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09화
그렇게 새싹들이 눈알을 번뜩이며 공개된 영상들을 0.01초 단위로 살펴보며 저장하고 있을 때(팬사인회에 간 새싹들이 공개해 준 사진들은 이미 모두 저장했다.), 서준은 커스텀 마이크들로 노래를 부르며 박이든, 정은성과 함께 팬미팅에서 팬들에게 보여줄 곡들을 선정했다.
“서준아. 그 마이크, 나도 써봐도 돼?”
“안 돼.”
반쯤 농담으로 말했던 박이든은, 단호한 서준에 입술을 삐죽이더니 연습실에 있던 마이크를 들고 이별곡으로 유명한 ‘네가 이럴 줄 몰랐어’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준과 정은성이 웃음을 터뜨리고, 연습실은 잠시 노래방이 되었다.
“원래 딴짓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지.”
“그건 그래.”
박이든의 말에, 서준도 웃으며 커스텀 마이크로 두 곡을 불렀다.
그래도 본래의 목적은 잊지 않았다.
텅 비어 있던 종이가 어느새 서준과 박이든, 정은성의 글씨로 가득 찼다.
두 줄이 직직- 그어져 삭제된 곡도 있었고, 동그라미가 마구 그렸다가 두 줄이 그어진 취소된 곡도 있었고, 별표가 그려진 곡도 있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확실히 선정된 곡들을 살펴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뿌듯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무대는 라이브로 할 거야?”
“춤은? 안 바꾸고?”
정은성과 박이든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그러려고.”
그에 두 친구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이미 배운 [블루문]과 따라 하기 쉬운 곡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난이도가 있는 다른 곡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기엔 서준이라도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돌로 데뷔해도 대성할 만큼 뛰어난 서준의 능력은 잘 알고 있지만.
“너 영화 준비도 해야 하잖아. 입금 전, 입금 후. 그거.”
박이든의 농담 섞인 걱정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밈으로 자주 올라오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관리가 전혀 안 된 모습과 철저하게 관리된 모습의 사진들.
“그거 때문에 바쁜 거 아니야?”
정은성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준이 어떤 영화를 찍고,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괜찮아.”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영화 준비는 계약했을 때부터 하고 있으니까.”
계약이 아마…… 작년이었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정은성과 박이든이 이내 씨익 웃었다.
“그럼 다행이고.”
“2월 팬미팅이라고 해도 완전 초라서, 이것만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지.”
서준은 두 친구의 걱정을 이해했다.
팬미팅은 2월 1일과 2일(토, 일요일)에 진행되니까 말이다.
지금은 1월 초.
이제 한 달도 채 남은 시간. 보통이라면 팬미팅 준비로도 바쁠 시간이었다.
“팬들 일이라면 진심인데다가 작품에 관해서도 철저한 너니까. 오히려 그래서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어.”
응응.
정은성의 말에 박이든이 공감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이서준은 이서준이네.”
“그러게.”
작품도, 팬들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서준에, 박이든과 정은성이 이내 걱정을 떨쳐버리고 미소를 지었다. 애정이 가득한 친구들의 걱정에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곡도 정해졌으니까, 점심 먹으러 갈까?”
서준의 말에 정은성과 박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점심시간이네.”
“어쩐지 배고프다고 했어.”
연습실을 나온 서준과 두 친구는 6층 식당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4층 가수팀 사무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향하려는 가수팀 직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시간까지 일 이야기는 안 하고 싶었지만, 이 ‘일’은 조금 특별했다.
“이서준 배우의 팬미팅에 섭외할 백댄서팀은 어떤 팀으로 하면 좋을까요?”
바로 이서준 배우의 팬미팅 무대에 설 백댄서팀을 섭외하는 일이었다.
“오늘 곡 목록을 준다고 했으니까, 그 곡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팀이 좋지 않을까요?”
“곡에 따라서 여러 팀을 섭외해도 괜찮다고 하시더라. 무대 완성도만 생각하래.”
그에 가수팀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정말요?”
콘서트도 아니고 팬미팅인데(그것도 배우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역시 이서준 배우.”
그 배우가 이서준 배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작년 팬미팅 때도 국악연주자들을 잔뜩 불렀었죠.”
“그랬었지.”
가수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으로 본 ‘성녕대군 마마의 공연’은 다시 생각해도 대단했다.
그 국악연주자들 사이에서 1%의 모자람도 없었던, 아니 오히려 빛이 났던 이서준 배우는 특히 더욱 대단해 보였다.
“이번 팬미팅 무대도 잘할 것 같지?”
“액션 찍는 거 보면 고난이도 댄스라도 잘할 것 같아요.”
“진짜. 배우만 아니었으면 확 납치해 오는 건데……!”
한 직원의 말에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 배우면 캐스팅팀이 아니라 A&R팀이라도 데려올걸.”
“프로듀싱팀이라도 발목 잡고 늘어질 거예요.”
다들 킬킬거렸다.
그 사이로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 직원이었다.
“전 입사하고 한 번도 이서준 배우님을 본 적이 없어요…….”
그에 몇몇 직원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도.”
“아무래도 가수팀 사무실에 올 일은 없으니까.”
“전 지나가면서 슬쩍 봤어요.”
“어디서요?”
“연습실에서요. 작년 팬미팅 준비 때요.”
“그럼 이번 달에 연습실 가면 볼 수 있겠네요?”
그말에 눈을 반짝이는 직원들에 선배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터 해야지.”
직원들도 농담으로 한 말이라 웃으며 말했다.
“연습실에 갈 일이면 절 시켜주세요!”
“저도!”
“제가 제일 빠릅니다!”
저마다 키득키득 대며 웃을 때,
띵동-
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느라 조금 느리게 도착한 것 같았다.
‘사람 많겠는데.’
어쩌면 만원이라 몇 명밖에 못 탈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하며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바라보는 선배와 직원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엘리베이터 안은 세 사람만 타고 있었다. 그중 둘은 아는 사람이었다.
“어, 이든 씨, 은성 씨.”
“안녕하세요.”
“점심 드시러 가세요?”
“네. 두 분도 지금……?!”
블루문의 멤버 둘과 인사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선배가 나머지 한 명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 이서준 배우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호랑이의 등장에 가수팀 직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고, 몇몇은 놀라 숨 쉬는 것까지 잊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하는 이서준 배우에게서 빛이 났다.
“안, 안녕하세요.”
선배가 인사를 하고 직원들도 꾸벅 인사를 했다. 모두 여전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였다.
“식당 가시죠? 얼른 타세요.”
“괜, 괜찮습니다! 아직 일이 남아서요! 먼저 올라가 보세요!”
선배의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고, 박이든과 정은성이 숨죽여 웃었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허억! 저도 모르게 숨을 안 쉬고 있었던 직원들이 숨을 내쉬고, 선배와 다른 직원들도 후우-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러게 말이에요.”
“보고 싶긴 했지만, 이렇게 보고 싶진 않았달까.”
“심장에 무리가 와요.”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놀란 심장을 진정시킨 가수팀 직원들은 다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근데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지.”
“우리가 타던 엘리베이터가 아닌 줄 알았어요!”
“완전 세트장인 줄!”
이서준 배우의 실물에 대한 이야기로 4층 엘리베이터 앞이 시끌벅적해졌다.
* * *
“또 안 타셨네.”
3층에서도 그랬는데, 4층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어쩌면 5층에서도 안 탈지도…….’
그리고 그런 서준의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5층에서 기다리던 작곡가들이 서준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모습에 4층에서부터 어깨를 들썩이고 있던 박이든과 정은성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엘리베이터를 울리는 그 웃음소리에, 입을 삐죽인 서준이 두 친구의 옆구리를 가볍게 쳤다. 그리고는 겨우 진정한 두 사람과 함께 6층에서 내렸다.
서준과 박이든, 정은성은 식판 위에 전문가들의 손에 맛있게 조리된 요리들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다들 되게…… 놀라신 것 같더라.”
서준의 말에 박이든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뭐, 가수팀은 너 볼 일이 거의 없으니까.”
크흠, 하고 진정한 정은성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오늘 만난 분들은 다 너 처음 보는 것 같고.”
“하긴. 그건 그래.”
서준이 기억하기에도 두 명을 빼면 전부 처음 보는 직원들이었다.
서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당 안 테이블 여기저기 코코아엔터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얼굴만 아는 정도의 직원들이 더 많았다.
“회사가 많이 커지긴 했네.”
뭔가 올 때마다 달라지는 기분이다.
‘자주 오는 것 같은데 말이지.’
8층 연습실에만 가서 그런가.
코코아엔터의 투자자로서는 기쁜 일이었지만, 구 사옥 때의 추억이 떠올라 조금 많이 아쉽기도 했다.
“그럼 오늘은 뭐 해?”
그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연습실이 잠시 노래방이 됐을 때.
직접 작곡, 작사한 곡들로 믹스테이프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며 그중 한 곡을 불러준 래퍼, 정은성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박이든도.
‘이서준 실드’를 쓰던 연습생이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빙그레 웃은 서준이 입을 열었다.
“1팀 사무실에 노래 목록 갖다 주고 머리 염색하고, 영화 준비하러 가야지.”
“8층 연습실에서 안하고?”
“연습실에서는 못하는 거라서.”
서준의 말에 박이든과 정은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였다.
* * *
배우 이서준을 처음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몇 주를 봐도 놀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서준의 개인 트레이너, 김현규였다.
“열 번만 더 할게요.”
“네.”
배우와 트레이너만 있는 조용한 개인용 피트니스센터.
이 시간을 통째로 빌린 서준이 가볍게 대답하고는 철봉에 매달렸다.
배우가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한다.
이 문장만 보면 특별한 일은 아닐 테지만, 그 배우가 이서준이고, 상체와 하체를 직각으로 만들어(레그라이즈) 턱걸이를 하고 있다면 누가 놀라지 않을까.
‘게다가 표정도 편해 보이고.’
어떤 운동을 하든, 얼마만큼 운동을 하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평온한 서준의 표정.
그래서 처음에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할지 고민했던 트레이너였다. 운동이 너무 과하면 횡문근융해증 같은 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서준 배우에게 그런 병이 생긴다면…….’
한국에서도 외국에서 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다시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김현규였다.
하여튼.
배우 쪽에서 그렇게 급하게 운동할 생각은 없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천천히 이서준 배우의 수준을 확인하며 운동량을 늘려갈 수 있었다.
‘아니지.’
정확히는 운동량이 아니라,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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