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51화
차의 시동을 건 최태우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서준을 바라보았다. 차에 오른 서준은 안전벨트를 하자마자 휴대폰을 꺼낸 상태였다.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는 서준의 표정이 제법 심각해 보였다.
‘잭 때문이겠지.’
서준의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최태우인 만큼 모를 수가 없었다.
‘서준이 친구라서 예의주시하고 있기도 하고.’
물론 잭 스미스도 에이전시가 있는 만큼 크게 신경 쓸 일은 없겠지만, 사건사고가 일어나거나 도움이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살펴보고 있었다.
내 배우의 멘탈 관리를 위해서.
‘근데 이런 정신적 문제는 손댈 수가 없으니…….’
서준이 촬영할 때 눈으로는 서준의 촬영을, 귀로는 이어폰을 이용해 LA다저스의 경기 중계를 듣고 있던 최태우는, 경기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도 잭 스미스가 무안타라는 사실을 촬영이 모두 끝나자마자 서준에게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서준은 별말은 없었지만, 굳은 표정이었다.
‘어렵다. 어려워.’
잭 스미스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서준이 만약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 방법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잭 스미스의 에이전시도, 구단도 막막하겠지.’
어쩐지 동질감이 생겨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뒷좌석에 자신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어 조용히 삼키는 최태우였다.
서준은 미간을 조금 찌푸린 표정으로 인터넷을 살피고 있었다.
[잭 스미스, 이번 경기에서도 무안타?]
[LA다저스의 잭 스미스, 슬럼프 확정인가?]
[삼진으로 물러나는 잭 스미스.]
-잭 스미스 또 삼진.
=아…… 진짜 슬럼프인가 본데?
-지금까지 잭 스미스 슬럼프였던 때가 있었나?
=내가 알기론 없어.
=학생 때부터 워낙 승승장구해와서 없었을걸?
=난생처음 겪는 슬럼프라는 거네. 이겨내기 힘들 것 같다.
=그러게.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르니까 더 헤매고 있을지도.
-(타석에서 물러나는 잭 스미스 사진) 배트 거의 부서질 듯 움켜쥐고 있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본인이 제일 괴롭겠지.
부드러운 댓글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팀이 지고 있으니 격한 댓글들도 있었다.
타자 교체를 요구하는 댓글들과 잭 스미스에게로 향하는 욕설들을 읽던 서준이 고개를 들어 운전석에 앉던 최태우를 불렀다.
“태우 형.”
“응?”
다저스 스타디움으로 향하던 최태우가 백미러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저 잠시만 눈 감고 있을게요.”
“뭐? 왜? 피곤해? 아니면 어디 아파?”
깜짝 놀란 최태우가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운전대를 꽉 쥐고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병원으로 향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뇨.”
서준이 웃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요.”
“아…….”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간절히, 서준은 잭 스미스를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싶은 것일 터였다.
“그래. 알았어.”
최태우의 대답을 들은 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편안하게 묻고 눈을 감았다.
처음 새겼을 때부터 계속 사용해오던 [(선)여름 곰의 겨울잠]이 발동해, 서준을 잠의 세계로 이끌었다.
정확히는 생의 도서관으로.
생의 도서관에서 눈을 뜬 서준은 새하얀 문을 열고 선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의 도서관에 있는 것보다, 많은 책꽂이와 거기에 꽂힌 삶의 책들이 보였다. 그중 서준이 향한 곳은 책상 근처에 있는 책꽂이 앞이었다.
서준이 읽은 후 쓸 만하다고 판단하고 모아둔 삶의 책들이 거기에 있었다.
“음.”
서준은 천천히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읽어 내려갔다.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능력들은 물론이고 연기를 할 때 필요할 것 같은 능력들, 그리고 아픈 곳을 치료하거나 사고를 막아주는 등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능력들이 따로 구역을 나누어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멘탈 케어를 위한 삶의 책들이 꽂힌 구역도 있었다.
슬럼프라는 건 배우들에게도 있으니까 말이다.
소소하게는 하루에 있었던 일들 중 좋았던 일들을 더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능력부터, 크게는 나쁜 기억을 다른 사람이 겪은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능력까지 있었다.
‘기억을 없애주는 능력도 있지만.’
갑자기 잊어버리면 그것도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면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이라는 심각한 병이 될 테니까 말이다.
서준은 고심하며 삶의 책들을 살펴보았다.
“근데 뭘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네.”
최근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슬럼프가 온 건지, 아니면 차곡차곡 쌓였던 고민들이 펑 터져 버려 슬럼프가 온 건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일 때문인지.
원인을 모르니 해결방법도 확실하게 정할 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서준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좀 더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적당한 능력을 찾아 잭에게 사용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그럼 시간이 오래 걸려.’
잭 스미스는 내일도 경기가 있었다.
“할 수 없지.”
친구를 향한 날 선 댓글들이 떠오른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다 가져가는 수밖에.”
* * *
서준과 최태우가 다저스 스타디움에 도착한 건, 3이었던 숫자가 4로 바뀌었을 때였다.
아아……!
하고 한탄하는 LA다저스 팬들의 목소리가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누가 왔는지 신경 쓸 여유는 전혀 없었다.
“아, 여기입니다!”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던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모자로 얼굴을 가린 서준과 최태우를 반겼다. 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뒷자리였다.
LA다저스 팬으로, 회사 대신 야구장으로 출근해서(유급 휴가도 준다고 했다.) 정말 기쁜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아웃 하나만 잡으면 LA다저스의 공격으로 넘어갑니다. 잭 스미스 선수는 세 번째로 타석에 설 예정이고요.”
서준과 최태우가 저도 모르게 으음, 앓는 소리를 냈다.
순서가 참 공교롭다.
앞서 두 명의 타자가 아웃되면, 잭 스미스가 아웃되냐 아웃되지 않냐에 7회 초 전체의 운명이 달린 것이었다.
“교체만 없다면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서준의 말에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4:1로 지는 중이고, 9회까지 이제 세 번의 공격 기회밖에 남지 않았다.
한 번 한 번이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 감독은 신중하게 판단하리라.
타석에서 내려오던 잭의 사진이 떠올랐다. 배트를 힘껏 쥐던 손도.
‘경기 중이라서 직접 만나긴 어렵겠지만.’
“지금 잭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멘탈케어 능력을 사용하는 건 둘째 치고,
“아니면 제가 왔다는 것만 전해주셔도 괜찮아요.”
격려를 하고 싶었다.
힘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서준의 말에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시타를 한 적도 있었고 생일 이벤트로 연락한 적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가 응원하러 왔다고 하면 잭 스미스의 멘탈에도 좋은 영향을 줄지도 모르고.
경기 중인데도 관계자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어렵고, 이런 건 어떠냐고 합니다만.”
이어지는 킹즈 에이전시 직원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아우우우웃!!!
=ㅅㅂ 또 점수 내주는 줄 알고 쫄았네.
-다음 다저스 공격이지??
=ㅇㅇ근데 잭 스미스 있음.
=아. 또 삼진 하는 거 아님? 교체 안 함??
=잭 스미스를 대체할 선수가 다저스에 없음.
=? 다저스 선수 풀 좋잖아. 빅마켓이기도 하고.
=그러니까ㅠㅠ잭 스미스가 그정도로 잘했다고ㅠㅠㅠ
=22 잭 스미스 대신할 만한 선수라면 이미 경기 뛰고 있음ㅋㅋ
-감독도 엄청 고민 중이겠네. 끌고 가느냐 교체하느냐.
=이제 시즌 초반이라서 더 살리고 싶을 듯. 경기 몇 개 버려도 잭 스미스만 살아나면 나중에 점수 뽑아줄 테니까.
=ㅇㅇ그렇다고 경기 다 말아먹지는 않겠지. 다른 선수들이라고 쉬고 있는 거 아니니까.
=지금은 전부 쉬고 있는 것 같은데ㅋㅋ(안웃김)
=ㅅㅂ!! 제발!!
-어? 뭐야? 전광판에 관중석 나오는데? 키스타임임?
=미쳤음? 지금 지고 있는데 키스타임?!?
-이거라도 웃겼으면 좋겠다ㅎ
=22 가족 나오면 ㅈㄴ 웃긴뎈ㅋㅋ
-어? 어어? 어어어??
=미친!!
=이서준?!?!
* * *
공수교대를 하기 위해 두 팀의 선수들이 모두 벤치로 향했다.
LA다저스의 더그아웃.
아무래도 지고 있는 터라 분위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속이 안 좋을 녀석이 있으니…….’
이전이라면 신경질을 냈을 몇몇 놈들이 조용히 있는 게 코치의 눈에 보였다.
코치가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조용히 앉아있는, 가장 속이 안 좋을 선수가 보였다.
잭 스미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개성 강한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치들과 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좋은 선수였다.
그래서 촬영하느라 바쁠 스타도 이렇게 오는 모양이었다.
“뭐야, 키스타임이야?”
한 선수의 말에 몇몇 선수들이 고개를 들었다. 점수를 보여주고 있던 커다란 전광판이 바뀌어 있었다.
“뭐, 분위기 전환도 되고 좋네.”
관중이든 우리든.
하고 생각할 때, 관중석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클로즈업되었다.
“음?”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던 선수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때라면 두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를 골랐을 텐데, 위치를 잘못 잡았는지 양쪽 자리가 텅 빈, 홀로 앉아있는 모자 쓴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아래나 위로 가는 건가?”
“그럴지도.”
모자 쓴 남자 근처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1초도 지나지 않아, 우와아악-! 하고, 모자 쓴 남자의 아래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누군데 저러지?”
“뭔데 그래?”
관심 없던 선수들까지도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하듯,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
낯익은 얼굴이었다.
할리우드가 있는 LA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직접 만든 쿠키로 오늘 하루 화제였던,
“서준 리?!”
그 이름에 잭 스미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전광판 속에서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옷차림인데도 어째선지 오늘따라 더 화려하고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보러 온다고 하더니.’
이렇게 자신이 왔다는 걸 증명할 줄은 몰랐다.
뭘 하든 화제가 되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잭 스미스는 작게 웃었다.
* * *
‘봤겠지?’
서준은 선기를 뿜어내며 카메라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손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와아아!!
온 경기장이 이렇게 들썩들썩한데, 못 보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LA다저스 홍보팀의 의견을 수용해, 서준은 통화 대신 전광판을 이용하기로 했다.
말로 전할 수는 없었지만,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잭 스미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금 상황에서 능력을 쓰긴 어려워.’
직접 만나서 쓰는 능력을 제외하고는 원거리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서 더그아웃까지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고, ‘향기’도 맡을 수 없을 거다. 다른 방법들도 너무 멀어서 불가능했다.
영상을 통해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으나, 안타깝게도 미리 찾아놓은 멘탈케어 능력 중에는 ‘시각’만으로 발동하는 능력은 없었다.
‘오늘 시합은 어쩔 수 없지.’
내일 시합부터 괜찮아질 수 있도록 오늘 경기가 끝나고 바로 능력을 써야겠다.
그렇게 잠시, 슈퍼스타 서준 리의 깜짝 등장으로 관중들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물론 야구팬들이니만큼 다시 전광판에 보이는 4:1이라는 점수에 으득, 이를 갈긴 했지만 말이다.
7회 초.
4:1로 지고 있는 LA다저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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