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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52화 (85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52화

[플레이볼!]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고 모든 선수들이 제자리에 서자, 서준 리를 보며 감탄하거나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사진과 영상을 찍던 관중들이 하나둘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서준 리의 양 옆자리에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타나 앉는 것을 보고는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다가가지 않아도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서준 리의 앞, 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서준 리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그라운드를 보면서도 서준 리의 목소리가 들려올까 싶어 귀를 쫑긋 세웠고,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내 앞에 슈퍼스타가 앉아 있어! 하면서 가족, 친구들에게 알리기 바빴다.

<실물로 보니까 왜 서준 리 서준 리 하는지 알 것 같음!

<빛이 난다!

>으아아아!

>나는 왜 거기 없어!!

오늘 경기 보러 오길 정말 잘했…….

[쳤습니다! LA다저스 안타! 1루를 밟고 2루까지 달려갑니다!]

우와아아!!

어느새 서준 리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7회 초, 첫 번째 타자로 나온 선수의 안타에 관중들이 벌떡 일어났다.

수비하고 있던 상대팀이 그라운드를 구르는 야구공을 잡아 2루 쪽으로 던진다. 그리고 이루수가 공을 받음과 비슷하게 선두타자가 2루 베이스로 몸을 내던졌다.

“제발제발제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준을 보며 ‘나이트 진!’ 하고 눈을 반짝이던 어린 팬이 두 손을 꽉 잡고 기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과 최태우, 킹즈 에이전시 직원까지 일어나 심판의 선언을 기다리고 있었다.

2루 심판이 외쳤다.

[세이프!]

와아아악!!

LA다저스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시작부터 2루타라니! 어쩌면 반격의 시작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아웃!]

두 번째 타자가 바로 아웃되는 바람에 모두 시무룩하게 자리에 앉아야 했다.

“다음 타자가…… 잭 스미스?”

“아…….”

작년까지만 해도, 아니 올해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든든함이 느껴지던 이름이 이제는 탄식을 불러왔다.

“아웃 하나 늘어나겠네.”

“그래도 아직 원 아웃이라서 다행이지. 투 아웃이었으면 바로 쓰리아웃 체인지야.”

“잭 스미스는 별로 도움이 안 될 테니까 3루로 도루하면 안 되나? 그럼 다음 타자가 땅볼만 쳐도 홈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텐데.”

“저쪽팀도 알고 있을걸. 딱 봐도 2루 견제하고 있다.”

이미 잭 스미스의 아웃을 기정사실로 한 관중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서준에게까지 흘러들어왔다.

“괜찮아?”

“괜찮아요.”

최태우의 걱정 섞인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굉장히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프지만, 프로 선수라는 건 실력으로 평가받는 직업이다 보니 성적이 부진할 때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보단 잭이 걱정이죠.”

서준이 타석에 서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앞서 경기들에서도 그랬듯 잭 스미스는 진지한 얼굴로 타석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주눅이 든 모습은 아니었지만, 속은 말이 아닐 거다.

‘내일부턴 괜찮을 거야.’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서준이 어떤 능력을 사용할지 좀 더 깊이 생각하던 그때.

타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맑고 통쾌한 소리가 다저스 스타디움을 울렸다.

“어?”

서준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서준뿐만이 아니라 최태우와 킹즈 에이전시 직원, 그리고 주변에 앉아있던 팬들까지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잭 스미스! 쳤습니다! 쭉쭉 뻗습니다!]

해설자마저도 놀란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의 고개가 허공을 가르는 새하얗고 작은 공을 따라 움직였다.

어어어!

의아함에 나왔던 탄성이 점점 힘을 받아 커지기 시작했다.

[넘어가나요? 넘어가나요?! 넘어갑니다! 담장을 넘어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공! 홈런! 홈런입니다아!!]

홈런이었다.

* * *

조금 전.

선두타자가 2루에 서 있고, 다음 타자가 타자석에 섰다.

잭 스미스 또한 세 번째 타자로서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었다.

후우.

가벼운 숨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잭 스미스가 쓰게 웃었다.

아까까지 자신이 내뱉었던 숨은,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던 근심과 걱정이 한가득 들어 있던 한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몰랐는데…….’

자신은 평소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각하고 나니 관중들의 시선도 다르게 느껴졌다.

날 선 시선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걱정 어린 시선이 더 많았다.

자신의 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는 팬들이, 이제서야 잭 스미스의 눈에 들어왔다.

몰라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마음속의 바윗덩어리가 부서진 것 같았다.

깜짝 등장한 서준 덕분이었다.

-경기 끝나고 같이 야구 하자. 어렸을 때처럼. 재미있을 거야.

전광판에서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경기 전 전화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준과 야구를 하면 재미있을 거다.

‘야구라기보단 그냥 던지고 치기지만.’

아주 재미있겠지.

공이 잘 맞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든. 어렸을 때처럼 아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릴 테니까.

‘그리고…….’

잭 스미스는 그라운드와 더그아웃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같은 팀 동료선수들, 감독, 코치가 보였다. 상대팀 선수들, 감독, 코치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해도 재미있을 거다.

‘야구는 원래 재미있는 거니까.’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었다.

재미있어서 시작했던 야구인데.

더 잘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팀을 이루고, 상대팀로 만나 시합을 하고 싶어서 프로가 됐는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후우.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분도 좋아졌다.

아니, 기분은 나빴다.

4:1로 지고 있었으니까.

‘이겨야지.’

배트를 꽉 쥔 잭 스미스가 씨익 웃었다.

시합만 해도 재미있는 게 야구지만,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게 좋았다.

[아웃!]

동료 선수가 아웃당하고 잭 스미스가 타석에 섰다.

상대팀 포수가 자신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아웃당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딱히 견제도, 트래쉬 토크도 하지 않았다. 2루에 있는 주자가 도루할 것만 신경 쓰고 있었다.

얕보인 기분이다.

‘아니, 기분이 아니겠지.’

얕보인거다.

잭 스미스가 히죽 웃었다.

요 몇 경기 동안 잊고 있었던 야구의 재미와 함께 승부욕이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프로들인지라 설렁설렁 공을 던지진 않을 거다.

잭 스미스는 투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수의 모습이 커다랗게 확대한 것처럼 보였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배트를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다리를 들어 올렸다. 공을 잡은 손과 글러브를 쥔 손도 함께 이동했다. 곧 투수의 오른팔을 힘차게 앞으로 뻗어졌다.

그에 맞춰 잭 스미스가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타앙!

소리가 들리고, 공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 이건…….’

잭 스미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홈런이다.’

그 생각이 맞다는 듯,

와아아악!!

커다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1루로 달려가던 잭 스미스가 환하게 웃었다.

마음속에 부스러기로 남아 있던 것들까지 깔끔하고 시원하게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 * *

허어.

서준이 입을 쩌억 벌렸다.

멘탈케어 능력들을 깡그리 가져온 게 무색하게, 잭 스미스는 혼자서 잘 극복해 버렸다.

그것도 그냥 안타가 아니라 홈런을 치면서.

‘크으. 멋지다. 내 친구.’

그라운드를 돌아 마침내 홈으로 들어온 친구를 보며 서준은 짝짝 박수를 쳤다. 서준뿐만이 아니라 다른 관중들도 열심히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멋지게 홈런을 날리고 귀환하는 잭 스미스를 맞이하는 LA다저스의 더그아웃도 시끌벅적했다.

“잭 스미스 슬럼프 극복한 것 같은데?”

“그러게. 여기서 홈런을 칠 줄이야!”

관중들의 이야기에 서준의 어깨가 다 으쓱해졌다.

에헴. 저 선수가 바로 제 친구입니다.

즐거워 보이는 서준에, 최태우도 킹즈에이전시 직원도 작게 웃었다.

“그래도 아직 1점 남았어.”

“아. 그랬지.”

잭 스미스가 슬럼프를 극복한 것도 기쁘고 투런 홈런을 친 것도 기뻤지만, LA다저스는 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흐름을 탔으니까!”

“1점만 더!!”

하지만 관중들의 바람과 달리, 투런 홈런을 당하고 멘탈이 흐트러진 투수를 대신해 새롭게 올라온 상대팀 투수는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며 7회 초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7회 말, LA다저스 또한 한 점도 내어주지 않았다.

8회도 두 팀 다 점수를 주지 않으며 점수는 4:3으로 유지됐다.

“이러다 지겠는데?”

그런 불안이 팬들 사이를 맴돌았다.

LA다저스의 마지막 공격, 9회 초.

이번 공격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9회 말을 진행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경기는 끝나게 된다.

두 손을 꼭 잡은 관중들이 기도하는 사이, LA다저스의 타자가 타석에 섰다. 그리고 안타와 아웃이 이어졌다.

[투 아웃 상황에 주자는 1루와 2루, 2명입니다. 다음으로 타석에 서는 선수는…….]

“재액!!!”

잭 스미스였다.

“홈런 한 번만!!”

“홈런!!”

“근데 또 칠 수 있으려나? 오히려 부담감 때문에 슬럼프 다시 생기는 거 아니야?”

!

그건 그렇다.

이제 막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데, 잘못했다가는 다시 슬럼프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 한참 남은 경기들을 위해서라도 잭 스미스의 멘탈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근데 지는 건 싫다.

팬들은 괴로워했다.

“으아아…… 안타, 안타만이라도.”

“비겨서 연장 가자. 제발!”

마음 편하게! 안타 쳐줘!

LA다저스 팬들이 모순된 기도를 하며 잭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첫 공이 던져졌다.

잭 스미스가 배트를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아…….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공.

다시 한번 배트를 휘두르는 잭 스미스.

[투 스트라이크!]

타석에서 잠시 물러선 잭 스미스가 두어 번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슬럼프는 안 돼. 슬럼프는 안 돼.”

“멘탈 유지. 멘탈 유지. 멘탈 유지!”

“다시 슬럼프 올 거라면 그냥 져도 돼…….”

“근데 져도 슬럼프 재발할 것 같아!”

“재액!!”

사방에서 들려오는 팬들의 중얼거림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에 최태우와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걱정할 것 같은 서준이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서준아. 걱정 안 돼?”

“괜찮아요.”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타석에 선 잭 스미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딱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저 몸 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봤던 서준은 알 수 있었다. 컨디션 좋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쟤 지금 컨디션 최고예요. 아마 이번에 홈런 칠걸요.”

“뭐?”

서준의 말에 그렇게 되묻는 건 최태우나 킹즈 에이전시 직원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앞, 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속으로 뭐라고? 하고 반응했다.

하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투수가 먼저 움직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투구.

투수가 힘껏 공을 던졌다.

타자가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타앙!

들어본 적 있는 맑고 통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정말? 정말로?

날아가는 공을 따라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입이 야구공만큼이나 벌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새하얀 공이 담장 너머 관중석에 떨어졌다.

----!!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미쳤다아악!!!”

“잭 스미스!! 최고다!!”

“재액 스미스으!!”

일하는 중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는 킹즈 에이전시 직원 옆에 있던 서준과 최태우도 환호성을 질렀다.

4:6

역전의 홈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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