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06화 (80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06화

어제까지만 해도 금색이었던 머리카락을 파랗게 물들인, ‘블루문’의 이서준은 화장마저도 아이돌스럽게 한 것 같았다.

물론 조명이 엄청나게 강한 음악방송 무대가 아닌 만큼 짙은 화장은 아니었다.

눈가에 바른 글리터는 옅었지만 반짝이고, 입술도 과하지 않게 붉었다.

기본 바탕이 되니 따로 손댈 곳이 없었다, 고 가수팀 스타일리스트들이 감탄 섞인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었다.

“저 아이돌 같아요?”

서준의 물음에 새싹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2일 차 팬사인회까지는 천상 배우의 얼굴이었다면, 오늘은 정말로 아이돌의 얼굴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소나무 같은 취향을 가진 삼대 아이돌 기획사라도 보자마자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것 같은.

‘가방 안에 있는 응원봉을 흔들어야 할까.’

딱히 의논은 하지 않았지만, 소중히 새싹봉을 챙겨 온 새싹들은 생각했다. 팬사인회 후기를 보면 노래는 등장 때 빼고는 부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상도 그랬다.

단정했던 1일 차, 2일 차 옷차림들과 달리, 이번에는 금방이라도 음방 무대에 오를 것 같은 복장이었다.

새싹들이 매의 눈으로 서준의 옷을 살폈다.

‘이런저런 장식이 많이 달리긴 했지만 두 시간 넘게 입고 있기에는 편해 보이…… 찢청!?!’

새싹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서준의 얼굴이 너무 빛나서 얼굴만 넋 놓고 보고 있다가 이제야 옷을 살펴보게 됐는데, 충격적이었다.

찢청이라니!

찢어진 청바지라니!

물론 맨살이 훤히 보일 정도로 찢어진 청바지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새싹들은 충분했다.

우리 서준이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다니!

그것도 허벅지 부분이 희미하게 보이는!

아니, 물론 반바지를 입은 서준을 못 본 건 아니지만 (포토북에 있다.) 실물+찢청은 또 다르지 않나.

서준이 움직일 때마다 희미하게 보이는 허벅지에 새싹들은 묘하게 변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서준이 무대에 걸터앉으면서,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단단해 보이는 허벅지가 제법 잘 보일 때, 더욱 강해졌다.

‘……하자. 변태.’

그래, 뭐.

언제는 변태 아니었나.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와 함께 셔터 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했다. 여러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아이돌처럼 손가락에도 다양한 크기의 반지들이 끼워져 있었다.

‘저거 분명 몬스터사 꺼.’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했다.

* * *

금발로 등장해서 새싹들을 놀래켰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모두 서준의 모습을 예상해서 그런지, 새싹들이 가져온 장식품들은 파란색과 어울리는 물건들이 많았다.

물론 1일, 2일에 등장했던 기본템을 가지고 온 새싹들도 있었다.

“1일 차, 2일 차, 3일 차까지 모아서 봐야죠!”

“으아아아. 그거 좋네요!”

같은, 또는 비슷한 동물 귀 머리띠를 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서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1일 차, 2일 차에서도 그랬듯,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도 있었다.

귀를 뚫지 않았기 때문에 자석을 이용하는 귀찌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서준의 귀 여기저기 피어싱을 한 것처럼 보여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확대!’

믿는다, 카메라!

새싹들이 눈을 빛내며, 늘어진 체인 형태의 피어싱을 한 듯한 서준의 옆모습을 촬영했다.

“서준아. 꽃받침 해줘!”

“이렇게요?”

서준이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양손으로 턱을 괬다. 그리고 부러 살랑살랑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꺄아아아!

새싹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팬사인회도, 애교도 3일째가 되니까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이거 인형이에요!”

“와! 바이올린 켜고 있네요. 그레이예요?”

“맞아요!”

직접 만든 서준의 인형을 선물로 가져온 새싹들도 있었다(1일 차, 2일 차 때도 있었다).

천과 실, 솜으로 만들어진 갈색 바이올린을 켜는 작은 서준(그레이) 인형에, 서준이 웃으며 만지작거렸다.

“엄청 귀여워요.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고마워요.”

으아……!

인형보다 활짝 웃는 서준이 더 귀여웠다.

1초 1초가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오늘이 팬사인회 마지막 날인 걸 아는 새싹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르거나 영상을 찍었고, 서준도 지나가는 새싹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부의 마지막 50번 새싹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가지고 있던 가방이 유난히 커서, 관객석에 앉아 있었을 때부터 서준의 눈에 띄던 새싹이었다.

‘스태프들이 놔둔 걸 보면 선물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선물이 허용된 팬 사인회다 보니, 비싼 물건이나 많은 양의 선물을 들고 올 수도 있어서 가격이나 선물의 크기를 정해놓은 코코아엔터였다.

허용된 선물 가방의 사이즈는 손에 들 수 있는 보통의 종이가방만 한 크기. 그걸 넘어가면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 통과시키거나 거절했다.

그러니 이불 가방처럼 큰, 저 가방에 든 물건은 선물이 아닐 터였다.

‘그럼 서준이가 착용해 주길 바라는 아이템일 텐데…….’

새싹들도 무대에 오르는 50번 새싹을 보며 생각했다.

‘인형탈 같은 건가?’

서준의 얼굴은 보여야 하니, 얼굴 부분은 뚫려 있는 인형탈일지도 몰랐다.

‘그것도 귀엽겠다!’

새싹들이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준비를 했다.

잠시 커다란 가방에 시선을 줬던 서준이, 50번 새싹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놀라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저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오고, 반사적으로 선기를 흘려보낼 만큼 50번 새싹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굴은 초췌했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거의 무릎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괜찮아요.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정말요?”

팬사인회가 너무 기대돼서 잠을 못 잤다는 새싹들은 많이 봤지만, 이 정도로 핼쑥한 새싹은 처음 보았다.

“지금이라도 쉬시는 건 어때요? 여기 의무실이 있어요.”

선기를 흘려보내 생기를 북돋아주면서도 서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내 배우를 걱정시키다니!

50번 새싹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흐느적거리는 손과 가느다란 목소리는 전혀 안 괜찮아 보였지만.

“그것보다 사인…… 악수도…….”

“그럼 이거 끝나면 의무실 가서 푹 쉬시는 거예요.”

걱정이 한가득한 서준의 얼굴에 50번 새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미안해. 서준아.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끝까지 남아서 팬사인회를 보고 갈 생각이 가득한 50번 새싹이었다.

2부에 어떤 아이템이 나올 줄 알고 의무실에서 쉰단 말인가!

게다가 어쩐지 서준이를 보니 바닥난 것 같았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것 같았다.

서준의 선기 덕분에 제법 활기를 찾은 50번 새싹이 주섬주섬 커다란 가방에서 물건을 꺼냈다. 천 같은 것이 보였다.

“이거 입어 줄 수 있어요?”

하고 50번 새싹이 꺼낸 물건에 서준은 물론이고, 새싹들, 스태프들까지 놀라고 말았다.

그건 물빛의 두루마기였다. 새하얀 실로 비늘 같은 것이 수놓아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또 다른 물건이 튀어나왔다. 머리띠였는데, 이리저리 뻗친 모습이, 마치 사슴의 뿔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청룡님을 모티브로 만든 의상이에요.”

용이었구나.

서준이 감탄하며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용의 뿔과 용의 비늘이 수놓아진 물빛의 두루마기를 살펴보았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친구들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친구들도 새싹이에요.”

“와아……!”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서준의 모습에, 50번 새싹이 활짝 웃었다.

보고 있니, 친구들아?

서준이가 기뻐하고 있어!

서준이 머리카락을 파란색으로 염색한다는 사실을 예상했을 때부터 오늘까지.

이걸 만드느라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고생했던 게 모두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쯤 곯아떨어져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던 50번 새싹은 거울을 보며 머리띠를 쓰는 서준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최대한 어린이 연극 [봄]에 나오는 청룡님의 뿔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래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친구들과 우리 잘 만들고 있는 거 맞아? 하고 걱정을 했는데, 서준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용의 뿔에 50번 새싹이 환하게 웃었다.

머리띠를 쓴 서준은 다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물빛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

멀리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잘 보이는 새하얀 비늘들이 두루마기를 더 멋있게 만들고 있었다.

“잘 어울려요?”

“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려요!”

물빛 두루마기와 아이돌 의상의 언밸런스함이 오히려 매력을 몇 배로 증가시키는 것 같았다. 진짜 서준의 머리에서 돋은 것처럼, 멋들어진 용의 뿔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50번 새싹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차자자작-

관객석에서도 탄성과 함께, 쉴 새 없이 셔터 소리가 들렸다.

* * *

쉬는 시간.

물빛 두루마기를 팔랑거리며 어쩐지 신나 보이는 발걸음으로 대기실로 돌아온 서준은 소파에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용 뿔 머리띠와 두루마기를 입은 그대로.

“명상이요?”

서준의 화장을 수정하러 온 가수팀 스타일리스트가 의아해하자, 그런 서준의 모습에 익숙한 매니저 최태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상이요. 3분쯤 있다가 눈 뜰 겁니다. 화장은 그때 고쳐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가수팀 스타일리스트는 명상이라니,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기다렸다.

매니저의 말대로 3분쯤 후.

눈을 뜬 서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 * *

[제목: 서준이 팬사인회 3일 차 중간 후기(사진有)]

첫날이 배우 이서준, 둘째 날이 금발 이서준이었으면... 오늘은 아이돌 이서준ㅠㅠ

(블루문 이서준 사진)

진짜 완전 아이돌상ㅠㅠ찢청도 입었어ㅠ허벅지ㅠㅠㅠ

서준이가 아이돌 했으면 진짜 음방, 공방, 콘서트, 팬미팅 다 다녔을 텐데!! 과연 내 자리가 있을까 싶지만ㅎ

새싹들도 오늘 파란 머리 할 거 예상했는지, 파란색에 어울리는 아이템 들고 옴.

물론 나는

(흑발 강아지귀 서준 사진)

(금발 강아지귀 서준 사진)

(청발 강아지귀 서준 사진)

이걸 완성하기 위해서 강아지귀를 가져왔지만! 서준이 완전 강아지 아니냐고ㅠㅠ

그래도 제일 압권은 청룡님 서준이었다...ㅎ

아니, 50번 새싹님이랑 친구분들 뭐 하시는 분들이신지? 어떻게 청룡님 인간 버전을 떠올리셨는지? 옷이랑 뿔은 또 어떻게 만드셨는지??

다들 50번 새싹님한테 가서 먹을 거 바치고 있음ㅋㅋㅋ나도 드렸다ㅋㅋ

좀 있다 2부 시작하는ㄷ버ㅔㅐㅓㅎㅂ;ㅣㅁ

-뭐야?

=??왜 글 쓰다가 사라져요??

=중간 후기 중에 제일 어이가 없네ㅋㅋ(안 웃김/돌아와요ㅠㅠ)

-청룡님 사진은 올려주고 가셔야죠ㅠㅠ

=인간 버전이라니! 인간 버전이라니!!

=우리 청룡님 인간 되신 거???

=옷이랑 뿔은 또 뭔데요ㅠㅠㅠ

-왜 다른 중간 후기들도 청룡님 사진은 안 올리시는 거야ㅠㅠ

* * *

그거야 연기할 생각으로 신이 난 서준이, 정해진 2부 시작 시각보다 일찍 무대 위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생기가 도는 듯한 용의 뿔을 단 서준이.

“안녕!”

왠지 반짝이는 듯한, 비늘이 수놓아진 물빛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무대로 걸어 나왔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네!”

표정도, 걸음도 시원시원했다.

“착하게 잘 지냈어?”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발동됩니다.]

그 친숙하고도 이질적인 존재의 등장에, 막 사진을 올리려고 하던 새싹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무대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는 이가 보였다.

눈이 부셨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돌 해라, 아이돌상이다, 라고 말했지만.

역시.

연기를 할 때 가장 빛이 나는 서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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