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48화
휴대폰 건너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웃음소리에, 잭 스미스도 이내 작게 웃었다.
“그 고양이가 몰리야?”
갑작스러워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지만, 이내 자신의 친구가 준비 중인 영화의 원작소설 [이클립스]에 마녀의 고양이가 나왔다는 것을 떠올린 잭 스미스가 물었다.
-맞아. 두 마리 더 있어. 릴리랑 벨라라고 해.
화면 속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휴대폰은 어디다 세워둔 듯, 두 손으로 고양이 잭을 쓰다듬는 모습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잭이랑 완전 똑같이 생겼어.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좀 봤는데, 고양이라니…… 기분이 묘하네.”
-하하하.
서준이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지금 촬영 중 아니야?”
친구의 스케줄에 빠삭한 잭 스미스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지금은 준비 중.
“준비?”
-응.
서준이 오른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살짝 위쪽으로 움직였다. 조금 전 보이지 않았던 머리끝까지 전부 화면에 비쳤다.
어?
잠깐 잭 스미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서준의 머리 위로 두 개의 귀가 번쩍 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강아지 귀 같은.
내 친구가 사실 개였나.
근데 서준이라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서준이 외계인이었다고 하더라도 ‘아, 역시 그랬군. 그럴 것 같았어.’ 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22년 지기 친구 잭 스미스였다.
더 엉뚱한(하지만 꽤 정확한) 생각이 길어지기 전에, [뉴 이클립스]가 떠올랐다.
“늑대 귀야?”
-응. 어때, 잘 어울리지?
늑대 귀를 머리에 장착한 서준이 히히 웃었다.
“어. 진짜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려.”
할리우드라서 그런가 아니면 준이 해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이 쓴다면 조금 이질감이 느껴질 텐데, 서준은 아주 찰떡같이 어울렸다.
-그래? 아직 귀 안 가렸는데.
“……그러네?”
서준의 말에 그제서야 잭 스미스의 눈에 아직 가려지지 않은 사람 귀 한 쌍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늑대 귀에 사람 귀까지, 총 4개의 귀가 있는 것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원래 그런 건 줄.”
-하핳.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잭 스미스도 함께 웃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너 컨디션 어떤가 보려고.
서준의 말에 잭 스미스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잭 스미스가 서준의 촬영 일정을 아는 만큼, 서준도 잭 스미스의 경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야기 들었어?”
잭 스미스가 민망한 듯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기사만 봐도 아는데, 뭘.
잭 스미스는 자신에 대한 기사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슬럼프야?
다들 눈치만 보고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22년 지기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편하게 꺼냈다. 그에 잭 스미스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슬럼프는 아닌 것 같아. 음. 맞나? 한 번도 슬럼프였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잭 스미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LA의 하늘이 보였다.
4월 초부터 시작되는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잭 스미스는 두 경기째 안타를 치지 못했다.
슬럼프라고 하기엔 이른 판단이었지만, 이런 일들로 슬럼프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기사들은 떠들어대고 있었다. 팬들도 주변 사람들도 걱정했다.
“아직 두 경기째라 다들 두고 보고 있는 중이야. 아마 오늘 시합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 않을까 싶어.”
서준은 조용히 잭 스미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평소처럼 훈련하고 있긴 한데. 오늘도 못 치면 코치님들과 의논해서 잠깐 쉬어보려고. 슬럼프 때 쉬어서 괜찮아지는 사람들도 있다니까.”
조금 전 웃음이 가득했던 대화는 어디로 가고, 조금의 울적함과 씁쓸함만이 남았다.
“……준.”
잠시 망설이던 잭 스미스가 입을 열었다.
“……나 금방 괜찮아지겠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서준에게는 할 수 있었다. 나이상으로는 동생이지만, 형처럼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친구니까.
-오늘 경기 보러 갈게.
“뭐?”
갑작스러운 서준의 말에 잭 스미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늘 온다고?”
-응. 나도 LA니까 가는 데 시간 별로 안 걸릴 거야.
“촬영은 어쩌고?”
-스케줄대로면 경기 끝나기 전에 끝나. 중후반부터는 볼 수 있어.
“진짜 온다고?”
-응.
당황한 잭이 눈을 끔벅이자, 휴대폰 화면으로 보고 있던 서준이 웃었다.
-잭.
하고 서준이 부르자,
-미야옹.
“어?”
고양이와 인간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에 잠깐 멈칫한 서준이 곧 웃음을 터뜨렸고, 잭 스미스도 따라 웃고 말았다. 고양이 잭만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경기 끝나고 같이 야구 하자. 어렸을 때처럼.
조금 밝아진 분위기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을 거야.
* * *
잭 스미스와의 통화를 끝낸 서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능력을 써야 할까.’
화면으로만 봤지만,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마음 문제라는 건데, 그것도 어떤 문제냐에 따라서 능력을 골라 써야 했다.
다방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기는 당연히 쓸 생각이었고, 거기에 지금 잭의 상황에 알맞은 좋은 능력을 사용하고 싶었다.
으음.
읽었던 삶의 책들을 떠올리며 서준은 고민했다.
계속 검은고양이 잭을 쓰다듬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정장만 입으면 완전 어디 마피아 보스처럼 보이겠네.’
의자에 앉아 조금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로 스르륵- 검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서준을 보며 최태우는 생각했다.
물론 머리 위에 달린 늑대 귀도 빼야겠지만.
아니, 일부 사람들은 늑대 귀가 달려서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한번 건의해 볼까.’
[뉴 이클립스] 개봉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올려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배우와 매니저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서준의 머리 위에 늑대 귀 머리띠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머리카락으로 열심히 가렸던 특수분장사가 잠시 쉬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럼 계속할게요.”
“네.”
서준이 앞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거울 속, 빠르게 움직이는 특수분장사의 손에 오른쪽 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납작해진 귀의 감촉도 느껴졌다.
“아프진 않죠, 준?”
“네, 괜찮아요. 아, 오늘 제가 쿠키 가져왔는데 드셔 보셨어요?”
그에 특수분장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손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먹었죠. 진짜 맛있었어요. 저 준이 만든 쿠키 먹으려고 오늘 일찍 출근했다니까요.”
“정말요?”
“네. SNS에 글 올라온 거 보자마자 출근 준비했어요. 양이 적다고 해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요. 하나만 남아 있어라, 하고 계속 기도했다니까요.”
진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는 특수분장사에 서준은 작게 웃고 말았다.
* * *
고양이 잭은 B팀과 촬영을 하기 위해 보호자와 함께 떠나고, 분장을 끝낸 서준은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번 장면의 배경은 ‘마녀의 숲’이었지만 진짜 숲에서 찍는 건 아니었다.
‘야외촬영이긴 하지만.’
적당히 넓은 잔디밭에 초록색 크로마키들이 배경으로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시원한 바깥바람을 맞으며 서준은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던 스태프들이 서준을 보며 인사하려다가 우와, 감탄하며 늑대 귀를 보는 것을 보면서.
“와…… 진짜 잘 만들었네.”
“그러게. 뭔가 가짜처럼 보일 것 같았는데, 진짜 자연스럽다.”
“전 CG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쪽이 더 낫네요.”
서준이 늑대 귀 분장을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방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다시 봐도 정말 잘 어울리네요! 준!”
윌마 감독의 반응도 비슷했다. 활짝 핀 얼굴로 서준의 주위를 돌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한 서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윌마 감독과 함께 눈을 반짝거렸을 헤일리 로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독님. 헤일리는요?”
“아, 저기 있습니다. 몰입 준비 중이죠.”
윌마 감독이 웃으며 촬영장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에 의상을 갈아입은 헤일리 로지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몰입 준비 중?
고개를 갸웃한 서준이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헤일리 로지에게 다가갔다.
“뭐 하고 있어요, 헤일리?”
서준이 헤일리 로지의 옆에 쭈그려 앉으며 물었다. 그에 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빤히 바라보고 있던 헤일리 로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운……!”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까지만 해도 밝았던 헤일리 로지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이것 봐.”
서준의 물음에 헤일리 로지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농구공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은 초록색 공이었다.
이게 뭐지?
하고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이게 저예요?”
“맞아.”
헤일리 로지가 해탈한 얼굴로 말했다.
“CG 작업하기 전의 너야.”
정확히 말하자면 네발 달린 늑대 버전의 테오였다.
서준이 초록색 공을 보았다. 만져보기도 했다. 반들반들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웃을 때가 아니라니까.”
헤일리 로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이거 보고 연기해야 한다고. 몰리는 작아서 괜찮았는데, 늑대 모습은 엄청 크잖아.”
“그렇죠.”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정 상으로 늑대들은 헤일리 로지가 올려다봐야 하는 높이에 얼굴이 있었고 덩치도 컸다.
“눈앞에 진짜 큰 늑대가 있는 것처럼 시선을 이동해야 하는데, 이렇게 작은 공을 보면서 그런 시선 처리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어.”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쉰 헤일리 로지가 초록색 공을 들어 올렸다.
“이것도 봐봐.”
그 크로마키 공 끝에는 기다란 막대가 달려 있었는데, 아마도 스태프가 이 막대를 잡고 ‘늑대 테오’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 모양이었다.
열심히 공이 달린 막대를 움직이는 스태프의 모습이 떠올라, 헤일리 로지는 아찔해졌다.
“이렇게 잡고 움직이는 것 같은데…… 감정이입이 잘 될까?”
이렇게 크로마키를 많이 사용하는 촬영은 처음이라서 각오하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예상보다 더했다.
“헤일리라면 잘할 거예요. 연습 많이 했잖아요.”
서준의 격려에도 헤일리 로지는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준비가 모두 끝나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헤일리 로지 혼자만의 촬영이었다.
“레디,”
서준은 대기석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쫑긋 솟은 늑대 귀에 일부 스태프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 이 느껴졌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액션!”
마녀의 숲.
이층집의 담 밖으로 나와 잔디밭에 선 클레어는 눈앞에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 자신보다 앞서 걸어가던 테오가 변한 것이었다.
놀란 표정의 클레어가 위로 고개를 올렸다.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늑대.
가장 먼저 자신의 주먹보다도 큰 것 같은 검은색 코가 보였다. 반질반질한 그 코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한 쌍의 초록색, 아니 노란색, 아니, 초록색 눈동자가…….
“죄송합니다!”
윌마 감독이 NG를 외치기도 전에, 헤일리 로지가 으아아, 비명을 삼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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