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01화 (80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01화

배우 이서준의 첫 팬사인회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27일 금요일부터 29일 일요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27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300명 중 첫날 당첨자 100명의 새싹들이 들뜬 얼굴로 팬사인회가 열릴, 다즈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중에는 부산이나 광주 등에서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올라온 이들도 있었고, 한국 여행도 할 겸 일찌감치 한국에 도착한 외국인들도 있었다.

그 외국 새싹들이 남긴 SNS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도착! (공항 사진) 맛집 추천 바랍니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3시부터 행복했다면 난 3일 전부터 행복함ㅎㅎ

-끄아아악!! 여기가 광화문! 경복궁! 진 나트라가 침략한 곳!(광화문 사진)

-성녕대군마마ㅠㅠ 상위복(성녕대군묘 사진)

-(청룡 사진) 청룡님 보러 왔습니다!

-여기서 ‘화’를! 우리 도련님이! 우리 무명화가가!

-‘흘러가다’ 촬영지 따라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부산 도착ㅋㅋ KTX타고 바로 서울 올라간다ㅋㅋ

전부 한국어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 보면 전부 외국인인데, 나보다 한국어 잘하는 듯;;;

=22 그러니까. ‘흘러가다’ 촬영지 여행하신 분은 나보다 한국 여행 많이 하신 것 같은데

=33 ㅋㅋ난 대구도 안 가봤는데ㅋㅋ

-새싹 기본 스펙: 한국어+한국 역사+한국 민간 전설 등.

=……기본 스펙이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ㅎㅎ 어린이 연극 ‘봄’으로 한국어 배우고 사극이랑 화로 역사 배우고 MOEB-436 보면 섭렵해버리거든요!

=그게 되나요?

=+)넵! 제가 그렇게 배웠습니다! (저 이탈리아인^^)

=……인증 확실하게 하시네.

=ㅋㅋㅋㅋㅋ

* * *

“택시!”

영화객이 택시를 잡았다.

“다즈 공연장으로 가주세요.”

서준에게 줄 선물과 티켓이 든 종이가방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택시에 탄 영화객이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흘긋흘긋 뒷자리에 앉은 영화객을 바라보았다.

“혹시…….”

말을 길게 늘이는 택시기사에 영화객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택시기사님도 알아보다니, 나 유명해졌구나!

“네. 제가 영화…….”

“새싹이십니까?”

“객입니……네?”

……새싹이요?

“어이쿠. 아니신가요?”

“아뇨, 아뇨. 새싹 맞습니다.”

새싹이 새싹임을 부정하다니.

하늘이 노하고 땅이 노할 일이었다.

영화객의 말에 택시기사가 하하 웃더니, 조수석에 손을 뻗어 부스럭부스럭 무언가를 꺼냈다. 투명한 봉투에 잘 포장된 과자들과 예쁘게 꾸며진 서준의 사진이었다. 택시기사가 그걸 영화객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리 딸내미가 새싹이거든요. 이번 팬사인회에 못 가서 엄청 슬퍼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래도 당첨된 새싹분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면서 이렇게 준비했지 뭡니까. 다즈 공연장으로 가거나 그 근처로 가는 사람들한테 새싹인지 물어보고 꼭 좀 전해달라고 하더라구요.”

영화객이 손에 들린 봉투를 바라보았다.

[팬사인회 잘 보고 오세요! -새싹-]

요새 눈물샘이 약해졌나.

손수 적은 메시지에, 눈물이 저절로 나올 것 같았다.

“잠시만요.”

영화객이 얼른 메고 있던 백팩을 뒤졌다.

이건 팬사인회장에서 만날 새싹들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한 선물들을 넣어둔 가방이었다. 당첨자는 100명뿐이지만, 넉넉하게 준비했다.

“이거 따님분께 전해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영화객이 준 선물을 택시기사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다.

“새싹분들은 다 이런 걸 준비하시나 봐요. 딸한테 줄 게 엄청 많겠어요.”

택시기사가 허허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갸웃한 영화객이 조수석을 보았다.

조수석은 택시기사의 따님분이 준비한 선물과 함께, 이 택시에 탔던 새싹들이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눠줬을 것이 분명한 선물들로 가득했다.

* * *

-택시 타니까 택시기사분 따님이 새싹인데, 딸이 준비했다고 선물 주셨음ㅠㅠ

=나도 받았다ㅠㅠㅠㅠ그리고 내가 들고 온 것도 드렸음.

=222 혹시 안경 쓴 택시기사분이신가요?

=ㄴㄴㄴ 좀 인상 강하신 분이시더라고요.

=난 여자분이던데?! 새싹 어머님이신 것 같더라!

-와…… 다른 택시들도 그랬다고?

=택시기사 부모님 있는 새싹들은 다 그랬나봄.

=역시 세상 어디에도 새싹은 있고ㅋㅋㅋ

“다른 택시도 그랬구나.”

다즈 공연장에 도착한 영화객은 놀란 얼굴로 SNS와 [새싹부터]를 살펴보았다. 나중에 팬사인회 후기 방송에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팬사인회에 집중해야지.”

영화객이 다즈 공연장 앞을 둘러보았다.

올해 초 갔던 팬미팅보다 확실히 사람은 적었지만, 열기는 그때 그만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서준이 워낙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작품으로 활동했던 덕분인지, 새싹들은 남녀노소, 나이도 성별도 다양했다.

그리고 외국인 새싹들도 많았는데,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가져온 선물들을 뿌리듯 나눠주고, 한국 새싹들에게서 가득 받아갔다. 다들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이거 브라질 과자예요!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직접 만든 슬로건이에요! 하나씩 가져가세요!”

“우와! 이건 독일어예요?”

“네! 맞아요! 서준아! 사랑해! 라고 적힌 거예요!”

모두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 혹시 영화객 님?”

영화객이 ‘나도 선물 나눠줘야지.’ 하고 백팩을 열고 주섬주섬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긴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새싹들이 영화객을 못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긴 했다.

영화객이 다가오는 새싹들에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우와! 진짜 영화객 님이시네!”

“반가워요!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친구로 보이는 한국 새싹과 외국 새싹이었다.

사실은 오늘 다즈 공연장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된 한국 새싹과 외국 새싹이었지만, 비슷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는 두 새싹의 모습 때문인지 영화객의 눈에는 거의 베스트프렌드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 잠시만요! 선물. 선물.”

“맞아. 선물!”

“저도 드릴게요.”

서로 가방을 뒤지는 모습이 참 정겨웠다. 영화객과 선물을 교환한 두 새싹이 영화객의 선물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아니, 이건 처음 보는 사진들인데?”

“/미친. 이거 칸에서 준이 입고 있던 옷이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던 외국 새싹이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뱉어냈다. 그에 이탈리아어는 모르지만 ‘칸’은 알아들었다.

이 외국 새싹분. 서준의 옷만 봐도 어떤 상황인지 알다니.

보통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영화객이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옛날에 칸 영화제에 갔을 때, 찍었던 서준이 B컷 사진들이에요.”

……세상에.

그러고 보니 눈앞에 있는 이 너튜버는 칸 영화제에 갔었더랬다.

“으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90도로 꾸벅꾸벅 인사하는 두 새싹에, 영화객도 반사적으로 꾸벅 인사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던 다른 새싹들도, 칸 영화제 B컷 소식에 눈을 번뜩이며,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영화객에게로 향했다.

내가 못 본 고등학생 서준이의 사진이 아직 남아 있었다니!

하고 다들 생각하는 게 영화객의 눈에 훤히 보였다.

‘……넉넉히 챙겨와서 다행이다.’

품 안에 쌓여가는 새싹들의 선물들과 점점 비어가는 백팩. 그 와중에도 질서를 지키는 새싹들의 모습에 영화객이 허허허 웃고 말았다.

* * *

“카메라 설치 끝났습니다!”

“스크린 영상 확인 완료.”

100여 명의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다즈 공연장은 한참 팬사인회 준비 중이었다.

서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 하는 팬사인회라서 그런가. 준비하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설레듯 떨렸다.

“영상은 모두 올라가는 거예요, 형?”

“아니, 적당히 편집해서 올릴 예정이야.”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대답했다.

보통 팬사인회는 팬들이 올린 영상이나 영상이 대부분이었고 기획사 측에서 영상을 올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지만, 코코아엔터와 서준은 이번 팬사인회 영상을 조금이나마 많은 새싹들이 볼 수 있도록 너튜브에 올리기로 했다.

물론, 서준을 중심으로 촬영할 예정이었다.

서준이 다시 무대와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가깝다.

아마 이렇게 가까이에서 팬들을 만난 건 블루문과 함께 음악방송에 나갔을 때가 아닌가 싶었다.

‘봄 때도 규모가 컸었으니까.’

공항에 팬들이 나와 있을 때도 가깝긴 했지만, 그때는 안전상 금방 지나가야 해서 그렇게 오래 있지는 못했었다.

‘이것만으로도 가까운데…….’

서준이 무대 위로 고개를 돌렸다.

무대는 자신이 앉을 의자와 책상, 그리고 새싹이 앉을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새싹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자리였다.

“후우.”

“긴장돼?”

크게 숨을 내쉬는 서준에 최태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서준이가 긴장이라니.

그 정도로 안 어울리는 조합은 없을 것 같았는데, 바로 눈앞에 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요.”

모두 미디어를 통해서만 자신을 보던 새싹들이 아닌가.

예능도 거의 하지 않았던 자신을 바로 앞에서 보면, 이야기를 나누면 상상과 달라서 실망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만 보여주겠지만.’

서준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애교 같은 건 자신 없는데…… 어떻게 하죠?”

그말에 최태우와 지나가던 코코아엔터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다 귀엽게 봐주실 거야.”

“못하면 더 귀여워하실걸.”

코코아엔터 직원들이 웃으며 말했고 누군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마른 세수를 하던 서준도 결국 웃고 말았다.

* * *

새싹들이 하나둘 관객석에 앉았다.

100명이라는 단어도 느꼈지만,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니 그 숫자가 확연히 느껴졌다. 아니, 숨이 저절로 턱하고 막힐 것처럼, 이렇게 작고 좁은 공연장이라니……!

‘너무 좋아!’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다.

“미친! 무대도 엄청 가까워!”

무대 위에 올라간 책상과 의자가 본래 크기로 보일 정도로 무대도 엄청 가까웠다. 그저 미쳤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새싹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가방에서 준비해 온 카메라를 꺼내 앞사람과 뒷사람의 시야에 방해되지 않게 설치했다.

나노단위로 찍어가야지! 영상 다 찍어가야지!

1초, 1초.

팬사인회 시간이 가까워질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저기…… 영화객 님.”

“네?”

옆자리에 앉은 새싹이, 카메라 설치를 끝낸 영화객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중에 제가 사인받을 때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무슨 일인가 싶었던 영화객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제가 사인 받을 때도…….”

“당연하죠! 멋지게 찍어 드릴게요! 저 사진학과 나왔어요!”

뜻밖의 행운에, 영화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새싹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준비를 끝내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무대의 작은 스크린으로, 서준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했던 모습들이 담긴 영상과 함께 블루문의 [블루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래]

[홀로 빛날 수 없다는 걸 알아]

모두가 숨을 죽였다.

[난]

[너의 빛을 받아]

중간부터 블루문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높이 올라]

[가장 밝게 빛날 거야]

새싹들이 아는 목소리였다.

모를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대 옆에서 걸어나왔다. 스크린의 영상이 바뀌며, 마이크를 든 남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하지만 여긴 작은 극장.

스크린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멋진 모습의 남자가.

[네가 볼 수 있도록]

으아아아악!!

싱긋 웃는 서준에, 새싹들은 당첨됐을 때부터 참아왔던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렇게 배우 이서준의 첫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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