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46화
오…….
촬영이 진행될수록, 서준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던 조감독과 스태프들은 어느새 감탄을 흘리기에 바빴다.
“연기 온오프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진짜 스위치가 있는 것 같네.”
“그러게요.”
고양이 벨라의 NG나 다른 위치에서의 촬영을 위해, ‘테오가 아파하다가 점점 나아지는 장면’은 여러 번 촬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준 리는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 열에 들뜬 얼굴로 아파하고, 진짜 마법약을 먹은 것처럼 빠르게 나아지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진짜 아픈 사람이 낫는 모습을 빠르게 재생시킨 것 같았다.
처음에는 진짜 아픈데 촬영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던 스태프들도 그게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되니 납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아픈 거 아니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라는 스태프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촬영을 끝낸 서준은 윌마 감독과 헤일리 로지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태평하게.
“헤일리. 쿠키 좋아해요?”
“좋아하지. 특히 초콜릿 쿠키는 건강만 아니었으면 하루 종일 먹을 수 있어.”
눈을 반짝이는 헤일리 로지를 보니, 진짜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준이 고개를 돌려 윌마 감독을 바라보았다.
“감독님은요?”
“좋아합니다. 그렇게 달지만 않다면요.”
헤일리 로지가 진심으로 경악했다.
“세상에! 감독님. 달지 않은 쿠키가 어디 있어요? 달아야 쿠키죠!”
“단 건 빨리 질립니다. 고소한 쿠키가 더 맛있죠.”
“왜 질리죠? 맛있기만 한데!”
어. 음.
서준이 쿠키로 투닥대는 헤일리 로지와 윌마 감독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벨라의 보호자에게도 물어보았다. 없어서 못 먹는다는 대답이 돌아와, 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쿠키는 왜?”
헤일리 로지가 서준에게 물었다.
“시간 괜찮으면 만들어 보려고요.”
“……뭘?”
“쿠키요.”
“……누가?”
“제가요.”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모두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 * *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서준은 집으로 가는 길에 킹즈마켓에 들러 쿠키 재료를 한가득 샀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곧바로 쿠키 제작을 시작했다.
넓은 아일랜드 식탁 위.
서준이 사 온 재료들과 전자저울이 놓여 있었다.
서준은 먼저 먹을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며 만들 쿠키의 양을 정한 후 레시피를 보며 재료들을 계량했다.
버터, 설탕, 소금, 박력분과 초콜릿 칩 같은 부재료들이 저울에 올라갔다가 그릇에 가지런히 옮겨졌다.
“대충 넣으면 안 돼?”
서준 혼자서 내일 촬영에 오는 [뉴 이클립스] 스태프들의 쿠키까지 모두 만들 수는 없어서, 대신 만들어줄 쿠키 가게와 쿠키와 함께 먹을 음료를 제작해 줄 커피차까지 섭외한 최태우가 물었다.
“네.”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쿠키는 다른 것들보다 만들기 쉽기는 한데, 그래도 레시피 안 지키면 망해요.”
예전에 은수, 수빈이와 쿠키 만들기 놀이를 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이것저것 넣고 싶어 하는지.’
밀가루를 얼굴이 잔뜩 묻힌 동생들이 흐헤헤- 하고 웃는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보고 싶네.’
쿠키 반죽을 냉장고에서 휴지할 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먼저 실온에서 찬기를 뺀 버터를 그릇에 넣고 거품기로 휘휘 저었다.
“도와줄까?”
“그럼 고맙죠.”
서준과 최태우가 나란히 주방에 서서 쿠키를 만들었다.
버터가 부드럽게 풀리면 설탕과 소금을 넣고 저어주고, 다 섞이면 달걀을 넣고 저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력분과 베이킹 소다를 체 쳐서 넣고 초콜릿 칩 같은 토핑도 넣어 함께 젓는다. 중간중간 바닐라 에센스같이 개인의 기호에 따라 넣는 재료도 있다.
“아, 형. 윌마 감독님 말이에요. 저 요리하는 것도 알고 계셨어요.”
“어,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최태우에,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너튜브로 숲속의 어린이반 방송 클립을 보셨대요. 촬영장에서 그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도대체 어디까지 조사하신 걸까요?”
“그러게. 백설공주도 알고 있고, 요리하는 것도 알고 있고.”
최태우도 웃고 말았다.
자기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라고 해도 보통 그 정도로 조사를 하나 싶지만, 윌마 에반스 감독이라면 충분히 할 것 같았다.
“촬영은 어때, 괜찮아?”
서준과 함께 촬영장에 가긴 하지만, 매니저가 밖에서 느끼는 것과 배우가 직접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를 수도 있었다.
“재미있어요. 다들 편하게 해주시고.”
“다행이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준과 최태우는 쿠키 반죽들을 완성해 나갔다.
“이제 냉장고에 30분만 넣어두면 돼요.”
헤일리 로지가 좋아하는 달달한 초코 쿠키와 윌마 감독님 입맛에 맞는 고소한 아몬드 쿠키, 그리고 스태프들이 먹을 쿠키의 반죽들까지.
아일랜드 식탁 위가 쿠키 반죽으로 가득했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쿠키 반죽을 넣는 서준을 돕던 최태우의 눈에 따로 떨어져 있는 그릇 하나가 들어왔다. 남은 건가?
“서준아, 이건 남은 거야?”
최태우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릇을 본 서준이 말했다.
“아, 그거 고양이용 쿠키 반죽이에요.”
“……고양이용 쿠키도 만들었어?”
“당연하죠. 동료 배우들인데. 생선 모양으로 찍으려고 쿠키 커터도 샀어요.”
생선 모양의 은색 쿠키 커터를 보여주며 빙그레 웃는 서준에, 최태우도 웃고 말았다.
* * *
다음 날.
[뉴 이클립스] 촬영장에 작은 쿠키 가게와 카페가 생겼다.
이제 촬영에 익숙해져 여유로운 스태프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하나둘 그곳에 들렀다. 그러고는 놀랐다.
“이거 준이 직접 만든 거라는데?”
“정말요?!”
여러 쿠키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작은 크기의 쿠키들은 서준 리가 직접 만든 쿠키였다.
“한 사람당 하나씩입니다.”
어느새 쿠키 가게 직원으로 취직한 킹즈에이전시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다른 쿠키들은 마음껏 가져가도 상관없었지만, 서준이 만든 쿠키는 최대한 많은 스태프들이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수량 제한이 있었다.
“신기하네. 슈퍼스타가 만든 쿠키라니…….”
“이거 사진 찍어서 올려도 될까?”
“으아아……! 준이 만든 쿠키!”
슈퍼스타가 직접 만든 쿠키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스태프부터, SNS 업로드를 허락받으러 조감독에게로 향하는 스태프, 그리고 서준을 볼 때마다 입을 틀어막고 있던 숨은 새싹들까지.
만족스러운 반응에 서준이 웃었다.
거기다 후기도 좋았다.
“완전 맛있어…… 이거 팔아도 될 것 같아, 준!”
달달한 초코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헤일리 로지는 감동까지 받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제발 팔아줘. 가게 내줘. 으아아. 오늘만 먹을 수 있는 쿠키라니…… 아껴 먹어야겠다.”
“제 입맛에도 아주 잘 맞습니다. 정말 맛있네요.”
윌마 감독도 맛있는 듯 연신 감탄했다.
미야옹-!!
그리고 고양이 잭은 아예 울며 생선 모양 쿠키를 먹고 있었다.
“……네가 그러면 사람들이 내가 굶긴 줄 알잖아. 잭.”
오기 전에 사료도, 간식도 먹었잖아.
보호자가 이마를 짚으며 말하는 것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준, 실례가 안 된다면 레시피를 물어봐도 될까요?”
마치 3대째 내려오는 쿠키 가게의 비법을 묻는 듯, 보호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잭이 계속 찾을 것 같아서요.”
주인님이 원하신다는데 집사는 그저 잠자코 따라야지, 하고 생각하는 듯한 보호자의 표정에, 작게 웃은 서준이 말했다.
“괜찮아요. 가르쳐 드릴게요.”
오!
헤일리 로지와 윌마 감독, 그리고 서준이 만든 쿠키를 ‘평범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맛있지?’ 하고 서로 이야기하며 깨작깨작 아껴먹던 스태프들까지도 눈을 번쩍였다.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근데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랑 많이 다르지는 않아요.”
아.
모두 탄식했다.
“……손맛인가.”
손맛.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완벽한 비법.
배울 수도 없고, 돈을 내고 살 수도 없는 비법에 다들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 * *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맛있는 쿠키를 먹어서 그런지, 모두 텐션이 올라간 (슈가 하이)상태라 준비도 참 순조로웠다.
앞으로 종종 먹을 걸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물론 제작비다), 윌마 감독은 목소리를 높였다.
“레디, 액션!”
클레어의 집, 거실.
열이 떨어진 테오와 클레어, 몰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다쳤는지 물어봐도 될까?”
클레어는 테오의 식은땀을 닦아주기 위해 걷었던 소매 아래로 보이던 상처들을 기억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보육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살폈던 클레어는 그 상처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쌓여온 상처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묻는 클레어에 테오는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했어.”
테오는 폭신한 소파에 몸을 묻고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클레어와 몰리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늑대가 평생에 반려를 단 하나만 두는 거, 알아?”
“응. 늑대인간도 그렇잖아. 일부일처.”
이 세계에 대해 빠삭한 몰리가 대답했다. 늑대인간도 그렇구나, 하고 초보 마녀는 생각했다.
“내…… 아버지는 레이필드 무리의 대장이었어. 어,머니는 아시아에서 온 늑대인간이었고.”
아버지 어머니, 하고 말하는 테오의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였지만, 평범한 이야기였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는 거니까.
“그런데…….”
잠시 미간을 찌푸린 테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지.”
아.
다시 말하지만, 온갖 사정으로 들어온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클레어였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꽤 들은 적이 있어서 비교적 침착할 수 있었다.
“뭐어!?”
몰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늑대인간인데? 늑대인간인데!?”
마치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검은고양이는 펄쩍펄쩍 뛰었다.
“반려가 죽고 새 반려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책에서 봤지만! 마가렛이 책에 적힐 정도로 아아아아주 드문 일이라고 하던데! 불륜?! 부울륜?!”
“몰리.”
“그치만…… 으아아…… 미안해…….”
테오를 본 몰리가 털썩 쓰러졌다. 테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부모라고 해도 한 번도 본 적 없어.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기분 나쁘고.”
늑대인간 테오의 얼굴이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원망스럽기만 하니까.”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몰리가 말한 대로 늑대인간은 일부일처야. 다른 아내를, 남편을 둘 수 없어. 그건 반려에게도, 무리에게도 비난받을 일이야.”
테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그 정도였다면, 얻어맞더라도 무리에서 쫓겨나는 걸로 끝났겠지.”
돈도 한 푼 없이, 다친 채로 쫓겨나 제대로 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테오는 항상 그게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레이필드에 적들이 쳐들어왔어.”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은 모두 전투에 나섰지. 내 아버지만 빼고.”
레이필드의 늑대들은 테오를 보면 항상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랑 같이 있었거든. 내가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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