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61화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연이은 NG로 윌마 감독은 잠시 쉬기로 했다.
그사이 폴 로머 등 배우들은 무술감독과 짧게 연습을 하기로 했고, 액션 장면이 거의 없어 그런 배우들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한 댄 켄드릭과 브라이언 구델은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준은 뭐 할 거야?”
“명상하려고요.”
“오.”
“준의 연기력의 비밀이 바로 명상?!”
브라이언 구델의 호들갑에 작게 웃은 서준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생의 도서관에 가는 거였지만 말이다.
서준은 눈을 감았다 떴다.
사방이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생의 도서관이 보였다.
“그게 어디 있더라?”
짧은 쉬는 시간 동안 적당한 능력을 찾기 위해 서준은 얼른 선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침 생각난 능력이 있었다.
[(선)황보세가 막내아들의 애완견-하급]
권법에 대한 흐름을 조금 볼 수 있습니다.
황보세가의 권법을 재연할 수 있습니다.
제한 : 개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면서 활용했던 능력이었다.
‘태권도 국가대표가 될 뻔했지.’
작게 웃은 서준이 책장에 꽂혀 있던 [(선)황보세가 막내아들의 애완견]의 책을 꺼내 들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권법의 흐름을 보는 능력이라서, 촬영에 적용하기도 적당했다.
“더 좋은 능력이 있긴 한데…….”
서준이 고개를 돌려 선의 도서관 입구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지금 서준이 떠올리고 있는 능력은 얼마 전에 모두 읽은 삶의 책으로 [(악)천마의 만병지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상급의 능력이었다.
화약을 쓰지 않는 모든 냉병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검법부터 보법, 권법, 심법까지.
정과 마, 사를 가리지 않고 ‘천마’가 살았던 세계에 있는 모든 무술을 배우고 깨닫고 쓸 수 있는 굉장한 능력이었다.
‘마기를 써야 해서 나는 안 쓸 거지만.’
아마 다시 태어난 ‘자신’이 최상급의 문을 열 수 있다면, 천마에게 지배당했던 그 세계처럼 세계정복을 할 때나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참고로, 천마는 인간이 아니라 마(馬)족, 켄타우루스다.
하여튼.
능력을 찾은 서준은 얼른 명상에서 깨어났다.
“준, 잠시만 와줄 수 있습니까?”
“네. 갈게요.”
타이밍 좋게 무술감독이 서준을 불렀다. 서준을 앞에 두고 리허설을 진행할 모양이었다.
서준이 배우들의 앞에 섰다. 그리고 능력을 발동했다.
[(선)황보세가 막내아들의 애완견이 발동됩니다.]
‘역시.’
흐름이 보인다.
자신을 공격하려는 폴 로머의 모습과 가만히 서 있음에도 언제든 반격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이.
물론 서준이 느끼기에는 자신의 자세에 아직 여기저기 빈 곳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저 희미한 늑대의 감각만으로 느끼는 배우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럼…….’
서준은 몸을 살짝 움직여 그 빈틈을 좀 더 크게 만들어주었다.
그걸 알아챈 듯 폴 로머의 눈이 조금 커졌다.
마치 커다란 방패에 구멍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화살을 쏘면 맞을 것 같은 구멍이.
반사적으로 폴 로머의 손이 뻗어졌다. 그리고 서준의 옆구리에 닿았다.
“……어, 어?”
툭-
하는 소리에 폴 로머가 더 놀란 것 같았다.
제 주먹과 서준의 옆구리를 번갈아 보던 폴 로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빛나고 있었다.
“준, 한번 같이 리허설 해줄 수 있어?”
“물론이죠.”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폴 로머와 서준이 마주 보고 섰다.
배우들과 무술감독, 윌마 감독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준은 능력을 사용해 폴 로머와 자신의 흐름을 살폈다.
대본대로라면 폴 로머는 ‘테오’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명치를 공격한다.
‘그럼 명치 부분을 비워둬야지.’
서준은 몸의 방향을 조금 바꿔 ‘늑대인간’역에 몰입한 폴 로머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빈틈을 만들어주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느끼지도 못할 변화였지만, 지금의 폴 로머에게는 충분했다.
‘빈틈!’
공격하려던 마음이 가득한(물론 연기다.) 폴 로머의 눈에 공간이 보였다. 또 한 번 반사적으로, 그러나 연기인 것을 인지한 상태로 폴 로머는 빠르게 주먹을 날렸다.
맞았다!
하고 배우들과 감독들이 생각할 때, 서준이 얼른 뒤로 물러섰다. 폴 로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어?”
“원래 피하는 거잖아요.”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 그랬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공격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맞을 줄 알았습니다.”
윌마 감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이 너무 좋다는 말이 조금 묘하긴 했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준! 나랑도 한번 해보지 않을래?”
“나도!”
“좋아요.”
어떨떨한 얼굴로 손을 쥐었다 펴는 폴 로머를 본, NG를 냈던 배우들은 얼른 손을 들었고, 서준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잠시 세트장 위에서 리허설 시간을 가졌다.
“카메라!”
서준과 배우들의 리허설을 보다가, 눈을 빛내며 ‘카메라!’를 외치는 윌마 감독의 모습을 보면 본 촬영인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자연스러웠습니다!”
본업인 무술감독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익힌 느낌이 아니라 몸에 배어 있는 게 자연스럽게 나온 느낌이랄까요. 본능적으로 사냥하는 늑대처럼 말입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에 배우들이 으음,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음.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준을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도 먼저 손과 발이 뻗어 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맞아. 나도 그랬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준을 보니까 반사적으로 저기를 공격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무술감독의 얼굴이 신기함으로 가득 찼다.
자연스러운 액션 연기의 원인이 서준 리라는 사실에 무술감독과 윌마 감독, 배우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쏠렸다.
“자세를 조금 바꿨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도대체 뭘 하신 겁니까, 준?”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빈틈을 만들었어요. 아주 작은 빈틈이요.”
“빈틈이요?”
눈을 끔벅이는 이들과 아! 하고 깨닫는 이들로 반응이 나뉘었다. 깨닫는 이들은 서준과 합을 맞췄던 배우들이었다.
“그러네. 빈틈.”
속이 시원해졌다.
어떤 표현이 가장 좋을까 고민했는데, 빈틈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폴이 공격할 곳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공격할 곳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해서 한번 해봤어요.”
와우!
서준의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게 하고 싶다고 하면 돼?”
“제가 운동을 이것저것 했거든요. 그게 도움이 됐나 봐요.”
그래도 그렇지.
한평생 액션만 파온 무술감독은 조금 슬퍼하다가, 이내 서준에게 이것저것 물어댔다. 경력과 나이에 상관없이 배우는 게 남는 거였다.
“그러니까…….”
로 시작된 서준의 설명은 어느새 액션뿐만이 아니라 무술에까지 이어지려던 찰나,
“촬영할 시간입니다. 감독님. 준.”
윌마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요, 감독님.”
“그래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듣고 있었던 무술감독은 눈물을 머금고 서준을 보내주었다.
아련한 그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잠시 후.
서준과 배우들의 몸에 와이어가 장착되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앞에 찍었던 신부터 다시 촬영하겠습니다.”
윌마 감독이 오케이가 나온 장면들까지 모두 재촬영한다고 이야기했다.
“좋죠. 안 그래도 마음에 좀 걸렸었는데.”
“좋습니다!”
그에 다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의 촬영과 지금의 촬영이 얼마나 다를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도 마찬가지였다.
아까보다 더 멋진 액션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재미있을 거다.
곧 ‘액션!’이라고 외치는 윌마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고.
조금 전까지 NG 소리만 들렸던 것과 달리, 연신 오케이를 외치는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 * *
그사이 다른 늑대인간이 테오의 아래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급소인 명치를 노리는 매서운 공격이었다. 테오는 그 공격을 피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맞았을 거다.
공격 하나 피했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테오의 뒤에서 늑대화한 늑대인간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테오의 몸통을 노리고 있었다.
그다지 강하고 빠른 공격은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내장이 상해 죽지 않도록, 목을 물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저 거대한 발과 날카로운 발톱도 자주 휘두르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깔끔하게 늑대의 공격을 피한 테오가 땅을 딛고 눈앞의 늑대인간에게로 달려들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땅이 움푹 파였다.
그 소리에 목표물이 된 늑대인간의 귀가 바짝 섰다. 동시에 몸을 낮춰 테오의 공격을 피했다. 테오의 뒤에 선 늑대인간이 테오의 옆구리를 노려 공격했다.
--!
바닥에 몸을 굴려 그 공격을 피한 테오는 곧바로 뒤에서 있던 늑대인간에게로 달려들었다. 검은색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무게에 속도까지 더해진 공격에 제법 타격을 입은 늑대인간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렇다고 빈틈이 생긴 건 아니었다.
곧바로 새로운 늑대인간이 나타나 빈자리를 채웠다.
‘탈출할 생각은 없지만.’
뭐, 얌전히 있는 것도 이상하니 탈출하는 척해보긴 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테오는 바로 다음 목표물을 노려 움직였다.
웨이드와 제레미를 제외하고 여덟의 늑대인간들이 테오에게 달려들었다. 늑대의 모습으로 공격하기도 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딱히 테오가 강해서 여덟이 덤비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했다.
죽지 않을 정도로, 탈출하지 못할 정도로 작신작신 다져놓는 것이었다.
그 의도대로 테오의 상처가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낡았지만 깨끗했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피에 붉게 물들었고, 얼굴도 상처로 가득했다. 옷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팔다리도 타격을 많이 받은 듯 움찔거렸다.
시야가 흐릿했다. 흘러내리는 피 때문인 것 같았다. 입에서 피 맛이 났다. 퉤, 하고 뱉어내고 싶은데 그럴 힘이 없었다.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통각이 맛이 갔나 보다.
힘이 빠져 어느새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던 테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벅저벅-
그런 테오에게 웨이드가 다가갔다.
그리고 땀과 피와 흙먼지로 더러워진 테오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테오가 고개를 들었다. 웨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힘이 빠진 다리는 제대로 서지도 앉지도 못했다.
“그러니 얌전히 따라올 것이지. 시어도어, 이제 만족해?”
“……ㄱ.”
“뭐?”
그 되물음과 동시에, 얼굴 한쪽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웨이드가 시선을 돌렸다.
테오의 피 묻은 주먹이 웨이드의 오른쪽 볼에 닿아 있었다. 나름 힘을 주는 것 같았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팔은 힘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심적으로는 타격을 준 것 같았다.
“아직이라고…… 이 새끼야…….”
웃으며 말하는 테오에 웨이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머리채를 잡은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반사적으로 윽- 하고 신음을 뱉은 테오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신경은…… 충분히 돌린 것 같지?’
진득한 피비린내 속.
깨끗하게 세탁된 낡은 옷에서 흘러나오는 세탁세제와 햇빛과 쿠키의 냄새를 맡으며 희미한 미소를 짓던 테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퍼억!
미간을 찌푸린 웨이드에게 걷어차인 테오는 의식을 잃은 채 늑대로 변한 늑대인간의 등에 실려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