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11화 (81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11화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서준을 비추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서준과 함께 팬미팅 무대를 준비했던 백댄서들이었다.

‘이야…….’

꺄아아악!

팬들의 비명소리와 응원봉의 빛이 팬미팅장을 가득 채우는데, 지금까지 가 본 아이돌 콘서트 못지않았다.

게다가 저 자연스러운 이서준 배우의 태도.

연습할 때도 생각했지만, 아이돌계에서 어마무시한 인재를 놓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백댄서들이었다.

‘물론, 연기도 엄청 잘하지만.’

그리고 스포츠도 잘하지. 연습할 때 슬쩍 보니 몸도 좋던데.

신이 ‘이서준’이라는 사람을 만들 때, 아낌없이 재능들을 쏟아부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잡생각들도 잠시.

쿵-!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엑시트]의 도입부가 시작된다.

무대 전체가 밝아지며, 검은 옷을 입고 각자의 위치에 서 있던 백댄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셔츠에 검은 하네스를 입고 중앙에선 서준의 모습이 뚜렷하게 팬들의 눈에 들어왔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며, 새싹봉을 잡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

원래는 블루문 다섯 멤버에게 맞춰 만들어진 댄스였지만, 서준의 중심으로 변형된 댄스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아이돌로 변신한 서준이 보인다.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잘도 찾아내며 눈을 마주치는 서준은 정말 아이돌처럼 보였다. 게다가 마치 자신의 곡인 양, 아무 이질감 없이 완벽하게 무대를 소화해 냈다.

커다란 화면에 비친 서준이 서늘하게 웃으며 웨이브를 한다. 그때마다 넉넉한 품의 새하얀 셔츠가 나풀거린다. 슬며시 단단한 맨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으아아악!!”

“서준아!!”

“서준 오빠아!!”

그때마다 새싹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시작부터 이렇게 달려도 되나 싶었지만,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어!!

무대 위에서 카메라를 보며 싱긋 웃는 서준에, 어느새 그런 생각은 날아가 버리고 다들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 * *

으아아악!!

쉴 틈도 없이 서준의 무대는 두 번째로 넘어갔다.

이 곡 또한 블루문의 곡이었는데, 이것도 앞선 [엑시트]와 마찬가지로 격렬한 퍼포먼스가 매력적인 곡이었다.

“버밀리온 애들이 이걸 보고 배워야 하는데…….”

이건 배우 팬미팅인가, 아이돌 콘서트인가.

여유롭다 못해, 혼자임에도 무대를 다 씹어먹으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서준의 모습에 지원 나온 가수팀 팀장과 직원들이 감탄했다.

게다가 두 번의 무대가 끝나고, 무대를 채우고 있던 백댄서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간 후, 팬들을 보며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하고 환한 얼굴로 인사하는 서준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봐봐. 숨도 안 몰아쉬네.”

“땀도 거의 안 난 것 같은데요?”

“체력 진짜 대단하다…….”

그런 가수팀 팀장과 직원들의 모습에 최태우가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 * *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와아아아!!

서준의 인사에, 환호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서준을 부르는 새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서준이 더욱더 환하게 웃었다.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아 새싹들의 심장이 쿵덕쿵 뛰었다.

“무대가 어땠는지 묻고 싶은데…… 잠시만요.”

서준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대 오른쪽으로 향했다. 카메라와 새싹들의 시선이 서준을 뒤쫓아갔다.

거기에는 테이블과 네모난 상자가 있었다. 검정색과 은색의 하드케이스.

어?! 저거!

새싹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싹부터]의 공지를 본 새싹이라면 다 알고 있는 하드케이스였다.

“아무래도 춤이 격렬하다 보니, 커스텀 마이크를 쓸 수가 없었거든요.”

활짝 웃으며 연두색의 커스텀 마이크를 꺼낸 서준이 고개를 돌려 무대 뒤에 설치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카메라에 커스텀 마이크에 새겨진 새싹과 월계수관이 잘 보이도록 움직였다.

“어때요, 잘 보이세요?”

무대에서 춤을 추느라 볼에 붙여놓은 마이크와 손에 들고 있는 커스텀 마이크. 두 곳에 서준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가서 그런지 소리가 울렸다.

“이제 이 마이크 꺼주셔도 돼요.”

서준이 볼에 붙여놓은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아- 아-. 감사합니다.”

연두색 커스텀 마이크를 든 서준이 다시 물었다.

“어때요, 이 마이크 예쁘죠?”

네!!

응!!

커다란 새싹들의 목소리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계속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커스텀 마이크를 선물로 주실 생각을 하셨어요? 아마 커스텀 마이크를 선물 받은 배우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연두색 커스텀 마이크를 카메라에 비추며 서준이 말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인 연두색인 것도 좋고, 새싹이 새겨진 것도 정말 좋아요. 게다가 월계수관이 있는 것도요. 월계수잎 꽃말이 죽어도 변함없음, 이라면서요? 뜻도 너무 좋지 않아요?”

서준의 들뜬 목소리에 새싹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 시크하고 섹시하던 모습은 어디로 던져 버렸는지, 마치 자신이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꼬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도 선물 가방에 이 무늬를 프린팅했어요. 다들 보셨어요?”

그에 김민정이 놀란 얼굴로 조심히 내려놓았던 종이가방을 들었다. 정신없이 받은 거라 모르고 있었는데, 정말로 새싹과 월계수관이 그려져 있었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새싹들을 죽어도 변함없이 사랑할 거니까요.”

꺄아아악!!

새싹들의 마음을 한바탕 뒤집어 놓는 서준이었다.

“파란색 마이크는 블루문이 떠올라서 좋아요.”

연두색 마이크의 자랑으로는 모자란지, 서준은 어느새 다른 하드케이스에서 두 개의 커스텀 마이크를 꺼내 카메라에 잘 잡히도록 들어 보였다.

“보름달과 붉은 보석이라니, 딱 봐도 뮤직비디오가 떠오르죠? 그리고 검은색 마이크는 진짜 밤하늘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예뻐요. 여기 제 별자리랑 이름이 별처럼 새겨져 있는 거, 보이세요?”

응. 알아.

우리가 디자인했는걸.

선물한 당사자들에게, 선물을 소개하는 건 무슨 일인가 싶지만.

‘서준이가 좋아하니 됐다.’

하고, 그저 엄빠 미소를 짓는 새싹들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이런 점이 좋다, 저런 점이 좋다 이야기하는 서준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앞으로 팬미팅에서는 이 마이크들만 쓰려구요.”

으아아아!

서준의 다음 팬미팅 예고 아닌 예고에 새싹들이 함성을 질렀다. 물론 내 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참.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요.”

잠시 커스텀 마이크를 자랑하던 서준이 정신을 차리고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커스텀 마이크를 가지러 간 후로, 계속 무대 구석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새 무대 중앙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다들 서준에게 신경이 쏠린 사이, 스태프들이 옮겨 놓은 것이었다.

그 앞에 선 서준이 연두색 마이크를 들고 활짝 웃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새싹 여러분!”

와아아아!!

커다란 함성 소리가 팬미팅장을 가득 채웠다.

* * *

작년 팬미팅이 ‘서준이 출연했던 캐릭터들’의 모습으로 보여준 공연이었다고 하면, 이번에는 ‘이서준’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쪽도 좋지만!”

다음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서준이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사이, 스크린에서는 서준이 연습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격한 춤에 나풀거리는 티셔츠 아래로 슬쩍슬쩍 보이는 서준의 식스팩이 날이 갈수록 진해지는 것 같아, 어쩐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김민정이 새싹봉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나만 변탠가?!

“서준이 몸이 더 좋아진 거 같지 않아요?”

“그쵸? 나만 그런가 했네!”

“으아아아! 서준아!!”

……다 같은 마음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런 새싹들의 외침을 들은 듯,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거! 화이트의 라져 댓……!”

새싹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블루문의 선배 보이그룹인 화이트의 [라져 댓 Roger that]

음원 1위도 음원 1위지만, 이후 아이돌 사이에 제복을 유행시킨 노래기도 했다.

‘그러니까……!’

동그랗게 눈을 뜬 새싹들 앞으로,

뚜벅뚜벅-

몸에 딱 맞춘 듯한 검은색 제복에, 모자를 눌러쓴 서준이 등장했다.

지시를 내리는 듯, 지지직거리는 무전기 소리가 들려오다 끊긴다.

그에 모자챙을 잡아 내리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서준이, 모자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는다.

“라져 댓.”

으아아아악!!

자신만만한 그 미소에,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저 목이 다 쉬었어요…….”

“저도요. 이제 1부가 끝났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김민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사이사이 토크 시간이 없었으면 그냥 기절할 뻔했다.

‘제복 토크 시간도 좋았지.’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입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즐겁고 행복한 시작이었다.

‘올백이요? 잠시만요.’

하고 물로 손을 적셔, 올백 머리를 해주던 서준 오빠의 모습이 다시금 생각났다.

제복에 올백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너무 좋았다.

지금은 1부와 2부 사이의 쉬는 시간.

편하게 쉬라는 듯, 스크린도 꺼지고 바이올린 연주 소리만 들려왔다.

“서준이 연주다!”

날카로운 새싹의 귀가 연주자가 서준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몇몇은 그렇게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했다.

“다음엔 뭘까요?”

“글쎄요. 노래들을 보면 코코아엔터 가수들 노래던데.”

“그것도 꽤 유명했던 곡이었죠.”

김민정은 십년지기가 된 옆 새싹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선물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음료수와 맛있는 간식들, 그리고 새싹들이 나눠준 과자들을 냠냠 먹었다.

“연극도 할까요?”

“서준 오빠니까 할 것 같아요.”

김민정의 말에 주위 모든 새싹들이 고개를 끄덕이다 눈이 마주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누군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 * *

대기실.

적당히 배를 채운 서준이 휴대폰을 두드렸다.

>한지호: 잘하고 있음?

<응. 좀 있다가 2부 시작해.

>박연지: 우아아! 엄청 떨려요!

>김영찬: 저도요!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걱정 마. 잘할 거야ㅎㅎ

격렬한 퍼포먼스가 많은 이번 팬미팅은 아무래도 체력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2번 넣어 총 3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연극 [MOEB-436]은 3부에서 할 예정이었다.

“근데…….”

[436]팀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서준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뭔가 전체적으로 술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묘하게 기시감이 든다.

하지만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무슨 일 있어요, 태우 형?”

“아니. 아무.것도.없는데?”

잠시 침묵 후, 서준이 입을 열었다.

“……형은 연기 안 하는 게 좋겠어요.”

“할 생각도 없어…….”

자괴감에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말하는 최태우.

그 모습에 아하하 웃던 서준이 생각했다.

‘아마도 팬분들의 깜짝 이벤트려나.’

서준이 기대로 작게 웃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 끝나고.

팬미팅 2부가 시작되었다.

겨울에 어울리는 포근해 보이는 스웨터를 입고, 팬사인회 때 받은 강아지귀 머리띠를 머리에 쓴 서준이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마른침만 삼키고 있던 김민정과 새싹들은 잠시 할 일도 잊은 채, 그런 서준의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이걸 내 눈으로 보다니!”

“서준 오빠는 강아지상이라니까!”

“골든 리트리버도 보고 싶었는데!”

만족스러운 반응에 빙그레 웃은 서준은 전주가 흘러나오길 기다렸다.

2부의 첫 노래는 레드크라운의 발라드 [봄봄].

그런데 들려와야 할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

아주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서준은 이내 이게 깜짝이벤트라는 걸 파악했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차린 새싹들이 외쳤다.

-서준아! 뒤!

-뒤를 봐요!

뭘까.

2부가 시작되자마자 깜짝이벤트를 할 줄은 몰랐던, 서준은 설레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사진) [쉐도우&나이트] 서준 리/ 23세]

……뭐?

서준의 눈과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지고 말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