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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57화 (85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57화

“오케이! 컷!”

윌마 에반스 감독의 외침에, 계속 촬영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던 큰 아이들은 으아- 하고 긴장을 풀었지만, 서준과 노느라 신이 난 작은 아이들은 1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서준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에 서준도 지쳐 있던 연기를 멈추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번쩍번쩍 들어주었다.

꺄르륵 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채우자, 보호자들은 물론이고 아역배우들만 한 자식, 조카가 있는 스태프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짝짝 박수가 나올 것 같았다.

“체력 장난 아니네.”

“그러게. 난 한 명하고만 놀아줘도 기절할 것 같은데…….”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가 아이들과 함께 노는 장면’을 찍는 초반부터, 노는 데 정신이 팔린 아이들은 진짜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놀았는데, 서준 리는 잘도 그런 아이들에게 맞춰 놀아주면서도 촬영을 이어나갔다.

물론 촬영이라 노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체력이었다.

“놀이터 한가운데 떨어진 느낌이 저럴까요?”

“그것참…… 생각만 해도 지치네요.”

보호자들은 모두 공감하며 허허허 웃었다.

“준 같은 베이비시터가 있으면 마음 놓고 맡길 것 같지 않습니까? 아이들도 좋아하고 위험할 때 먼저 움직여주고.”

넓은 잔디밭이라 위험한 건 없었지만, 신나게 달리다가 넘어질락 말락 할 때마다 어느새 서준이 나타나서 아이들을 번쩍 안아 올리는 모습은 역시 인상 깊게 남았다.

“소외되는 아이들도 하나 없고요.”

여자애 남자애,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아주 능숙하게 놀아주는 서준의 모습은 베테랑 베이비시터처럼 보였다.

“그 베이비시터에게는 얼마나 줘야 하는 걸까요?”

배우 서준 리가 베이비시터라니.

보호자들의 머릿속엔 아득한 숫자만 떠올랐다.

그런 보호자들의 시야에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서준 리와 헤일리 로지, 아이들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뺨을 붉게 물들이고 꺄르르 웃었다.

“애들 다음 장면이 뭔지 알고 있을까요?”

“음…….”

저렇게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장면이 아역배우들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어쩐지 미래가 보이는 것 같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 * *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원장 선생님. 잘 있어, 얘들아.”

보육원 대문 앞.

배웅 나온 원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그렁그렁한 얼굴로 클레어와 테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두 아이는 테오의 허리와 다리를 꽉 껴안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지마. 테오…….”

“가지 마요.”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클레어?”

많은 이별을 겪어본 보육원의 아이들이지만, 이별은 언제나 슬펐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테오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거의 20년을 한 곳에서 자라온 레이필드의 늑대들도 이러지 않았는데, 겨우 하루, 아니, 몇 시간밖에 보지 않았던 아이들의 애정이 아주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렁거리는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에, 머리를 묶은 고무줄은 풀었지만 여전히 스티커가 몇 개 붙어 있던 테오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들을 껴안아주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

클레어도 슬프긴 마찬가지였지만,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면 너희가 놀러 와도 되고.”

“그래도 돼?”

붉어진 눈가의 코리가 물었다.

“물론이지! 쿠키랑 케이크 잔뜩 만들어 놓을게.”

코리와 동생들을 껴안으며 헤일리 로지가 말했다.

그렇게 제법 긴 작별인사를 끝내고, 클레어와 테오는 걸음을 옮겼다.

“클레어…… 테오……!”

“테오 형! 또 와야 해!”

“누나! 형! 또 와!”

“테오! 다음에도 같이 놀아요!”

하지만 곧 뒤에서 들려오는 눈물 섞인 목소리들에, 클레어와 테오의 걸음은 느릿해졌다.

클레어와 테오가 뒤를 돌아보았다.

보육원 앞에서 팔을 열심히 흔들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에 클레어와 테오의 손도 저절로 위로 올라가 흔들렸다. 마녀와 늑대인간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컷! 오케이!”

그 목소리에 훌쩍거리던 아이들이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서준과 헤일리 로지에게로 달려갔다.

“우리 잘했어요?”

“응. 다들 정말 잘했어.”

서준과 헤일리 로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 아이들이 환하게 웃었다. 촬영이 모두 끝났으니, 이제 헤어져야 하는지도 모르고.

“형, 누나랑 바이바이 해야지.”

그말에 작은 아이들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엄마 아빠와 서준, 헤일리 로지를 번갈아 보았다. 알고 있었던 큰 아이들은 벌써 울적한 얼굴이었다.

철수하는 스태프들, 짐을 챙긴 엄마 아빠.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고 인사하는 서준과 헤일리 로지.

그에 상황을 파악한 막내가 뿌에엥- 하고 울기 시작하자, 이제 준하고 뭐 하고 놀지? 하고 생각하며 눈을 빛내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다 함께 으아앙-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서준과 헤일리에게로 다가와 코알라처럼 여기저기 달라붙었다.

훌쩍이던 큰 아이들도 어느새 근처로 다가와 옷자락을 꼭 쥐었다.

아이고.

느껴지는 애정에 서준은 웃으며 아이들을 토닥거려 주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다음 날 오전.

오전 촬영은 없지만 일찍 나온 서준이 브라이언 구델의 물음에 웃으며 말했다. 다른 두 배우도 흥미로운 얼굴이었다.

“그날 촬영은 그게 마지막이어서 1시간쯤 더 놀았어. 사진도 찍고.”

숨바꼭질도 했는데, 아이들이 서준과 헤일리 로지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해서 다른 걸 하고 놀았다.

서준은 자신의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는 브라이언 구델과 두 배우를 바라보았다.

오늘 촬영부터 늑대인간 역의 배우들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액션 장면도 찍고 말이다.

‘기대된다.’

얼른 찍고 싶어서 가슴이 설레는 서준이었다.

잠시 후.

분장을 끝낸 헤일리 로지가 나오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가 클레어와 테오, 몰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1부였다면, 이제부터는 레이필드의 늑대들이 등장하는 2부로,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이었다.

배우들은 물론이고 감독과 스태프들까지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레디, 액션”

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고 턱 아래까지 쌓인 짐을 든 클레어가 밖으로 나왔다.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또 테오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른 사람과 부딪힐 수도 있었다.

클레어는 조심하며 보육원으로 향했다. 테오와 아이들이 잘 놀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잘 놀고 있겠지.’

푸훕.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던 테오의 모습을 떠올린 클레어가 작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들이 클레어의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걷는 많은 사람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세 사람.

아니, 살펴보면 특별할 건 없었다. 옷차림도 평범했고 생김새는 좀 잘생겼다.

그런데 클레어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설마…… 늑대인간?!’

몰리에게 마법을 배우고, 테오의 저주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시력을 좋아지게 하는 마법 등을 쓰면서,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클레어의 ‘마법 실력’과 ‘마녀로서의 감각’은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 덕분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 사람이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몰리랑 테오가 느꼈던 게 이런 걸까?’

물론 고양이와 늑대는 냄새로 알아차린 거지만.

클레어는 계속 걸어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세 명의 ‘늑대인간’을 번갈아 보았다.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새로운 감각이 ‘쟤들 늑대인간이야!’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정말 신기했다.

‘근데 테오는 안 이랬는데?’

클레어는 조금 전에 봤던 테오를 떠올렸다. ‘마녀의 감각’은 미동도 없이 아주 잠잠했었다.

‘설마…… 테오가 약해서 그런 건가?’

차이점이라면 그것밖에 없다.

꼬리가 있는 늑대인간들과 꼬리가 없는 테오.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세 명의 늑대인간을 보며, 클레오는 얼른 저주를 풀어 테오의 꼬리(힘)를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레어의 시선이 힐긋힐긋 늑대인간 쪽으로 향했다.

온전한 늑대인간을 살펴보다 보면 테오와 다른 부분이 뭔지 알 수 있을 테고, 그럼 저주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

그러다 뒤늦게 몰리의 말이 떠올랐다.

늑대인간과 마녀가 적이라는 말이.

한 달 차 마녀는 당황했다. 늑대인간들은 바로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켠 클레어는 당장에라도 도망쳐야 하나 싶었다. 자신이 늑대인간들을 알아본 만큼 늑대인간들도 마녀를 알아봤을 터였다.

처음 보자마자 ‘너, 마녀군.’ 하고 말했던 테오가 떠올랐다.

물론 테오 같은 성격의 늑대인간일 수도 있지만, 아닐 확률이 더 높았다.

테오는 마녀에게 용건이 있었지만, 다른 늑대인간들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근데 도망칠 수 있을까?’

테오의 신체 능력을 생각해 보면 도망치다가 그냥 잡힐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세 명의 늑대인간이 가까워질수록 클레어의 몸이 굳어졌다. 숨까지 멈춰 버린 듯했다.

클레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쩔 수 없었다. 공격마법은커녕 도망치는 법도 아직 배우지 못했다.

클레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커다란 늑대 세 마리가 달려드는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제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

이제 곧 현실이.

이제 곧.

이제…….

“어?”

클레어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언제나와 같은 풍경에,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클레어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 늑대인간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

짐을 든 클레어가 눈을 깜빡였다.

늑대인간들이 마녀를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 * *

보육원에서 조금 멀어지자, 도망쳤던 몰리가 나타났다.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몰리는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스티커를 떼고 있던, 초췌해 보이는 테오를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고는 담 위에서 번쩍 몸을 날려 테오의 어깨에 착지했다.

“내가 그랬지? 애들 무시무시하다고.”

“하. 나니까 이 정도지 몰리 너였으면 아마 걷지도 못했을걸?”

테오 또한 지지 않고 말했다.

언제나처럼 투닥거리는 고양이와 늑대에, 클레어가 웃고 말았다.

“근데 테오 너 생각보다 애들 잘 돌봐주더라. 힘들지 않았어?”

“아…….”

“늑대들 공동육아 하잖아. 유전자에서 오는 능력이라 괜찮았을걸.”

몰리의 말에 오호, 클레어가 탄성을 흘렸다.

“뭐, 그것도 있는데…….”

그에 테오가 볼을 긁적였다.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나도 재미있었어.”

“응?”

“레이필드 늑대들은 나랑 상종을 안 해서 이렇게 놀아본 적은 없었거든. 숨바꼭질도 그렇고, 농구도 그렇고, 야구고 그렇고…… 애들이랑 노는 거 재미있더라. 아, 소꿉놀이는 빼고.”

테오의 말에 클레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가 일그러졌다.

테오는 도대체 어떻게 지내온 걸까.

쿠키도 처음 먹어본다고 하질 않나, 맛있는 음식도 처음 먹어봤다고 하질 않나. 저렇게 노는 것도 처음이라니.

“먹고 싶은 거 없어? 애들이랑 논다고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거 해줄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클레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테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말에 테오와 몰리가 눈을 반짝였다.

“고기! 고기 먹자!”

“채소 빼고!”

클레어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만이다?”

그에 ‘only 고기!’를 외치던 테오와, 테오의 어깨 위에 서 있던 몰리가 서로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솜방망이 같은 검은색 고양이발과 단단한 주먹을 부딪혔다.

Yeah!

조금 전 투닥대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피스트 범프(주먹 인사)를 하는 늑대인간과 고양이에 클레어가 웃음을 터뜨렸다.

중간에 마켓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야. 너 여기 스티커 있어.”

“다 뗀 줄 알았는데…….”

몰리가 말랑말랑한 고양이발로 테오의 볼을 찍었다. 그에 테오가 익숙해져서 몰랐던 초승달 모양 스티커를 떼어냈고, 클레어는 웃으며 ‘아마 스티커 계속 나올걸.’ 하고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나 늑대인간들 봤어.”

“……뭐?”

“뭐어어!?”

깜짝 놀란 몰리의 목소리에 테오의 목소리가 묻혔다.

“늑대인간!? 자세히 말해봐, 클레어!”

몰리가 펄쩍 뛰어 담벼락 위로 향했다. 그러고는 클레어를 재촉했다.

그에 클레어는 늑대인간 세 명을 봤고 그냥 지나치더라, 대처방법을 공부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클레어와 몰리를,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선 테오가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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