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43화
“의뢰하고 싶다는 건 어떤 거야?”
클레어가 가라앉은 분위기도 바꿀 겸 테오에게 물었다. 그에 당황하던 테오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나한테 마법이 걸려 있거든.”
“마법?”
클레오와 몰리가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조금 껄끄러운 듯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니면, 저주라고 해야 할까.”
“저주…….”
클레오의 눈이 커졌다.
그래. 마법이 있고 마녀가 있고 늑대인간이 있는데, 저주가 없을 리가.
남을 시기하고 원망하고 망하게 하려는 이들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었고, 마법이라는 신기하고도 대단한 힘이 있으니 더욱더 잔인하고 효과적으로 남을 해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물론 지금 클레어의 빈약한 상상으로는 백설공주가 먹은 독 사과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찔린 물레 바늘이나 인어공주가 마신 목소리를 빼앗는 물약 정도의 이야기만 떠올랐지만 말이다.
“어떤, 저주인데?”
그런 것들이 정말 현실에 있다니, 저주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워진 클레어였다.
“나도 잘 모르겠어.”
테오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겼다.
“저주가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게 어떤 종류의 저주인지, 몇 개나 있는지, 어떻게 푸는 건지 하나도 몰라.”
잠시 거실이 조용해졌다.
“언제 걸린 건지는 알아?”
클레어의 든든한 마법 선생님, 몰리가 꼬리를 살랑이며 물었다.
“언제 저주에 걸렸는지에 따라서 푸는 시간도 달라져. 최근에 걸렸다면 금방 풀 수 있겠지만, 걸린 지 오래됐다면 조금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푸는 방법도 달라질 거고.”
그에 테오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까보다 짙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태어났을 때.”
“……뭐?”
잘못 들었다는 듯한 클레어와 몰리의 반응에, 고개를 든 테오가 쓰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걸린 저주야.”
그말에 클레어와 몰리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할 말이 없었다.
도대체 갓 태어난 아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주를 건단 말인가.
클레어의 머릿속에 저절로 보육원의 아기들이 떠올랐다.
작고 연약하고, 볼이 말랑말랑하고 웃는 얼굴이 귀여운 아기들.
‘태어났을 때라면, 걔들보다 더 어렸을 때라는 거잖아.’
눈도 못 떴을 갓난아기를 떠올리며, 클레어는 눈앞에 앉아 있는 테오를 살펴보았다.
어디가 안 좋은 건지 알고 싶었지만, 테오는 아까와 다르지 않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티가 나지 않는 저주인 건지, 아니면 테오 본인이 애써 티를 내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났을 때 걸린 저주라면 푸는 데 꽤 시간이 걸리겠는데…….”
몰리가 노란 눈으로 테오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 테오의 얼굴에 구멍이 뚫려 버릴 것만 같았다.
“시간은 얼마나 걸려도 괜찮아. 풀 수만 있다면.”
그런 날 선 눈빛에도 테오는 그저 차분히 말했다.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그 말에 담긴 테오의 진심은 아주 절절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이내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테오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돈이 없어…….”
“뭐!?”
몰리가 펄쩍 뛰었다.
그와 동시에 번쩍 번개가 쳤다.
“의뢰라며! 의뢰! 의뢰라면 당연히 의뢰비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저주를 알아보는 데도 시간이랑 재료가 들고, 오래된 저주라서 푸는 데도 엄청나게 필요할 텐데!”
몰리가 펄쩍펄쩍 뛸 때마다 테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땅 파면 재료가 나오는 줄 알아?”
“미안…….”
“특히 저주를 푸는 데 필수로 들어가는 재료들이 얼마나 비싸고 구하기 힘든지 알아!”
다다다 쏟아내는 몰리의 모습에, 클레어는 앞으로 돈 관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 클레어가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이만 자러 가자. 테오 너도 오늘은 여기서 자.”
“저 똥개도?”
씩씩거리던 몰리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밖에 비 오잖아, 몰리.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다고 하는데 내보낼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몰리를 진정시킨 클레어는 고개를 돌려 초조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테오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1층 방에서 자고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자. 저주에 대해서도 내일부터 알아보고.”
“……정말 고마워.”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한 클레어는 테오를 1층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마녀 마가렛이 약재 창고로 쓰던 방이라서 그런지 침대는 없었고 약초의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2층에서 이불 몇 개를 가져와 테오에게 건네준 클레어는 몰리와 함께 2층으로 향했다.
클레어는 2층 화장실에서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폭신한 침대에 누웠다. 몰리도 침대 머리맡이 제 자리인 양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창으로 아직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오늘 하루가 끝났다.
정말이지 상상하지도 못한 많은 일이 있었다.
“몰리.”
“응?”
천장을 보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던 클레어가 몰리에게 말을 걸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몰리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저주를 풀 수 있을까? 난 마법 하나도 모르잖아.”
마법이라는 것이 진짜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바로 오늘이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마가렛의 책과 물약들과 재료들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거야. 마가렛은 훌륭한 마녀였거든. 나도 도와줄게.”
그렇다면 다행이다.
클레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 아니, 늑대인간이긴 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걸린 저주라니.
할 수만 있다면 풀어주고 싶었다.
그때, 몰리가 말했다.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무슨 저주인지는 알고 풀어주자, 클레어.”
“응? 왜?”
클레어가 고개를 돌려 몰리를 바라보았다.
검은고양이의 노란 눈이 현명함으로 반짝였다.
“아까 말했듯이 늑대인간들은 무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보통의 경우라면 성인이 되기 전에 저주를 풀어주려고 노력했을 거야.”
몰리의 말에 클레어가 눈을 깜빡였다.
“늑대인간들은 마녀나 마법사랑은 사이가 안 좋다며?”
“대부분 사이가 안 좋지만, 교류를 하는 녀석들은 있거든. 늑대인간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도 있으니까.”
“그렇구나.”
클레어는 생각에 잠겼다.
하긴, 자신도 보육원 아이가 저주에 걸렸다면, 교류하고 있는 마녀나 마법사가 있다면, 더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저주를 풀어달라고 부탁했을 터였다.
“아마도 교류하는 녀석들이 풀기에 어려운 저주거나…… 풀면 안 되는 저주일지도 몰라.”
“풀면 안되는 저주?”
“응. 그런 경우에는 저주라기보다는 봉인이라고 해야겠지.”
몰리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태어날 때부터 힘이 너무 강했다던가 피를 보면 이성을 잃는다거나, 뭐 그런 문제들이 있어서 마법을 걸어둔 걸지도 몰라. 저 녀석은 저주라고 생각하는 마법을.”
몰리가 어느새 몸까지 옆으로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초보 마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마법인지 확실하게 알고 풀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 우리야 실팔찌가 있으니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니까.”
“알았어. 그럴게.”
진지한 몰리의 목소리에 클레어 또한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케이, 컷.”
모니터로 바라보고 있던 윌마 감독이 웃음기 섞인 작은 목소리로 오케이 사인을 외쳤다.
윌마 감독과 함께 모니터를 보고 있던 서준과 잭의 보호자 그리고 스태프들도 작게 웃음을 터뜨렸고, 2층 세트장, 침대에 누워 있던 헤일리 로지 또한 잘게 어깨를 떨고 있었다.
‘클레어의 침대’ 머리맡에서 앉아서 연기하던(?) 잭이 그대로 잠이 든 것이었다. 얼마나 편하게 자는지 새액-새액- 숨소리까지 들려왔다.
“저 촬영장에서 자는 배우는 처음 봐요.”
서준의 말에 사람들이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동물과 함께 촬영할 때 이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걸 다들 알고 있어서,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잭이 몸을 데굴, 굴려 배를 드러냈다.
태평해도 저렇게 태평할 수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 장면도 찍을까요?”
윌마 감독이 웃으며 말하자, 잠이 든 고양이 잭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던 헤일리 로지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곧바로 다음 촬영이 시작되었다.
꿀잠 자는 고양이 잭을 위해 윌마 감독이 목소리를 낮추어 ‘액션’을 외쳤다.
다음 날.
침대에 컨디션이 좋아지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건지,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어제 겪었던 일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쾌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클레어는 아직 자고 있는 몰리를 바라보고는 작게 웃고 말았다. 몰리는 배를 드러내고 편안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고양이 같은데 말이야.”
클레어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몰리는 뭐 먹지? 고양이 사료를 사야 하나?”
몰리가 들었다면 경악했을 생각을 하며 클레어는 1층에 발을 디뎠다.
“어?”
“아.”
그리고 청소를 하고 있는 테오와 마주쳤다.
클레어와 테오는 서로를 바라보며 데굴 눈을 굴렸다.
“……일찍 일어났네?”
“응. 너도.”
어제 이야기를 나눠서 좀 편해진 줄 알았는데, 역시 하루밖에 안 지나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테오가 청소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근데 청소하는 거야?”
“어제 내가 비 맞은 채로 들어왔잖아. 몰리가 수건을 줘서 닦긴 했는데 빗물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테오가 손에 쥔 마른걸레(어디서 찾았대?)를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편하게 있어도 되는데.”
“의뢰비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니까.”
뭐, 그렇다면야.
“아침 식사 준비할 건데, 뭐 못 먹는 음식 있어?”
“아니, 없어. 다 잘 먹어.”
테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클레어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동그란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식용유를 적당히 뿌린 후 열기가 올라올 때까지 놔두고, 냉장고에서 달걀과 소시지, 우유를 꺼냈다.
“빵도 꺼낼까?”
어느새 주방에 들어온 테오가 손을 씻은 후 말을 걸었다.
“어? 응.”
어쩐지 싹싹한 테오.
그런 모습이 조금 어색하기 했지만, 크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보육원에서의 단체 생활이 익숙한 클레어에게는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게 좋게 다가왔다.
그렇게 클레어와 테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중.
잠에서 깬 몰리가 1층으로 내려와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테오를 바라보았다.
“의뢰비를 못 내니 저거라도 해야지.”
투덜거리는 몰리에 테오가 데굴 눈을 굴렸다.
잠시 후.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나고, 마녀와 늑대인간과 고양이는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내가 조금 생각을 해봤는데…….”
테오가 입을 열자, 클레어와 몰리가 바라보았다.
“의뢰비로 내 털이나 피는 어때? 늑대인간의 털과 피가 재료로 꽤 가치가 있다고 들었거든.”
“좋지!”
몰리가 반색했다.
“그거 굉장히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어. 털은 몰라도, 늑대인간들이 자발적으로 피를 팔지는 않거든.”
“그럼 그걸로 의뢰비…….”
몰리의 반응에 밝아지던 테오의 표정이 클레어에게로 향하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 테오의 모습에 몰리도 고개를 돌려 클레어를 보았다.
클레어는 소시지가 꽂혀 있는 포크를 든 채로 그대로 얼어 있었다.
“……털? ……피?”
늑대인간이라고 하지만, 진짜 털을? 진짜 피를?
지금까지 현대인으로 살아왔던 이제 겨우 2일 차 마녀에게는 너무 엄청난 이야기였다.
“아, 미안. 아침 식사 중에 할 이야기는 아니지.”
“그럼 밥 먹고 하자!”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이 늑대인간아.
이 말하는 고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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