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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40화 (84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40화

“오케이! 컷!”

오전 촬영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다음 촬영을 준비할 때.

오후부터 촬영인 서준이 촬영장에 도착했다.

“어서 와요. 준.”

“안녕하세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던 서준은 냐아- 하고 들리는 소리에 아래를 바라보았다. 검은고양이가 거기에 있었다.

“오늘은 벨라구나. 안녕, 벨라.”

냐아-

서준은 오전 동안 열심히 연기했을 벨라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벨라를 뒤쫓아온 보호자에게도 인사했다.

‘어제 촬영에는 잭이 왔었지.’

어제 촬영하러 왔었던 잭을 떠올린 서준이 웃었다.

서준과 간식을 빼곤 여전히 무관심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돌아갔다.

세 고양이 모두 촬영장에 잘 적응한 것 같았다.

서준은 벨라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아직 자신의 촬영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분장을 고친 헤일리 로지가 다시 세트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손을 흔드는 헤일리 로지에 서준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늘 촬영은 어땠어요?”

“벨라가 잘해줬어요. NG도 별로 없었고요.”

보호자의 말을 들으며 서준이 벨라를 쓰다듬었다.

릴리가 관종이고 잭이 무관심하다면, 벨라는 차분했다.

“그래도 준을 좋아하는 건 다 똑같나 봐요. 준이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입구 쪽으로 가는 거 있죠.”

보호자는 서준의 무릎 위에서 갸르릉 울고 있는 저 고양이가 내 고양이인가, 준의 고양이인가 탄식했다.

그 말에 서준의 무릎을 차지한 벨라가 냐아 울었고, 서준은 하하 웃었다.

* * *

“레디, 액션!”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빗물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온 클레어는 주방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가지고 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으아…….

푹신한 소파에, 클레어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피곤하다. 이대로 자고 싶었다.

“클레어!”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듯, 잠을 번쩍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소파의 한쪽을 마치 자신의 구역인 양 쓰고 있던 검은고양이 몰리였다.

벽 한쪽을 차지한 벽난로와 그 앞에 놓인 테이블, ㄴ 모양의 소파와 그 뒤로 보이는 커다란 창문. 그리고 검은고양이.

집 안 풍경의 일부분인 듯 스며든 몰리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이 집의 고양이가 맞는 듯했다.

‘이 소파랑 테이블도 원래 이 집에 있던 거니까.’

이층집뿐만이 아니라, 침대나 책상, 소파 등 가구들과 냉장고나 오븐 등의 가전제품들, 그리고 서재의 책 같은 것들도 남겨주셨다. 조금 훑어만 봤지만 2층 서재를 가득 채운 책들은 클레어를 감탄하게 했다.

‘정말 고마우신 분이지만…….’

“이제 이야기해도 돼?”

말하는 고양이는 좀 그렇지 않나 싶다.

클레어는 한숨을 쉬는 대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허브차를 마셨다. 비를 맞아 차가웠던 몸에 따뜻한 허브차가 들어가니,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차분해진 클레어는 노란 눈을 반짝이는 검은고양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몰리가 신난 듯 말했다.

“다시 소개할게. 내 이름은 몰리야. 마녀의 영원한 가족, 패밀리어지!”

“패밀리어?”

“마녀나 마법사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고 도와주는 존재야. 보통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 나처럼 말이야.”

엣헴!

몰리가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앞으로 클레어는 내가 지켜줄게!”

아…….

클레어는 무어라 하는 대신 허브차를 호로록 마셨다. 일렁이려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녀……라는 건 뭐야?”

“마법을 쓸 수 있는 존재야. 동화책에도 나오는데…… 안 읽어봤어, 클레어?”

몰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클레어는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으며 물었다. 고양이도 동화책을 읽는구나, 싶었다.

“정말로 이 마녀가 그 마녀야? 뾰족한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마법을 쓰고 물약을 만드는?”

“그럼! 마가렛은 물약을 정말 잘 만들었어!”

마가렛.

클레어에게 이 집을 물려주신 분이었다.

“……냉장고랑 에어컨이 있던데?”

보통 마녀라고 하면, 옛날에나 사용하던 가구들이나 마법적인 물건들이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집은 벽난로가 있을 것을 빼면 그냥 현대의 평범한 집과 다르지 않았다.

“응? 그게 왜?”

더운 여름이면 직접 에어컨을 켰던 몰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냐. 아무것도.”

아마 그건 자신의 고정관념이었나 보다.

그래. 마녀가 냉장고랑 에어컨을 쓸 수도 있는 거지, 뭐. 하하.

잠깐 입술을 달싹거리던 클레어가 말했다.

“마가렛 씨가 마녀였다는 거지?”

“응. 아주 멋진 마녀였어! 마녀들 중에서도 제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 클레어도 조금만 배우면 금방 마가렛처럼 훌륭한 마녀가 될 거야.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하아.

이상한 남자와 몰리의 말, 그리고 비일상적인 상황들에,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던 클레어는 결국 참았던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클레어가 말을 이었다.

“마녀야?”

“맞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몰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

내가 마녀란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비가 오던 숲이나 일렁이던 불꽃을 떠올려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믿기엔 너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클레어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겨우 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난…… 마법…… 같은 거 써 본 적이 없는데?”

현대인이 입으로 내뱉기에는 굉장히 어색한 문장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진 클레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몰리는 신나게 설명했다.

“가르쳐 준 마녀가 없어서 그래. 보통 마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침을 받거든.”

어렸을 때부터?

그 말에 클레어의 심장이 조금 강하게 뛰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다면 그건 가족이라는 거고, 그렇다면 가족도 마법을 쓴다는 건데…….

“그럼 내,”

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어머니도 마녀였을까?”

어머니.

이 단어를 입에 올려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갓난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클레어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바라고 있던 그것.

가족.

어쩌면.

어쩌면 마녀라서, 자신이나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어떠한 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보육원에 맡긴 거라면, 클레어는 자신이 ‘마녀’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실을 아주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걸?”

몰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말했다.

클레어의 머릿속으로 몰리의 말이 아주 선명하게 들어왔다.

“마녀는 적이 많으니까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라.”

아…….

그랬구나. 그랬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거야.

……내가 싫어서 버린 게 아니야.

클레어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것이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아서 참으려는데…… 참아지지가 않았다. 눈물이 터졌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눈물은 넘쳐흘러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래서 클레어는 그냥 울기로 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니까.

클레어는 두 손으로 찻잔을 꼭 쥐고 울기 시작했다.

클레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몰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싸아아- 언제부턴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근데…… 적이 많다는 건 무슨 이야기야?”

조금 시간이 지나.

이렇게 울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클레어가 안경을 벗고 눈물로 가득한 얼굴을 닦으며 물었다.

“마녀 말고 다른 존재들이 있어.”

조용히 클레어를 기다려 준 몰리가 말했다.

“다른 존재들?”

“응. 악마도 있고 천사도 있고, 마법사도 있고 다른 세계의 존재들도 있지. 크툴루라고 하던가? 그리고 뱀파이어랑 아까 봤던 녀석 같은 늑대인간도 있어.”

악마라니 천사라니.

다시 한번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클레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몰리는 신나게 이야기했다.

“근데 옛날부터 사이가 안 좋아. 걔들이 마녀가 가진 힘을 뺏으려고 하거든. 우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종종 그런 사건이 생겨서, 마주치기만 하면 공격부터 할 정도야.”

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클레어는 무언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마녀들은 보통 혼자서 살거든. 많아 봤자 두세 명 정도? 그것도 어린 마녀가 있을 때지만. 근데 다른 녀석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닌단 말이야? 그래서 마녀랑 다른 놈들이 싸울 때면 매번 1 대 다수로 싸울 수밖에 없어서 마녀가 불리하거든. 그래서 집에 마법을 걸어두는 거야.”

아.

집에 걸린 마법 하니까 떠올랐다.

“아까 그 남자가…… 뭐라고?”

“응? 내가 말 안 했나? 늑대인간이야.”

늑대인간.

늑대인간이란다.

대문 앞에서 자신을 부르던 남자를 떠올린 클레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코가 좋아서 그런지 클레어 네 냄새를 맡았나 봐.”

“내 냄새?”

늑대, 늑대인간…… 하고 중얼거리던 클레어가 슬쩍 냄새를 맡았다. 나 냄새나나?

“그 냄새 말고.”

몰리가 히히 웃었다.

“마녀의 힘에서 나오는 존재감이야.”

“마녀의 힘?”

“응. 마법을 쓸 수 있는 힘이야. 힘이 강할수록 존재감도 강해져. 늑대인간들은 후각이 좋아서 냄새로 판단하고, 마녀는 눈으로 봐. 클레어도 조금만 연습한 후에, 마녀나 다른 종족을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마녀의 힘이라.

클레어는 정말 그런 게 자신에게 있나 싶어,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또, 이걸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어!”

마치 자신의 능력을 뽐내듯, 몰리가 재잘거렸다.

“예를 들면, 아까 봤던 늑대인간 녀석이 성체 된 지 얼마 안 된 어린 나이라는 거나,”

어린 나이란 말에, 보육원 아이들의 믿음직한 큰언니, 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가진 힘이 다른 늑대인간들에 비해 약하다는 거나.”

집을 지키는 불꽃이 일렁이며 남자의 몸에 상처를 남기던 것이 떠올랐다.

“또 무리 없이 혼자 다니는 것 같다, 라는 정보 말이야.”

몰리의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희한해. 늑대인간들은 보통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거든. 아무리 적어도 2명은 같이 다니는데 말이야. 게다가 어린 녀석들은 더 꽁꽁 숨겨놓는데 걘 왜 혼자 다니나 몰라?”

그말에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하고 외치던 남자의 초조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클레어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쏴아아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있으려나?

아니, 돌아갔겠지.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그 똥개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이 집에 대해서…….”

“아!”

클레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몰리가 눈을 깜빡이며 그런 클레어를 올려다보았다.

“짐!”

현관 옆에 놔둔 짐.

몰리의 이야기를 듣느라, 깜빡 잊고 있었다!

‘현관에 지붕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면 클레어는 현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몰리가 테이블에서 내려와 클레어의 뒤를 쫓아갔다.

“뭐 샀는데?”

“테이블보랑 커튼을 만들 천이랑 설탕 같은 조미료들이랑 이것저것!”

“설탕 녹으면 큰일이겠다!”

물론 포장이 잘 되어 있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클레어는 더욱 빠르게 달려가 자물쇠를 풀고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멈추었다.

대문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빗물에 흠뻑 젖어 덜덜 떨며.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검은 머리칼이 마치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 나왔네.”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변한 얼굴의 남자는 클레어와 눈이 마주치자 안도하듯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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