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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45화 (84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45화

조금 전.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서준은 마지막으로 대본을 살펴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대본을 바라보는 서준은 한없이 진지해 보였다. 그에 스태프들은 언제나 그렇듯 대기실을 나가주거나 조용히 해주었다.

어떤 개들이 있다.

주인이 생기자 갑작스럽게 아픈 개들이.

주인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단지 개들은 알아차린 것뿐이었다.

이 주인, 아니, 이 가족과 함께 있다면 자신이 아파해도 괜찮다는 것을.

‘늑대는 더 그렇지.’

늑대는 야생동물.

다른 야생동물들도 그렇지만, 약한 모습을 함부로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이동하거나 사냥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무리에서 버림받을 수도 있었고, 약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다가 다른 동물들의 사냥감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늑대는 우뚝 서서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늑대인간 테오도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고 그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만한 곳은 없었으니, 홀로 견뎌내고 참아내고 꾸며내며,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평생 살 줄 알았겠지.’

하지만 ‘여기 있어도 돼.’ 하고 말하는 이와 만났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을 테오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안심했다.

안심은 바싹 당기고 있었던 긴장의 끈을 놓치게 했고, 그 긴장으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 밀려왔다.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쌓여왔던 외로움이 아픔으로 표출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파도 괜찮았다.

마녀와 고양이는 자신을 버리지 않을 테니까.

‘음.’

잠시 ‘테오’에 몰입했던 서준이 깨어났다.

대기실 문 건너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촬영 시작한대. 서준아.”

“네.”

최태우의 말에, 대본을 덮은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대기실을 나와 촬영장으로 향하는 서준에게 최태우가 물었다.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없어요. 건강해요.”

“그래. 알았어.”

최태우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아픈 연기는 정말 진짜 같아서, 미리 확인해 두지 않으면 촬영 중에라도 세트장에 뛰어들 것만 같았다.

최태우의 생각을 짐작한 서준은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윌마 감독과 헤일리 로지를 보며 음, 하고 잠시 고민했다.

“태우 형. 감독님이랑 헤일리에게도 미리 말해두는 편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을까?”

감독과 상대역은 알아야 촬영 중에 당황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짜 아프게 보여도 연기니까 촬영 계속해도 된다더니…….’

윌마 감독은 놀란 표정으로 모니터 속 서준을 바라보았다.

소파에 옆으로 쓰러진 서준, 아니, ‘테오’는 빨개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약하게 내뱉는 숨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저 땀방울들은 스태프가 미리 뿌려둔 물방울들이었고 저 붉어진 얼굴과 열기 또한 서준이 만들어내고 있는 걸 아는데도, 서준이 아픈 연기를 잘해 매년 건강검진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진짜 아픈 것 같았다.

미리 이야기를 들었던 윌마 감독도 흠칫 하고 놀랄 정도인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스태프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구급차 불러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감독님?”

아까 서준이 말할 때 잠시 밖에 나가 있었던 조감독이 초조한 얼굴로 세트장과 서준 리의 매니저 최태우, 그리고 윌마 감독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하자, 윌마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이 장면은 곧 끝나니까.”

“네에…….”

그런 윌마 감독의 태도에 조감독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도 배우들에게 관심을 갖고 걱정하던 윌마 에반스 감독이었는데 사람이 달라진 건가 싶었다.

그렇게 스태프들의 걱정 속에 촬영은 계속되었다.

스태프만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함께 연기하던(?) 고양이 벨라도 당황한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서준이 능력을 써서 알려주긴 했는데,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다.

냥!

‘몰리’의 외침(나중에 녹음할 예정이다)에 주방에서 나온 ‘클레어’, 헤일리 로지 또한 미리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테오!”

진심 반 연기 반으로 만들어진 ‘클레어’의 외침은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오케이! 컷!’ 하는 외침과 동시에,

서준 리가 멀쩡해졌다.

어어?

걱정하던 스태프들이 어느새 혈색이 돌아온 서준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당황하던 벨라도 입을 쩍 벌리고 원래 상태로 돌아온, 건강해 보이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하하.

서준이 웃으며 입을 벌린 채로 굳어버린 벨라를 안아 들었다.

[(선)캣시의 수염]을 통해 ‘너 아픈 거 아니었어? 아니, 아팠는데? 열이 나던데??’ 하는 의문이 가득한 벨라의 생각이 밀려들어 왔다.

“와…… 진짜 아픈 줄 알았어. 열까지 나던데?”

헤일리 로지의 말에 서준은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벨라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제가 아픈 연기는 진짜 잘하거든요.”

“잘한다는 수준이 아니던데. 구급차 불러야 하는 줄 알았어.”

“하하. 그래서 어렸을 때는 건강검진도 받았어요. 다들 걱정하셔서요. 지금도 받고 있고요.”

“그럴 만도 해.”

서준의 이야기에 헤일리 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태프들은 경악했다.

‘아니, 그게 연기였다고?’

‘차라리 지금 괜찮은 얼굴이 연기라고 하는 게 믿음이 갈 정도로, 진짜 아픈 것 같았는데…….’

‘사실은 지금 아픈데, 촬영 때문에 참고 있는 게 아닐까?’

믿음이 가지 않는 듯, 걱정이 섞인 스태프들의 눈빛들이 서준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곧,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모두 알게 되었다.

* * *

다음 촬영은 1층 작은 방(테오의 방)에서 진행되었다.

서준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자, 스태프가 얼굴과 노출된 피부에 슉슉- 물방울을 뿌려주었다. 이불 밖으로 보이는 옷도 땀에 젖은 듯 조금 물을 뿌려주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스태프가 내려가고,

“레디,”

두 눈을 감는 서준을 확인한 윌마 감독이 목소리를 높였다.

“액션!”

[(선)붉은 슬라임의 핵이 발동됩니다.]

뜨거운 열기가 테오의 온몸을 뒤덮었다.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가 조이는 것 같았고 몸이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아니, 머리가 둥둥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인지 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몸이 아프자 저절로 기억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픔과 우울과 불안과, 외로움이 가득하던 하루하루.

너무나도 비슷한 나날들이라, 먼지 덩어리처럼 하나로 뭉쳐져 어제의 일인지 오늘의 일인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테오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테오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무기력하고 슬퍼 보였다. 고통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막을 생각도 없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체념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던 중 테오의 미간이 움찔 떨렸다.

비슷비슷했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걸음을 내디뎠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테오는 끝없는 늪에 가만히 빠져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바람을 완벽하게 이루기 위해.

때때로 무기력함이 덮쳐오긴 했지만, 손에 잡힌 가느다란 끈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고통이 덮쳐오지만, 그놈들에게서 벗어나 마음만큼은 시원하고 통쾌했다.

조금 밝아졌던 테오의 얼굴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그렇게 자유를 찾고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마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희망이 보여 더더욱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때, 또 하나의 강렬한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와 부딪혔던 그 날.

사과의 말과 함께, 아주 희미하게 흘러나오던 마녀의 냄새.

웃음이 저절로 나올 것 같았다.

테오는 마녀의 뒤를 쫓았고 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녀의 고양이도 만났다.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돌아가라는 고양이의 말에 참지 못하고 싸우고 말았다. 겨우 발견한 마녀였는데, 바보 같은 일이었다.

첫만남부터 좋지 않았다.

마녀를 발견했다는 것에 안도해서, 미처 마녀와 늑대인간의 사이가 나쁘다는 걸 떠올리지 못했다.

닫혀 버린 문을 보며 테오는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고.

마녀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아직 어린 마녀였다.

어린 녀석들이라면 동정심을 얻는 게 최고였다.

비가 내렸다.

하늘까지 자신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더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후드도 쓰지 않고 그대로 비를 맞았다. 물론, 마녀가 늑대인간을 불쌍히 여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바로 먹힐 줄은 몰랐지.’

그렇게 약한 척을 해서 들어온 마녀의 집인 만큼, 테오는 최대한 몸을 낮춰 동정심을 이끌어 내려고 했고, 마녀는 착하게도 방까지 내주었다.

‘경계 좀 하라고 해야겠네.’

의뢰비가 필요 없다는 마녀의 상냥한 말은 오히려 테오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대가 없는 부탁은 테오 평생에 누구도 들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털이든 피든 발톱이든, 무엇이든 주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쫓겨날 것 같았다.

테오는 자신의 할 일을 찾아 헤맸다. 일을 하면 마녀가 쫓아내지 않을 터였다.

마녀의 고양이와 싸우지도 않았다. 마녀의 소중한 고양이였다. 싸웠다가는 쫓겨날 게 뻔했다.

마녀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시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았다.

쫓기다 생긴 상처로 아픈 것도 숨겼다. 아프기까지 한다면 짐 덩어리로 볼 게 분명했다.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클레어의 말은 사실일 거다.

‘착하다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테오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한평생 그 누구도 테오의 믿음에 답해주지 않았으니까.

불안과 초조함이 덮쳐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 집의 따스함이 스며들어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도, 별것 아닌 일에도 환하게 웃는 클레어도, 자신을 편하게 대하며 부려 먹는 몰리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어.’

그래서 더 몸을 낮췄는지도 몰랐다. 여기에 머물고 싶어서.

몰리의 심술도 괜찮았고, 클레어가 시키지 않은 일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을 클레어가 눈치챘다.

여기 있어도 돼.

역시 착한 마녀였다.

‘사과해야지.’

꿍꿍이가 있었다는 것도 다 말해야지.

어쩐지 때렸으면 때렸지, 쫓아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믿음이 있다.

침대 위.

편안한 테오의 얼굴이 보인다.

어느새 식은땀도, 붉게 물들었던 얼굴도 사라져 있었다. 약해져 있던 숨소리도 제대로 들려왔다.

움찔움찔 테오의 눈이 움직였다.

아팠던 적은 꽤 있었지만, 이렇게 편안한 기분으로 깨어나는 건 처음이었다.

‘……아닌데, 가슴이 좀 답답한데?’

숨쉬기가 조금 힘들다고 생각하며, 테오는 눈을 떴다.

“테오!”

“테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시야 가득, 클레어와 몰리의 얼굴이 보였다. 걱정과 안도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프다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가슴이 무겁다 했더니, 검은고양이 몰리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앞발에 체중을 담아 꾹꾹 누르기까지 했다.

“몰리. 그러다 테오 또 기절하겠어.”

역시 클레어. 착한…….

“다 나으면 때려.”

음. 으음.

할 말을 찾지 못하던 테오가 저도 모르게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지금 웃음이 나와? 나오냐고!”

“테오.”

눈꼬리가 삐죽 올라간 마녀와 고양이를 보면서도 테오는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마녀와 고양이는 알까.

자신이 이렇게 웃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걸.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테오는 아주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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