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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41화 (84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41화

냐아-

“쉬. 가만히 있어. 벨라.”

냐아아-

보호자의 말에 벨라가 불만스러운 듯 울었다.

하긴 지금까지 넓은 밖에 있다가 갑자기 케이지에 들어가라고 하면 답답할 법도 했다.

“하지만 여긴 야외니까 나오면 안 돼. 촬영에 방해도 되고 너 길 잃어버릴지도 몰라.”

이 넓고 위험한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탈출한 고양이를 찾으라고 한다면 자신은 기절할지도 몰랐다.

단호한 보호자의 말에 케이지 안에서 냐냐, 하고 투덜거리고 있던 벨라는 포기하고 적당히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구웠다. 햐암- 하고 하품도 했다.

흐. 내 고양이가 제일 귀여워.

쭈그려 앉아 의자에 놓인 케이지 안을 확인한 보호자는 팔불출처럼 히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지 옆 의자에 앉았다.

야외세트장은 한창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 비면 될까요, 감독님?”

“조금만 더 약하게 해보자.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히면 안 되니까.”

비가 오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라서 그런지, 커다란 살수차도 있었고 촬영하기 적당한 양의 비를 뿌리기 위해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윌마 에반스 감독도 보였다.

그 이외에도 스태프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이 벨라의 보호자를 들뜨게 만들었다.

오전 촬영으로 촬영장 분위기에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야외촬영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벨라의 보호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의상을 갈아입은 헤일리 로지가 나타났다.

헤일리 로지.

요즘 인기 있는 배우로, 아역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중학생 때부터 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졸업 후였는데, 작은 배역들에 출연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재작년 출연했던 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렸고, 그 작품의 조연이었던 헤일리 로지까지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그거 재미있었지.’

보호자가 그렇듯, 지금도 정주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덕분에 스타가 된 헤일리 로지는, 작년에는 영화에 출연했었는데 그 작품도 멋지게 흥행했다.

물론 이전에 출연했던 드라마와 비슷한 캐릭터라고 말이 좀 있긴 했지만, 보호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게 된 헤일리 로지의 입장에서는 일단 대중에게 인상을 남기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뭐,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준 리와 함께 작품을 한다는 기사에, 헤일리 로지의 연기력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것도 확실히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레어 같았지.’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오전 촬영을 보니 헤일리 로지가 ‘클레어’ 역에 아주 찰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준은 어떨까?’

보호자의 시선이 의상을 갈아입고 나타난 서준에게로 향했다.

서준은 비를 맞았다는 설정 탓에 살수차 앞에서 물을 맞고 있었다. 젖어가는 의상이 차가울 텐데도 밝게 웃는 표정이 마치 물 좋아하는 강아지 같았다.

‘라이징 스타인 헤일리가 이 정도인데.’

세계적인 스타이며 아역 때부터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서준 리는 과연 얼마나 잘할까.

기대가 되면서도 조금 안타까웠다.

대단한 연기라는 걸 판단할 정도로, 보호자는 연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아는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고 하니까.’

연기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쏴아아아-

비 오는 세트장 위를 바라보며 보호자는 입을 쩍 벌렸다.

헤일리 로지가 클레어 같았다면, 서준 리는 그냥 남자주인공 그 자체였다.

서준 리는 사라지고, 거기엔 남자주인공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준 리의 분위기에 휩쓸린 듯, ‘클레어 같았던’ 헤일리 로지도 ‘클레어’가 되었다.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는데, ‘클레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와……. 미쳤네.

보호자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며 촬영 현장을 바라보았다.

* * *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아……. 나왔네.”

클레어는 자신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띠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이 자리에 서서 비를 맞고 있었는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젖지 않은 곳이 없었고 얼굴로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목소리도 지친 듯 느릿했다.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나이라고 하던 몰리의 말을 떠올리며 살펴보니 확실히 남자는 앳된 것처럼 보였다.

어린애가 비를 맞고 있었다. 얼굴도 창백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니지.’

이 남자는 성인이었고, 낯선 사람, 아니, 늑대인간이기도 했다. 거기다 아까 자신을 몰래 따라오기까지 하지 않았나.

‘아, 어떻게 하지?’

어린 애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마는 상냥한 클레어는 고민에 빠졌다.

몰리가 알았다면, ‘고민할 게 뭐가 있어! 저 똥개는 너랑 동갑이야!’ 하고 외쳤을 거다.

하지만 아직 클레어에 대해 잘 모르는 몰리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클레어, 설탕!”

“아!”

몰리의 말에 정신을 차린 클레어는 일단 짐부터 옮기기로 했다.

다행히 현관 옆에 둔 짐들은 현관 지붕이 비를 막아줘서 포장지에만 빗물이 묻었을 뿐, 내용물까지는 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클레어는 얼른 집 안으로 짐을 날랐다.

그 모습을 대문 건너편에 있는 남자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짐을 모두 안으로 옮긴 클레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처럼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결계를 두드릴 줄 알았는데, 남자는 조용히 클레어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클레어의 눈을 피하는 듯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남자의 속눈썹에 맺혀 있는 동그란 물방울이 보였다.

비를 맞은 남자는 청초하고 연약하고, 어리고 불쌍해 보였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손을 움찔했다.

‘안 돼! 정신 차려!’

저렇게 보여도 늑대인간이라고! 늑대인간!

마녀의 적!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늑대인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보고 있다가는 그대로 대문을 열어버릴 것만 같아서 클레어는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릿하고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조금 전엔 미안했어. 마녀.”

어어?

갑작스러운 사과에 클레어는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움츠러든 모습으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몰래 따라온 것도 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소리친 것도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급해서, 내 생각만 하느라 네가 어떻게 느낄지 몰랐어.”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클레어는 조금 입을 벌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의뢰할 곳이 마녀 너밖에 없어서 그랬어. 내가 정말, 정말 급해서……. 미안해.”

사과하는 남자는 정말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아까 몰리가 했던 말이 다시금 클레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리고, 약하고, 일행도 없이 혼자인.

거기에 비를 맞고 있는 모습까지 보니, 조그맣던 안타까움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나 클레어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아아아! 진짜!

클레어는 마음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여기가 보육원이었다면, 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계셨다면 마음 편하게 안으로 들였을 텐데!

이 집에 자신과 고양이밖에 없어서 걱정이 좀 됐다.

‘몰리가 한 입 거리면 나는 세 입 거리 정도 되려나?’

여전히 비를 피할 생각도 없이, 아래만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던 클레어는 이내 결심한 듯한 얼굴로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 * *

“컷! 오케이!”

하늘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고, 어느새 달려온 스태프가 서준에게 수건을 건넸다. 4월이지만 물에 젖으면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춥지 않아, 준?”

“괜찮아요.”

어차피 다음 장면도 또 비를 맞는 장면이기 때문에, 서준은 적당히 물기를 닦으며 헤일리 로지와 함께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어땠어요, 감독님?”

“두 분 다 완벽했습니다!”

윌마 감독이 밝게 웃으며 말하자, 서준과 헤일리 로지도 따라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조절한 빗속에서 서준과 헤일리 로지가 연기하는 모습이 잘 담겨 있었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준이 굉장히 청초하고 연약해 보였는데, 잘 찍혔네.”

함께 트레이닝을 하면서 전혀 연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헤일리 로즈마저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서준의 연기와 외모는 대단했다.

물론, 일부러 펑퍼짐하게 입어 단단한 몸을 가린 의상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헤일리 로지의 말에, 윌마 감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좀 있다 클로즈업 샷을 찍으면서 그런 준의 매력을 더 확실하게 촬영할 생각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아! 하고 클레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도록요.”

“하긴, 이런 미인이 비 맞으며 서 있는데, 낯선 사람이라도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두겠어요.”

두 사람의 대화에, 서준은 물기를 닦아내다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칼과 피부에, 환하게 웃기까지 하자 서준의 미모가 몇 배 더 강렬해졌다.

그 얼굴을 직접 마주한 윌마 감독과 헤일리 로지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미인계가 따로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에 서준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 * *

비는 계속 내렸다.

남자는 굳게 닫힌 마녀의 집만 바라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 냉막하고 많은 체념과 절망이 느껴지는, 그러나 미약한 끈질김이 있는 그런 눈빛과 표정으로.

그 복잡하고 어두운 감정은 남자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남자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이, 남자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던 문이 열렸다. 어두운 주변으로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따스해 보였다.

조금, 눈이 부셨다.

그 따스한 집에서 나온 마녀가 입을 열었다.

“저기…….”

남자는 조금 초조해졌다. 아니, 많이 초조했다.

하지만 그걸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신 미안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아래만 바라보았다.

감정을 숨기고 부풀리고 꾸며내는 건, 남자가 아주 잘하는 일이었다.

마녀, 클레어가 말했다.

“일단 비가 그칠 때까지는 내 집에 있어.”

남자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 의뢰라는 것도 뭔지 들어볼게.”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몇 달이 걸려도, 몇 년이 걸려도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하루 만에 들여보내 줄 줄은 몰랐다.

“……고마워.”

진심이었다.

정말로 고마웠다.

그런 남자에게 클레어는 몰리가 준 것을 내밀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오려면 먼저 이 팔찌를 해줬으면 해.”

“이건…….”

초록색과 연두색의 실들로 만든 조금 두꺼운 실팔찌였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팔찌였지만 마녀가 내미는 물건이 평범할 리가 없다는 걸, 늑대인간은 잘 알고 있었다.

“이걸 하면 나랑 몰리, 그러니까 아까 그 검은고양이한테 해를 끼칠 수 없게 돼. 공격하려고 하거나 해를 끼치려고 하면 고통이 느껴질 거야. 생각하는 것도 안 돼.”

몰리는 이건 마가렛이 만든 굉장히 강력한 마법이라며, ‘똥개가 안 할 수도 있어’ 하고 말했다.

하긴, 클레어가 생각하기에도 적의 집(늑대인간한테는 마녀가 적이니까)에 들어가는데 공격(생각까지)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싫을 것 같았다.

‘거의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안 들어가고 말지, 하고 생각할 것 같았다.

만약 남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팔찌를 거부한다면, 클레어는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이 팔찌가 클레어로써는 최대한 양보한 것이었다.

조금 멍한 표정으로 팔찌를 바라보는 남자를 보며, 클레어는 남자가 아예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조금 싫은 기색을 내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거면 돼?”

“어?”

하지만 남자는 클레어의 예상과 달리 기쁘게 웃었다. 그러고는 케이크 먹기보다 쉽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그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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