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23화
-생각해 보니까 이서준 또 오스카상 받을 거 알았으면 군대 안 가도 됐을 것 같은데.
=22 지금 만 23이잖아. 대학도 다니니까 군대 미룰 수 있었을 텐데.
=33 내가 이서준이었으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열심히 활동해서 상 받았음.
=ㄴㄴ미뤄도 안 됨. 아직 법 안 바뀜.
=?아직도? 이서준 12살/18살 때 논의하고 있지 않았음?
=논의만 했지, 법은 안 만들어짐. 누가 또 20대에 세계적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겠음.
=근데 이서준이 또 받아버렸다ㅋㅋㅋ
3월이 되어도 전 세계는 서준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한국에서는 서준이 제대한 이후, 앞으로는 언급되지 않을 것 같았던 군 면제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아니, 군면제 안 된다면 안 된다고 땅땅땅! 결론 내리지 맨날 논의만 하네.
=원래 정치인들이 다 그렇잖아. 화제성에 이름 알리려는.
-이서준 아쉬울 듯. 1년 4개월이면 작품 하나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소속사도 그렇고.
=뭐 알아서 잘 생각하고 입대한 거겠지.
=ㅇㅇ우리보다 더 많이 고민했을 듯.
=정치인들이 논의‘만’하고 영원히 군면제 안 될 거 알고 일찌감치 보낸 건지도.
=아ㅋㅋㅋ진짜 그런 건지도ㅋㅋ
‘그런 건가?’
서준은 자신에게 먼저 군대 이야기를 꺼냈던 안다호를 떠올렸다.
음.
떠올리기만 해도 믿음직스러운 안다호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다호 형이라면 충분히 깊이 생각하고 판단을 내렸을 거다.
‘뭐, 이유야 어찌 됐든…….’
군대를 빨리 갔다 온 건 잘한 것 같았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군대 걱정 없이 마음껏, 뒷말 없이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 왔어. 서준아.”
최태우의 목소리에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차 창밖으로 익숙한 입구와 건물이 보였다.
바로 오늘부터 훈련을 받을, 액션 트레이닝 센터였다.
* * *
“뉴 이클립스 배우들의 훈련은 저기 B1훈련장에서 할 예정입니다.”
[뉴 이클립스]의 원작자인 로라 웰튼은 [뉴 이클립스]의 감독 윌마 에반스와 함께, 영화 제작사 ‘뉴 에이지’의 직원이자 [뉴 이클립스]를 총괄하는 담당자에게 센터를 안내받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B2훈련장은 배우들이 자율적으로, 언제든 연습할 수 있는 장소고요. 트레이너들도 상시 대기 중입니다.”
이곳은 액션 트레이닝 센터.
[뉴 이클립스]에서 액션 장면을 연기할 배우들과 스턴트맨들이 훈련하는 곳이었다.
‘이클립스 때는 구경도 못 했는데…….’
로라 웰튼은 한숨을 삼키며 생각했다.
[이클립스], 아니, [망클립스] 때는 이런 곳에 오지도 못했고, 배우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거나 캐릭터에 대해 뭔가를 알려주기는커녕, 대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었다.
소설만 쏙 가져갔다.
‘아니지. 소설도 제대로 못 가져갔지.’
캐릭터와 스토리가 엉망진창이었던 [망클립스]를 떠올리니, 열불이 난다.
후후.
숨을 내쉬며 타오르는 마음의 불길을 가라앉힌 로라 웰튼은 자신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동생을 보았다. 처음 오는 곳이라 구경하느라 바쁜지, 동생의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그레이스 웰튼.
지금의 ‘작가 로라 웰튼’을 있게 해준 자신의 여동생.
저절로 떠오르는 과거에, 로라 웰튼이 작게 웃었다. 정말이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건 아주 오래전.
미국도 아닌 먼 타국,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프랑스의 많은 도시 중 한 곳.
사람들로 가득한 핼러윈 축제에서,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세 명의 아이가 만났다.
길을 잃은 꼬마 마녀와 그 꼬마 마녀를 도와준 두 꼬마 늑대로.
그렇게 만난 세 아이는 순식간에 친해져, 지금까지도 그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축제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해져 연락을 이어나가는 건 드문 일이었지만 꽤 있는 일이지.’
하지만 이 세 아이의 이야기는 유일무이할 것이었다.
첫 번째 특별한 점은, 꼬마 마녀의 언니가 그 사건을 바탕으로 [이클립스]라는 소설을 썼다는 것.
두 번째 특별한 점은,
“그레이스?”
“안녕, 준!”
꼬마 늑대 중 한 명이 배우가 되었다는 것.
그것도 평범한 배우가 아닌, 어린 나이에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은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어쩐 일이야? 온다는 이야기 없었잖아?”
“깜짝 놀래켜 주려고 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릴 적의 만남으로 쓰여진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당사자가 남자주인공으로서 출연하게 되었다는 것.
로라 웰튼은 와아아! 하고 어린애들처럼 즐거워하는 동생과 슈퍼스타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입을 쩌억 벌린 담당자와 감독도. 쩍 벌어진 입처럼 크게 떠진 두 사람의 눈에는 혼돈과 의문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로라 웰튼은 저도 모르게 킥킥 웃고 말았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 * *
“……그러니까 그레이스와 아는 사이였다는……?”
“네. 어릴 적부터 친구였어요. 로라랑도 친하고요.”
서준의 말에, 뉴 에이지 담당자와 감독, 윌마 에반스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웰튼 자매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두 쌍의 눈동자에 Liar(거짓말쟁이)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아, 로라 웰튼과 그레이스는 그저 하하 웃기만 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
그런 네 사람의 분위기에, 대충 상황을 이해한 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B1훈련장으로 가던 중.
서준은 최태우가 보여준 서류에 나와 있던 [뉴 이클립스]의 담당자와 감독 윌마 에반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원작자인 로라 웰튼과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친구, 그레이스도.
‘놀라서 그레이스의 이름을 부르긴 했는데…….’
자신에게 대본을 보냈길래 친구라는 걸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고 있었다면 나중에 따로 인사를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딱히 숨겨야 하는 일도 아니고.’
다시 말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서준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서준 리라고 합니다.”
“뉴 이클립스의 감독, 윌마 에반스입니다. 촬영하는 동안 잘 부탁합니다, 리.”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서준이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한 윌마 에반스 감독은 곧 날카로운 눈으로 서준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서준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뒷걸음질쳐서 멀리서 보기도 했다. 빙글 걸어가 옆모습을 보기도 했고, 아예 뒤로 걸음을 옮겨 서준의 뒷모습을 살펴보기도 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머리카락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는 윌마 감독을, 서준은 웃으며 기다려 주었다.
‘섬세한 감독님이시네.’
하고 생각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윌마 감독이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네요.”
서준 리와 직접 만난 적이 없는 터라 조금 걱정했는데, 걱정한 것이 무색할 만큼 서준 리의 준비는 완벽했다. 할리우드에 퍼진 소문대로, 작품에 언제나 진심인 배우인 것 같았다.
“영상으로 본 것과 똑같습니다.”
이어진 윌마 감독의 감탄 섞인 말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비슷하게 찍어서 보냈거든요.”
아무래도 정해진 일정이 있어 직접 만나지 못한 터라, 감독과 제작사에서 걱정하지 않게 일정 기간마다 [뉴 이클립스]를 연습하는 영상을 찍어 보냈다.
“신체 사이즈도 마지막으로 보낸 것과 크게 달라진 곳은 없을 거예요.”
신체 사이즈도 상세히 적어서 전해주었다. 의상과 소품을 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일에 철저한, 서로가 마음에 든 서준과 윌마 에반스 감독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리와 작가님이 친했다니!’ 하고 아직도 경악하고 있는 담당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작가님과 리가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숨기는 편이 좋겠습니다. 작품보다 친분으로 캐스팅됐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이미 한 번 망한 적이 있는 [이클립스]였다.
원작자와 서준 리가 친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번에도 대본이 잘 나오지 않아 인맥으로 서준 리라는 슈퍼스타를 출연시켜 티켓을 팔려고 한다는 의혹이 나올 수도 있었다.
물론, 서준 리라는 배우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친분으로? 서준이가??’라며, 하늘이 무너져도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거기에 인맥으로 이루어진 캐스팅이라고 의심받는 것도 문제였다.
두 번의 오스카상 수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서준 리야 문제없겠지만, 다른 배우들은 달랐다. 혹시 저 배우도 누군가의 인맥으로 캐스팅된 게 아닌가, 연기력은 괜찮은 건가, 하고.
그 모든 것이 모여 끝내,
이번 영화도 망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렇네요. 저희가 고르고 고른 배우들인데 말이죠.”
윌마 감독도 담당자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헛소문들로, 촬영도 하기 전 영화의 이미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담당자와 감독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준과 로라, 그레이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런 헛소문들을 뒤덮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담당자나 윌마 감독이 ‘근데 준과 그레이스는 어떻게 친해진 겁니까?’ 하고 물어봤다면 들을 수 있었을 거다.
14년 전 프랑스의 핼러윈 축제에서 만났던 세 아이의 이야기를.
그런데 안 물어본다.
‘먼저 말하긴 좀 그렇지?’
‘응.’
눈으로 대화를 나눈 서준과 웰튼 자매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말하지 않는 편이 좋으려나?’
그 이야기가 퍼지면 주목을 받을 로라 웰튼 작가의 여동생, 그레이스 웰튼이 일반인이었으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과 로라 웰튼에, 담당자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훈련장으로 가 볼까요?”
엄청난 홍보거리를 바로 눈앞에서 놓친 것도 알지 못하고.
* * *
B1훈련장에는 오늘 함께 훈련을 할 배우들이 도착해 있었다.
윌마 에반스 감독과 원작자 로라 웰튼과 인사한 배우들은 서준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서준을 바라보는 배우들의 눈에는 호감이 서려 있었다.
서준 리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출연 제의를 다시 생각해 볼 정도로, 여기 있는 배우들은 서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같은 배우로서든, 팬으로서든 말이다.
“남우주연상 수상 축하합니다. 리.”
“감사합니다.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서준이 손을 내밀자, 배우들이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마주 잡은 서로의 손이 단단하다는 것을 느낀 배우들의 미소가 진해졌다. 이번 영화를 위해 서로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 정말 팬이에요. 부디,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주세요!”
“고마워요, 브라이언. 저도 브라이언 작품 재미있게 봤어요.”
“오! 정말요?”
서준은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배우들은 듬직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옷 밖으로 보이는 팔과 다리의 근육도 단단해 보였다. 그렇다고 근육만 가득한 우락부락한 모습은 아니었다. 보기 좋은, 적당한 근육을 가진 날렵한 모습이었다.
서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여기서 좀 더 갈면, 아니, 도와준다면 아주 훌륭하고 흉흉한 늑대인간들이 될 것 같았다.
“우리 앞으로 열심히 훈련해요.”
방긋 웃으며 말하는 서준 리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버린 배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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