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39화
“자. 이리 와, 릴리.”
미야옹-
릴리의 보호자가 간식을 들고 있는 손을 흔들자, 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간식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릴리를 카메라와 사람들의 시선이 쫓았다. 서준과 헤일리 로지도 그랬다.
담벼락 위.
릴리가 앞으로 솜방망이 같은 발 내밀자 오오, 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또 한 발을 앞으로 내밀자 다시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편집할 거라는 윌마 감독의 말에, 모두 릴리의 귀여움에 저절로 나오는 소리를 참지 않았다. 물론, 릴리가 놀랄까 봐 큰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릴리에게는 아주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먕!
사람들의 감탄을 알아들은 듯한 릴리는 담벼락 위에서 캣워킹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듯이 우아하게 걸었다.
“어쩐지 고개가 더 올라간 것 같지 않아?”
“저렇게 걷는 게 좋나 봐. 귀여워!”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앞으로 걷는 장면은 릴리한테 맡기면 될 것 같군요.”
“그러게요.”
윌마 감독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릴리의 첫 촬영이 순조롭게 끝나고,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층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마법에 튕겨 나와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이었다.
“구르는 것도 가능하려나?”
“안 되면 CG로 넣으면 되지.”
스태프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릴리의 촬영을 바라보았다.
보호자는 릴리를 초록색 크로마키가 깔린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집에서 연습한 대로 간식을 미끼로 데굴데굴 구르게 했다.
미야-
보호자의 손에 들린 간식을 바라보며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릴리에, 다들 소리를 죽여 웃음을 터뜨렸다. 보송보송한 검은색 솜뭉탱이가 굴러가는 것 같았다.
“귀여워!”
헤일리 로지가 발을 동동 굴렀다.
윌마 감독은 헤일리 로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번 더 촬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크로마키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장애물을 하나 가지고 와서 릴리가 구르는 방향 끝에 세웠다.
“구르다가 이곳에서 멈춰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릴리.”
보호자가 릴리를 부르자 찹찹, 하고 간식을 먹고 있던 릴리가 고개를 들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아니면 간식이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 작아서 그런가 반응이 빨랐다.
“한 번만 더 구르자.”
먕!
보호자가 들고 있는 간식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릴리가 힘차게 울고는 보호자의 손짓에 따라 다시금 몸을 둥글게 말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다가 윌마 감독이 설치해 놓은 장애물에 가볍게 부딪히고는,
묭!
조금 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벽이 된 장애물에 두 뒷다리를 쭉 뻗어 기대고 머리가 아래로 기울어진, 뒤집힌 자세로.
솜털이 보송보송한 배도 보였다.
먀옹?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고, 왜 다들 거꾸로 있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릴리를 보며 서준과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촬영은 점심을 먹은 후(릴리도 케이지 안에서 보호자가 준 사료를 든든히 먹었다.)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럼 다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준. 잘 부탁합니다.”
“네. 걱정 마세요.”
윌마 감독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다음 장면은 서준과 릴리가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목소리는 나중에 ‘검은고양이 몰리’ 역에 캐스팅된 배우가 녹음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서준은 미야옹 대는 릴리를 보며 혼자서 타이밍을 맞춰 연기해야 했다.
‘내가 타이밍을 맞추지 않더라도, 나중에 편집을 잘 자르고 붙이겠지만.’
그래도 서준이 대사가 들어갈 적당한 타이밍을 맞춰주면, 장면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날 터였다.
서준은 담 위에 서 있는 릴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촬영 잘 부탁해. 릴리.”
미야옹!
릴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 * *
“레디, 액션!”
“넌 뭐야.”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가로수에 부딪힌 검은고양이가, 남자의 말에 벌떡 일어나 타다닥- 벽돌의 틈새를 밟고 다시 담벼락 위에 섰다.
검은고양이는 들었다.
남자가 ‘마녀’라고 말하는 것을.
검은고양이의 노란색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검은고양이의 경계에도 남자는 즐거운 듯 웃다가 입을 열었다.
“넌 저 마녀의 고양이야?”
“내가 먼저 물었어.”
킁킁.
새까맣고 작은 코가 움찔댔다.
남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때, 아주 연하디연하지만, 익숙하다 못해 진저리가 나는 냄새가 검은고양이의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게 뭐더라. 어디서 맡아봤는데…….
하고 미간을 찌푸리고 기억을 더듬던 검은고양이가 펄쩍 뛰었다.
“너! 너!”
귀 끝부터 꼬리 끝까지, 온몸의 털이 삐죽삐죽 섰다.
“늑대잖아! 늑대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오, 냄새가 나? 일부러 다른 냄새로 가렸는데…….”
태평한 얼굴로 지저분한 냄새로 가득한 옷의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은 남자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너 좀 한다?”
검은고양이가 꽥 소리를 질렀다.
“왜 여기 있는 거냐니까?!”
“마녀를 따라왔지.”
“마, 마녀라니! 여긴 그런 거 없어!”
남자가 팔딱팔딱 뛰는 검은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그에 검은고양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녀의 고양이가 여기 있는데, 마녀가 없다고?”
“으으으.”
검은고양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담벼락 위를 돌아다니다가 발을 멈추었다.
“하여튼 빨리 꺼져!”
“싫은데? 난 마녀한테 볼일이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는 남자에, 검은고양이가 입을 쩌억 벌렸다.
“마녀한테? 늑대가?”
“그런데?”
“이 똥개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구보고 똥개라는 거야!”
느긋하게 검은고양이의 말을 받아치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똥개 보고 똥개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어!”
검은고양이가 펄쩍펄쩍 뛰었다.
“어떤 마녀가 늑대인간을 만나! 빨리 사라져!”
“볼일이 있다니까! 이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고양이야!”
“한 입 거리?! 한 입 거리이?! 이 냄새 나는 똥개가!?”
“똥개가 아니라 늑대라고!”
“늑대나 똥개나!”
으르르릉!
캬아악!
서로를 보며 으르렁대느라 늑대와 고양이는 미처 자신을 바라보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현관문 앞.
빗물에 홀딱 젖은 클레어가 입을 쩍 벌리고 대문 앞에서 싸우고 있는 남자와 검은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고, 고양이가 말을……!”
고양이가 말을 한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가 고양이랑 싸우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숲이었던 담 밖 풍경도, 어느새 해가 쨍쨍한 도시로 바뀌어 있었다.
“하…….”
클레어는 몸을 돌려 현관문에 이마를 박았다.
지금까지의 일이 전부 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비를 맞아 홀딱 젖은 옷의 차가운 느낌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원장선생님…….”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어?!
그때, 클레어의 등장을 남자와 검은고양이가 알아차렸다.
“마ㄴ……!”
“클레어!”
남자보다도 빨리 검은고양이가 소리를 높여 클레어를 불렀다.
클레어의 몸을 움찔 떨었다.
세상에.
말하는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클레어! 나 좀 들여보내 줘!”
뒤돌아서 있는 클레어를 부르며, 검은고양이가 허공에 찰싹 달라붙었다.
금방이라도 담 위에서 뛰어내려 마당으로 들어올 것 같았는데, 검은고양이는 투명한 벽에 막힌 듯 허공에 떠 있었다. 배의 털도 납작해져 있었다.
“너한테 이 집을 준 할머니 기억하지?”
클레어는 번뜩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 있는 건지 붙어 있는 건지 모를 검은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때 같이 있었던 고양이야!”
고양이가 하늘에 떠 있어…….
아득해지는 정신을 꽉 붙잡은 클레어가 기억을 더듬었다.
할머니와 함께 있던 검은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쓰다듬었던 기억도 있다.
아마 이름이…….
“……몰리?”
“맞아!”
검은고양이, 몰리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나 좀 들여보내줘!”
“한 입 거리! 치사하게 혼자 들어가는 거야?”
“또 한 입 거리라고 했어! 이 똥개가!”
왁왁대며 다시 싸우려는 남자와 고양이에 클레어가 먼저 말을 했다.
“왜, 왜 못 들어오는데? 그냥 들어오면 되잖아.”
담과 대문이 있기는 하지만, 위는 텅 비어 있었다. 고양이라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다.
“못 들어가. 막혔어. 이 집의 주인인 클레어 네가 허락을 해줘야 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는 몰리에 클레어가 고민했다.
말하는 고양이나 말하는 고양이랑 싸우는 남자나, 둘 다 의심스럽고 이상했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큰 남자보다는 조그마한 고양이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제압하기 쉬울 것 같았다.
물론 이대로 무시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클레어는 이 집에 대한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 집에서 가게를 내고 장사를 할 생각인데, 손님이 있을 때 집 밖이 아까 봤던 비가 오던 숲으로 변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집! 내 가게!
각오로 눈을 빛낸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생각하면 돼. 내가 집에 들어가는 걸 허락한다고.”
밝아진 몰리의 목소리에, 클레어는 잠시 ‘이게 잘하는 짓인가.’ 하고 생각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몰리가 집에 들어오는 걸 허락합니다…….”
정말 되나? 싶은 마음으로 말하는데, 클레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공에 떠 있던 몰리가 슉- 하고 마당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몰리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듯, 클레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타닥! 하고 멋지게 마당에 착지했다.
“클레어 최고!”
몰리가 냥냥 울며 클레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상한 고양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 클레어는 닿지 않도록 스윽- 하고 비켜섰다.
히잉.
몰리의 귀와 꼬리가 축 내려갔다.
“잠깐만, 마녀! 나는?”
마녀의 집에 못 들어가는 마녀의 고양이라니.
자신의 집에 못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상한 상황에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남자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에 클레어가 데굴 눈을 굴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말하는 고양이에 너무 놀라 이제서야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남자는 무척이나 잘생겼는데, 조금 창백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은 흙먼지로 지저분하고 낡은 상태였다.
‘저 옷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마녀라고…….
클레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 길에서 부딪힌 남자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놀란 클레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가 말했다.
“마녀. 나도 들어가게 해줘. 너한테 의뢰할 게 있어.”
“안돼! 저 똥개는 안돼!”
똥개라는 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들이면 안 된다는 말엔 클레어도 동의했다.
“잠깐!”
그런 클레어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남자가 다급하게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투명한 벽이 화르륵! 불꽃을 일으키며 남자의 손에 상처를 입혔다. 그저 통과하는 것만 막았던 몰리와는 전혀 다른,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어?!”
그 모습에 놀란 클레어에게, 남자를 바라보며 메롱- 하고 분홍색 혀를 내밀고 있던 몰리가 설명했다.
“늑대라서 그래. 이 집은 적들이 못 들어오도록 마법으로 만든 결계가 둘러싸고 있거든. 나 같은 마녀의 고양이나 일반적인 동물은 괜찮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저 정체 모를 남자가 대문을 넘어오지 못할 거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클레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기다려!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봐!”
그런 클레어의 모습에 급해진 남자가 결계에 가까이 다가가 두드리자, 화르륵! 불꽃들이 크게 일렁이며 남자를 위협했다.
‘짐은…….’
애써 그런 남자의 모습을 외면한 클레어는 현관 앞에 쌓여 있는 짐을 보고 나중에 남자가 사라지면 가지러 오자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고양이 몰리도 클레어를 따라 냉큼 닫히는 문 사이로 들어왔다.
“마녀! 젠장! 잠깐이면 돼!”
등 뒤로 들리던 남자의 초조한 목소리는 현관문이 닫히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아.”
현관문에 등을 기댄 클레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남자에, 비가 오던 숲에, 말하는 고양이에, 불꽃을 만들어내는 집까지.
오늘 하루가 너무 길었다.
“클레어!”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부르는 검은고양이에, 클레어는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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