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58화 (85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58화

그날 밤.

저녁은 든든하게 먹고 늑대인간 대처법에 대한 몰리의 강의를 들은 후, 클레어와 몰리는 2층의 방으로, 테오는 1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이라…….’

밝은 조명 아래.

테오는 난생처음 가지게 된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테오의 방은 테오가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들과 테오의 것으로 제 나름 꾸며져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 클레어가 전에 썼던 노트북과 서재에서 빌려 온 책들. 그리고 제 몸에 딱 맞는 옷들.

레이필드에서 살았던 곳도 나쁜 의미에서 자신밖에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긴 했지만, 그것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이 방은 특별했다.

황량한 레이필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생활감이 가득했다.

매일 지내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만족감과 벅참으로 온몸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테오는 제 물건들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리했다. 몰리가 자신을 닮았다고 가져온 강아지 장식품까지도. 제 것을 가져본 적이 없어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언제쯤 익숙해지나 했는데…….”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이곳이 자신의 방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인정하고 적응해서, 다른 평범한 이들이 그러하듯 별생각 없이 방에서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제 힘들겠네.”

이제 테오에게는 그렇게 익숙해질 시간이 없었다.

늑대인간들이 근처에 있다.

방을 정리하는 테오의 검은색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그들이 레이필드의 늑대들인지 아니면 다른 무리의 늑대들인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직감은 그들이 레이필드의 늑대들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테오는 자신을 쫓고 있는 그들이 얼마나 호전적이며 얼마나 강한 힘에 집착하는지 잘 알았다.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마녀의 집.

테오가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 안에 숨어 있는다면,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오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클레어와 몰리가 위험해.”

자신을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늑대인간들이 이 도시에 발을 디딘다면 이 집과 몰리, 클레어를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테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마법을 배운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초보 마녀.

약하디약한 먹잇감.

자신의 쫓는 것과는 별개로, 늑대인간들은 클레어와 몰리, 이 집을 노릴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몰리와 클레어를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게 할 순 없었다.

언제까지 그들을 피해 숨어 지내야 할지 몰랐다.

한 달, 일 년, 아니면…… 평생.

기약 없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작지만 무거운 불안을 안고 지내는 테오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클레어와 몰리를 자신처럼 불안 속에서 살게 할 수는 없었다.

쿠키 가게를 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클레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주 산책하러 나가 이것저것 가지고 오던 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테오에게 아주 소중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 일상이 파괴하게 두진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서라도.

테오는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벗고 낡고 커다란 옷으로 갈아입었다. 클레어를 만났던 첫날 입고 있었던 옷이었다.

이 옷을 버리지 않았던 걸 보면, 어쩌면 자신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테오는 쓰게 웃으며 벗은 옷을 잘 개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잠시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살펴보고는 딸깍-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방 밖.

커튼 사이로 달빛만이 비치는 거실이 보였다.

테오는 얕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여기 소파에 앉아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했고, 셋이서 간식을 먹거나 놀기도 했다.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서재에서 책을 한가득 가져와 여기저기 늘어놓고 찾아보기도 했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약들을 실험해 보다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마치 환상처럼 클레어와 몰리, 자신의 모습이 일렁였다.

테오는 고개를 돌려 거실 옆 부엌을 보았다.

여기 식탁에서 레이필드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달달한 쿠키와 케이크들, 그리고 여러 가지 음료수들도. 클레어를 도와 요리를 한 적도 있었다. 피곤해하는 클레어를 대신해 몰리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만든 적도 있었다. 물론 몰리와 투닥거리다가 조금 많이 태워 버리긴 했지만.

저도모르게 작게 웃음이 나왔다.

테오는 걸음을 옮겼다.

거실을 지나 문을 열자, 마녀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쿠키 가게와 주방이 보였다.

이곳에도 추억이 가득했다.

여기 도배도 자신과 클레어가 같이 했고, 가구들도 모두 손수 조립했다. 쿠키들을 넣어놓을 유리로 된 전시장을 실수로 떨어뜨릴 뻔하기도 했다. 몰리가 엄청 잔소리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2층에 있는 클레어와 몰리에게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걷던 테오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졌다.

달칵-

테오는 조금 느릿한 손길로 현관문을 열었다.

서늘한 밤의 공기가 테오를 반겼다. 그와 함께 마당의 풀 냄새가 맡아졌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한바탕 싸웠던 몰리와 이제는 풀어버린 실팔찌를 경계하는 얼굴로 묶어주던 클레어. 그리고 클레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당을 청소하던 자신까지.

테오는 나무로 된 대문에 손을 올렸다.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시 들어오지 못할까 봐 이 집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클레어와 몰리에게 말도 하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미안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이야기했으면 도와줬겠지.”

그래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제 한 달 차 마녀와 조그마한 고양이가, 늑대인간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일에 전혀 상관없는 이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클레어와 몰리는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줬으면 했다.

테오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녀의 집이 보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평생 잊지 못할 나날들을 만들어준 마녀와 고양이가 있는 집이 보였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좀 더 오래 여기에 있고 싶었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잘 지내, 클레어. 몰리.”

마지막 인사를 한 꼬리 없는 늑대는 대문을 열고 마녀의 집을 떠났다.

다시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 * *

소리 없이 커튼이 양옆으로 열리며,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커튼으로 서준이 일어날 시간이 되면 알아서 열렸다.

번쩍!

서준이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가 잠기운 하나 없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서준이 창 밖을 보았다. 새하얀 구름들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오! 날씨 좋네!”

어제와 다름없는 날씨였지만, 평소보다 더 즐거워 보이는 서준에게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힘차고 빠르게 준비를 끝내고 1층으로 내려온 서준을 최태우가 반겼다.

“아, 일어났어……?”

“네!”

수분을 잔뜩 섭취하고 광합성까지 완벽하게 끝낸 꽃처럼 활짝 피어난 서준과 달리, 최태우는 흐물흐물 시든 풀처럼 초췌한 얼굴이었다.

식탁에 앉으며 최태우의 얼굴을 살펴본 서준이 물었다.

“잠 잘 못 잤어요, 태우 형?”

그에 최태우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어, 그렇게 보여?”

“네. 엄청 피곤해 보여요.”

“그게, 일이 좀 있어서…….”

일?

촬영 중인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저에게 다른 일을 맡길 코코아엔터가 아니었다. 그게 서준 자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개인적인 일이거나 자신에 관한 일 때문일 거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태우 형 대신 왔을 거고.’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아하, 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 액션 씬 찍어서 그래요?”

그에 최태우가 바늘에 찔린 듯 깜짝 놀라는 게 보였다.

서준이 웃고 말았다.

자신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열심히 연습한 것들을 촬영할 생각에 어젯밤부터 즐겁기만 했는데, 태우 형은 걱정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잤던 모양이었다.

“액션 씬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말에 둘러대기를 포기한 최태우가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나도 그냥 액션 씬이라면 걱정 안 하지.”

최태우도 서준이 얼마나 몸을 잘 쓰는지 알고 있었다.

코코아엔터 입사 전에는 영화로 봤었고, [쉐도우앤나이트] 때는 촬영하는 것을 직접 봤으니까 말이다.

“근데 오늘 촬영하는 건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거잖아. 그것도 일 대 다수로.”

상상만해도 한숨이 나왔지만, 서준이 신경 쓸까 봐 참는 최태우였다.

뭐, 이미 들킨 시점에서 아무 소용 없을지도 모르지만, 촬영 때 재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

‘징크스라는 게 이렇게 생기는 건지도.’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최태우의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연습 많이 해서 괜찮아요. 그리고 진짜 때리고 맞는 것도 아니잖아요.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거라 안전장치도 다 되어 있고요.”

“……그렇긴 하지.”

최태우는 쓴웃음을 삼켰다.

매니저가 배우의 멘탈을 관리해 줘야 하는데, 배우가 매니저를 달래주다니. 반성해야겠다.

* * *

“어서 와요, 준.”

“안녕하세요, 감독님!”

촬영장에 도착한 서준을 윌마 감독이 반겨주었다.

“오늘 컨디션 정말 좋아 보입니다.”

활기 넘치는 서준에 윌마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

“네. 오늘 촬영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 보였다.

평소에도 촬영이라면 좋아하는 게 보였는데, 오늘의 서준은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촬영 때는 침착해야 하는 거 알고 있죠?”

연기에 집중하면 당연히 몰입할 서준 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고라는 건 한순간의 방심이 일으키는 법이었다.

“네. 당연하죠.”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윌마 감독과 인사를 나눈 후, 서준은 오늘 함께 연기할 댄 켄드릭과 브라이언 구델 등 늑대인간역의 배우들과도 인사했다. 오늘은 헤일리 로지가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준이랑 같이 촬영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네.”

“으아아! 그냥 준이랑 연기하는 것도 긴장되는데, 처음부터 액션씬이라니 엄청 떨려요!”

댄 켄드릭의 말에 브라이언 구델이 발을 동동 구르듯 말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연습했잖아.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어제 준이 촬영하는 거 보니까 연습이랑 촬영이랑 느낌이 전혀 다르던데요?!”

“맞아. 비슷하긴 했는데 좀 달랐어. 더 몰입한 느낌이랄까?”

그런가?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아무리 연습을 실전처럼 한다고 해도, 연습과 실전은 차이가 있는가보다.

“그래도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서준이 웃으며 동료 배우들을 안심시켰다.

“실수하면 제가 피할게요. 순발력은 자신 있거든요.”

“아니! 실수를 하면 안 되지!”

동료 배우들도, 이제 막 안전장치들을 살펴보러 갈 예정이던 최태우도 전혀 안심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