅋㅋㅋㅋ
-근데 다른 게시글도 비슷함. 다들 색상코드로 알려주고 있음.
=같은 새싹분들 아니에요?
=ㄴㄴ닉네임이 전부 다름ㅋㅋㅋ
=새싹들 무섭다ㅋㅋ
=다들 어디 색 관련 일하시는 듯.
-그래서 #◇◇◆◇◇◇◇는 어디 현수막에 쓰인 색이야?
=ㄱㅆ) 22 그걸 말해주세요ㅠㅠ
-#◇◇◆◇◇◇◇는 모자 색깔입니다!
=모자?
=네! 관모요!
=ㄱㅆ) 아…… 잠깐만요……
=관모? 관모면 사극인데…… 내의원하고 역?
=와. 미쳤네. 어떤 게 걸려도 큰일이다…….
=네! 내의원 성녕대군마마 현수막입니다! 성녕대군이 쓰고 있는 관모예요!
=성녕대군마마ㅠㅠㅠ!!
=ㄱㅆ) 저 이제 에코백 볼 때마다 울어야하나요ㅠㅠㅠ? (벌써 울고 있음)
=ㅋㅋㅋㅋ
거기에 새싹들은 어디에 설치되었던 현수막인지도 알아내 주었다.
-이거 부산에 광안리에 걸린 성녕대군 현수막인 듯.
=내가 ‘우리 성녕대군마마 바다 보러 오셨구나ㅠㅠ’ 했던 곳?
=댓글로 울리지 말라고요ㅠ
-아니 그건 어떻게 아세요?
=먼저 성녕대군 사진 찾고>검은색 부분 찾고>스페인어랑 일본어랑 이어져 있는 부분 찾고>메시지가 같은 거 찾으면 됨.
=???: 참 쉽죠?
나: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ㅋㅋㅋㅋ근데 동의. 진짜 어떻게 찾는 거야;;;
-(광안리 성녕대군 현수막 사진/빨간 동그라미로 표시가 되어있다.) 여기 이 부분임.
=아니. 저기요ㅎㄷㄷ
=색깔/현수막/위치 알려주는 새싹들이 다 다른 새싹들이라는 게 진짜 광기……ㅋ
=22 다시 말하지만 새싹들 무섭다ㅋㅋ
-외국 지점들도 이럼?
=ㅇㅇ다들 이럼ㅎㅎ
=역시 새싹ㅎㅎ
-콬아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겠지.
=전혀 예상도 못했을걸ㅋㅋㅋ
그렇다보니 에코백을 받은 운 좋은 새싹들 중에서도 특히 대박을 터뜨린 새싹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목: 미국 새싹들 부럽다ㅠㅠ]
서준이가 인증샷 찍은 LA 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이 미국에 풀렸대ㅠ
지금 다들 서준이가 찍은 인증사진에서 자기 에코백 부분 표시해서 사진 올림ㅠㅠ
(사진)
현수막을 다른 나라까지 가져가서 에코백 만드는 게 낭비라, 현지 공장에서 제작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진짜 부럽다ㅠㅠ
-와ㅠㅠ부럽다ㅠㅠ
=서준오빠가 본 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이라니ㅠ
=그냥 에코백도 부러운데ㅠㅠ더 좋은 게 있었어ㅠ
-난 저 에코백 진짜 손도 못 댈 것 같다.
=그냥 에코백도 실사용하는 새싹은 없을 듯.
현수막 에코백 이야기로 [새싹부터]가 떠들썩한 가운데, 에코백에 낙첨된 새싹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아니, 옹기종기란 단어로 표현하기엔 모자랄 정도로 아주 많이 모였다.
-내년 생일에도 현수막 합시다.
=22 올해 못 받은 새싹들에게도 에코백을!!
=33 제발요ㅠㅠ 더 비싸게 팔아도 살게요ㅠ
에코백의 출처를 묻는 게시글을 올린 송유정과 임예나는 댓글을 기다리며 그런 [새싹부터]를 구경했다.
“내년에도 하려나?”
“글쎄. 올해 떠들썩하게 했으니까 내후년에나 하지 않을까?”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다. 임예나도 마찬가지였다.
“와!”
송유정이 눈을 빛냈다.
“내 건 서울역에 있던 블루문 서준이 머리카락이래. 여기 우리가 보러 간 곳이잖아!”
인증샷까지 찍었다.
송유정이 들뜬 얼굴로 댓글의 사진과 자신이 찍은 인증샷을 번갈아 보았다.
“내 건 화 무명화가 눈동자래. 강원도에 있는 현수막이라는데…….”
“……아니, 그 많은 눈동자에서 어떻게 무명화가 눈동자라는 걸 알았대?”
대단하다. 새싹.
연신 감탄하는 송유정의 귀로 임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도 우리가 본 거야!”
“와, 미쳤다!”
우리가 본 현수막이 우리 에코백이 되다니!
송유정과 임예나는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함에 으아아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물론 옆집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한 목소리로.
“서준이 머리카락이라니! 어쩐지 감촉이 부드럽더라!”
“도련님 눈동자라니. 어쩐지 검은색에서 아련함이 느껴진다고 했어.”
각자의 에코백을 보며 으헤헤헤, 웃는 두 새싹이었다.
* * *
6월 말.
뉴욕.
지이잉-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로라 웰튼은 진동하는 휴대폰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뉴 에이지 제작사의 [뉴 이클립스] 담당자.
로라 웰튼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로라 웰튼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휴대폰 건너, 뉴 에이지 담당자가 웃으며 인사했다.
-저녁은 드셨어요?
“이제 먹으려고요.”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함께 살고 있는 동생, 그레이스 웰튼이 곧 부르러 올 거다. 요리사 친구(찰리)를 둬서 그런가 그레이스 웰튼도 요리를 곧잘 했다.
‘잠깐. 그럼 연기도 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인 동생 친구와 연기는 1도 못하는 동생이 떠올랐다.
음. 친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간단히 근황을 묻던 뉴 에이지 담당자가 전화한 이유를 말했다.
-뉴 이클립스의 촬영이 내일로 마무리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오. 그래요?”
로라 웰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짜를 살펴보았다.
첫 촬영을 시작한 게 4월 초, 그리고 지금은 6월 말.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아마도 뉴 에이지와 윌마 에반스 감독, 그리고 배우 서준 리가 아주 믿음직해서, 뉴욕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아서 몰랐던 같다.
‘뉴 에이지와 준이 간간이 연락해 준 것도 있고.’
로라 웰튼이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무튼 [망클립스] 때와는 달리 아주 편안한 상황이었다.
-이제 몰리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편집도 하고 CG작업도 할 겁니다. 그게 전부 끝나면 개봉하는 거죠.
“그렇군요.”
알고 있지만 어쩐지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첫 작품이라서 그런가, 망한 영화가 리메이크되는 거라서 그런가.
어떤 이유든 기쁘고 설레고 만족스러운 건 똑같았다.
“그레이스에게도 말해줘야겠네요.”
자신 못지않게 아주 기뻐할 거다.
그때 휴대폰 건너에서 뉴 에이지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의아함이 깃든 목소리였다.
-작가님.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작가님 동생분과 이클립스가 뭔가…… 관련이 있으신가요? 동생분 이야기를 자주 하셔서요.
영화화 이야기를 나눌 초반부터 자주 로라 웰튼 작가와 동행하던 그레이스 웰튼이 항상 궁금했던 뉴 에이지 담당자였다.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로라 웰튼이 볼을 긁적였다.
“이클립스를 쓰게 된 계기가 제 동생 그레이스랑 준이랑 또 다른 동생 친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