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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13화 (81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13화

“쉐도우앤나이트가 후보 목록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카데미 회원이라서 올해도 1월에 1차 후보 영화들을 보고 투표를 했거든요.”

팬미팅 준비와 [뉴 이클립스] 준비가 겹쳐져서 바쁘긴 했지만, 영화 보는 것이 곧 쉬는 것인 서준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마린사에서 저를 후보 목록에 올린다고 이야기해 주기도 했구요. 처음에는 쉐앤나를 남우주연상에? 왜지? 왜 올리지? 하고 생각했어요.”

서준이 그 말을 들었을 당시의 의아함을 떠올리며 연기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어쩐지 그때마다 머리 위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가짜 강아지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

새싹들이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 새싹들에 가볍게 웃은 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때는 그냥 홍보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마린사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기도 했고요. 근데…… 진짜 후보에 올라갔네요.”

남우주연상 1차 후보 목록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볼 때마다 ‘음. 안 될 텐데……’ 하고 볼을 긁적였던 서준이 오늘 결과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마린사. 경력이 오래된 영화사라서 그런지, 아마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에요.”

아마 홍보라고 한 건, 노미네이트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서준에게 기대하라고 말하기엔 조금 부족해서 그냥 둘러댄 말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약간 힌트라도 줬으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약간 투덜거리듯 말하는 서준에, 관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전혀, 1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정도로 놀랐던 서준이었다. 물론 기분 좋은 놀람이긴 했지만.

“엄청 귀여웠어!!”

“맞아요!!”

새싹들의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터뜨린 서준이 시간을 살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가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준비한 무대 다 보여 드리려면 조금 늦게 끝날 것 같은데…… 다들 시간 괜찮으시죠? 저 팬미팅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다 보고 가셔야 해요?”

으아아아!!

찡긋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새싹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내일까지 하자! 서준아!!”

“일주일 내내 해도 돼!”

새싹들이야 서준의 얼굴을 더 오래 볼 수 있어서 늦게 늦게 끝나는 편이, 진심으로, 훠얼씬 더 좋았다.

“일주일이요? 그건 좀…….”

부러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대답하는 서준에, 관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난치던 서준도 팬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2부가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첫 순서로 준비한 노래를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준의 말에, 타이밍 좋게 2부 첫 곡으로 준비한 [봄봄]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태프 쪽에서도 언제 시작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던 듯했다.

“레드크라운의 봄봄이에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꽃이 활짝 피는 ‘봄’을 표현하는 것처럼 통통 튀면서도 따뜻한 전주가 들리고, 곧 서준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팬미팅장을 가득 채웠다.

새싹들은 응원봉을 천천히 양옆으로 흔들며 다시 시작된 팬미팅을 즐기기 시작했다.

* * *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서준의 노미네이트를 예상하며, 서준과 새싹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짝짝 박수를 치며 ‘선견지명 미쳤다ㅎㄷㄷ’ 하고 감탄하게 만든 오랜 경력의 영화사, 마린.

이게 우리 회사다!

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아래 직원들과 달리,

“아니…… 왜……?”

[쉐도우앤나이트]의 서준 리 배우를 남우주연상 후보 목록에 올렸던 윗분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후보발표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마린사의 사장, 리처드 보윈도 그랬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서준 리!]

“……이놈들이 미쳤나?”

영상 속, 남우주연상의 마지막 후보를 외치는 아카데미 시상식 관계자의 모습에 리처드 보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에 페일런 박이 웃음을 가리듯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뭐, 오랜 기간 큰 트러블 없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며 이 자리까지 함께 올라온 리처드 보윈과 페일런 박이니, 대놓고 웃어도 별문제는 없겠지만 일단은 상사니까 말이다.

모니터에서 눈을 뗀 리처드 보윈이 페일런 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름진 미간이 더욱더 찌푸려진 상태였다.

“이렇게 발표해 놓고. 아, 오류입니다. 하는 건 아니겠지?”

“확인 끝났습니다. 확실히 후보에 올랐습니다.”

아카데미 측에서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아주 단호하게 ‘진짜’라며 보도자료를 뿌렸다.

페일런 박의 시원스러운 대답에도 리처드 보윈의 미간은 펼쳐질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둘밖에 없는 사장실이지만 리처드 보윈은 더욱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우리 쪽에서 뭔가 한 건 없고?”

돈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조작이라든가, 조작이라든가, 조작이라든가!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콧대 높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마린사의 손을 들어줄 리는 없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 할리우드에서 일해왔던 리처드 보윈이 그렇게 생각할 만큼, 현재의 상황은 기묘하고 괴상하며 낯설었다.

“없습니다. 전혀요.”

페일런 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한다고 들어줄 아카데미도 아니고요.”

“그건 그렇지.”

그럴 수만 있었으면 넘쳐나는 돈으로 상을 샀을 미국 영화사들이었다.

리처드 보윈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분명히 홍보용이었는데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마린사의 OTT 플랫폼인, [쉐도우앤나이트]가 업로드될 [유니버스]의.

재작년 [오버 더 레인보우2: 포 마이 프렌드]로 성공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유니버스]의 존재를 알리고, 작년에는 다른 영화들로 결제회원을 유지했다면, 올해는 [쉐도우앤나이트]로 결제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마린사의 아카데미 1차 후보 목록에 오른 영화, [쉐도우앤나이트]라고 홍보하면서 말이다.

그 기사를 본 전 세계의 새싹들이라면 ‘후훗, 역시 뭘 좀 아시는군요!’ 하면서 시원스럽게 결제할 거라고 예상했다.

“겸사겸사 준에게도 눈도장도 찍고 말이지.”

우리 마린이 서준 리 배우를 이렇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하고 말이다.

‘시즌2 히어로 영화의 중심이 될 배우와는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히어로 영화뿐만이 아니라, 마린사 계열의 다른 제작사에서도 좋은 작품을 해주면 더욱 좋았다.

슈퍼스타의 별 아래서 태어났는지, 어떤 작품이든 찍으면 대박인 배우가 아닌가.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서준이 마린사의 남우주연상 1차 후보 목록에 포함된 것이었다.

슈퍼히어로 영화라 노미네이트될 가능성은 없으니 오스카 레이스를 할 필요도 없어 돈도 들지 않고, 배우와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아주 멋진 방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진짜로 노미네이트될 줄이야…….”

투표자들이 다국적 기자들로 구성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노미네이트되지 못했는데 말이다.

서준 리.

[오버 더 레인보우1]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부터 그랬지만, 진짜 예상을 할 수 없는 배우였다.

마른세수를 하는 리처드 보윈에, 페일런 박이 웃으며 말했다.

“시대가 변한 거죠.”

여유로운 어투로 말하는 페일런 박이었지만, 그도 처음 후보 목록이 발표될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놀란 만큼 기뻤다.

“……그래.”

리처드 보윈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대가 변하는 것이 살갗으로 다가왔다.

마치 역사를 뒤엎는 거대한 허리케인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허리케인의 중심에는 서준 리라는 배우가 있었다.

데뷔부터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남기고, 어린 나이에 오스카의 남우주연상과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리고 한 번 더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된.’

그러고서도 앞으로도 활동할 나날들이 많은 슈퍼스타.

심장이 뛰었다.

이 슈퍼스타가 앞으로 영화사(史)에 어떤 기록들을 남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였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슈퍼스타의 모습과 함께, 그와 작품을 만들어나갈 마린의 모습이.

“준은 언제 온다던가?”

노미네이트 축하파티를 열어야겠다.

바쁘다면 선물이라도!

“4월에 미국에서 촬영 예정이라 3월에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아마 아카데미 시상식 때문에 2월 말쯤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 작품을 한다고 했지.”

“예.”

대중들은 아직 모르지만, 영화계에선 여기저기 알려진 이야기였다.

리처드 보윈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회사 작품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리처드 보윈을 보며 페일런 박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럴 때마다 기분이 묘하네요. 사장님이 준의 캐스팅을 반대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

페일런 박의 말에, 리처드 보윈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흑역사, 동양인 배우는 안된다고 했던 [쉐도우맨2]의 캐스팅 때를 떠올린 것이었다.

“엊그제라니! 15년은 더 된 이야기를!”

“참 감개무량합니다.”

“야!”

* * *

“미치인!”

한지호가 눈을 번뜩이고 서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미쳤다! 미쳤어!’를 외치며 앞뒤 양옆으로 흔들어댔다. 그에 온몸에 힘을 뺀 서준이 으아아아- 휘둘렸다.

“그러다 애 죽겠다.”

“……서준이 형이요?”

김영찬의 물음에 모두 잠시 서준을 열심히 흔들어대는 한지호와 어울려주며 웃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뭔가 하룻강아지와 놀아주는 어른 개가 떠오른다.

그에 친구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과 매니저 최태우, 서준의 노미네이트 소식에 단숨에 달려온 안다호 이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지호가 먼저 지친다,에 한 표.”

“나도. 서준이가 지친 모습은 상상이 안 돼.”

“저도요!”

“이럼 내기가 안 되는데?”

그에 3부의 막을 열 연극 [MOEB-436]에 참여하는 김주경과 강재한, 박연지가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도 대기실로 온 서준과 만나자마자 노미네이트를 축하하려고 했지만, 저기서 미친 듯이 축하(?)하는 한지호의 모습에 그럴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한지호가 진정하고(지쳤다.) 서준이 웃으며 친구들을 반겼다. 친구들도 서준에게 축하를 전했다.

“노미네이트 축하해요! 서준이 형!”

“고마워.”

“마린사 진짜 대단한 것 같더라.”

“맞아. 어떻게 히어로 영화가 노미네이트될 줄 알았지?”

“나도 엄청 놀랐어.”

마린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착각은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었다.

“그럼 미국에 가는 거예요, 서준 오빠?”

“응. 스케줄 수정해야지.”

박연지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내일 팬미팅을 빼면 2월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니, 스케줄 수정하기는 쉬울 터였다.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2월 말에 가면 그대로 LA에 머물러도 될 것 같았다.

‘집도 있으니 편하게 지낼 수도 있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미국으로 출국하는 게 더 힘들 테니까 말이다.

‘다호 형이랑 태우 형이 알아서 해주겠지.’

고개를 돌리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든든한 매니저들의 모습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그럼 배우는 배우의 일을 해야겠지.’

서준은 친구들과 후배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가볍게 대본 리딩 해볼까?”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서준의 노미네이트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던 [436]팀이 멍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식을 듣고 대본 리딩할 생각을 하지?”

“서준이잖아.”

아하.

그 말에 모두들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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