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26화
“아, 그랬지.”
“아, 그랬지? 잊고 있었어?”
그레이스의 말에 서준이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시상식에 트레이닝에, 일이 많아서 깜빡했어.”
생일인 3월이 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새싹들이 어떻게 축하해 줄까, 기대도 하고 있었지만 그게 바로 내일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시간 진짜 빨리 가는구나.”
스케줄에 상관없이 매일같이 트레이닝 센터에 나오다 보니(게다가 훈련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요일과 날짜 개념이 잠시 머릿속에서 사라진 느낌이었다.
서준의 탄성에, 진짜 까먹고 있었다는 걸 알아챈 그레이스와 로라 웰튼이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내일까지 숨겨서 깜짝 파티를 하는 건데 말이야.”
“그건 힘들었을걸. 준의 팬들이 자정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길 거 아니야. 지인들도 메시지를 보낼 거고.”
그건 그렇다.
아침에 휴대폰을 켜면 생일 축하 연락이 잔뜩 쌓여 있었을 터였다.
로라 웰튼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스가 말했다. 조금 전 서준의 생일을 미리 축하한 이유였다.
“내일 너 쉰다며? 생일파티도 안 하고. 그래서 직접 얼굴 보고 축하해 주려고 했지.”
그러고 보니 새싹들이 해주는 이벤트를 하루 동안 즐기기 위해, 생일을 쉬는 날로 정했었다.
서준이 볼을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생일파티 대신 가볍게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친한 사람들끼리…….”
우린 왜 안 불렀냐고, 웰튼 자매가 아쉬워하기 전에 서준이 말을 이었다.
“초대하는 걸 잊었어.”
하.하.하.
해탈한 듯 웃는 서준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웰튼 자매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민망해진 서준이 한숨처럼 말했다.
“지금 초대해도 괜찮을까? 그레이스, 로라?”
“당연하지!”
“우리 시간 많아.”
흔쾌히 승낙하는 웰튼 자매에 서준이 웃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연락해 봐야겠다.”
시간 되면 오라고.
지금 LA에 누가 있더라.
서준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댄 켄드릭과 브라이언 구델 그리고 함께 훈련했던 배우들과 트레이너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윌마 에반스 감독과 뉴 에이지 담당자, 그리고 무술감독도 있었다.
그에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제 생일인데, 시간 괜찮으시다면 다들 와주세요. 맛있는 거 많이 준비해 둘게요.”
와아아!
서준의 초대에 식당이 들썩였다.
* * *
한국 시간으로 3월 10일 자정.
그리고 16시간의 시차를 넘어, LA 시간으로 3월 9일 오전 8시.
-서준아! 생일 축하해!!
매년 그렇듯, 12시가 되자마자 [새싹부터]는 물론이고 SNS 가득 배우 이서준을 향한 축하의 메시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 일찍 잡시다.
=1년에 딱 한 번 있는, SNS 중독자들이 일찍 자는 날ㅋㅋ
=SNS나 인터넷 돌아다녀 봤자 이서준 생일 축하 메시지밖에 없어ㅠㅠㅋㅋ
=22 내 금손님도 새싹이셔서ㅋㅋ오늘 하루 이서준 이야기밖에 안 올라옴.
=33 내 SNS친구들도ㅋㅋ
=44 이 정도면 새싹이 아닌 내가 신기하구요……ㅋ
-연예인들도 다 이서준 생일축하메시지 올림.
=+할리우드 배우들.(시차 땜에 좀 늦긴 해도)
=이게 슈스의 생일이다!!
그리고 서준도 매년 그렇듯, 행복한 표정으로 새싹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LA에서 생일을 맞이하면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일찍 아침 식사를 끝내고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은 서준이 휴대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한국이었으면 밤새 잠도 안 자고 새싹들의 메시지를 읽었겠지만, LA에 있으니 날이 환할 때(오전 8시) 팬들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뭐, 워낙 체력이 좋다 보니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답장은 언제 올릴 거야?”
커피 한 잔을 든 최태우는 입가에 행복을 가득 머금은 서준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평소에도 가끔 편지나 메시지를 [새싹부터]에 올리는 서준이었지만, 특히 생일에는 잊지 않고 축하해 준 새싹들에게 꼭 감사의 답장을 남겼다.
[새싹부터]가 생기고 새싹들이 축하글을 남기던 그 오랜 옛날부터.
그에 고개를 들어 최태우와 눈을 마주친 서준이 활짝 웃었다.
“인증샷 찍은 다음에 올리려구요.”
행복과 기쁨으로 반짝이는 서준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잘생겨 보였다.
“그래? 어디 갈지는 정했어?”
“일단 코스는 이렇게 정해뒀어요.”
서준이 상기된 얼굴로 휴대폰을 두드린 다음, 화면을 최태우에게 보여주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LA의 지도가 띄워져 있었는데, 서준이 직접 표시한 듯 이곳저곳이 체크되어 있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이렇게 움직일 생각인데…… 점심은 여기서 먹고요. 어때요, 태우 형?”
지금 서준이 있는 LA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바닷가에 있는 씨 세이브 센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할리우드 거리, 쇼핑 거리, 다저스 스타디움 등등.
서준이 가 본 적이 있는 곳부터 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까지, 한 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괜찮네.”
오늘 하루 서준과 함께 다닐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만 봐도 겹쳐진 곳이 없는 괜찮은 코스였다. 자신보다 LA에 대해 잘 아는 서준이니 알아서 잘 정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자신은 옆에서 사진만 찍어주면 될 것 같았다.
“언제 출발할래?”
카메라가 어디 있더라.
서준의 일상을 담기 위해, (안다호가 그랬듯)카메라와 사진까지 공부한 최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에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요!”
……응?
이제 막 아침 먹었는데? 아직 오전 8시인데?
눈을 끔벅이던 최태우는 활짝 피어난 서준의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짐을 챙긴 서준과 최태우가 차에 올라탔다.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은 보디가드들도 차에 올라, 서준이 탄 차량 뒤에 붙었다.
‘평소라면 서준이 혼자서만 보내도 되겠지만…….’
지금 가는 곳들은 아무래도 통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두 대의 차량은 LA집 주차장을 나와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킹즈마켓이었다.
* * *
킹즈마켓.
미국에 있는 한인마트 중 가장 큰 마트로, 서준의 이모인 나라 킴이 사장으로 있는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오늘부터 삼일동안 킹즈마켓에서 할인행사 한다고 합니다!!
=킹즈마켓에서요? 왜요? 얼마 전에 할인행사 하지 않았어요?
=2월 초에도 하고 말에도 했던 것 같은데?
=이서준 배우 생일이래요!!
-이서준 배우 생일인데 왜 킹즈마켓에서 할인행사를 함??
=킹즈마켓 사장이 이서준 배우 이모라고ㅋㅋㅋ
=헐. 금수저였네.
=ㄴㄴ친이모는 아닙니다. 브라운블랙 케빈 킴(본명 김만세)의 누나로,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사이입니다.
-돈 없는 유학생에게는 꿈만 같은 날ㅠㅠㅠ
=22 이서준 기념일=킹즈마켓 할인날.
=33 이서준 작품 개봉날, 시상식, 생일만 기다림.
-2월 초에 할인행사한 것도 이서준 오스카상 노미네이트 때문이잖앜ㅋㅋㅋ
=그때도 엄청 쌌는데, 오스카 수상하고 삼일은 진짜 수익 생각 안하고 할인했음. 덕분에 식량확보.(터질 것 같은 냉장고, 부엌 찬장 사진) 좀비가 나타나도 버틸 듯.
=나도 생필품도 많이 삼.(1m는 될 것 같은 영수증 사진)
=킹즈마켓에 물건이 없더라ㅎㅎ(텅빈 판매대 사진)
=이모님. 스케일이 너무 크신듯ㅋㅋㅋ
이런 댓글들이 나올 정도의 할인행사도 가능했다.
그리고 다른 것도.
“도착했어.”
최태우의 말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서준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미국 마트 특유의 넓은 주차장과 그곳을 채운 차량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적네요? 할인행사가 있어서 손님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침이지만 주차장이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텅 비어 있었다. 서준과 보디가드들이 탄 두 대의 차량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나란히 댈 수 있을 정도로.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남우주연상 수상했을 때, 3일 동안 할인행사를 크게 했었잖아.”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 시상식 다음 날.
바쁠 텐데도 LA집까지 직접 찾아와 ‘우리 서준이가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하고 기뻐하던 나라 이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할인! 할인이다!!’ 하고 덧붙여 외치던 나라 이모의 모습에, 함께 온 비서분이 사색이 되어 말리려다가 이내 체념한 듯 허공을 바라보는 것도.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때 사람들이 엄청 사서, 이번 할인행사에는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거라고 하더라.”
아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2주도 안 지났으니까요.”
“그렇지.”
모자를 푹 눌러쓴 서준과 카메라를 든 최태우가 차에서 내려 걸음을 옮겼다. 평상복을 입은 보디가드들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움직이며 조금 떨어져서 스타와 매니저의 뒤를 따라갔다.
이른 시간, 적은 사람들, 그리고 야외.
주위를 둘러본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나중은 모르지만 처음부터 들킬 것 같지는 않았다.
“얼른 인증샷 찍어요, 태우 형.”
“그래. 그러자.”
그렇게 스타와 매니저, 보디가드들이 도착한 곳은, 킹즈마켓 건물의 옆면. 보통 때라면 할인행사에 대한 것이나 새로 나온 상품에 대한 광고들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와아!”
벽을 본 서준이 입을 쩌억 벌렸다.
아니, 정확히는 벽에 붙여진 커다란 사진이었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일렁이는 그림자.
검은색 검을 꽉 잡은 손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제복.
그리고 앞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그러나 빛나는 눈을 가진 기사Knight.
나이트 진이었다.
“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을 바라보던 서준은 곧 눈을 크게 뜨고 사진 쪽으로 다가갔다. 뭔가가 보였다.
‘킹즈마켓에 생일이벤트를 위한 무언가가 설치되어 있다.’
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듣지 못했다. 아니, 직접 보기 위해 듣지도 찾아보지도 않은 서준이었다.
그래서 이 ‘나이트 진’의 사진이 그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서준이 벽에 달라붙을 듯이 다가갔다.
‘나이트 진’ 구성하는 픽셀들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싹들의 생일축하 메시지가 담긴 쪽지들이.
-서준아! 생일 축하해!
-Happy birthday! JUN!
-/올해도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기를!/
-/진짜 진짜 정말 사랑해요! 서준 오빠!/
-/언제나 즐겁게 연기해요!/
“와…….”
너무 벅차올라 겨우 그 한마디를 뱉은 서준은, 검은색 글자로 적힌 메시지들을 보다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이트 진이 보였다.
새싹들의 메시지가 담긴 쪽지들이 모여 ‘나이트 진’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새싹들의 사랑이 서준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와아…… 이거…… 진짜…….”
더 말을 잇지도 못하고 서준은 다시 사진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프린트된 새싹들의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한국어부터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등 다양한 나라의 글자들이 보였다.
중복되는 메시지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좋았다.
‘같은 내용이라고 삭제하지 않고, 새싹들 한 명 한 명의 메시지를 그대로 썼다는 뜻이니까.’
서준은 반짝이는 눈으로 쪽지를 읽으며 옆으로 옆으로 이동했다.
위에 쓰여 있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하기도 하고, 아래에 쓰인 메시지를 읽기 위해 쭈그려 앉기도 했다.
그 바빠 보이는 모습에 동영상을 촬영 중이던 최태우는 물론이고, 보디가드들마저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대본들과 삶의 책들을 읽으며 쌓아온 속독 실력 덕분인지 서준은 빠르게 사진의 끝에 다다랐다.
“서준아, 다 읽었어?”
벽에서 눈을 뗀 서준을 보며 최태우가 물었다.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위에 건 아직이요.”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곳에 있는 메시지들은 다 읽었지만, 그것보다 높이 있는 메시지들은 아직 읽지 못했다. 시력이 좋으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읽으면 될 것 같았다.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선 이 정도만 읽고 다음 장소에 가자. 아직 많이 남았잖아.”
아.
그렇지.
이 이벤트는 여기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준의 이모, 나라 킴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협조 아래.
미국과 외국에 있는 모든 킹즈마켓에서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또 씨 세이브 센터나 다저스 스타디움처럼 서준이 갔던 곳들은 물론이고.
관계부서의 허락을 받아서, LA음대 브라운홀과 근처 공원(오버레1 버스킹 촬영지), 오버레2 촬영지(뉴욕, 시카고, 캔자스시티의 공연장, 공원, 밀밭 등)에서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생일파티가 있고 내일은 스케줄이 있어서 다른 주까지는 못 가겠지만.’
서준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얼른 가요, 태우 형! LA에 있는 건 전부 다 보고 싶어요!”
LA에 설치된 사진들과 새싹들을 메시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금방 지날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