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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24화 (82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24화

“그대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으아아아!

다섯 배우 중 한 명이 뱉어낸 말에 모두 말 대신 커다란 기합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때, 본능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튀었어야 했다.

“그건 생존본능이었어요……!”

서준 리의 빅팬인 브라이언 구델마저 그렇게 말했다.

천적이라는 것이 없는 현대 인간에게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좋을 생존본능.

그러나 그때. DNA에 새겨진 본능은 자신이 아직 아직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도망쳐! 하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도망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크흡.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다섯 배우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이건 땀인가, 눈물인가.

그런 배우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서준이었다.

“하하하.”

“웃지 마!”

트레이닝을 시작한 지 겨우 닷새가 지났지만, 다섯 배우와 서준은 이렇게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원래 함께 고통을 겪으면 동지애가 생긴다고 하지 않나.

“힘들어요?”

서준의 물음에 다들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들리지 않을까 봐 큰 목소리로.

“어! 완전!”

“진짜 힘들어요!”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네요. 좀 더 해도 될 것 같아요.”

……물론 그 ‘고통’을 주는 사람이 서준이긴 했지만 말이다.

“강도를 조금 높이죠.”

날카로운 눈으로 배우들의 몸 상태를 살핀 서준이 말하자, 트레이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좀 더 훈련의 강도를 높였다.

“눈도 좋아.”

“그러게 말이야.”

그저 스윽-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들의 신체적 한계를 알아내고 훈련 시간과 강도를 조절하는 서준 리에, 트레이너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우가 아니라 트레이너를 해도 잘할 것 같았다.

“으아아악!”

“타도! 서준 리익!!”

“아하하하.”

아직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배우들의 야생성(?)이 살아나는 것 같아, 서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저희도 계속할까요?”

“알겠습니다.”

자신의 쉬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배우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던 서준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담당 트레이너가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길쭉한 매트 위.

서준은 담당 트레이너와 마주 섰다. 그러고는 후우- 깊은숨을 내쉬고 몸에 가볍게 힘을 줬다. 너무 힘을 주면 몸이 굳어버린다. 그럼 어디 한 군데 다치게 마련이었다.

트레이너가 고개를 까딱하며 신호를 보냈다.

그에 몸을 낮춘 서준이 오른발을 한 걸음 크게 내디뎌, 트레이너에게 달려들었다. 트레이너는 그에 맞춰 타격용 미트를 들어 올렸다.

‘먼저 오른쪽 어깨.’

탕!

가벼운 타격음이 들려왔다.

서준의 발차기가 트레이너가 들고 있던 미트를 맞힌 것이었다.

‘다음은 구르고.’

트레이너가 미트로 서준의 다리를 밀자, 서준은 힘껏 밀린 것처럼 튕겨 나가며 몸을 굴렸다.

영화 속에서는 ‘남자주인공’의 공격을 한 손으로 막은 ‘적’이 그대로 남자주인공의 다리를 붙잡아 내던지는 장면이었다

‘다시 일어나서 공격.’

스토리 상으로는 적과의 힘의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주인공은 다시금 적에게 달려든다. ‘남자주인공’을 연기할 서준도 다시 트레이너에게 달려들었다.

탕!

타앙!

격렬한 것처럼 보이지만 힘은 들어가지 않은, 가벼운 발차기와 주먹질이 서준과 트레이너 사이에서 오고 갔다.

그에 배우들은 잠시 훈련을 멈추고 매트 위에서 공방을 주고받는 서준과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자신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서준은 어디 하나 어긋난 곳이 없는 완벽한 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다 짜여 있는 동선임에도 불구하고, 서준 리는 정말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몇 번이나 저렇게 훈련하는 모습을 봐서 익숙해졌는데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만큼 훈련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이러니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오히려 저런 서준의 모습을 보니, 힘든 훈련에 지쳐가던 마음이 새롭게 다잡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하죠!”

의지가 샘솟은 브라이언이 눈을 빛내며 말했고, 배우들도 비슷한 마음으로 다시 자신의 훈련에 집중했다.

물론,

‘힘들어……!’

힘든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후.

“오케이. 잠시 쉬겠습니다.”

트레이너의 말에 다섯 배우가 모두 지친 얼굴로 그대로 늘어지려다가,

“스트레칭해야죠. 스트레칭!”

서준의 재촉에 부상 방지를 위한 마무리 스트레칭을 했다. 아주 짧게 쉬는 거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이번 쉬는 시간은 꽤 길었다.

“으아아아아…….”

자극받는 근육과 관절들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근육만 만들고 유연성 훈련은 안 했어요?”

“죄송합니다…….”

서준의 농담 섞인 타박에, 다섯 배우가 시무룩해졌다. 트레이너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준도 웃고 말았다.

다들 앓은 소리를 해도, 트레이닝 시작 날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나는 대로 함께 훈련에 집중해 줘서 고마웠다.

[(선)줄랑허브의 피로해소-하급이 발동됩니다.]

생의 도서관에서 가져온 능력으로, 훈련으로 쌓이고 있던 다섯 배우와 트레이너들의 피로를 풀어준 (본의 아니게 병 주고 약을 준)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준?”

에어컨 바람인가?

시원한 느낌과 함께 팔다리를 무겁게 했던 피로가 날아가는 듯한 느낌에 흐물흐물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준의 빅팬 브라이언이 서준에게 물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훈련이 있어서. 오늘부터 켄드릭 배우가 합류하기로 했거든.”

“아, 그래요?”

댄 켄드릭.

[뉴 이클립스]에 나오는 적들 중 가장 강한, 늑대인간 무리의 우두머리 역을 맡은 배우였다.

다른 스케줄이 있어 조금 늦게 합류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서준과 함께하는 장면부터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그래.”

새로운 배우의 등장에 행복해진 서준은 배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B2훈련장을 떠났다.

서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배우가 이마와 어깨를 손으로 두드려 성호를 그렸다.

“불쌍한 어린양 하나가 여기로 오겠구만.”

후후후.

함께 고통을 겪을 동료가 생길 것 같아, 다섯 배우는 즐겁게 웃었다.

* * *

B1훈련장.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준 리예요.”

“댄 켄드릭입니다.”

댄 켄드릭이 웃으며 눈앞의 슈퍼스타와 악수를 나누었다.

원래 댄 켄드릭은 [뉴 이클립스]에 출연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대본조차 읽지 않고 종이를 버리는 박스에 넣어뒀었다.

그런데 얼마 후, 뉴 에이지에서 서준 리가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 아닌가.

서준 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니, 전 세계의 배우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동양인에, 어린 나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으니까 말이다.

‘영화도 전부 흥행했고.’

대단한 배우였다. 서준 리는.

그런 배우가 [뉴 이클립스]에 출연한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댄 켄드릭은 대본을 읽어보았고 출연 제의에 승낙했다. 리메이크된 [뉴 이클립스]는 생각보다 꽤, 아니, 많이 괜찮았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리.”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서준 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댄 켄드릭은 옅지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감은 얼마 전, 서준 리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더욱 짙어졌다.

‘슈퍼스타랑 알고 지내면 좋지.’

계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

‘겸사겸사 어떻게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고.’

서준이 알았다면 호감도가 왕창 올랐을 생각을 하는 ‘배우’ 댄 켄드릭이었다.

* * *

“그럼 훈련 시작하겠습니다.”

무술감독의 말에 서준과 댄 켄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B1훈련장의 트레이닝은 이런 순서로 진행된다.

“미리 콘티랑 동선을 봤겠지만, 영상으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나중에 영상 보내드리겠습니다.”

먼저 무술감독과 트레이너들이 해당 액션 장면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영상을 0.5배속으로 재생하면서 아주 자세히.

“여기서 준이 먼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 공격하면 됩니다. 각도 잘 봐주시고요. 다른 방향으로 부딪히면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 주의해 주십시오. 댄은 여기서…….”

서준과 댄 켄드릭은 트레이너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그다음으로는 두 사람이 따로따로 훈련을 받는다.

숙련된 트레이너와 먼저 연습하면서 동선과 동작을 익히는 것이 더욱 안전하니까 말이다.

“좋아요, 준!”

“댄도 금방 익히시는군요.”

서준 리도, 댄 켄드릭도 액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 제법 빠르게 동작들을 습득했다. 물론 완벽해질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건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연습하면 될 일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서준과 댄 켄드릭이 합을 맞춘다.

무술감독과 트레이너들이 지켜보는 안전한 상태에서, 두 배우는 조금 전 배운 동선대로 차근차근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한다.

“팔에 힘을 빼는 편이 좋겠습니다. 너무 강해요.”

“방어할 때 조심하시고.”

액션이라서 타격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그러나 화면에는 멋지게 나올 정도로 힘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게 제일 어려워.’

힘 조절.

제대로 사용한다면 아마 여러 가지를 부술 수 있는 서준은 더욱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예정된 훈련 시간이 끝나갈 때.

서준이 미끼를 던진다.

벌써 다섯 명이나 낚은 엄청나게 효과가 좋은 미끼였다.

“댄. 마지막으로 연기하면서 맞춰볼까요?”

서준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연기?”

“네. 어차피 나중에 연기하면서 연습해야 하니까 지금 한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에 댄 켄드릭이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이제 곧 훈련이 끝날 시간이라, 새롭게 뭘 배우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게다가 서준 리와 함께 연기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소문을 듣기로는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더 대단하고, 관객으로서 보는 것보다 함께 연기할 때 더더욱 대단하다고 들었다.

생각에 잠긴 댄 켄드릭을 무술 감독과 트레이너들이 움찔거리는 입술을 꾹 누르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서준 리에게 낚인 배우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댄 켄드릭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다섯 배우들이 했던 대답과 똑같이 말했다.

“좋아. 그럼 한번 해볼까?”

“네!”

서준이 활짝 웃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곧바로 매트 위에 서준과 댄 켄드릭이 마주 섰다.

“레디,”

무술 감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에 서준과 댄 켄드릭이 집중했다.

“액션!”

그 외침과 함께, 서준 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번들거리는 검은색 눈동자로 댄 켄드릭을 바라보았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날카로운 손톱들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늑대. 늑대인간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서워야 하는데 무섭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늑대인간이니까.’

그것도 ‘저놈’보다 강한, 늑대무리의 우두머리.

‘그 생각’은 댄 켄드릭이 홀로 떠올린 게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그’가, 서준의 연기가 떠올리게 한 것이었다.

저 눈을 봐라.

저 표정을 봐라.

저 몸짓을 봐라.

겉만 보면 금방이라도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 듯 보였지만, 댄 켄드릭은 그 안에 숨겨진 두려움을 알아차렸다. 불안함과 초조함도.

이건 약자가 강자에게 덤벼들 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상대방의 모습에, 댄 켄드릭도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니, 집중이 아니다.

몰입이다.

캐릭터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그’가 달려든다. 공격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상처 하나도 내지 못한다. 초라하게 튕겨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이고 그런 행동이 이어졌다. 그 반동에 나무가 부서지고, 짓밟힌 풀들이 내뿜는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가 주춤하는 게 보였다.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댄 켄드릭, 아니, 우두머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분장을 하지 않은 손이지만, 어째선지 날카로운 손톱들이 환상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띠디딕-

그때, 집중을 깨는 휴대폰 알림이 들려왔다.

“아, 훈련시간 끝났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검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맑아졌다.

“……어?”

그 분위기 전환에, 댄 켄드릭이 눈을 끔벅였다.

“그만 끝내야겠어요. 뒤에 일정도 있고. 댄도 그렇죠?”

……아니, 잠깐만.

환하게 웃으며 정말로 매트에서 내려가 스트레칭을 하는 서준에, 댄 켄드릭이 입을 벙긋거렸다.

한참 집중하고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 작품을 찍으면서 이렇게 집중하고 몰입해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온 정신이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현대식 건물인 B1훈련장이 나무와 풀, 돌들로 이루어진 어두운 숲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온몸이 짜릿했다.

정말로 ‘댄 케드릭’이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난다고?

“……이렇게?”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댄 켄드릭과 해맑은 표정의 서준을 보며 무술감독과 트레이너들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았다.

어쩐지 먼저 낚인 다섯 배우들이 [WELCOME TO THE HELL!!] 하고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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