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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33화 (83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33화

“그런데,”

웃던 배우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연기에 도움이 되기엔 애들이 좀…… 작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 중형견만 한 크기의 체코슬로바키아 울프독들을 보고 늑대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건 조금 많이 힘든 일이었다.

“늑대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늑대인지 개인지도 모르겠고요.”

모두의 시선이 서준의 손길에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진짜 늑대에게로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세 마리의 울프독에게도.

“울프독들이 더 의젓해 보이네.”

사람의 손길에 행복해하는 어린 늑대의 모습은, 개보다 더 개 같았다.

그에 윌마 에반스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메인 이벤트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서준과 배우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낫겠죠? 미리 말씀드리지만 훈련사들이 붙어 있으니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대체 메인 이벤트가 뭐길래?

서준과 배우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윌마 감독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울창한 나무와 수풀로 둘러싸인 넓은 공터.

바람이 느릿하게 불어왔다.

그때.

쭈그려 앉은 상태로 늑대를 쓰다듬고 있던 서준이 풀숲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기심이 가득하던 눈동자가 차분해졌다.

아쉬운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서준의 손을 보고 있던 어린 늑대도 한 박자 늦게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냄새를 감지해 내고는, 뒹굴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뭔데요? 뭐가 있어요, 준?”

그런 한 사람과 한 늑대의 반응에, 브라이언 구델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댄 켄드릭과 다른 배우들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부스럭.

그때, 무언가 묵직한 것에 풀잎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준과 늑대를 바라보고 있던 배우들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곳, 그러니까 서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사람들의 말소리도 사라졌다.

고요하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는데,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까지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군가 꿀꺽 침을 삼켰다.

침묵은 그 어떤 배경음악보다 확실하게 집중을 이끌어내고 있었고, 간간이 들려오는 부스럭거림은 배우들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었다.

부스럭거림은 한 군데서만 들려오지 않았다.

정면에서,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듯, 소리가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부스럭거림의 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몇몇 배우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거대하다.

눈앞에 있는 존재들을 표현하기에 그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풀을 짓밟고 있는 두툼한 발, 유려하게 뻗은 네 다리, 날렵해 보이는 몸, 위로 솟은 두 귀, 느긋하게 움직이는 꼬리. 그리고 번뜩이는 노랗고 검은 눈동자까지.

어슬렁 어슬렁.

이곳이 제 구역인 듯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걸어나오는 늑대들이 거기에 있었다.

배우들은 감탄도, 비명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헤일리 로지도 그랬다.

개를 좋아하긴 하지만, 덩치가 크다면(그것도 상상한 것보다) 아무래도 조금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저쪽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이쪽은 그저 부드러운 천 조각이 다이지 않나.

‘그래. 겁이 나야 하는데…….’

……왠지 조금 많이, 익숙한 느낌이랄까?

이 오싹하고 서늘한 분위기는 최근 어디선가 굉장히 많이 느껴본 것이었다.

그 낯선 익숙함의 원인을 찾아, 데굴 굴러가던 헤일리 로지의 눈동자가 한 곳에서 멈추었다.

다른 늑대들보다 덩치가 커 한눈에 봐도 무리의 대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면에서 나타난 늑대와 마주 보고 있는,

서준 리였다.

아하.

‘준이었네.’

어디서 봤나 했는데, 서준이 연기하던 모습에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늑대와 똑 닮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짝 굳어 있던 다른 배우들의 몸이 조금 풀린 것이 보였다. 다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긴 최근 합류한 헤일리 로지가 알아차렸는데, 3월 초부터 함께 훈련했던 배우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늑대인간’ 역할이 아닌가.

자신보다 확실히 느끼고 있을 터였다.

헤일리 로지의 생각대로, 등장한 늑대들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분위기를 알아챈 배우들은 금세 경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괜스레 입을 열어 이 조용한 분위기를 깨지는 않았다.

서준과 대장늑대가 마주 보고 있지 않나.

원래 대장끼리(?) 이야기할 때, 부하들은 끼지 않는 법이었다.

음.

다들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속으로 작게 웃고 말았다. 늑대인간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저절로 이런 생각까지 하는 자신이 너무 웃겼다.

하지만 여기.

아직 어린 부하(?)가 있었다.

크릉!

하고 어린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다.

이 많은 가짜 늑대들 속 홀로 진짜 늑대인 녀석이, ‘감히 우리 대장한테!’ 하고.

이래서 뭣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무서운 법이다.

그에 대장 울프독의 눈동자가 어린 늑대에게로 향했다.

무리의 대장, 서준이 걸음을 옮겨 보호하듯 어린 늑대의 앞을 막아섰다.

어린 늑대가 고개를 올려 서준을 바라보았다. 단호한 대장의 눈빛에, 대장만 믿고 나대던 어린 늑대의 꼬리가 축 처졌다.

다시 서준과 대장 울프독의 눈이 마주쳤다.

대장 울프독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서준도 웃으며 축 처진 어린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긴장감이 흐르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으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배우들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와아. 별걸 다 보네.”

“저 다큐멘터리 보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진짜 늑대들끼리 영역싸움 하는 거 보는 줄 알았어.”

“하나는 사람이었지만.”

“한 마리는 울프독이었지만.”

“준! 준! 방금 그거 뭐예요? 이긴 거예요?”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며 쏟아지는 질문들에, 서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긴 건 아니고요. 서로의 구역이 아니니까 서로 신경 쓰지 말자고 합의한 거……랄까요.”

다 자란 울프독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어린 늑대보다 빠르게 상대를 파악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준…… 사실 정글에서 태어난 거 아니야?”

“하하. 아니에요.”

웃으며 대답하는 서준 아래, 어느새 기운을 차린 똥꼬발랄한 어린 늑대가 다시 서준의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서준과 대장 울프독, 그리고 어린 늑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윌마 감독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배우들의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진짜 늑대(울프독이지만)와 대등한 모습이라니!

보고 있는 자신이 다 짜릿해지고, 얼른 촬영하고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배우들에게 설명해 줘야 했다.

“다들 메인 이벤트가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작은 울프독들은 직접 만져보셨으면 해서 데리고 왔고, 큰 울프독들은 그 움직임과 분위기를 느껴보셨으면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촬영 때는 크로마키를 배경으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체험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쁠 것 같네요.”

윌마 감독의 말에 서준과 배우들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등장 씬은 오늘을 떠올려서 연기하면 될 것 같지?”

“기싸움도요.”

서준과 대장 울프독의 분위기를 떠올린 배우들이 작게 웃었다.

“그럼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울프독을 관찰하는 시간을 같도록 하겠습니다. 늑대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옆에 계신 훈련사분들에게 물으시면 됩니다.”

윌마 감독의 말에 서준과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작은 울프독을 만지고 살피고, 몇몇은 훈련사의 도움을 받으며 큰 울프독을 만졌다. 순한 녀석들만 데려왔는지, 다들 기꺼이 배우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멀리서 봐도 컸는데, 가까이 봐도 크네요. 옆에 있는 녀석들이랑 비교해도 커요.”

브라이언 구델의 말에 서준과 배우들의 시선이 세 마리의 울프독에게로 향했다. 두 마리의 울프독은 그럭저럭 적당한 크기였는데, 대장 울프독은 진짜 컸다.

성인 남자의 허리보다 조금 더 큰 크기.

네 발을 땅에 딛고 있는 크기가 그 정도인데, 두 발로 서면 거의 곰처럼 보일 것 같았다.

“알파는 어릴 때부터 덩치가 컸던 녀석입니다. 그래서 키우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버렸죠.”

훈련사의 말에 서준과 배우들의 눈이 커졌다.

알파라고 불린 대장 울프독이 크게 하품했다. 드러나는 송곳니와 이빨들은 확실히 무시무시했다.

“뭐,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늑대의 피가 다른 체코슬로바키안 울프독보다 진하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지내서 성격은 순합니다. 무리도 잘 이끌어서, 저희 더 마운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녀석이죠.”

동물 보호센터 겸 반려견 훈련소인 ‘더 마운틴’의 훈련사가 웃으며 말했다.

서준과 배우들이 다시 대장 울프독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린 울프독들까지 모여 장난치는 모습이 보였다. 대장 울프독의 풍성한 꼬리가 사냥감인 것 같았다.

“근데 얜 안 가네.”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배우들이 서준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어린 늑대를 보며 웃었다.

헤헤헤. 좋아. 대장, 좋아.

하는 게 그냥 봐도 느껴졌다.

그에 어린 울프독들도 호기심을 가진 것인지 서준에게로 다가왔다.

적의 등장에 어린 늑대가 으르렁거리려고 하자, 서준이 ‘안 돼.’ 하면서 손으로 막았다.

에잇!

못마땅한 듯 탕탕 꼬리를 바닥으로 내려치다가도, 서준의 손길에 녹아내리고 마는 어린 늑대였다.

슬그머니 다가온 어린 울프독들도 이내 서준의 손길에 바닥을 뒹굴었다.

“인기가 많네. 준.”

“하하.”

웃던 서준이 뒤이어 들려오는 윌마 감독의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준의 별명이 스노우화이트였죠.”

……?!

서준이 떨리는 눈으로 윌마 감독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스노우화이트요?”

“준이요?”

스노우화이트라면 백설공주 아닌가.

상상도 못한 별명에 배우들이 눈을 끔벅였다.

“네. 군대에서 붙은 별명이랍니다. 산으로 훈련을 가면 동물들이 준에게로 모여들었대요.”

아하.

어쩐지 배우들의 머릿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 풍경이 떠올랐다.

쪼로롱- 노래를 부르며 날아오는 새들과 등에 꽃 같은 하얀 점이 박혀 있는 사슴(한국: 고라니), 모여드는 토끼와 다람쥐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서준.

“어울리네.”

“엄청 잘 어울려요.”

푸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배우들에, 서준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감독님?”

“배우에 대한 조사는 기본이죠.”

아니.

조사를 한다고 해도 군대 때 별명까지 알아보는 감독은 없을 텐데요.

으쓱해하는 윌마 감독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서준.

하지만 곧 빵 터진 배우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늑대&울프독 체험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감독, 배우들과 인사를 나눈 훈련사들이 돌아갈 준비를 했다. 큰 울프독들도 작은 울프독들도 협조적이었다.

한 마리만 빼고.

끼이잉-

이럴 때는 눈치 빠른 어린 늑대가 서준의 다리에 꼭 달라붙었다.

“얘 진짜 개 아니야?”

그러게나 말이다.

서준이 피식 웃고는 쭈그려 앉아 어린 늑대를 토닥였다.

“다음에 찾아갈게. 잘 지내고 있어.”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서준의 눈동자에 담긴 따스함을 느꼈는지.

낑낑거리던 어린 늑대가 곧 서준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훈련사에게로 걸어갔다.

아쉬운 듯 몇 번 뒤돌아보긴 했지만.

터벅터벅 걷는 네 다리와 축 처진 꼬리에 힘이 전혀 없긴 했지만.

“역시 스노우화이트.”

말로 어린 늑대를 설득한 서준을 보며, 배우들은 짝짝, 감탄의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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