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14화
서준의 팬미팅 첫날이 끝났다.
예정보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새싹들은 오히려 좋았다.
“새싹들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서준을 오래오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배웅이라도 해주는 듯,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내 배우님을 보고 ‘응! 안녕! 잘 있어!’ 하고 시원스럽게 인사하고 떠날 수 있는 팬이 어디 있겠는가.
팬미팅장 여기저기 있는 출구가 활짝 열리고 새싹들을 안내하듯 스태프들이 등장했지만, 새싹들은 엉덩이만 들썩거리고 있었다. 가야 하는데…… 가기 싫었다.
“너 때문에 다들 못 가시잖아.”
그때 서준과 함께 3부 동안 서준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풀어준 아주 고마우신 친구분들이 등장했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새싹들은 일부만 알거나 몰랐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많이 이야기해 준 은인들이었다.
“너부터 들어가야 할 듯.”
“어, 그런가?”
김주경과 한지호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머뭇머뭇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 것 같은 새싹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어쩐지 다들 안 나가시더라.
작게 웃은 서준이 부러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손을 흔들었다. 그에 새싹들도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 진짜 이만 갈게요! 모두들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최종_최최종_진짜_마지막 인사도 아니고.
그렇게 말한 서준이 친구들과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사라져서야, 새싹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아. 좋았다.”
“정말로요…….”
정말이지, 1부부터 3부까지 한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다.
잠깐 무대에서 눈을 뗀 적이 있었다.
“바로 옆에서 등장하다니!”
연극 [MOEB-436] 중 객석에서 장산범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극장이 아니라 팬미팅장이라서, 관객석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에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출구로 나갈 준비를 하던 새싹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앉아 있던 바로 옆 통로에서 피가 얼룩덜룩 묻은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장산범’이 등장했었다.
“진짜 오싹해서, 꼼짝달싹도 못 했어요.”
“저도요!”
김민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연극 [MOEB-436]이 공연될 당시에는 광탈해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팬미팅에 당첨되고, 이 자리에 당첨된 과거의 나! 잘했어!
“스크린으로 보여주던 것도 좋았죠.”
멀리 앉아 있는 새싹들도 볼 수 있게, 관객석 통로를 걸어 주막으로 꾸며진 무대로 향하는 ‘장산범’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어 생생하게 커다란 화면으로 보여주는 배려도 있었다.
“거기다 오스카상 노미네이트라니……. 저 오늘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저도요. 진짜……!”
다들 가슴 벅찬 얼굴로 동의했다.
그렇게 새싹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팬미팅장을 나왔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일찍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다들 조심해서 가세요!”
“사진 바로 올릴게요!”
“저도요!”
SNS로 이야기만 나누었던 새싹들, 그리고 오늘 만났지만 십년지기처럼 친해진 새싹들과 인사를 나눈 김민정이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서준 오빠 팬미팅은 끝났지만…….’
새싹들의 팬미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제목: 서준 오빠 팬미팅 첫날 후기! (사진 있어요!)]
뇌를 있는 힘껏 사용해, 오늘 팬미팅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있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되새기며,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 키보드를 토도도독!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두드리는 김민정이었다.
아니, 김민정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새싹들이 [새싹부터], 커뮤니티 사이트, SNS 할 것 없이 서준의 팬미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인터넷은, 서준의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팬미팅 후기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이서준이 인터넷을 점령했습니다.
=22 이럴 것 같았음ㅋㅋ
=33 오스카 노미도 됐고 말이지.
=44 오늘 팬미팅도 있었고. (어라? 나 이서준 팬 아닌데 왜 알고 있지??)
=ㅋㅋ워낙 떠들썩해서ㅋㅋ
=이서준 소식은 팬이 아니라도 다 알고 있음ㅋㅋ
-이제 또 오스카 시상식까지 이서준 이야기로 시끌벅적하겠네.
=22 시상식 쯤에는 각 방송사에서 이서준 관련 영상을 내보내겠다.
=33 다들 이제 익숙해짐ㅋㅋ
아카데미 시상식뿐만이 아니라, 새싹들이 적은 팬미팅 후기에도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팬미팅 다른 건 몰라도 무대는 보고 싶다.
=나도. 사진만 봤는데 뿌리 깊은 아이돌팬의 피가 끓어오르고 있어.
=ㅋㅋ동감ㅋㅋ가죽이라니, 하네스라니, 한복이라니……!
-나 배우 덕질은 안 하는데, 이서준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월드투어 엄청 가는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냐. 가끔 국내에서 무대 해주고ㅠ 연기도 하는ㅠ
=ㅋㅋㅋㅋㅋ
-누가 무대 영상 올려줌! (링크)
=? 콬아는 영상 못 찍게 하지 않나?
=ㅇㅇ가수팀은 못 하게 함. 이서준은 배우라서 괜찮은 듯.
=이서준(코코아엔터 투자자/사장님 조카): 촬영 허가할래요.
코코아엔터: 넵!
=ㅋㅋ권력은 이렇게 쓰는 거ㅋㅋ
=ㄴㄴ권력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름.
=22 새싹들이 엄청 많잖아.
=전세계 새싹: 영상 내놔.
콬아: 아, 그게…….이건 비공개…….
전세계 새싹: (한국행 티켓을 보여주며) 내놔.
콬아: 넵!
=이거닼ㅋㅋㅋ
=권력자 배우와 거대한 팬덤의 콜라보ㅋㅋ
-근데 확실히 팬미팅에 간 새싹 수는…… 새 발의 피의 적혈구쯤이라…….
=적혈구ㅋㅋㅋ
=ㅅㅂ 얼마나 많은 거야ㅋㅋ
-영상 보고 왔는데…… 그냥 아이돌인뎁쇼?
=22 아니, 어떻게 배우가 저렇게 춤추면서 노래를 부르냐? 라이브 맞지?
=ㅇㅇㅇ쌩라이브.
-뭔데? 지금 카메라랑 아이컨텍한거?
=헐. ㅁㅊ어떻게 팬 카메라에 아이컨텍이 가능한??
=이서준은 진짜 그냥 천상 아이돌.
=22 아이돌계는 엄청난 인재를 놓쳤습니다.(땅을 치며 우는)
=배우계: 이서준은 우리가 데려가겠다! 으하하하!! (레드 카펫 까는 중)
이서준: (바닥에 떨어진 대본 따라감)
=말투는 악당인데 왜 레드 카펫 까냐고ㅋㅋ
=배우계: 귀하신 분이니까!
=ㅋ이서준은 왜 대본 따라가는 건데ㅋ
=진짜 일어났던 일입니다. (영화 [흘러가다] 인터뷰 중)
=아닠ㅋ진짜ㅋㅋ?
-나 이서준 팬 아니고 아이돌 잡덕인데, 작년 팬미팅 영상은 재미있게 봤던 작품들 캐릭터 성장 모습이라서 봤거든(재미있었음) 그래서 이번 팬미팅은 안 봐도 되겠지 했는데ㅋㅋ아이돌이 나와 버리네ㅋㅋ팬미팅 영상 공개되면 또 봐야겠다ㅋㅋㅋ이러다 입덕할 듯ㅋㅋ
=……이정도면 입덕한 거 아니에요?
=빨리~입덕하세요~ 입덕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서준이 자료 23년 치 있음.
=ㅅㅂㅋㅋ23살인데ㅋㅋ자료가 23년 치ㅋㅋ
이런저런 이야기로 인터넷이 들썩일 때, 배우 이서준의 팬카페 [새싹부터]는 한창 회의 중이었다.
-서준이 노미네이트 축하하고 싶은데, 뭐 없을까요?
=22 다른 때 같으면 카페에 축하편지를 남겼겠지만! 내일은 직접 만날 수 있잖아요!!
그랬다.
평소 축하할 일이 있으면 [새싹부터]나 SNS에 축하메시지를 남겼던 새싹들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팬미팅 첫날 노미네이트가 발표되어, 팬미팅 둘째 날인 내일 직접! 서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오늘도 열심히 축하하긴 했지만, 그건 팬미팅에 참석한 새싹들이고.
팬미팅에 참석하지 못한 나머지 많은 새싹들의 마음까지 서준에게 직접 전하고 싶었다.
-아이디어 있으신 분!!
그렇게 [새싹부터]는 서준의 노미네이트 축하 이벤트를 위한 토론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다음 날.
배우 이서준의 두 번째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어제 했던 팬미팅과 똑같은 공연들로 진행되었지만, 새롭게 만나는 새싹들의 즐거워하는 표정에 서준은 새로운 무대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이 났다.
[라져 댓.]
새하얀 모자챙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는 서준.
커다란 스크린으로 그런 서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붉은 입술, 오똑한 코와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보였다.
라져 대앳!!
그에 응원봉을 흔들던 새싹들이 열정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제는 검은색 제복, 오늘은 하얀색 제복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의상의 변화에, 새싹들이 감격한 얼굴로 환호성을 질러댔다. 조금 전 ‘하네스 무대‘도 첫날 입었던 새하얀 셔츠가 아니라 검은색 셔츠였었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만 같은 새싹들이었다.
그렇게 의상에 약간씩의 변화를 준 서준의 두번째 팬미팅의 1부가 끝났다.
잠시 후.
쉬는 시간이 지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어제는 강아지귀, 오늘은 고양이귀 머리띠를 쓰고 무대로 올라온 서준이 작게 웃었다.
노미네이트 발표가 있었던 어제가 떠올랐다. 정말 깜짝 놀랐지만 새싹들에게서 축하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그래도 오늘은 아무 일 없겠지.
하고 서준이 생각할 때.
“서준아!”
“서준 오빠!”
[봄봄]의 전주 대신, 관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새싹들이 일제히 서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서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노미네이트 축하해!”
“축하해요!”
그와 동시에.
퍼엉! 펑!
하고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금색, 은색, 그리고 연두색으로 반짝이는 작은 종이들이 하늘에서 서준이 서 있는 무대 위로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었다.
“와아…….”
생각지도 못한 팬들의 이벤트에, 서준이 입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이 꼭 놀란 고양이처럼 보여 새싹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로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놓칠 수 없다.
놀라는 고양이 서준이!
“남우 주연상 후보 축하해!”
“우리 서준이가 최고다!”
여전히 들려오는 외침에 서준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종이조각들에 무언가가 쓰여 있었던 것이었다.
서준이 얼른 두 손을 모아, 마치 봄날의 벚꽃잎처럼 떨어지는 종이 조각들을 받아냈다.
금색, 은색, 연두색으로 반짝이는 종이 조각들의 앞면.
그리고.
[준! 언제나 응원할게!]
[서준 오빠! 사랑해요!!]
[앞으로도 연기 즐겁게 하길 바라!]
[/행복해야 해! 준!/]
짧지만 새싹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가 적혀 있는 뒷면.
온갖 나라의 언어로 된 글자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펑! 퍼엉!
또다시 터지는 폭죽 소리에, 서준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많은 새싹들의 마음이 무대 위에, 그리고 서준의 마음속에 내려앉았는데도, 아직 많은 새싹들의 마음이 남아 있다는 듯, 종이 조각, 아니, 새싹들의 메시지들은 팬미팅장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마다 새싹들의 사랑은 기꺼이 서준의 손 안에 내려앉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 기뻐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서준은 무대의 바닥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들을 깔고 앉지 않게.
2부를 위해 미리 가져다 놓은 의자가 있었지만, 바닥에 앉아야 쪽지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서준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꾸러기 아이처럼 주변의 반짝이는 쪽지들을 소중하게 끌어모았다.
“하아…….”
서준이 한숨처럼, 벅찬 숨을 내뱉었다.
스크린 속, 무대에 앉은 서준이 클로즈업되었다. 그 덕에 모든 새싹들이 볼 수 있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종이 조각 하나하나 살펴보는,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 담긴 서준의 눈빛을.
“이게 뭐예요, 정말…….”
울컥한 듯 조금 떨리는 목소리와 촉촉하게 젖은 검은색 눈동자에, 새싹들의 눈에도 찔끔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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