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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30화 (83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30화

“다 했어, 준?”

서준이 [새싹부터]에 감사 편지와 오늘 인증샷을 올리고 1층으로 내려오자, 약속 시각보다 일찍 온 리첼 힐이 빼꼼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네. 다 끝났어요.”

“그럼 보드게임 같이 하자! 아까부터 에반만 이기고 있어. 조나단은 계속 꼴등하고.”

“하하하.”

리첼 힐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에반 블록이 손에 들고 있던 주사위 2개를 달그락거리며 웃었고, 그 옆에 앉은 조나단 윌이 으아아아, 하고 절규했다.

“이건 조작된 거야…… 어떻게 계속 1하고 2만 나와…….”

리첼 힐의 옆에 앉는 서준을 보며 에반 블록이 설명해 주었다.

“신기하게 조나단이 던지면 같은 숫자가 안 나와. 주사위 두 개 다 1이 나오면 한 번 더 던질 수 있는데 말이야.”

“그래요?”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범한 주사위니 조작됐을 리가 없다. 여기가 도박장도 아니고.

‘그렇다면 순전히 조나단의 운이라는 건데…….’

서준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조나단 윌을 바라보았다. 그에 조나단 윌이 더더욱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준. 나랑 같은 팀 하자.”

준의 운빨이라면 완전히 뒤처진 지금이라도 금방 1등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돼요?”

서준이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 판만 같은 팀 해. 다음 판부터는 개인전이야.”

“옙!”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에, 조나단 윌이 활짝 웃으며 만세하듯 두 팔을 쭉 위로 뻗었다.

그렇게 다시 게임이 시작되었다.

“준! 던져봐!”

차례가 되자, 조나단 윌이 들뜬 얼굴로 주사위 두 개를 서준에게 건넸다. 서준이 웃으며 테이블 위로 주사위를 가볍게 던졌다.

데구르르.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주사위가 멈췄다.

“으아아아! 6! 5!”

“조나단 차례에서 이렇게 큰 숫자가 나온 건 처음이네.”

“역시 준!”

“하하하.”

조나단이 다시금 만세를 하고는 얼른 말을 앞으로 옮겼다. 아직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을 쫓아가기엔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승리로 향하는 길을 만든 것 같았다.

“역시 역전이 제일 짜릿하지!”

“신났네, 조나단.”

리첼 힐의 말에 에반 블록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라이언 감독님은요?”

“삼촌은 약속이 있으셔서 저녁 시간 맞춰서 오신대.”

조나단 윌의 말에 서준이 에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좀 더 일찍 초대를 해야 했나 봐요.”

에반 블록이 낮게 웃으며 물었다.

“준, 진짜로 까먹었던 거야?”

“네. 생일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말이죠.”

뭐랄까.

며칠 후에 시험을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공부할 계획도 다 세워놨는데, 시험이 바로 내일이었다는 느낌이랄까.

“진짜 깜짝 놀랐어요.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싶어서요.”

웃음을 터뜨리는 세 사람을 보며 서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말해주지 그랬어요. 생일파티 안 하냐고.”

“촬영 준비하는 데 방해될까 봐 그랬지. 설마 잊을 줄 알았겠어?”

“그러니까요.”

에반 블록과 조나단 윌이 키득키득 웃었다.

“잊고 있는 줄 알았으면 깜짝파티를 하는 건데 말이야.”

리첼 힐의 말에 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레이스도 같은 말 하던데요.”

“그래? 어쩐지 마음이 잘 맞을 것 같네!”

데구르르.

리첼 힐이 즐거워하며 주사위를 던졌다.

“그레이스가 옛날에 핼러윈 축제에서 만났다는 꼬마 마녀지? 소설 이클립스 작가의 여동생.”

“네. 맞아요.”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에서 촬영이 있었던 [쉐도우맨3] 때문에 찰리와는 만난 적이 있는 세 사람이지만, 그레이스와는 만난 적이 없었다.

이야기는 종종 했지만.

“오늘 파티에 오니까 소개해 드릴게요.”

서준의 말에 조나단 윌이 눈을 끔벅였다.

“응? 그 친구 뉴욕에 산다고 하지 않았어?”

“작가님 따라서 LA에 왔거든요.”

“LA에? 무슨 일로?”

소설 [이클립스]의 여주인공의 모티브이며 작가의 동생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외부인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는 세 사람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언자로 따라왔대요.”

“조언자?”

“네.”

주사위를 굴린 서준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클립스가 한 번 망했었잖아요. 그게 작가님 마음에 남아 있었나 봐요.”

“그럴 만도 하지.”

두 배우와 감독이 고개를 공감하듯 끄덕였다.

소중한 자신의 작품이 남의 손에 엉망진창이 된다면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망클립스] 제작 당시, 작가는 손도 하나 대지 못했다고 들었다.

미련을 넘어, 상처가 되었을 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트장부터 소품, 배우들까지 작가님이 다 확인할 예정이었어요.”

영화제작사, 뉴 에이지와의 계약서도 그렇게 작성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또 엉망진창이면 어떻게 하지?’

LA로 오기 전, 로라 웰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막막함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모래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있는지도 몰랐던 트라우마를 파헤쳐 냈다.

두근두근.

로라 웰튼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었다.

지금까지 영화제작사 뉴 에이지는 잘 해주고 있었다. 감독도, 각본가도 믿을 만했다.

‘하지만…….’

만약 이제부터 엉망이라면? LA 촬영장에 갔더니 세트장이 기대 이하라면? 소품이, 의상이 이야기했던 것과 다르다면? 감독과 제작사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다르다면?

‘……밀어붙인 내 의견이 틀렸다면?’

온갖 걱정들이 원작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언니, 짐 다 챙겼어?’

그때 나타난 것이 동생, 그레이스 웰튼이었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작가, 로라 웰튼 다음으로 [이클립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 로라 웰튼과 함께 [망클립스] 제작을 지켜보며 제작사의 만행에 분노한 사람. 로라 웰튼이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로라 웰튼의 의견에 ‘아니, 언니. 그건 아니지.’ 하고 냉정하게 반대할 수 있는 사람.

‘같이 가자.’

‘응?’

‘같이 LA 가자! 그레이스!’

‘……뭐?’

“그래서 오게 됐대요.”

서준의 말에 라이언 윌 감독의 조카, 조나단 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작품을 보는 눈이 비슷하다면 이야기 나누기엔 가족이 가장 편하긴 해. 나도 삼촌한테는 제작사나 다른 사람들한테 하기 힘든 이야기도 많이 하거든. 삼촌도 잘했다, 못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주고.”

너무 냉정해서 죽을 것 같지만.

해탈한 듯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는 조나단 윌에, 서준과 리첼 힐, 에반 블록이 작게 웃었다.

“그럼 일하러 온 거구나. 힘들지는 않대?”

“엄청 힘들대요.”

들려오는 서준의 대답에, 주사위를 굴리려던 에반 블록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리첼 힐과 조나단 윌도 눈을 끔벅였다.

……조언자가 힘들어하고 있다고?

그럼 지금 [뉴 이클립스]가 엉망이라는 건가?

놀란 세 사람의 얼굴을 본 서준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뉴 에이지에서 너무 잘 만들어줘서, 작가님이 하루종일 뉴 에이지 칭찬만 하고 있대요. 그거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대요.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준! 너!”

“큰일 난 줄 알았잖아!”

“하아, 그러네. 엉망이라면 네가 이렇게 생일파티를 하고 있진 않겠지.”

아하하하!

격한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에, 서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 * *

생일파티 시간이 가까워지자,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서준의 집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색색으로 빛나는 전등으로 꾸며진 저택의 문 앞에서, 편안한 옷을 입은 서준이 활짝 웃으며 도착한 사람들을 맞이했다.

“생일 축하해, 준!”

“이건 생일 선물!”

같이 일했던 배우들과 감독들, 함께 작품을 찍진 않았지만 다른 파티에서 친해진 배우들과 [뉴 이클립스]팀, 그리고 잭 스미스와 친구들이 오늘의 초대 손님이었다.

“어서 와, 그레이스. 어서 와요. 로라.”

“생일 축하해, 준. 와! 엄청 많이 왔네! 어제 초대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레이스가 북적거리는 저택을 보며 감탄했다.

어제 급하게 초대했다고 들었는데 이만큼이나 모이다니, 역시 슈퍼스타는 다른 것 같았다. 게다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스타들이 많았다. 반짝반짝한 풍경에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응. 몇 명은 내 생일인 거 알아서 스케줄을 비워뒀었대.”

어제 연락 안 했으면 오늘 쳐들어왔을 거라고, 잭 스미스와 친구들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절대 안 잊어야지.’

서준은 다짐했다.

“근데 준비는 어떻게 한 거야? 하루 만에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서준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온 그레이스가 멋지게 꾸며진 거실과 뒷마당을 보며 물었다.

과하지 않고 아늑한 느낌이, 마치 캠핑을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였다. 시끌벅적한 파티가 아니라, 진짜 지인들끼리 축하하는 자리라는 느낌.

“음식도 맛있어 보이고.”

뷔페식으로 준비된 음식들도 정말 맛있어 보였다.

돈이라면 안 되는 게 없긴 하지만.

하루 만에 계획된 파티가 아니라, 정성껏 꾸며진 것이 느껴졌다.

“태우 형이랑 회사에서 준비한 거야.”

서준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미국에 오기 전에 올해 생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 저녁 식사도 할 겸 편안한 분위기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거든. 그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나 봐.”

그렇게 몇 주 전부터 열심히 준비했으니, 이런 퀄리티가 나온 것이었다.

아하.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만 빼고 다 준의 생일파티에 진심이었다는 거네.”

“윽……!”

크리티컬이었다.

서준이 마른 세수를 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서준의 반성에, 주변에 다른 초대객들과 인사를 하고 있던 지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준도 인간이었네.”

“그러니까 말이에요. 연습하는 것만 보면 엄청 철저하더니.”

“……우리 연습 이야기하지 말자. 파티잖아.”

댄 켄드릭의 말에 [뉴 이클립스] 배우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준이 연습 많이 시키죠?”

고개를 돌리니, 어쩐지 동질감이 가득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배우들도 아는 얼굴. [쉐도우앤나이트]의 조나단 윌 감독이었다.

그러고 보니 [쉐도우앤나이트] 시놉시스를 서준 리와 함께 작업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청나게 갈렸다는 것도.

“……크읍!”

오늘 처음 만났지만,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다.

“우리 저쪽에서 이야기나 할까요?”

“네. 그러시죠.”

[뉴 이클립스] 배우들과 [쉐도우앤나이트] 감독이 하하하 웃으며, 오늘 파티의 주인공인 서준 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왜 하필 구석진 곳으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쿠데타 모의라도 하는 걸까?”

“그럴지도.”

리첼 힐의 말에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준이 이기겠지!”

한탄으로 시작한 저들의 대화는 ‘준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니까.’, ‘고생한 만큼 재미도 있지. 배우는 것도 많고.’, ‘결과도 좋죠!’ 하고 모두가 납득하며 ‘우리도 앞으로 열심히 합시다!’ 하고 끝날 터였다.

갈리고 또 갈려도 함께 일하고 싶은,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서준 리는.

그리고 지금.

서준의 그런 무시무시한 매력을 겪을 이들이 저택에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윌마 감독님.”

“생일 축하합니다, 준. 이쪽은 알고 있죠? 우리 영화,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예요.”

윌마 감독의 소개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앞으로 나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리. 헤일리 로지예요. 생일 축하해요.”

“반가워요, 로지.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서준이 활짝 웃으며 헤일리 로지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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