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47화
“전투는 치열했어. 레이필드에서 가장 강한 늑대인간인 아버지가 빠져서 더욱 그랬지. 이틀을 꼬박 싸워 많은 피해를 남기고서야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
말도 알아듣지 못할 무렵부터 들어온 이야기였다.
늑대들은 어린 테오에게 잔인했던 그 날의 전투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잘려나간 팔다리, 사방으로 튀던 붉은 피, 사방에서 맡아지던 비릿한 피 냄새, 가족들이 괴로워하며 내뱉는 신음,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몸의 서늘함까지.
그 이야기를 들은 테오는 항상 악몽을 꿨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테오는 클레오와 몰리에게 그런 자세한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 않아, 짧게 이야기했다.
“아버지, 아니, 레이필드의 가주는 전투가 끝나고서도 오지 않았지.”
늑대인간에 대해 잘 모르는 클레어도, 잘 아는 몰리도 침음성을 흘렸다.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은 가주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했어. 그때까지는 다른 적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대. 무사하기만을 바랐지. 걱정이 된 가주의 아내는 다친 상태에서도 가주를 구하기 위해 교류하던 마법사를 통해 가주를 찾았어.”
레이필드의 늑대들은 배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테오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보게 된 거야. 갓 태어난 나를 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레이필드의 가주를.”
창밖에서 들어오는 노을빛이 마치 피처럼 보였다.
“레이필드의 늑대들은 모두 분노했어. 이미 반려가 있는데 다른 이를 만난다는 것도, 무리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가주가 무리를 내팽개쳐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자신의 부모, 형제, 자식들이 죽어 나간 전투 후라서 분노는 더욱 커졌어.”
그 핏속에 테오가 있었다.
“전투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가주의 아내는 선언했지. 이제 레이필드의 가주는 자신이라고. 레이필드의 늑대들은 기꺼이 새 가주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새 가주는 무리를 배신한 늑대를 처벌하기로 했지.”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테오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레이필드의 늑대들은 다친 상태였고, 배신자는 멀쩡한 상태였어. 그냥 쳐들어가기에는 위험했지. 그래서 가주는 누군가와 거래를 해서 배신자와 그 가족에게 저주를 내렸어.”
숨죽여 이야기를 듣던 클레어와 몰리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저주가……?”
“아마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그때 부모와 함께 나까지 저주를 받았는지, 아니면 나중에 새로운 저주를 받게 된 것인지. 아무도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거든.”
어쩌면 현 가주, 그러니까 아버지의 아내만 알고 있는 건지도 몰라.
하고 테오가 말했다.
“그렇게 배신자가 저주를 받아 약해졌고, 그와 동시에 레이필드의 늑대들이 습격했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배신자는 상처 입은 레이필드의 늑대들을 보고서야 큰일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었어.”
슬픔도, 울적함도, 한스러움도 없는 듯, 테오는 평온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오히려 그 모습이 클레어와 몰리를 더욱 슬프게 했다.
“나도 그때 죽을 뻔했지만,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아기라서 그냥 살려두기로 결정했대, 가주가. 날 죽이고 싶었던 녀석은 가주에게 평생 은혜를 갚으며 살라고 했지만…… 글쎄.”
테오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살려준 건 고맙지만 제대로 밥도 못 먹고, 다 망가진 오두막에 갇혀 살고, 다른 녀석들에게 맞고 괴롭힘당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그렇게 다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것만 해도 은혜는 충분히 갚은 게 아닌가 싶어.”
아…….
테오의 몸에 가득한 상처에 대해 알게 된 클레어와 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걱정이 담긴 눈빛에 테오는 어색한 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얼른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그 저주에 대해서도 말 못 한 게 있는데, 아마도 힘과 관련된 게 아닌가 싶어.”
“힘?”
“응. 내가 다른 늑대들보다 힘이 약하거든. 못 먹고 컸다고 해도,”
클레어와 몰리의 눈에 물기가 서리자, 테오가 허둥지둥 말을 바꾸었다.
“계속 굶은 건 아니야! 오두막 근처에 사냥터가 있어서 직접 사냥해서 먹을 수 있었어!”
그래 봤자 사냥감은 드물어 굶는 날들이 더 많았지만.
클레어와 몰리를 달래는 게 더 중요했다.
“하여튼, 좀 덜 먹고 컸다고 해도 너무 약하거든. 상처 낫는 것도 오래 걸리고.”
“하긴. 늑대인간의 회복력이 무시무시하긴 하지.”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로 평온하게 이야기하던 테오가 처음으로 머뭇거리자, 클레어와 몰리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테오가 마른세수를 했다. 뭔가 민망한 듯했다.
“……가 없어.”
“뭐?”
“뭐가 없다고?”
소리가 손바닥에 막혀버린 탓에, 제대로 들리지 않은 클레어와 몰리가 몸을 테오 쪽으로 기울였다. 테오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아예 상체를 굽혔다.
“꼬리가 없어…….”
……응? 꼬리?
거의 속삭일 정도로 들려오는 테오의 목소리에, 클레어는 눈을 끔벅였다. 지금 꼬리라고 했지? 동물 엉덩이에 달린 그거?
그때 몰리가 확인 사살하듯 펄쩍 뛰었다.
“꼬리가 없다고?!”
검은고양이의 꼬리가 물결처럼 파도쳤다.
“이렇게 멋진 꼬리가 없다고?”
몰리가 자신의 부드러운 꼬리를 솜방망이 두 앞발로 소중히 감싸 안았다. 노란색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아래위로 흔들렸다.
“세상에…… 꼬리가 없다니…… 꼬리가…….”
“꼬리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그럼! 이렇게 멋지잖아!”
“몰리.”
히잉.
몰리가 입을 삐죽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야. 꼬리가 없으면 보기 흉하기도 하고.”
경악이 가득한 몰리의 말들에, 상체를 점점 숙여 거의 반으로 접고 있던 테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조금 붉어진 얼굴로 쓰게 웃고 있었다.
“우리한테는 힘을 쓰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부분이야.”
“맞아! 멋지기도 하고!”
클레어는 몰리의 말은 그냥 흘려보냈다.
“그래?”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클레어에, 테오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힘을 쓰는 걸 쿠키를 만드는 방법에 비유해 보면, 꼬리는 뭐일 것 같아?”
“으음.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버터? 밀가루? 아니면 베이킹소다?”
“불이야.”
쿠키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을 말하던 클레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불?”
음식을 요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거?
놀란 클레어의 모습을 본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건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있지만 불은 그렇지 않잖아. 쿠키를 완성하는 작업에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우리한테 꼬리는 그 정도로 중요한 거야.”
“맞아, 맞아. 엄청 중요하지.”
테오의 말에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자신의 사랑스러운 꼬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테오가 그런 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조금 부러움이 담긴 것 같았다.
“그럼 테오 너, 늑대로 변할 수 있는 거야? 계속 인간 모습이길래 저주 때문에 못 변하는 줄 알았는데.”
몰리가 테오에게 물었다.
“아. 인간으로 있는 게 익숙해서. 꼬리가 없어서 늑대 모습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레이필드에서는…….”
“응. 알았어. 말하지 않아도 돼.”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말하는 테오에, 클레어가 말했다.
꼬리를 꽉 끌어안고 있는 몰리의 태도를 보니, 꼬리가 있는 늑대들 사이에서 꼬리가 없는 테오가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하하.
그런 클레어의 모습에 테오는 기분 좋게 웃었다.
“보여줄까?”
“괜찮아?”
조금, 아니, 많이 궁금하긴 했던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그리고 어떤 상태인지 보면 저주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말에 클레어는 테오가 자신의 비밀을 말해준 만큼 자신도 이야기해야 할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할 이야기가 있어.”
“응?”
넓은 거실이지만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서 거대한 늑대로 변신하면 엉망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적당히 자리를 찾던 테오가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꼬리와 놀고 있던 몰리도.
“나 있잖아. 마녀가 맞긴 한데…….”
클레어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녀가 된 지 열흘도 안 된 완전 초보야!”
허억!
하고 몰리가 숨을 들이켜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테오가 이야기를 했으니까, 우리도 말해야 하는 게 맞긴 한데, 그래도 지금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는 없고.
초보 마녀와 베테랑 고양이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꼬리 없는 늑대를 바라보았다.
화내려나? 실망하려나?
“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녀와 고양이에게는 길었던 침묵이 끝나고, 테오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
“뭐?”
“알고 있었다고!?”
경악하는 클레어와 몰리에, 테오가 웃으며 말했다.
“첫날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보니까 클레어 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몰리는 널 가르쳐 주는 것 같더라. 이 집에 걸린 마법도 이제 독립한 마녀가 걸었다기엔 정말 굉장했고.”
“그것도 첫날부터?!”
몰리와 클레어가 입을 쩍 벌렸다.
“확실하게 안 건 아니고, 그냥 짐작만. 마법이 서툰 마녀 같다고 생각했어.”
“하긴…… 테오의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어.”
실팔찌와 마녀의 집을 너무 믿은 탓이었다.
몰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클레어가 테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다른 마녀를 찾으러 가지 않았어?”
“마녀를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 수도 적고 다들 정체를 숨기고 혼자서 살고 있어서, 차라리 초보 마녀의 실력이 늘기를 기다리는 게 더 쉬울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그때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뒷말을 삼킨 테오는 초보 마녀와 베테랑 고양이를 보며 웃었다.
* * *
시합을 앞두고 몸을 풀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서준이었다. 그것도 영상통화.
“무슨 일이래?”
LA다저스의 타자, 잭 스미스는 잠시 쉴 겸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켜졌다.
“무슨 일이……?”
하고 말하는데, 화면에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도 언제나 잘생긴 슈퍼스타 친구가 아니라 이상한 것이 보였다.
한 쌍의 노란 눈동자, 촉촉하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검은 코, 기다란 수염들, 반들반들해 보이는 검은색 털까지.
고양이였다.
‘……준이 이번에 고양이 역을 맡았나?’
저도 모르게 잠시 그런 생각이 든 잭 스미스였다.
-만나서 반갑다. 잭.
아무것도 관심 없는 듯한 표정의 검은고양이가 말했다.
진짜 고양이가 말할 리가 없으니 이건 서준이 말하는 걸 거다. 목소리가 다르긴 하지만.
이야, 내 친구. 더빙도 잘하네.
-나도 잭이다.
“뭐?”
-같은 잭이지만 역시 내가 더 귀엽군!
무심한 표정과는 다른 대사였다.
아니, 뻐기는 듯한 고양이의 표정이 조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뭐 하는 거야, 준?”
-준이라니. 나는 잭이다. 아, 그 맛있는 생선 쿠키를 만들어준 인간을 말하는 건가?
고양이 잭의 두 앞발이 뒤에 있는 서준의 손에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인간이라면 이미 이 잭 님의 부하가 되었다!
고양이 잭은 귀찮지도 않은지 가만히 있었고, 인간 잭 스미스는 할 말을 잃었다.
-아주 잘생기고 요리도 잘하는 유능한 부하지!
-미야옹.
-아, 쿠키 줄까?
-옹!
옆에서 내민 생선 모양 쿠키를 고양이 잭이 챱챱, 받아먹었다.
-이것 봐, 잭. 잭 엄청 잘 먹지? 울 정도로 좋아한다니까. 잭 진짜 귀엽지 않아, 잭?
신나게 이야기하는 서준에 잭 스미스가 이마를 짚었다.
“……그만 잭잭거려, 준.”
-아하하하!
고양이 잭을 만났을 때부터 이렇게 놀리고 싶었던 서준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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