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34화
오늘도 열심히, 즐거운 훈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최태우에게서 내일 아침(한국 시각으로는 자정)에 영상이 업로드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일 때 찍은 거 말이죠?”
“그래.”
현수막 앞에서 찍은 인증사진은 그냥 올려도 돼서 생일 당일에 올렸지만, 최태우가 간간이 찍은 영상은 자막과 배경음악 등의 편집이 필요해서 지금에서야 업로드하게 되었다.
“태우 형, 저 먼저 봐도 돼요?”
“당연히 되지. 지금 볼래?”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태우가 휴대폰을 꺼내 TV와 연결했다. 그리고는 1팀에서 받은 편집 영상을 바로 TV에서 재생시켰다.
화면에 서준이 나타났다.
편한 옷을 입은 서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올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곧 화면이 어두워졌다.
새하얀 달력과 시계나 나타났다.
[3월 9일/ 11시 59분]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분침과 시침이 크게 움직였다. 달력도 함께 숫자를 바꾸었다.
[3월 10일/ 12시]
그와 동시에 어두운 화면 위를, 새하얀 무언가가 뒤덮었다.
-서준아! 생일 축하해!
새싹들의 메시지였다.
그렇게 시작한 영상은, [몇 달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과거로 돌아가 새싹들이 서준을 위한 생일 축하 이벤트(현수막)를 어떻게 진행했는지부터 건물에 설치되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담기 위해 홈페이지를 새로 하나 만들고, 각 나라 새싹들이 나쁜 말은 없는지 매의 눈으로 검토하고, 새싹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별 사진들을 고르기 위해 신중하게 투표하고, 축하 메시지와 사진이 잘 보이게 몇 번이고 편집하고, 각 나라마다 어느 건물에다가 설치할지 의논하고, 허락받고, 설치하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새싹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 것 같았다.
[LA 오전 8시/ 한국 오전 12시]
자막이 뜨며 다시 서준이 나타났다.
그저 소파에 가만히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것뿐인데도,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잘 느껴졌다.
그건 뒤의 영상에서도 그랬다.
커다란 현수막을 보며 와아! 감탄하는 모습, 그 사진을 이루고 있는 도트에 새싹들의 메시지가 있다는 알고 입을 쩍 벌리는 모습, 그리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는 모습까지.
‘이렇게 보니까 좀 쑥스럽긴 하네.’
바닥에 있는 메시지부터 머리 위 높은 곳에 있는 메시지까지 읽으려고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최태우가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장면은 너무 좋아서 안 뺐대. 편지나 말보다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잘 다가올 때가 있잖아. 그게 이 장면 같았다고 하더라고. 물론, 민망하다면 편집할 수도 있어.”
“괜찮아요.”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생일 잊어버린 것도 제 입으로 말했는데, 더 민망할 게 있겠어요?”
하하.
그건 그렇다.
“그리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편지나 말로도 충분히 전해지겠지만, 가끔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 더 잘 느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마치 ‘사랑해’ 하고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시청자들에게 인상 깊게 남는 것처럼 말이다.
“저 장면들을 보면, 제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새싹분들도 아시겠죠.”
서준은 자신이 정말정말 행복했다는 것을 새싹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럼 이대로 업로드할게.”
“네.”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영상이 공개되고.
[새싹부터]와 너튜브 채널[JUN]의 댓글창이 순식간에 새싹들의 눈물로 바다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윌마 에반스 감독은 상냥하면서도 조금 엉뚱한 사람인 것 같았다.
배우들이 늑대인간 연기를 한다고 울프독들을 데려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게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배우의 군대 시절 별명까지 알 정도로 조사를 하고.
‘내 생일 때 헤일리를 데려온 것도 그렇겠지.’
아마 늦게 합류할 헤일리 로지와, 서준과 배우들의 친해지길 바라고 데려온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액션 트레이닝 센터 같은 공적인 공간보다는 생일 파티 같은 사적인 공간이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생각대로 제일 늦게 합류한 헤일리 로지였지만, 서준이나 다른 배우들과도 편하게 대화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었다.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울프독 만난 거요.”
헤일리 로지의 말에, 점심을 먹고 있던 서준과 배우들이 고개를 들었다.
“감독님이 늑대는 CG로 만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늑대가 나오는 장면들은 모두 초록색 크로마키로 만들어진 인형을 보면서 연기해야 한다고요.”
“그랬지.”
그에 서준과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늑대 모양의 인형도 아니고, 그냥 동그란 공 같은 거였잖아요. 처음 봤을 땐, 이걸 보면서 연기하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나도 그랬어.”
CG로 시작해서 CG로 끝나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찍으면서 크로마키에 익숙해진 서준에게는 별일 아니었지만, 배경을 제외하고는 크로마키 연기하는 일이 없었던 헤일리 로지나 몇몇 배우들에게는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조금 걱정했거든요. 늑대를 만져본 일도 없고, 직접 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크로마키 인형을 보고 연기하나 싶어서요.”
그런데 타이밍 좋게, 윌마 감독이 울프독들을 데리고 왔다. 늑대도.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니까 어떤 느낌으로 연기해야 할지 알 것 같더라고요.”
헤일리 로지의 말에 공감하듯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날 이후에 늑대가 된 꿈도 꿔요.”
“어?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저도요!”
“와. 확실히 인상 깊게 남긴 했나 보네.”
서로 놀란 표정으로 늑대가 되는 꿈을 꾼다고 말하는 배우들에, 점심을 먹고 있던 서준이 데굴 눈을 굴렸다.
당연하게도 그건 서준의 능력이었다.
늑대로 태어났던 삶의 책들 중에서 찾다가 적당한 게 없어서 포기하고 다른 구역에서 찾은 능력.
[(선)드리머의 꿈여행-중급]
행복한 꿈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드리머입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상자들에게, 사용자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꿈에서 깨어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꿈:
넒은 우주, 수명이 다해가는 행성이 하나 있었다.
탈출용 우주선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주민들은 행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다.
하지만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주민들은 인공지능 하나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전생의 자신, 인공지능 드리머였다.
드리머는 주민들의 바람대로 행복한 꿈들을 만들어주었다.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아주아주 행복한 꿈을.
‘몰입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긴 하지만, 강하게 쓸 수는 없지.’
꿈 속의 삶이 너무 강렬해서, 호접지몽처럼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초원을 달리는 늑대에게 너무 물들어 ‘자연이 좋아!’ 하고 연기를 그만두고 자연인이 될지도 모르고.
‘그건 안 되지.’
얼마 후면 잊을 정도가 적당했다.
[(선)드리머의 꿈여행-중급이 발동합니다.]
[[(선)드리머의 꿈여행-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드리머의 꿈여행(하급)이 발동합니다.]
[(선)드리머의 꿈여행-하급]
행복한 꿈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드리머입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상자들에게, 사용자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꿈에서 깨면 희미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꿈: 늑대가 되는 꿈
그렇게 3월 초순.
서준은 능력의 등급을 낮춰 배우들에게 사용했고, 늑대가 되는 꿈을 꾼 배우들은 잊은 듯하면서도 어쩐지 데자뷔를 느끼면서 훈련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며칠 전 울프독과의 만났던 것이 계기가 된 것인지, 더욱 오래 기억에 남게 된 것 같았다.
“저 늑대인간 연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어린 브라이언 구델의 말에 다른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감독님 덕분이지.”
“하긴, 어떤 감독이 배우들이 늑대인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울프독을 데려오겠어.”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왠지 윌마 감독님, 남극이 배경인 영화를 찍는데 전부 CG로 처리한다고 하면, 커다란 아이스링크 장을 빌려서 배우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할 것 같지 않아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저절로 아이스링크 장에서 서서 눈을 끔벅이고 서 있을 배우들이 떠올라,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 초능력자나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면 마술사를 데려오고.”
“바닷속이 배경이면 어디 잠수할 수 있는 곳에 데려갈 것 같죠.”
그렇게, 상냥하지만 어딘가 엉뚱한 윌마 에반스 감독이 이번에도 무언가를 가져왔다.
“자! 다들 모여보세요.”
한번 겪어봐서 다들 익숙하게 윌마 감독에게로 향했다.
윌마 감독은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궁금해하는 서준과 배우들을 보며 환하게 웃던 윌마 감독이 상자를 열었다.
서준과 배우들의 눈을 동그랗게 변했다.
늑대 귀였다.
얼마 전에 실물로 봤던, 털이 복슬복슬하고 뾰족하게 선 늑대 귀가 거기에 있었다.
“특수제작한 늑대 귀입니다.”
윌마 감독이 상자 안에 든 늑대 귀를 꺼내 들었다.
얼마전 서준이 팬미팅에서 썼던 강아지귀 머리띠와 비슷했다. 물론, 쫑긋 선 늑대 귀는 장난감 강아지귀보다 훨씬 실물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감촉도 그렇고.’
윌마 감독이 내민 늑대 귀를 만지작거리며 서준이 생각했다. 인조모피 같은데 잘 만든 것 같았다.
“이걸 쓰고 연기하는 건가요?”
서준의 물음에 윌마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네?”
의미 모를 말에 서준과 배우들이 눈을 깜빡였다. 윌마 감독이 설명해 주었다.
“뇌파로 움직이는 귀거든요.”
……오!
서준과 배우들이 다시 늑대 귀를 내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들에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나 이거 너튜브로 본 적 있는데, 움직임이 되게 엉성하던데?”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댄 켄드릭에,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서준과 배우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아쉬움과 걱정으로 물들었다.
“정말요?”
“잠시만.”
댄 켄드릭이 휴대폰을 꺼내 너튜브 영상을 검색했다. 서준과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아…….
댄 켄드릭의 말대로 뇌파로 움직이는 귀는 많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이걸 촬영 때 쓰나요, 감독님?”
조금 실망한 듯한 배우들의 눈빛에 윌마 감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특수제작한 귀라고 했잖습니까. 시중에 판매되는 것과 달리, 최대한 공을 들여 만든 물건입니다. 아주 많은 돈과 시간이 들었죠.”
어쩐지 밝은 웃는 윌마 감독의 뒤로, 울상을 짓는 담당자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겠죠? 한번 써보세요, 준.”
윌마 감독의 말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배우들에, 서준이 늑대 귀 머리띠를 들어 머리에 썼다.
확실히 기계다 보니, 솜과 천으로 만들어진 강아지귀 머리띠보다 무게가 있었다. 그렇다고 오래 쓰고 있으면 목이 아플 정도로 무거운 무게도 아니었다.
‘무게도 신경 쓰신 것 같네.’
……이걸 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서준은 자신의 머리 위에 솟아난 늑대 귀를 만지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감정을 이끌어내 보세요, 준.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감정에 따라 나오는 뇌파에 귀가 반응할 겁니다.”
윌마 감독이 서준에게 거울을 건네주며 답했다. 준비성이 철저한 윌마 감독답게 거울까지 들고 온 것이었다.
서준이 거울 속 늑대 귀를 바라보았다. 윌마 감독과 배우들도 서준의 머리 위에 뾰족하게 솟은 늑대 귀를 바라보았다.
‘감정. 감정이라.’
연기가 천직인 서준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 감정으로 뇌파와 연결된 기계를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지만.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은 서준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움찔-
“움직인다!”
진짜 늑대 귀가 움직였다.
놀라워하는 배우들과 달리, 윌마 감독은 조용히 귀를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건 윌마 감독도 해보았다.
그 이상이 문제였다.
그때, 쫑긋 세워져 있던 늑대 귀가 천천히 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힘이 빠진 듯, 기운이 없는 듯 아래로 축 처졌다.
“……오.”
배우들과 윌마 감독의 머릿속에 며칠 전의 풍경이 떠올랐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던 어린 늑대의 귀가 딱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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