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19화
[슈퍼히어로 영화의 배우가 후보에 오른 게 그렇게 특이한 일인가요?]
서준의 출연으로 평소 영화나 시상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생방송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영진은 궁금해할 시청자들을 대신해서 영화객과 양시은에게 물었다. 그에 두 전문가는 조곤조곤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군요. 확실히 유명 영화제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나 판타지 영화 속 배우들이 연기상을 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박영진이 조금 아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서준 배우의 수상도 힘든 일이겠군요.]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시은 또한 같은 마음인 듯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레드본도, 쉐도우맨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거든요. 그 배역을 맡았던 데이비스 가렛이나 에반 블록이라는 배우들이 엄청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도 말이죠.]
영화객이 덧붙였다.
[물론 연기력만으로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처음부터 후보에서 배제되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도 이번 시상식이 변화의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말에 박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변화의 시작이요?]
[네. 아카데미 시상식과 할리우드 배우들이, 영화의 장르를 더 넓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인 거죠. 아마도 앞으로는 다른 시상식에서도 좀더 다양한 영화들이 장르라는 한계를 넘어 관심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객이 웃으며 말했다.
[11년 전, 서준 리라는 동양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 동양인 배우들의 자리가 많아진 것처럼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박영진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지난 10여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긴 했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동양인 배우들이 꽤 있었지.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라서 좋았음.
-어쩌면 김종호가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도 이서준이라는 최초가 있어서 가능했던 건지도.
=22 물론 김종호 배우의 연기력도 대단하지만, 이서준 배우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듯.
=33 아예 신경도 안 썼을 것 같음.
=44 할리우드/아카데미: 동양인 배우? 그게 뭐?
=진짜 저럴 것 같다……(짜증)
[물론 지금은 시작점에 불과해서 아무래도 이서준 배우의 수상은 어려울 것 같지만 말이죠.]
양시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던 영화객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르는 일입니다.]
[앞으로요?]
[네. 이서준 배우가 주인공인 나이트 진 시리즈가 나올 예정이니까요!]
오!
영화객의 말에 박영진과 시청자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어냈다.
-그러네! 나이트 진이 있었지?
=쉐앤나가 후보에 올랐으니, 나이트 진도 스토리만 받쳐주면 후보에 올라서 상 받을지도!
=시리즈라고 생각하면 최소 3까지는 가겠지?
=3개나 만들면 하나쯤은……!
=크으으. 벌써 남우주연상 예약인가.
=김칫국 엄청 마시는 것 같지만, 이서준이라면 진짜 그럴 것 같음ㅋㅋㅋ
[하지만 꼭 나이트 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서준 배우는 앞으로도 많은 작품에 출연할 테니까 말이죠. 작품 욕심이 대단한 배우잖아요.]
웃으며 말하는 양시은에 영화객과 박영진 또한 하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생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이서준 배우가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전하던 중.
[아! 레드카펫 위로 첫 번째 배우가 등장합니다!]
본격적으로 레드카펫 행사가 진행되었다.
찰칵! 찰칵! 찰칵!
할리우드를 반짝이게 하는 스타들이 하나둘 레드카펫 위에 섰다.
번쩍이는 플래시, 팬들이 외치는 환호성, 목소리를 높이는 기자들과 방송국들까지,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낯익은 배우들과 낯선 배우들이 손을 흔들며 레드카펫 위를 걸어갔다.
시청자들은 모르는 배우들도 양시은과 영화객은 잘도 소개했다. 그 설명에 시청자들이 ‘아, 거기 나온 배우야? 전문가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생각할 때, 낯익다 못해 친근한 이가 등장했다.
[리첼 힐 배우입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리첼 힐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 리첼 힐의 모습에,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번뜩이고, 새싹들이 새싹봉을 들었다.
-쉐도우앤나이트팀인가!?
=이서준 나옴?!
=ㄴㄴ리첼 힐은 다른 영화로 참석함.
=아, 썸원. 재미있었지!
=ㅠㅠ리첼 언니ㅠ사랑해요ㅠㅠ
리첼 힐이 [썸원Someone]팀과 함께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나 한국배우도 잘 모르는데 리첼 힐은 앎ㅋㅋㅋ
=22 우리 부모님도ㅋㅋ리첼 힐 이름 나오자마자 TV봄ㅋㅋ
=33 기사랑 방송에 많이 나와서ㅋㅋ
=44 이서준 사단이라 내적 친밀도 MAXㅋㅋ
-으아아아! 쉐앤나팀 왔다!!
미리 이야기라도 한 것인지, 리첼 힐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쉐도우앤나이트]팀이 도착했다.
검은 리무진에서 가장 먼저 내리는 에반 블록에 환호성이 터지고, 조나단 감독과 커크 로렌스의 등장에 박수가 쏟아졌다.
-누구야ㅋㅋ 방금 전에 나이트 진 10편까지 내주세요! 하고 외친 사람ㅋㅋ
=22 한국어로 외치면 조나단 감독님이 알아듣겠냐고요ㅋㅋ
=앜ㅋㅋ에반 블록이 번역해 준다ㅋㅋ
=아닠ㅋㅋ그걸 또 왜 번역하냐고ㅋㅋ
=ㅋㅋ조나단 감독 얼굴 창백해
=보약 지어 드려야 할 듯ㅋㅋ
-커크 로렌스 마지막 장면 연기 좋던데. 앞으로 작품 나오면 볼 듯.
=근데 레드카펫은 처음인가? 표정이 완전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뎁쇼ㅋㅋ
=ㅇㅇ아카데미는 처음이라더라.
-아!! 서준이다ㅠㅠㅠ
=서준아ㅠㅠ
그리고 남우주연상 후보, 서준 리가 등장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오늘따라 더욱 반짝이는 서준 리를 촬영했다. 환하게 웃는 모습에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가 후광까지 만들어내니,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천사야? 천사냐고?!
=서준인 신이야ㅠㅠ
=신이든 천사든 사람이 아닌 건 맞는 듯ㅠㅠㅠ
=카메라!! 움직이지 말라고! 서준 오빠만 찍어!!(나노단위로 캡처 중)
-정장: 레든
=벌써 구두부터 시계까지 브랜드 다 올라옴.(링크)
=속도 미쳤네ㅋㅋ
사람들이 들썩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과 [쉐앤나]팀은 레드카펫을 걸어 인터뷰 존으로 향했다.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축하해요! 준!/]
[/감사합니다./]
서준의 감사 인사를 시작으로 [쉐앤나]팀은 짧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나단 감독과 커크 로렌스가 조금 긴장하긴 했지만, 대답하는 데는 별문제 없었다.
인터뷰를 끝낸 서준과 [쉐앤나]팀이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몇 번을 봐도 대단하네요. 이서준 배우의 인맥은.]
박영진은 리첼 힐을 시작으로,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서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게 한국 대학생의 인맥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이서준 인맥은 진짜ㅋㅋㅋ
-으아아아! 나도 서준 오빠랑 인사하고 싶어ㅠㅠ
=이서준이랑 인사하는 법: 할리우드 스타가 된다.
=ㄴㄴ서준이는 그냥 배우 지망생(진짜여야 함)이라고 말해도 반갑게 인사해줄 듯.
=서준이 특징: 배우를 무척 좋아함.
=22 호감도 50은 디폴트ㅎㅎ
그사이, 화면은 다시 레드카펫을 비추었다.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했지만 서준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관심은 한풀 꺾여 있었다.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MBS는,
[그럼 광고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중간에 광고 타임을 넣었다.
-앗, 광고.
=하긴 이서준 나오는 건 봤으니까.
=광고료 엄청 받았겠지?
=그럴 듯ㅋㅋ 한국인은 다 이거 보고 있을 테니까.
-광고 끝나면 봐야겠다.
=22 끝나면 알려주세요~
-광고 끝났음! 시상식 시작함!
=오! 감사!
화려한 축하공연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리첼 힐 주연의 썸원! 미술상을 수상합니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죠.]
[네. 배경, 장소, 소품 하나하나까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축하해요!!
=ㅠ축하합니다ㅠ
할리우드 배우지만 왠지 우리나라 배우같이 친근한 리첼 힐의 출연작이 상을 받자, 모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쉐도우앤나이트! 시각효과상을 수상합니다!]
[아자!]
-으아아아!!
=쉐앤나아아아!!
그리고 [쉐앤나]의 수상에는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나라 영화도 아닌데 왜 이렇게 좋냐ㅋㅋㅋ
=어릴 때부터 본 시리즈라서 그런 듯.
-서준아ㅠ 축하해ㅠ
-영화객 아자! 너무 웃김ㅋㅋㅋ
=저건 진짜 자기도 모르게 나온 겈ㅋㅋ
=ㅋ근데 나도 같이 소리 지름.
각종 부문에서 수상자와 수상작품이 발표되었고, 수상자들이 기쁜 얼굴로 무대에 올라 소감을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아카데미 시상식의 끝이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수상 소감을 말했다. 손에 들린 오스카 트로피가 조명에 반짝였다.
[자, 이제 남우주연상 수상이 있겠습니다.]
박영진의 긴장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서준의 수상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던 양시은과 영화객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병아리 눈물만큼이나 작은 희망이었지만.
[남우주연상 후보자들입니다.]
한 명 또 한 명.
무대 뒤 화면에 차례차례로 남우주연상 후보들의 모습이 비쳤다.
[마지막 후보는, 우리 이서준 배우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서준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가볍게 손까지 흔드는 모습이 차분하고 침착해 보였다.
-음.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게 두 번째라서 그런가. 마음이 편안하고 침착한 기분……이 안 들어!! 미치겠다!! 내가 더 떨려!!! 악! 아악!!(베개 찢음)
=22 아아아아앆!!!(이불 찢음)
=33 서준아아!!(아파트 찢음)
=당사자(이서준)보다 더 떨고 있는 한국인들ㅎㄷㄷ
=……떨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다들 그만 찢어ㅋㅋ
-근데 진짜 서준이는 여유롭네.(다리 덜덜덜)
=긴장 1도 안 한 것 같다.(손 덜덜덜)
=22 긴장은 새싹이랑 한국인이 다 하고 있는 듯.(한국 덜덜덜)
남우주연상을 시상할 차례라는 소식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생중계되는 MBS 채널을 켜 놓고 딴짓을 하던 사람들이 TV 앞에 앉았고, 겨울방학이지만 학교에 나와 수업을 듣던 고등학생들이 선생님을 울망울망한 눈동자로 시청 허락을 얻었다.
일하고 있던 직장인들도 각자 모니터에 방송 화면을 작게 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고, 거리를 걷던 중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휴대폰을 꺼내거나, 근처 TV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병원도, 은행도 다르지 않았고, 버스와 택시도 라디오 소리를 키웠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한국은, 박영진과 양시은, 영화객의 목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한 번 노미네이트 되기도 힘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써 두 번째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서준 배우입니다. 한국배우로서 최초죠!]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나이도 다른 후보들 중 가장 어리거든요.]
[거기에 영화 장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세 사람은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말이다.
-알고 있는데ㅠ 기대됨ㅠㅠ
=22기대하지 말라고. 이 멍청한 머리야ㅠㅠ
=33 혼자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말라고ㅠ 바보 같은 나새ㄲ1
-서준이는 이미 최고다!!
=서준 오빠! 최고!
그렇게 새싹과 한국인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무대 위, 자신의 손에 들린 봉투를 펼치며 사회자가 말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화들을 보며 웃고, 울고, 감격하고, 분노하고, 무서워하고, 위로를 받죠./]
영화객이 곧바로 통역했다. 자막보다 빠른 속도였다.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가, 좋아하는 배우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제 딸아이가 좋아하는 영화가 전혀 다른 것처럼요. 그래서 매번 TV 앞에서 싸우곤 하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저와 제 딸이 같은 작품을 좋아할 때도 있습니다. 나이가 달라도 성별이 달라도, 살아온 삶이 달라도,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멋진 영화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사회자가 봉투를 들어 보였다.
[/여기에 적힌 배우분의 연기가 그랬을 겁니다.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이 배우에게 상을 주고 싶다! 라고 생각하며 투표했을 정도로 말이죠. 어쩌면 저와 제 딸처럼 몇 날 며칠 동안 잊지 못하고 몇 번이고 이 작품을 보러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자의 이야기에, 투표 자격을 가진 이들이 동의하듯 가볍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앞으로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시길 바라면서, 발표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즐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The Oscar goes to……!]
아카데미 시상식 특유의 멘트가 사회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박영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양옆에 앉은 양시은과 영화객도, 실수가 없도록 주의하고 있던 제작진들도, 생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그 숨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가 다섯 후보 중 한 명의 얼굴을 비추었다. 놀란 듯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Seojun Lee!]
!!!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으며, 또 한 번 세계 영화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긴 배우의 이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