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38화 (83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38화

“컷! 오케이!”

첫 촬영부터 원 테이크에 끝났다.

“바로 바스트 샷 촬영하겠습니다!”

물론 아직 바스트 샷과 클로즈업 샷 등 남은 촬영이 있긴 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촬영을 보고 있던 뉴 에이지 담당자는 소설 [이클립스]에서 그대로 뽑아낸 듯한 풍경에 짝짝짝,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이걸 작가님이 보셔야 했는데!’

딱 봐도 수상하고 꺼림칙한 서준 리의 연기도, 깜짝 놀라 도망치는 헤일리 로지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자신 같아도 처음 본 사람이 ‘너, 마법사군.’ 또는 ‘너, 늑대인간이군.’하면 ??? 하고 물음표를 띄우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것 같았다.

‘예전 이클립스의 촬영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뭐,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첫 촬영부터 엉망진창이었다고 하지만.

뉴 에이지 담당자가 환하게 웃었다.

완벽한 출발이었다.

* * *

“다음 세트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주인공들의 굉장히 인상 깊은 첫 만남을 촬영한 후.

두 주연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이 다음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다음 세트장은 실내였는데, 바로 여주인공, 클레어의 집과 그 앞 인도와 차도의 일부분이었다.

‘아까도 봤지만…….’

서준이 고개를 돌려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초록색 크로마키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 이층집이 한 채 있었다.

그것도 앞면만.

뒤쪽은 텅 비어 있었다.

촬영을 위해 집의 앞부분만 만든 것이었는데, (집 안 촬영은 다른 세트장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게 꼭 진짜 있는 집의 앞부분만 뜯어 온 것 같았다.

서준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어디서 뜯어 온 건 아니죠, 감독님?”

그말에 헤일리 로지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윌마 감독이라면 ‘현실감! 사용감!’ 하면서 진짜로 뜯어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하. 아닙니다. 뉴 에이지 직원들도 그 질문을 하던데, 똑같이 물으시네요.”

도대체 사람들 사이의 내 이미지는 어떤 걸까?

윌마 감독은 데굴 눈을 굴렸다.

윌마 감독의 말에 서준과 헤일리 로지가 웃고 말았다.

울프독이며, 늑대 귀 머리띠며.

윌마 감독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었던 영화제작사 뉴 에이지도 자신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감독님. 릴리와 보호자분 왔습니다.”

“그래?”

스태프의 말에 윌마 감독은 물론이고, 서준과 헤일리 로지도 반가운 얼굴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낯익은 얼굴의 보호자가 케이지를 들고 스태프와 함께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출입구랑 창문 다 닫고. 어디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지 없는지 다시 살펴봐.”

“예.”

촬영 중 놀란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윌마 감독이 스태프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사이,

“어서 오세요!”

서준과 헤일리 로지는 현장이 낯선 보호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에 조금 굳어 있던 보호자가 편안해진 얼굴로 인사했다.

“릴리도 잘 지냈어?”

헤일리 로지가 헤헤 웃는 얼굴로 케이지 안을 바라보았다.

미야옹!

말이 많은 덕분에 오늘 촬영에 배정된 릴리가 대답하듯 씩씩하게 울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릴리의 컨디션이 좋나 보네요.”

“하.하. 좋다 못해 새벽부터 너무 쌩쌩해서…….”

릴리가 새벽부터 뭘 어떻게 했는지.

조금 해탈한 듯한 보호자의 얼굴에 서준과 헤일리 로지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릴리를 꺼내도 괜찮겠습니까? 지금부터 촬영장에 적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네. 괜찮을 거예요.”

윌마 감독의 물음에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케이지를 열어 검은고양이 릴리를 꺼냈다.

오……!

귀여운 릴리의 등장에 촬영 준비의 마무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스태프들이 걸음까지 멈추고 조용히 탄성을 흘렸다. 헤일리 로지도 입을 틀어막았다.

서준은 따뜻한 선기를 흘러보내 릴리를 감쌌다.

케이지를 나올 때부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릴리의 모습을 보니 금세 촬영장에 적응할 것 같았지만, 릴리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덕분인지.

가장 익숙한 보호자의 품에 안겨, 낯선 물건들이 가득 있고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촬영장을 둘러보던 릴리가 마치 액체처럼 보호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가까운 테이블에 올라, 먕! 먕! 울었다.

“으아! 귀여워! 뭐라고 하는 걸까?”

헤일리 로지의 물음에, 서준이 고양이들과의 촬영을 한결 편하게 하기 위해 생의 도서관에서 찾아온 능력을 발동했다.

[(선)캣시의 수염-하급-가 발동됩니다.]

[(선)캣시의 수염-하급]

고양잇과 존재의 생각을 조금 읽을 수 있습니다.

고양잇과 존재에게 사용자의 생각을 조금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릴리의 생각을 읽었다.

전해지는 릴리의 생각에, 서준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자기를 보라는 게 아닐까요?”

그에 보호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릴리가 말도 많고 관심도 많이 받고 싶어 하는 성격이거든요. 낯선 장소에서도 적응만 하면 저렇게 자길 좀 보라고 울죠. 오늘은 적응이 좀 빠른 것 같지만 말입니다.”

그말에 헤일리 로지와 스태프들이 고개를 돌렸다.

먕!

날 좀 봐!

테이블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네 발로 서 있는 릴리가 보였다. 쫑긋 선 귀부터 솜방망이 같은 발, 그리고 꼬리까지 귀엽지 않은 곳이 없었다.

으아아…….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뉴 이클립스] 촬영장에 마스코트가 생길 것 같았다.

* * *

“로지! 촬영 준비할게요!”

“네.”

하고 대답한 헤일리 로지가 아쉬운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의 품 안에 있던 릴리가 먕! 하고 울었다.

“가기 싫다아…….”

“하하. 얼른 다녀오세요.”

“그래…….”

어깨를 축 늘어뜨린 헤일리 로지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서준은 릴리를 다시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찐한 시선이 느껴졌다. 릴리의 보호자였다.

“제가 주인인데 말이죠.”

“하하.”

테이블에서 내려온 후부터 계속 서준의 품에만 있는 릴리였다.

서준이 웃으며 릴리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릴리가 이렇게 말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함께 사는 보호자가 대꾸를 잘해주니, 고양이도 수다쟁이가 될 수밖에.

그런데 한 가지 웃긴 점은 릴리와 보호자의 대화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릴리. 너 밥 주는 건 나야.”

미야옹! (여기 신기한 거 짱 많아!)

“준이 그렇게 좋아?”

먕! 먕! (오! 저기 올라가면 재미있겠다!)

“이 배신자.”

미양! (올라가 볼까!)

휙- 하고 뛰쳐나가려는 릴리를 붙잡은 서준의 어깨가 웃음을 참는 듯 부들부들 떨렸다.

* * *

“레디, 액션!”

무거운 짐을 들고 열심히 도망치던 클레어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다지 오래 달리지는 않았지만, 길을 빙글빙글 돌아왔으니 따라오지는 못할 것 같았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클레어에게 ‘너, 마녀군.’이라는 말을 꺼내는, 조금 이상한 사람과 대화하라는 건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에휴.

깊은 한숨을 내쉰 클레어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집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

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클레어의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붉은 벽돌과 담쟁이덩굴로 이루어진 담과 어깨보다 살짝 낮은 크기의 나무로 만든 대문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고, 큰 걸음으로 두 걸음 정도 되는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한적한 시골에서나 볼 법한, 조금 오래되어 보이고 낡았지만 깨끗하고 아늑한 이층집.

이곳이 바로 클레어의 집이었다.

클레어의 집은 특이했다.

집만 보면 딱히 특이할 구석은 없었지만, 이 이층집이 있는 곳을 보면 확실히 특이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도시.

높은 건물들이 빈틈없이 바짝 붙어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클레어의 집, 바로 양옆에 있는 건물도 5층, 6층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그런 네모 반듯한 건물들 사이에 있는, 조금 먼 주택가에 있을 법한 마당 딸린 이층집은 확실히 특이하고 눈에 띄었다.

“차 없는 사람에겐 딱 좋은 곳이지!”

차를 살 돈이 없는 클레어에게는 딱 좋은 위치의 집이었다.

클레어는 나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돌로 만든 작은 길을 몇 걸음 걸으면 계단이 나타나고, 그 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현관문이 나온다.

“열쇠가…….”

클레어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기 위해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곳저곳 흠집이 난 짐을 보니, 아까 부딪혔던 남자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이상한 남자였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앗.

쓰러질 뻔한 짐을 다시 바로 세워둔 클레어는 열쇠를 찾으며 중얼거렸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휴대폰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하고 통화를 하고, 엄청 비싸긴 하지만 우주여행도 하는 시대인데 말이야.”

담벼락 위로 새까만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지만 뒤돌아 서 있던 클레어는 눈치채지 못했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은 클레어가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으며 입을 열었다.

“마녀라니!”

-옭!

“응?”

이상한 소리에, 클레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그래.

비가 내리는 건 이해한다. 하늘이 변덕을 부려, 갑자기 내릴 수도 있는 거니까. 평소라면 타이밍이 좋았다고 좋아했겠지.

하지만.

차들이 달리고 건물들이 우뚝 솟아있던 도시가,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숲이 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여, 여긴 어디야?”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클레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담을 넘어, 넓은 풀밭이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울창한 나무가 가득했다. 여기도 나무, 저기도 나무.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내, 내가 기절했나?”

사실은 아까 남자와 부딪히고 그대로 기절한 게 아닐까.

그래, 분명 ‘너, 마녀군.’ 하고 물었던 남자도 자신이 기절한 동안 꾼 꿈일 터였다.

“기절한 게 아니라면, 꿈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 그래, 맞아.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클레어.”

쏴아아아-

하지만 꿈이라기엔 소리가 너무 선명했다. 비가 내리면서 낮아진 온도도 살갗으로 느껴졌다.

“……꿈이겠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 클레어는 비를 막아주고 있던 현관 지붕 너머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물방울들이 클레어의 손 위로 떨어졌다.

오싹-

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물방울은 차가웠다.

“진짜…… 비야?”

클레어는 떨리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 * *

움찔움찔.

옅게 남은 냄새를 맡으며,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는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어느 5층 건물의 1층 옷가게 옆.

붉은 벽돌과 담쟁이덩굴로 만들어진 담이 보였다. 그리고 그 담 위를 걷는 검은 고양이도.

검은 고양이.

남자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담 안쪽을 살펴보니, 이층집 현관문 앞에 아까 그 여자가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열쇠로 열려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보통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남자도 처음부터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법한 미세한 힘이 이층집에서 반짝,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미야옭!

담 위를 우아하게 걷고 있던 검은 고양이가 마당 안으로 뛰어들려다가, 그대로 튕겨 나와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현관문만 바라보았다.

텅 빈 현관문 앞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여자와 짐이 그대로 사라진 것이었다.

“뭐야.”

남자가 손으로 낡은 후드를 들어 올렸다.

밝은 햇빛 아래, 후드 속에 숨겨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거칠어보이는 검은 머리카락,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오뚝한 코, 시원하게 올라간 입꼬리.

조금 창백해 보이지만, 누가 봐도 잘생긴 외모의 남자가 유쾌하게 웃었다.

“마녀 맞잖아.”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