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02화 (80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02화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끝낸 서준이 활짝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그에 환호성과 박수, 그리고 반가움과 벅참이 가득한 새싹들의 맞인사(?)가 관객석에서 들려왔다.

“서준아!”

“서준 오빠!”

“으아아아!”

100명밖에 되지 않는데, 무대와 관객석이 가까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새싹들이 일당백인 건지, 함성 소리는 공연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컸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도 들렸다. 다들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서준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게 훤히 보였다.

다행히 스타의 눈을 아프게 하는 플래시는 입장 전, 코코아엔터 직원의 안내에 따라 모두 꺼진 상태였다.

새싹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도, 직접 서준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일단 두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기억해야 했다.

새하얀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에 구두를 신고 나온 서준은 어른미를 뿜뿜 뿜어내고 있어, 서 있는 그 자체로도 눈이 부셨다. 여러 운동을 좋아하고 잘해서 그런가, 확실히 몸도 좋았다.

“/세상에. 실물이야. CG가 아니었어./”

“이렇게 가까이서 서준 오빠를 보게 될 줄이야…… 엄마, 나 성공했어.”

“잘 컸네. 우리 서준이…… 꼬마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새싹들의 진심에, 짐짓 모델처럼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무대 위에 있던 서준이 참지 못하고 으핫,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른미는 던져 버리고 소년처럼 해맑게 웃음을 터뜨리는 서준의 모습에, 다시 한번 차자자작- 카메라 셔터 소리들이 들려왔다. 끄아악, 앓는 소리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도 들려왔다.

그에 서준이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모두 제 첫 팬사인회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100명의 새싹들을 바라보았다.

남녀노소, 국적도 다양한 새싹들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다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좋네요. 한 분 한 분 얼굴도 다 볼 수 있어서 그런가, 팬미팅보다 더 긴장되는 느낌이에요.”

그에 너무 흥분해서 넋 놓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보는 새싹들이었다. 물론 서준과 바로 앞에서 만나는 터라, 옷도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왔고, 머리도 단정하게 했지만.

언제나 가장 좋은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이었다.

“여러분도 그렇죠?”

“응!”

“네에!”

착하게 대답하는 새싹들을 보며 씨익 웃은 서준이 몸을 굽혔다. 그리고 무대의 끝에 편하게 걸터앉았다.

“그러니까 우리 사인회 시작 전에 잠깐 이야기 나누면서 긴장 좀 풀까요?”

아까보다도 가까워진 팬들과의 거리와 마주 보는 시선에 팬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특히 앞줄에 앉은 새싹들은 거의 기절할 것만 같은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때 스태프들이 있던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싹들도 잘 알고 있는 안다호 이사와 최태우 매니저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사전에 이야기되지 않은 행동인 것 같았다.

“한 번만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 서준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손가락 하나를 들고 간절한 표정을 짓자, 안다호 이사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보였다.

귀여운 서준의 모습에 심장을 부여잡고 셔터를 눌러대던 새싹들은, 익숙한 듯 체념하는 안다호 이사와 최태우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역시 우리 서준이.

소속사 이사님과 매니저도 이겨 버린다.

“그럼 형들도 허락했으니,”

“허락이 아닌 것 같은데! 서준아!”

“허락 맞아요. 그쵸, 다호 형?”

맞다고 해요.

하고 빤히 바라보는 서준의 눈빛에 안다호 이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으하하하.

그 모습에 바짝 굳어 있던 행사장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긴장을 풀고 웃는 새싹들에 서준도 활짝 웃었다. 그에 자동적으로 차자자작-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무대 앞에 걸터앉은 서준이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린이 연극 봄을 했을 때 말이죠.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관객분들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와. 그랬어?

몰랐던 이야기를 풀어놓는 서준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어린이 연극 봄이라면 서준이 굉장히 어렸을 때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가까이에 있으면 안전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규모가 큰 연극들을 찾게 됐죠. 그때 발견한 게 어린이 연극 봄이었어요.”

“근데 그건…….”

청룡님역이었잖아. 목소리만 나오는.

누군가의 혼잣말이었지만, 작은 소극장에서는 아주 크게 들렸다.

“맞아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관객분들의 앞에서 연기하려고 했는데, 청룡님역을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련히 허공을 바라보는 서준의 모습에 새싹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배우님은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역할은 꼭 해야 했었구나, 생각하며.

물론 그 모습마저도 화보의 한 장면 같아 셔터 누르는 걸 잊지 않았다.

“아, 그때 다호 형이 매니저로 왔었어요!”

“오오!”

새싹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구석에 있는 안다호에게로 향했다. 그때부터 서준이 매니저셨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지금의 저보다 몇 살 위였는데…… 와, 엄청 어렸었네요, 다호 형.”

“으하하하.”

그렇게 웃음과 가득한 잠깐의 잡담시간이 지나고.

“그럼 팬사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안내와 함께, 다시 한번 주의사항이 전달되었다.

잇몸이 마르는 줄도 모르고 환하게 웃으며 서준의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새싹들은 다시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충분히 가까운데 더 가까이 간다고? 서준이랑 이야기를 나눈다고? 서준이의 사인을 직접 받는다고?

‘미쳤어……!’

첫번째 순서인 1번 새싹은 거의 기절할 것처럼 덜덜 떨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사인지가 필요하신 분들이 여기서 받아가시면 됩니다.”

스태프의 말도 들리지 않는데, 준비해 온 질문들을 물어보기는커녕 당첨된 후로 열심히 고쳐 쓴 편지와 고르고 고른 선물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데…….’

진짜 입도 벙긋 못할 것 같아서 벌써부터 눈물이 펑하고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그럼 1번분부터 무대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팬사인회는 가차 없이 시작되었다.

뭐, 시간이 좀 더 있어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은 여전히 백지상태일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1번 새싹은 자신이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계단을 올라 무대 위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반가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는 서준이 보였다. 그에 1번 새싹은 마치 세이렌에게 홀린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서준의 모습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에 따라 심장도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아니, 뛰고 있는 거 맞나? 멈춘 것 같은데?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정신은 나가 있는데도, 몸은 잘도 움직여 의자에 착석했다.

“여기 앉으시면 돼요.”

라고 서준이 웃으며 말하니까 알아서 움직이더라.

그렇게 1번 새싹은 서준과 마주 보게 되었다.

‘내가 서준이랑 마주 보고 있어!!’

화면(클로즈업)으로 많이 본 서준의 얼굴이었지만, 이렇게 쌩눈(?)으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준이 1번 새싹이 가져온 포스트잇을 보았다. 사인할 때 함께 적을 이름이 적혀 있는 포스트잇이었다.

[예나 누나]

“안녕하세요, 예나 누나. 1번으로 당첨되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사인은 어디에 하면 될까요?”

자신만 보며, 자신에게 말하는 내 배우라니.

모든 게 꿈같았다.

대답 없는 1번 새싹, 임예나의 모습이 의아한 듯 서준은 별을 담은 듯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랑살랑 긴 속눈썹이 나비처럼 움직였다. 검은 머리카락이 고개를 갸웃하는 서준의 움직임을 따라 옆으로 사르륵 흔들렸다. 거기에 혈색 도는 붉은 입술과 매끄러운 피부.

내 배우가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고 너무나도 멋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준비해 온 게 많은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게 너무 억울하고 슬퍼서 임예나는,

“아이고. 왜 우세요.”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소리도 없이 우는 임예나에, 서준은 얼른 테이블 한쪽에 있던 갑 휴지에서 휴지를 뽑아 건넸다. 임예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받아 눈물을 닦아냈다. 이게 무슨 민폐인지…….

“미, 미안…….”

“괜찮아요. 아직 시간 많아요. 진정하고 우리 이야기 나눠봐요.”

“……으허헝……!”

서준이 달래주니 울음이 더 커진 것 같았다. 어쩐지 관객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조금 당황한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팬들이 울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하지만 서준과 달리, 코코아엔터는 예상했나 보다. 테이블 뒤쪽에 네모난 갑 휴지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그럼 미리 말 좀 해주지…….’

서준이 흘깃 매니저들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가 다시 눈앞에 있는 임예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좀 진정한 모양인지, 임예나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들고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을 꺼냈다.

흰색과 노란색의 꽃들로 만들어진 화관이었다.

“이거…… 써 줄 수 있어요?”

“당연하죠.”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흔쾌히 화관을 머리에 썼다.

새하얀 셔츠에 검은 머리칼에 커다란 꽃들과 초록 잎으로 장식된 화관이라니.

금방이라도 기도를 올릴 것만 같은 신성한 사제같은, 순수하고 깨끗해 보이는 분위기가 서준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관객석에서 으아아아,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차자자작- 셔터 소리도 함께.

“사인은 여기다가 해주세요.”

이제 정신을 차린, 의지의 새싹 임예나가 소중히 가져온 소장용 포토북을 꺼냈다.

“와. 이거 사셨구나.”

“네! 3개나 있어요.”

“소장용, 보관용, 감상용으로요?”

“어?”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라는 임예나에, 서준이 눈을 둥글게 만들며 웃었다.

“저도 좋아하는 작품 대본들은 그렇게 가지고 있거든요. 예나 누나랑 저랑 똑같네요.”

하고 헤헤 웃는 서준에, 임예나는 기절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예나 누나랑 저랑 똑같네요. 누나랑 저랑 똑같네요. 똑같네요.

그 말만 맴도는 것 같았다.

“저한테 뭐 물어보고 싶은 건 없어요?”

서준이 펼쳐진 페이지에 멋들어지게 사인하며 물었다. 그에 저 먼 우주 어딘가를 헤매고 있던 임예나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 좋아하는 색은 뭐예요?”

“연두색이요. 원래 딱히 좋아하는 색은 없었는데, 새싹의 색이라서 연두색이 좋아졌어요.”

하고 찡긋 웃는 서준에 또 한 번 크리티컬을 맞은 새싹, 임예나였다.

“저도, 저도 연두색 엄청 좋아해요!”

“그래요? 와! 또 공통점이 생겼네요. 우리.”

우리라니…… 우리라니!

이 단어가 이렇게 좋은 단어였나?

마치 귓가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임예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임예나의 머릿속에서 외쳤다.

팬사인회에 낙첨된 송유정이었다.

아직 죽기엔 일러! 임예나!

“악수! 악수할 수 있을까요?”

임예나의 외침에,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임예나가 덜덜 떨며 손을 내밀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임예나의 손을 감싸듯 마주 잡았다.

와…….

서준도 남자고 성인이라서 예상하긴 했지만.

임예나는 자신보다 큰 서준의 손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게다가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따뜻한 느낌. 자신의 손을 감싸 쥔 손가락 하나하나도 곧고 예뻤다. 언뜻 손등의 힘줄도 보였다.

미친…….

손까지 예쁜 남자라니.

또 한 번 서준에게 치여 버리고만 새싹, 임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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