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12화
“……아니……이게……왜……?”
띄엄띄엄 나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서준이 고장 나 버렸다는 것을.
쉬는 시간에 이 이야기를 듣고 서준과 같은 반응을 보였던 새싹들은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거의 볼 수 없는 당황한 서준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슬프게도 뒷모습밖에 안 보였지만…….
‘나중에 팬미팅 영상으로 공개해 주겠지!’
공개 안 하면 쳐들어갈 거다. 코코아엔터!
새싹들이 한쪽에서 서준을 찍고 있는 카메라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불꽃이 튈 것 같았다.
카메라에 지금 모습이 그대로 담기는 중인지도 모르고, 서준은 놀란 얼굴로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짜 강아지 귀까지 놀라 번쩍 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사진) [쉐도우&나이트] 서준 리/ 23세]
눈을 비벼 다시 봐도 스크린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듯, 컴퓨터를 조작하는 이서준 배우 전담 1팀 직원은 신난 얼굴로, 화면을 위아래로 스크롤을 움직이며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다른 배우들의 이름도 보여주었다.
“……정말로?”
손에 들고 있던 커스텀 마이크로 타고 스피커로 퍼져 나가는 서준의 당황한 목소리가 지금 얼마나 충격을 받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대기실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을 때, 서준은 가장 먼저 과거의 팬미팅을 떠올렸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팬들의 외침에 뒤를 돌아봤을 때.
제39회 WTV 영화제에 후보로 오른 자신의 이름을 봤을 때.
자신을 사랑해 주는 팬들에게 축하를 받았던 아주 기쁘고 행복했던 날을.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그날을 떠올리지 못할 서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준은 빠르게 그 가능성을 지워 버렸다.
왜냐하면 지금은 2월이니까.
다른 시상식들도 있겠지만 서준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깜짝 이벤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시상식은 단 하나뿐.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
서준이 ‘그건 아니지.’ 하고 단박에 지워 버린 가능성이었다.
왜냐하면 서준이 최근 출연한 작품은 [쉐도우앤나이트]니까.
……근데 왜 내가 후보로 올랐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도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꿈인가 싶었다.
그때.
꿈이 아니라는 듯,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서준아! 축하해!
-노미네이트 축하해!
스태프의 신호에, 축하의 말을 있는 힘껏 외치는 새싹들.
그에 서준이 흠칫 몸을 떨었다. 팬미팅 중이라는 것도 잠시 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나 보다.
서준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으아아! 서준 오빠! 축하해요!
-남우주연상 후보 축하해!!
축하의 불꽃놀이처럼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새싹봉을 열심히 흔들며 외치는 새싹들이 보였다.
그 모습에 서준은 깨달았다.
……진짜 꿈이 아닌가 보다.
* * *
서준의 팬미팅장이 축하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팬미팅장 밖도 들끓고 있었다.
[배우 이서준,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배우 이서준, ‘쉐도우앤나이트’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서준 배우의 이름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두 번이나 후보에 오른 한국 배우!]
-??아니, 이게 무슨??
=아카데미?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 맞아? 어디 연기학원 아니고??
=진짜 미국 시상식 맞는 듯;;;
-와! 축하합니다! 이서준 배우!
=22 축하해요!!
=33 축하! 남우주연상 후보에 또 오르다니, 역시 대단함.
-기자들 기사 복사+번역+붙여넣기 잘못한 거 아님?
=그러게. 아니, 이서준이 아카데미 후보라고? 왜??
=22 미친 거 아님??
=와…… 진짜 홈페이지에 떴음.
-이러다 또 받는 거 아님?
=수상까지 가자!
인터넷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기사 댓글창이든,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창이든, 경악하는 댓글들과 축하하는 댓글들. 그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아니, 다들 왜 그래? 이서준 연기력이면 후보에 들 수도 있지. 오버레로 수상까지 한 배운데.
=222 어렸을 때보다 연기를 잘하면 잘했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축하해 주던 사람들은 생각과 다른 댓글들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서준 배우라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배우가 아닌가.
보통이라면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해!’, ‘축하합니다!’로 가득 찼을 댓글창이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 서준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등의 나쁜 느낌은 아닌데, 굉장히 괴상하고 기이한 것을 본 듯한 분위기였다.
-아니, 이게 축하할 일인 건 맞는데…… 말이 안 된다니까??
=?왜요?
=작품이 쉐앤나잖아. 쉐앤나.
=쉐앤나 재밌는데? 나 5번이나 봤는데?
=아니 그러니까…… 하아……
-으아아아! 누가 이 분위기 설명 좀 해줘!!
* * *
-그래서 스피드웨건이 나타났다.
-ㅋㅋㅋㅋㅋ
“네. 영화 리뷰어로서 이런 특이한 상황을 놓칠 수는 없죠.”
영화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저는 후보발표 방송을 생방송으로 봤습니다.”
-영화 리뷰어니까 봐야지.
-22 안 보면 직무태만.
“……맞는 말씀입니다만 칭찬 좀 해주세요.”
시청자들의 냉정한 반응에 영화객이 두 손을 들었다.
-아직 잊지 않았다. 서준이 팬사인회 간 승리자.
-뒤에 잘 보이게 액자까지 걸어둔 영화객 놈……!
“하하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지금 사람들의 반응이 왜 두 가지로 나누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웃음으로 때운 영화객이 얼른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오스카상 후보 발표로 경악하시는 분들은 평소에 영화나 시상식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어떤 시상식인지 아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현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거죠.”
-어떤 시상식인데요?
“슈퍼히어로 영화는 작품상이나 남우, 여우 주연상 같은 주요 상에 안 넣어주는 시상식이죠.”
-22 미술이나 CG 같은 기술상이면 몰라도.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이서준 배우와 마린사측도 알았기 때문에 오스카 레이스도 참가하지 않았고, WTV 시상식을 끝으로 쉐앤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를 지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목록에 이서준 배우를 넣은 마린사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영화객이 모니터에 그림 하나를 띄웠다.
[제작사에서 후보자 선정 > 1차 투표 > 2차 투표 =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마린사에서 이서준 배우를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해주지 않았다면 후보에도 못 올랐을 겁니다.”
-진짜……어떻게 넣었지?
-안 될 걸 알았면서(과거형) 왜 넣었지??
-오버레2면 몰라도 쉐앤나로 남우주연상이라니……
-용감하다. 마린. 멋지다. 마린.
“네. 차라리 오버레2로 이서준 배우가 남우주연상에 올랐다면 다들 이해했을 겁니다. 음악영화이고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을 멋지게 보여주었고 반전도 정말 감동적이었으니까요. 이서준 배우의 연기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죠.”
영화객이 말을 이었다.
“근데 이번 작품은 쉐도우앤나이트, 슈퍼히어로 영화죠. 그러니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아시는 분들의 반응이 이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영화객이 마우스를 움직여 홈페이지 하나를 띄웠다.
1월에 끝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후보 목록이었다.
서준의 이름은 없는.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목록.
“이걸 보시면 오스카상보다 깨어 있다고 생각하던 골든글로브 시상식도 이서준 배우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리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골든글로브도 후보에 안 올렸는데 아카데미가???
-22 아카데미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함.
-180도 돈 듯.
-갑자기 바뀌니까 무섭잖아ㅎㄷㄷㄷ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후보 발표 방송 보고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영화객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제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심사위원들의 투표가 아니라 수많은 배우들이 투표하는 만큼 변수가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만 서준 리를 투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가 투표해 버림ㅋㅋㅋ
-짜잔! 그래서 후보에 올랐습니다!
“작년, 아니, 재작년이군요. 재작년에 OTT로 공개되었던 오버 더 레인보우2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을 것 같고요.”
-작품만 보고 투표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꼭 그렇게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영화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쉐도우앤나이트’가 예전부터 이어져 온 쉐도우맨 시리즈의 다음 영화라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투표권이 있는, AMPAS 회원인 미국 배우들이 이서준 배우의 연기를 어렸을 때부터 봐왔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오호.
-이서준 키드인가.
“키드까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서준 리라는 배우에게 익숙하다는 거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또 있어요??
-생각보다 많은 게 얽혀있구나.
-역시 영화객.
-내가 이래서 영화객 리뷰를 본다ㅋㅋ
칭찬해 주는 시청자들에, 영화객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아마도 OTT 작품들을 의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현재 많은 영화제와 시상식들이 OTT 플랫폼 작품들을 거부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예전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
-OTT 작품 중에도 좋은 게 많고.
-22 벌써 상을 주는 곳도 있잖아.
-OTT 작품보다는 히어로 영화를 후보로 올리는 게 낫다는 건가?
“네. 그런 거죠. 아무래도 같은 영화라는 장르 안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영화객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이서준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지만요.”
-22 연기가 나빴으면 아무도 뽑아주지 않았겠지.
-33 서준이 최고ㅠㅠㅠ
-그래도 수상은 힘들겠죠?
영화객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후보가 다섯으로 좁혀진 데다가 다른 후보자들도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분들이기 때문에, 쉐앤나로서는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ㅠㅠ아쉽다ㅠㅠ
-그래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게 어디야.
-22 히어로영화로서는 처음이잖아!
-33 역사를 써 내려가는 우리 서준이ㅠㅠ
“맞습니다. 시즌1 가장 인기 있던 레드본도, 쉐도우맨도, 가장 흥행했던 어셈블도 오르지 못했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이서준 배우가! 나이트 진으로서! 오른 겁니다! 최초로요! 노미네이트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객이 정말 기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축하합니다. 이서준 배우!”
-22 축하합니다. 이서준 배우ㅠㅠ
-축하해. 서준아ㅠㅠ
-축하해요!!
-지금 팬미팅 중일 텐데 들었을까?
-들었을 듯. 옛날에도 팬미팅 때 후보로 오른 거 알려줬다고 하던데.
-ㅠㅠ팬들이랑 같이 알게 되면 더 행복하겠다.
* * *
“와. 나이트 진으로 후보에 오를 줄은 정말 몰랐어요.”
부르려던 [봄봄]은 잠시 미뤄두고, 의자에 앉은 서준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팬미팅 2부가 시작되었다.
스크린에서 후보 목록이 사라지고, 드디어 서준의 얼굴이 비치자 새싹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평소보다도 서준은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행복해하는 게 보였다.
‘거기에 강아지 귀까지 달고 있어……!’
새싹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서준이 강아지 귀 머리띠를 쓴 것을 깜빡 잊은 것처럼 보여서, 더 귀엽고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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