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62화 (86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62화

“다녀왔습니다!”

아내 최수희가 피아노 리사이틀로 집을 비운 동안, 일찍 퇴근하는 김희상의 귀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김수빈이 신난 얼굴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

학교 재량으로 오늘 쉬게 된 김수빈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온 것이었다.

“아들. 저녁은 먹었어?”

“응. 친구들이랑 피자 먹었어.”

“뭐 하고 놀았는데?”

“영화 보고 코인노래방 가고 PC방도 갔다가…….”

재잘재잘대는 김수빈에 김희상은 두 가지 면에서 안심했다.

첫 번째는 사춘기.

아무래도 중2는 보편적으로 사춘기를 겪는 나이가 아닌가.

‘빠른 애들은 초등학생 때 겪는다고 하지만.’

김수빈은 그러지 않았으니, 올해쯤 사춘기가 오지 않을까 하고 아내 최수희와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사춘기에 관련한 영상들이나 책들도 보고 주변에 조언도 구했다.

서은혜와 이민준에게도 물어봤는데, ‘서준이는 그냥 지나갔지.’ 하고 말하더라.

‘서준이는 서준이지.’

아기 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서준이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는 걸 김희상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라기엔 많이 컸나?’

훌쩍 자란 서준을 떠올려본 김희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자신에게는 여전히 요만한 조카였다.

그런 서준이 형을 닮아서 그런가.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걸 보니, 김수빈도 사춘기를 부드럽게 넘길 것 같았다.

‘아빠가 뭘 알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상상에 김희상은 ‘부디!’ 하고 기도했다.

두 번째로는 친구들.

‘배우 이서준’과 같이 바이올린을 연주해서 너튜브에 올릴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것이 알려져, 친구를 사귀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뿐만이면 괜찮겠지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벤자민 모튼과 제이슨 무어와도 아는 사이이며, 바이올린 실력도 또래 중, 아니,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뛰어나니, 아무래도 함께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또래에게는 조금 질투가 나는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어른들도 그러니까.’

부모로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종일 즐겁게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니.

안심이 됐다.

“서준이 형 영화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오늘도 촬영하고 있겠지? 빨리 개봉했으면 좋겠다!”

히히 웃는 아들에, 김희상도 하하 웃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서류봉투 하나와 네모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두 개 다 마치 선물처럼 예쁘게 리본이 묶여 있었다.

“그건 뭐야?”

“어린이날 선물.”

김수빈이 눈을 빛냈다.

이제 어린이는 아니지만, 어린이날에 학교를 안 가고 용돈과 선물을 받는 건 좋았다.

근데 서류봉투라니 특이하네.

김수빈은 눈을 반짝이며 봉투와 상자 중 어떤 것부터 열어볼까, 즐겁게 고민했다.

그때, 김희상이 말했다.

“봉투는 서준이가 보낸 거야.”

“형이?!”

김수빈의 눈이 두 배로 반짝였다. 아주 빛이 쏟아질 것 같았다.

단번에 상자는 놔두고 서류봉투부터 잡는 아들에, 김희상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형을 저렇게 좋아할 수 있는지.

‘하긴 서준이가 놀아준 거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

하고 납득하는 아빠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수빈은 신나게 서류봉투를 열었다.

“와아!”

서류봉투 안에는 종이 몇 장이 들어 있었는데, 그걸 본 김수빈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뭔데? 서준이가 뭐 줬어?”

“악보!”

“뭐?”

김수빈이 김희상에게 종이를 보여주었다.

오선으로 가득한 종이에 새까만 음표가 이리저리 그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프린트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서준이 직접 적은 것 같았다.

“서준이 형이 새로 작곡한 건가 봐!”

이야.

그리 길진 않지만, 자작곡 자필 악보라니.

게다가 서준이 작곡한 곡이니 퀄리티도 좋을 터였다.

“어린이날 선물 한번 엄청나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헤헤!”

아주 행복한 얼굴로 악보를 읽는 김수빈에, 김희상이 픽 웃고 말았다. 뒷전이 된 자신과 아내의 선물상자를 보고 이내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서준이 형한테 전화해야지!”

“지금 LA는 새벽이라서 서준이는 자고 있을걸?”

“아, 그렇지.”

아쉬운 표정을 짓던 김수빈이 잠시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은수야!”

서준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받았을 또 한 어린이, 서은수였다.

* * *

>수빈: 형형! 완전 좋아!

>수빈: (바이올린 연주 녹음 파일)

>수빈: 잘했지!!

>은수: 나도! 엄청 좋아!

>은수: 이거 진짜 갖고 싶었는데!

>은수: (로봇 사진)

>은수: 받자마자 바로 하나 만들었어!

쏟아지는 동생들의 메시지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수빈이에게는 자작곡 악보를, 은수에게는 새롭게 나온 로봇 제작 키트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하랑이에게도 선물을 보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잔뜩 흥분한 동생들에게 답장을 보낸 서준은 어버이날을 위한 마지막 체크를 했다.

미국에서 코코아엔터로 보내진 선물은 날짜에 맞춰 코코아엔터에서 외가와 친가, 그리고 부모님이 있을 집으로 배송될 예정이었다.

거기에 당일날 시간에 맞춰 영상통화도 할 생각이었다.

촬영하랴 기념일 챙기랴.

바쁜 5월이었다.

* * *

-나도 어린이고 싶다. 선물 줘. 회사 쉴래. 놀래.

=저도 마음만은 어린인데요.

=진짜 어린이한테 안 지고 놀 수 있는데요ㅠ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린이 체력 얕보면 안 됨.

=ㅋㅋㅋㅋ

-우아아아! 학교 쉰다! 서준오빠 작품 정주행해야지!

=나도!!

=전 이클립스 읽으려고요!

=난 영화 나올 때까지는 안 읽으려고! 영화 보고 읽을 거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ㅠㅠ 옛날에 읽어버림ㅠㅠ

-초등학생 여자애한테 어린이날 선물은 뭐가 좋을까?

=오. 동생이야? 착하네.

=딸임.

=……아하. 그렇군요.

-누군 어린이(청소년)라서 학교 쉬고, 누군 딸에게 줄 선물 찾고ㅋㅋ

=새싹들 나이 범위 엄청남.

=48시간 할 때 20살이었으면 벌써 사십…….

=더 이상 말하지 마.

=ㅋㅋㅋㅋ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등.

여러 기념일을 보내느라 새싹들은 아주 바빴다. 그리고 그만큼 돈이 사라졌다.

-5월 왜 이렇게 행사가 많은지ㅠㅠ

=안 그래도 텅 빈 통장이 아주 거덜 나고 있음.

=22 통장에 구멍 난 거 같다ㅋㅋㅠㅠ

=33 내 월급은 그냥 통장에 발자국만 찍고 가는 느낌.

=44 랍스터 과자에 들어간 랍스터만큼 남은 느낌.

=그건 없는 거잖아요ㅠㅠㅠ

=ㅠㅠㅠ

그때, [새싹부터]에 공지 두 개가 떴다.

하나는 서준의 생일날 전 세계에 설치된 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에 대한 공지였다.

-떴다아아!!!

-돈 없는데, 만들겠습니다ㅠ

=22 제발 팔아만 주십시오ㅠㅠㅠ

=33 적금 깬다ㅠㅠ

-다들 돈 없으시다면서요ㅠㅠ

=서준이 덕질 통장은 멀쩡합니다!

=22 한 푼도 안 썼어요!!

다들 돈 없다면서도 덕질할 돈은 남겨둔 모양이었다.

“나도 그런데.”

송유정이 히히 웃으며 공지를 읽었다.

[공지: 이서준 배우의 생일 현수막으로 제작한 에코백 판매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코코아엔터입니다.

(중략)

생일 현수막을 활용한 에코백의 제작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해당 에코백의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라별 ‘새싹’의 비율에 맞춰 판매될 예정입니다.

판매는 추첨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5월 31일까지 신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첨자 발표: 6월 5일.

(에코백 사진1)(2)(3)……(하략)

추첨이라니.

월루하던 송유정은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다른 새싹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ㅠㅠ

=역시 내 건 없을 듯.

=돈이 있으면 뭐 하냐고. 물건이 없는데. 운이 없는데에!!

-에코백 예쁘네요ㅠㅠ

=22 다른 나라 언어면 일코하기도 좋을 듯.

-ㅎㅎ바느질 한 거 뜯어서 벽에 걸어놔야지.

=난 벌써 자리 만들어 놓음.

=근데 일단 당첨부터 돼야ㅠㅠ

-이렇게 또 서준이 덕질 통장은 적금이 되고.

=진짜 이러다가 집 살 기세ㅠ

“집까지는 못 사도 차는 살 것 같네.”

두둑한 덕질 통장을 떠올리며 해탈한 듯 웃은 송유정은 에코백 공지와 함께 뜬 또 하나의 공지를 클릭했다.

[공지: 이서준 배우의 미국 팬미팅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그건 8월에 있을 미국 팬미팅에 관한 공지였다.

-미국 팬미팅!?!

=나 한국 팬미팅도 못 갔는데ㅠㅠ

=저도요ㅠ

-이건 선착순이네.

=근데 추첨과 다르지 않음.

=ㅇㅇ둘 다 운에 달렸지. 운 안 좋으면 이선좌 만남.

=이선좌는 낫죠. 결제 오류 나면 진짜 눈물 나와요.(솜사탕 씻는 라쿤)

-나. 미국 간다. 돈. 쓴다.

=22 제발 내 돈 좀 가져가 줘ㅠ

-미국에서 하면 인원수 더 많이 받으려나?

=ㄴㄴ한국이랑 비슷할걸? 연극을 하려면 아무래도 적당한 크기가 있으니까.

=아하. 그렇군. 내 자리는 없다는 거군.

=22 슈퍼볼 경기장에서 하나 싶어서 기대했는데.

=앜ㅋㅋㅋ그건 너무 큰 거 아니냐고요ㅋㅋ

=서준이가 보이긴 할까ㅋㅋ

-근데 서준오빠 지금 뉴 이클립스 촬영 중이지 않아요? 팬미팅 준비하려면 힘들 텐데ㅠ

=아마 한국에서 한 것들로 모아서 다시 할 듯.

=그래도 좋다.

=오히려 좋다.

-미국 새싹들 난리 남ㅋㅋ

=Finally!!!로 가득한 새싹부터 미국지점ㅋㅋ

-하지만 과연 갈 수 있을까요ㅎㅎ

=미국에서 팬미팅을 해도…… 경쟁자가 전 세계 새싹인걸?

=22 한국 팬미팅에 외국새싹들이 잔뜩 온 것처럼 외국새싹들이 잔뜩 오겠지.

=이제 우리가 간다!! ……갈 수 있겠지?

=ㅋㅋㅋㅠㅠㅠ

송유정이 얼른 키보드를 두드려 메시지를 보냈다.

수신자는 친구이자 덕질메이트, 임예나.

<미국 ㄱ?

>임예나: ㅇㅇ

흐흐흐.

바로 작년에 미국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미국에 가자고 약속하는 송유정과 임예나였다.

물론 팬미팅 티켓팅에 성공해야겠지만 말이다.

* * *

6월 5일.

에코백 당첨자 발표날.

송유정은 미국에 가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간중간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문자로 당첨자에게 연락을 한다고 했다.

지잉-

“헉!”

송유정이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였다. 그것도 보험전화.

에이. 송유정은 아쉬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잉-

또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엔 문자였다. 송유정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빠르게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대박 주식을 추천하는 스팸문자였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쉬워하는 송유정에, 옆자리에 앉은 동료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송유정이 이서준 배우의 팬이라는 건 스노우볼들과 여기저기 붙어 있는 서준의 사진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잉-

또 한 번 문자가 왔다.

이번엔 어디에 정보가 팔렸나.

하고 휴대폰을 보던 송유정이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코코아엔터입니다.

송유정님의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에코백 당첨 문자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벅참에 벌떡 일어나고 싶었는데, 직장인 송유정이 새싹 송유정의 멱살을 잡고 앉혔다. 여긴 회사야! 하고 말하면서.

송유정이 이성을 찾았다.

후욱후욱-

……반쯤.

<나 에코백 당첨 됐어어어!

>임예나: 좋겠다ㅠㅠ

앗.

임예나는 낙첨인가 보다.

하긴 언제나 둘 다 당첨되는 건 힘든 일이긴 했다. 팬사인회도 그랬고.

송유정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떻게 위로하지, 내 에코백 조금 잘라서 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때.

>임예나: 근데 나도 당첨됨.

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임예나: ㅋㅋㅋㅋ

웃음이 가득한 임예나의 메시지에 송유정 또한 웃었다.

<오늘 보자.

>임예나: ㄴㄴ

<맛있는 거 사줄게.

>임예나: ㄴㄴㄴㄴ

<내가 사준다니까?

>임예나: 먹을 거 사준다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어.

<……ㅎ

송유정에게서 흘러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직원이 조금 멀어졌다.

그렇게 잠시 금이 갈 뻔한 송유정과 임예나의 우정은,

“영어로 팬미팅하는 서준이 보고 싶었는데에!”

2주 후 열린 미국 팬미팅 티켓팅에서 둘 다 실패함으로써 다시 단단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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