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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59화 (85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59화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

어딘가의 숲속.

테오는 그곳을 달려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마녀의 집이 있는 도시와 최대한 멀어지기를 바라며, 희미하게 남긴 자신의 흔적을 늑대인간들이 발견하길 바라며 달려가고 있었다.

‘발견했겠지?’

자신의 냄새를 나무와 풀숲에 연하게 남기며 테오는 생각했다.

발견했을 거다.

그들이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이라면 자신이 흔적을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을 발견하고 쫓아오고 있는 중일…….

!

테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던 탓에 숨이 가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했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조용하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지만,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밤 짐승들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테오의 가쁜 숨소리만 숲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이 느껴졌다.

최근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잊을 수 없는, 살아온 내내 받았던 자신을 경멸하고 깔보는 눈빛이.

덜컹,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각오한 일이지만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되니 반사적으로 주춤거리게 됐다. 그러지 않고 싶어도 오래도록 쌓인 기억이, 괴롭힘을 겪어야 했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쫓아왔구나,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에 웃음이 나왔지만, 테오는 그대로 삼켜 버렸다. 괜히 웃었다가는 그 안에 담긴 생각을 파악하려고 들 수도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평소처럼.

그러면서도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리지 않게 해야 했다.

테오는 경계 태세를 갖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늑대의 귀가 솟아오르며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어느새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 바람 속에서 익숙한 냄새가 맡아졌다. 지긋지긋하지만 어쩌면 자신에게서도 날지도 모르는 레이필드의 냄새였다.

바람을 마주 보며 냄새를 지우는 것이 사냥의 기본.

그러나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은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부러 풍기는 냄새에서는 테오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레이필드의 차기 가주부터 그 형제와 부하들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빈틈없이 테오를 둘러싼 상태로.

뒷목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부스럭-

하고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오는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사냥감 앞에서 함부로 소리 내지 않는 늑대들이니, 아마도 일부러 소리를 낸 것이리라.

자신이 겁먹기를 바라며.

조용히 바람이 불고, 달빛이 비쳤다.

내일 보름달이 되는 달이 이미 몸통을 가득 불려,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로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랜만이구나. 시어도어.”

말끔한 얼굴의 레이필드의 차기 가주.

테오(Teo) 레이필드, 아니, 시어도어(Theodore) 레이필드의 이복 형 웨이드 레이필드였다.

웨이드의 등장과 함께 다른 늑대들도 나타났다.

앞뒤 양옆.

냄새에 담긴 정보대로, 완전히 늑대화한 거대한 덩치의 늑대들과 귀와 꼬리만 내놓고 있는 반인간화한 늑대인간들이 테오를 둘러싸고 있었다.

보름을 앞둬서 그런지 모두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에 진득하고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잘도 도망쳤네, 똥개. 이렇게 잡힐 거면 그냥 얌전히 있지 그랬냐?”

웨이드의 동생, 테오의 또 다른 이복형, 제레미 레이필드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다섯 달쯤 됐나?”

“이번 달까지 하면 반년.”

“아, 언제 집에 가냐고!”

웨이드를 제외한 아홉의 늑대들이 긴장감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들 눈앞에 있는 테오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익숙한 태도다.

굳어져 있는 몸을 풀기 위해 테오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여태껏 쫓아올 줄은 몰랐네.”

“나도 네가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웨이드의 차가운 시선이 테오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사이 나쁜 이복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라기보다는 금방이라도 목을 꺾어버리고 싶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서늘한 눈빛이었다.

테오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웨이드의 앞에 서면 언제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이 굳어버리고 만다.

……고양이.

몰리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줄 알았더니, 성인이 되자마자 도망칠 줄이야…….”

웨이드가 의아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레이필드에서의 테오는 그들 앞에서는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기죽은 듯 가만히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외치는 제레미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제레미의 늑대귀가 뒤로 젖혀졌다. 웨이드가 명령만 내린다면 테오를 공격할 기색이 가득했다.

“가만히 있을 것이지! 괜히 우리만 고생시키고 말이야! 특히 이 한 달 동안 우리가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알아?! 똥개 널 숨겨줄 녀석이 있었을 리는 없고, 도대체 어디 숨어 있었길래……!”

“얌전히 따라오도록 해.”

펄펄 날뛰는 다혈질 동생을 익숙하게 무시한 웨이드가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웨이드.”

갑작스럽게 끼어든 테오의 목소리에 웨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레미는 물론이고 다른 늑대인간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늑대화하고 있었던 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늑대인간도 아니고.

항상 찍소리도 못 내고 자신들의 아래에 있던 그 시어도어가, 웨이드의 말에 끼어들다니!

한 박자 늦게 제레미가 펄쩍 뛰었다.

“……똥개! 네가 감히 형의 말에 끼어들어?!”

“어째서 계속 쫓아오는 건가 고민을 해봤어.”

테오 또한 제레미를 무시했다. 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오는 찌푸려지려는 미간을 애써 폈다. 다혈질에 멍청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감이 좋다.

“보통 무리에서 쫓겨나는 것도 큰 벌이잖아?”

웨이드의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것도 돈도 한 푼 없고, 인간들의 삶은커녕 늑대인간의 삶조차도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나한테는 더더욱 큰 벌이지. 난 어렸을 때 말도 제대로 못 했잖아.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테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두면 인간들 사이에도 섞이지 못한 채로, 어디 숲 속에서 먹이나 사냥하면서 늑대인간이 아니라 그저 짐승처럼 살았을지도 몰라.”

바람이 불었다.

“……지금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거야 내가 잘 숨겨서 그런 거고.”

내가 좀 똑똑하더라고.

테오가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을 둘러보았다.

“웨이드 너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랬다는 거지.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자멸할, 꼬리 없는 반푼이 늑대.”

제레미가 꼴깍 침을 삼켰다.

“근데 너는 그러지 않았지.”

테오가 웨이드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성인이 되기 하루 전 레이필드를 뛰쳐나온 테오를 가장 먼저 추격한 것이 웨이드 레이필드였다.

“죽이려고 그런가 싶었는데,”

반년.

클레어, 몰리와 함께 지냈던 한 달을 빼고 다섯 달.

힘이 약하고 제대로 길도 모르는 테오는 몇 번 웨이드 무리에게 붙잡혔었다.

“죽이지도 않았어.”

테오의 말이 이어질수록 늑대인간들의 표정이 묘했다. 마치 바닥을 기어야 하는 벌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제서야 저 꼬리 없는 똥개 또한 레이필드 가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저 어디에 가둬두기만 했지. 두 번 그랬으면 세 번째에는 그냥 보자마자 죽였을 것 같은데, 세 번째도 그냥 가둬두기만 하고.”

물론 도망 못 치게 이곳저곳 많이 부서뜨리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테오가 도망쳤으니 쓸데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봐. 바로 죽이지 않고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하잖아. 마치 내가 필요한 것처럼.”

테오와 웨이드의 눈이 마주쳤다.

“그것도 사지가 온전히 붙어 있는, 살아 있는 내가 말이야.”

웨이드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늑대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테오의 말 그대로, 그들은 팔다리가 온전한, 살아 있는 시어도어 레이필드가 필요했다.

“아, 그렇다고 내가 죽겠다는 말은 아니고.”

그 제레미마저 조용해진 가운데, 테오가 씨익 웃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에 반사적으로 늑대인간들도 자세를 잡았다.

다른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밤의 숲속.

꼬리 없는 늑대인간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너희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그러고는 딛고 있던 땅을 있는 힘껏 박차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알고 있다는 거야-!”

방어는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한 일격이었다.

* * *

“컷! 오케이!”

윌마 감독의 외침에 와이어에 매달려있던 서준이 바닥에 착지했다.

의상 속에 입고 있는 벨트와 연결된 와이어를 잡고 고개를 들자,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설치된 기둥에 연결된 길쭉한 와이어가 보였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꼭 집라인 같았다.

서준은 그 와이어에 매달려 몸을 가볍게 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는데 추진력을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테오’가 달려드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

“어땠어요, 감독님?”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서준은 벨트와 연결된 고리를 풀고 윌마 감독과 배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 잘했습니다. 준! 멋져요!”

윌마 감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와이어액션이라는 게 어디 매달려 있는 데다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이다 보니 조금 어설퍼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진짜 늑대가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윌마 감독의 말에 바로 눈앞에서 그걸 봐야 했던 ‘웨이드’역의 댄 켄드릭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눈 깜빡하니까 바로 앞에 준이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몇 미터 떨어져 있던 사람이 슉- 하고 한순간에 눈앞으로 다가오다니.

아마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늑대가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하고 댄 켄드릭은 생각했다.

“저도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니까요. 소름까지 돋았어요. 이것 보세요.”

댄 켄드릭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제레미’역의 브라이언 구델은 소매를 걷고 팔까지 보여주었다. 그에 서준과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모니터링을 하고 다시 촬영을 재개했다.

“레디,”

윌마 감독은 집중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이곳에서 촬영할 수 있는 장면은 모두 촬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또 일정을 잡아 해가 진 후 촬영을 하러 와야 했다.

그건 배우들에게도, 스태프들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액션!”

그 외침에 배우들은 능숙하게 같은 장면을 연기했다.

카메라들이 그런 배우들의 모습을 쫓았다.

조금 전 깜짝 놀랐다고 말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달려드는 서준의 모습에도 댄 켄드릭은 미동 하나 없었다.

오히려 ‘테오’의 움직임이 모두 읽히고 있다는 듯,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는 듯한 거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컷! 오케이!”

촬영은 짧게 짧게 이어졌다.

안전과 액션을 위해 전투 장면은 야외와 스튜디오에서 찍은 장면들을 번갈아 넣어 편집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야외 풍경을 최대한 똑같이 재현해서 스튜디오 촬영분에 붙어 넣어야 하는 CG팀이 아주아주 힘들어지겠지만, 할리우드의 CG팀이니 알아서 잘할 것이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밤 10시에 시작한 촬영은 새벽 4시 반쯤, 동이 트기 전에 끝났다.

바쁘게 움직이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그제서야 마음을 편하게 놓았다. 해가 뜨기 전 예정된 것을 모두 찍어야 했는데, 다행히도 모두 끝났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쭈욱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였다. 피곤함이 조금 깔린 얼굴들이었다. 그래도 밤샘 촬영을 해서 내일은, 아니, 오늘은 쉬는 날이니 다들 편하게 쉴 수 있을 터였다.

“이제 집에 갈 거예요, 준?”

브라이언 구델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해 뜨는 거 보고 가려고.”

윌마 감독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해두었다.

“저도요! 6시쯤 뜬다던데 기다리려고요.”

“일출 본다고? 나도 볼래.”

“나도!”

하나둘 늘어나는 배우들에, 서준은 웃고 말았다. 아직 다들 늑대 귀와 꼬리를 단 모습이라 조금 웃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웃는 서준도 늑대 귀를 하고 있어서, 스태프들이 작게 웃었지만 말이다.

일출 시간까지 1시간 30분쯤 남았었지만, 분장을 지우고 잠시 움직이니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이 되자,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도 일출이 잘 보이는 곳으로 옹기종기 이동했다.

먼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와아아.

서준과 배우들, 윌마 감독과 스태프들은 피곤함도 잊고,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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