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05화 (80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05화

아이돌이 컴백할 때마다 앨범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염색을 하고 스타일을 바꾸는 것과 달리, 배우는 작품이나 캐릭터의 설정과 관련되지 않은 이상 염색하는 일은 드물었다.

배우인 서준도 지금까지 염색을 한 것은 블루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음악방송에 나갔던 여름의 몇 주뿐이었다. 그중 금발을 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준 건 파랗게 염색하기 전, 탈색하는 단계에서 몇 컷 찍은 사진들뿐이었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금발의 모습을 한 적은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 새싹으로서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나!

끄아아악!

행사장을 가득 채우는 비명 소리.

“/천사다. 천사가 눈앞에 있어……!/”

“엄마아악!”

“하…… 내 평생의 운은 오늘 다 썼구나.”

“/금발 준! 금발 준! 금발 주운!!/”

중간에 엄마를 왜 찾으시는 건지는 몰라도, 격앙된 새싹들의 반응에 서준과 코코아엔터 직원들이 흐뭇해졌다. 아는 맛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게 특식을 내 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준이 어제처럼 무대에 걸터앉았다.

반짝이는 금발에 옷까지 새하얗고 몽실몽실한 스웨터를 입고 있으니, 정말로 지상으로 강림한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았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그렇게 말하며 서준이 금빛 실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사르륵-

그럴 리는 없지만, 부드러운 머리칼들이 서준의 손을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더욱더 서준과 가까워진 새싹들은 비명을 지를 정신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자, 여기저기서 자신도 모르게 앓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고조된 흥분을 참지 못해 감탄사 같은 욕설도 작게 들려왔지만,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는 새싹들은 조용히 공감하며 모른 척해주었다.

“어제랑 같은 모습이면 새싹들이 단조로워하실 것 같아서 염색해 봤어요.”

단조로워?

내가 아는 그 뜻이 맞나?

변화가 없어서 새로운 느낌이 없다니! 평소 모습으로 나와도, 언제나 새롭고 짜릿하고 재미있는 게 서준인데!

‘물론!’

이렇게 염색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레이저가 나올 것처럼 초롱초롱한 새싹들의 눈동자에 서준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좋아하시니까 저까지 기분이 좋네요. 무슨 색으로 할지 고민했는데…….”

그렇게 무대에 걸터앉아 서준이 이런저런 일상을 이야기하자, 입도 못 떼고 있던 새싹들도 천천히 금발의 서준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팬사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뭐, 그것도 다시 서준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원상 복구됐지만 말이다.

‘어제도 이랬지…….’

흑발이든 금발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앞에서 바짝 얼어붙은 새싹들의 모습에, 자리에 앉아 있던 서준은 휴지를 준비했다. 다가오는 1번 새싹의 눈이 벌써부터 그렁그렁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해요.”

“……!”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벅참의 눈물을 터뜨린 1번 새싹을 시작으로, 배우 이서준의 둘째 날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 * *

-금발! 금발! 금발! 금바알!! C발!!

-누가 서준이 사진 좀 올려봐ㅠㅠ

-서준 오빠 여기에도 새싹이 있어요ㅠ

-왜 아무도 사진을 안 올리는 거임ㅠㅠㅠ

2회차 팬사인회에 참석한 새싹이 유언처럼 남긴 ‘ㅅㅂ서준이 금발’이라는 댓글 때문에, [새싹부터]가 뒤집어졌다.

-흑발에 금발에…… ㅁㅊ내가 당첨 됐어야하는 건데ㅠㅠ

=22 거기에 동물귀+액세서리들까지 쓰고 있을 거 아니야ㅜㅜ

=33 초커어어!!

-쉬는 시간만 기다립시다. 우리를 배신할 새싹들이 아니에요!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 거야.

=사라져라. 토요일.

=22 오늘만큼은 좀 알아서 사라져줘ㅠㅠ

그렇게 [새싹부터]를 새로고침하고 있던 전 세계 새싹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중간 후기 게시글이 올라왔다.

[제목: 서준 오빠 팬사인회 둘째날 중간후기(사진있음)]

안녕하세요! 팬사인회 참석한 운좋은새싹입니다!

바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서준 오빠 등장부터 다들 넋 놓고 봤음.

아니, 미친 금발이라니! 아이보리 스웨터라니!

그냥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음. (중간에 ㅅㅂ소리를 들었다면 그건 접니다요. 다들 모른 척해주셔서 압도적 감사ㅋㅋ)

긴장 풀어준다고 첫날처럼 무대에 걸터앉아서 이야기 나눴는데(잠깐 풀어지긴 했음) 팬사인회 시작하자마자 다들 굳음. 아니 저런 미모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안 굳을 수가 있음???

1번새싹분도 울고, 2번새싹분도 울고 나도 울고ㅋㅋ완전 울음바다ㅋㅋ

그 상황에서도 다들 악수하고 최애작 감상 말하는 의지ㅋㅋ 서준 오빠와 악수할 수 있는 평생의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음!

여튼 다들 덜덜 떨면서 동물귀 머리띠를 주면, 서준 오빠가 웃으면서 써줬음.

서준 오빠 등장 전(흑발 예상)에는 다들 사진으로 봤지만 실제로 보고 싶어서 들고 왔어요! 라고 했는데ㅋㅋ서준 오빠가 !!금발!!로 등장하니 ‘으아악! 나 ㅈㄴ잘했다!’이러고 계심.

같은 소품이라도 금발이라서 완전 새로운 모습이었음ㅠㅠ

먼저 기본인 화관.

흰색, 빨간색, 검은색, 보라색, 파란색 등등. 진짜 안 어울리는 게 없더라ㅠㅠ 금발이라서 그냥 다 천사 같았음ㅠ(사진)

그다음은 귀여운+사실적인 동물 귀 머리띠.

(갈색 강아지 귀 머리띠 쓴 서준 사진.)

검은색 강아지 귀도 있었는데, 이게 최고ㅎㅎ 금발이랑 어울려서 완전 리트리버 같음ㅠㅠ 그냥 리트리버가 사람 된 것 같음ㅠ

여기에 누가 금색 초커까지 들고오셔서 서준 오빠 목에……ㅎㅎㅎ(사진)

(호랑이 귀 머리띠 쓴 서준 사진.)

비슷한 색이라서 그런지, 호랑이 귀도 너무 잘 어울려서 셔터 소리가 멈추질 않았음ㅋㅋ 내 입꼬리도 내려가질 않음ㅋ

서준 오빠가 애교도 해줌.

볼하트도 해주고 작은 하트, 큰 하트, 깨물하트…… 새싹들이 해달라는 건 다해주는 스윗함ㅠㅠㅠ 진짜 1도 싫어하는 느낌이 없어서 흔쾌히 해줘서 너무 좋았음.

(물론 선 넘는 새싹들도 없어서 넘 좋았어요ㅠㅠ 사랑해요, 새싹.)

(사진)(사진)(사진)(사진)

첫날 초커의 충격 때문인지ㅋㅋ 초커 많이 들고 오셨음.

금발+초커 조합 최고였음.(사진) 묘하게 금욕적이면서 섹시해……ㅎ(판사님, 저희집 고양이가!!)

고양이 하니까, 서준 오빠가 고양이귀 머리띠 한 사진도 투척(사진)

앗. 팬사인회 다시 시작함.

전 이만 가보겠음. 총총!

-아니야. 가지마ㅠㅠㅠ

=22 사진 더 주세요ㅠ

-금발 리트리버ㅠㅠ리트리버ㅠ

-호랑이는 그냥 호랑이가 사람된 것 같고요.

=고양이도 너무 귀여워. 죽을 것 같아.

-금발 너무 잘 어울리는 거 아니냐고.

=금발+토끼귀+볼하트 저건 두 눈으로 직접 봐야하는데ㅠㅠ

-콬아. 영상 올려. 안 올리면 쳐들어간다.

=222 진짜 갈거임ㅠㅠ

* * *

팬사인회 2부의 시작.

51번 새싹이 건네준 머리띠는 악마뿔 머리띠였다.

염소뿔처럼 곡선으로 말려져 있는, 검은색 뿔.

천과 솜으로 만들어진 보통 장난감 뿔 머리띠와 달리, 딱딱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고 색도 음영이 확실하게 들어간 것이 보통 머리띠가 아닌 것 같았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겨우 머리띠 장식일 뿐인데도 마치 미술 작품을 탐색하듯 감탄하며 살피는 서준의 모습에, 새싹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미술전공이거든요.”

“와! 그러시구나. 진짜 잘 만드신 것 같아요.”

악마로서 살아본 경험자가 말하는 거니, 신빙성 100%였지만 새싹은 알지 못했다. 그저 ‘서준이가 칭찬을……!’ 하며 감동할 뿐이었다.

“그럼 써 볼게요.”

“네넵!”

테이블 위에 거울을 보며, 서준이 머리띠를 썼다.

스타일리스트들에게서 들은 요령대로, 머리띠는 보이지 않게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장식은 잘 보이게 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검은 뿔을 가진 금색 머리칼의 악마.

지금까지 ‘천사다, 천사.’ 했던 새싹들이 숨을 들이켜고는 속으로 ‘악마다……!’를 외쳤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홀려, 영혼을 한입에 삼킬 것 같은 악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어울려요?”

네! 완전!

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게 한계인 새싹이었다.

‘진 나트라’가 최애인 악마뿔새싹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잠깐의 포토타임.

서준은 마기를 조금 흘리며 악마 연기를 짧게 했다. 오싹하고 싸늘한 악마의 눈동자가 행사장을 가볍게 훑었다.

그런 서준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새싹들의 심장이 쿵쿵 내려앉았다. 이건 흔들다리 효과인가, 아니면 또 한 번 덕통사고를 당한 걸까.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천사도 좋지만……!’

악마도 최고야!

새롭고 짜릿하고 서준의 모습에, 입을 틀어막는 새싹들이었다.

그렇게 한마음이 된 새싹들의 단합으로, 75번새싹의 차례가 될 때까지 51번새싹이 준 악마뿔 머리띠는 서준의 머리 위에 그대로 씌워져 있었다.

* * *

[천국에 다녀왔습니다.]

[너무 행복한 하루ㅠㅠ]

[서준 오빠 사진 올립니다!!]

어제도 그랬듯 팬사인회가 끝나자, [새싹부터]의 [팬사인회] 게시판에 후기글과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모으면 영상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아주아주 많았다.

‘나 혼자 보는 것도 좋지만…….’

다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새싹들이었다.

무려 금발의 서준이 아닌가!

-천사 서준이 너무 좋아요ㅠㅠ

=22 그냥 대천사가 지상으로 강림한 거 아니냐고ㅠ

-악마는 진짜 신의 한 수였다.

=51번새싹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직접 만드셨다니ㅠㅠ

-진짜ㅋㅋ 75번까지 아무도 새로운 머리띠를 주지 않았다는 게 너무 웃김ㅋㅋ

=다들 단합력 쩔었다ㅋㅋㅋ

-서준이 의아해하는 거 너무 귀여워ㅠㅠ

=분명 1부까지는 열심히 머리띠 바꿔썼는데ㅋㅋ 2부에는 아무도 머리띠를 안줘ㅋㅋ

=22 갸웃하는 거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ㅠ 악마가 저렇게 귀여워도 되냐고요ㅠㅠ

-저 모습으로 웃다니ㅠㅠ 너무 예쁨ㅠ

=ㅇㅇㅇ악마인데 천사같았다ㅠㅠ 이러니 악마한테 홀리는 거겠지.

=ㄴㄴ내가 먼저 영혼 바침.

-내가! 저걸! 직접! 봐야했는데!!(책상에 이마 박음)

=왜 나는 팬사인회에 떨어져서ㅠㅠ

-악마뿔 머리띠 다음에 나온 사막여우 머리띠도 존귀.

=키울 수 있으면 키우고 싶음ㅎㅎ

언제나 그렇듯, 서준의 일은 화제가 되었다.

[배우 이서준이 금발로 염색한 이유는?!]

[차기작 신호? 금발로 염색한 배우 이서준!]

[팬사인회 2일 차, 금발로 팬들과 만난 이서준 배우!]

처음으로 한 금발이라서 그런지, 어제보다 더욱 떠들썩해졌다.

-이서준 팬도 아닌데, 이서준 팬사인회 내용을 다 알아버림.

=22 근데 원래 그랬음.

=33 워낙 여기저기서 떠들어서.

-이 정도면 질릴 만한데, 이서준 사진 볼 때마다 감탄하느라 질리지가 않음.

=나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냐, 하고 봄.

-나 금발캐 좋아했네.

=나 금발 개좋아했네.

=ㅋㅋㅋ이 둘 어제도 있지 않았냐?

=그러니까. 안경은 어쩌고?

=안경 쓴 사진도 있음!! (안경 쓴 금발 서준 사진)

=왠지 내일 되면 또 있을 것 같닼ㅋ

=22 이쯤 되면 그냥 이서준 좋아한다고 해라ㅋㅋ

-이서준 내일도 염색하고 올 것 같음. 그럼 또 새싹들 난리나겠지.

=22 팬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스타ㅋㅋ

=33 이러면 덕질하는 보람 있을 듯.

-무슨 색일까?

=하나 있잖아. 예전에 했던 색.

=오.

* * *

팬사인회 셋째 날.

“안녕하세요. 블루문의 이서준입니다.”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서준이 웃으며 인사하자, 새싹들이 아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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