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99화
“근데 왜 팬사인회는 12월인데, 팬미팅은 내년 2월이야, 형?”
수빈이의 말에 트럼프 카드를 은수에게 내밀고 있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팬사인회는 100명만 들어갈 수 있으면 돼서 행사장으로 쓸 수 있는 곳이 많았거든. 그래서 빠른 날짜로 예약할 수 있었는데, 팬미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행사장들은 크리스마스에다가 연말이라 이미 다 예약이 되어 있어서 말이야. 연초인 1월도 그렇고. 제일 가까운 날이 2월이었어.”
“아하.”
“게다가 팬미팅에서 뭐 할지도 생각해야 하고, 연습도 해야 하니까.”
“가볍게 한다고 하지 않았어?”
서준이 씨익 웃었다.
“다들 기대하는데,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은수는 두 오빠의 말은 1도 신경 쓰지 않고 서준의 손에 있는 트럼프 카드들을 아주 신중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 조커가 있다.
그걸 피해 뽑아야 했다.
오랫동안 서준 오빠와 게임을 한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서준 오빠의 표정으로는 전혀 어떤 게 평범한 카드이고 조커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서준 오빠의 연기력이 듬뿍 담긴 표정을 믿느니, 차라리 눈 감고 고르는 편이 나았다.
지금도 봐라.
“!”
자신의 손이 중앙에 있는 트럼프 카드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흠칫! 하고 작게 몸을 떨며 아닌 척 표정을 짓는 서준 오빠. 하지만 저건 페이크였다.
“이거닷!”
하고 은수가 꺼낸 카드는.
조커였다.
“으아아아!”
이제 5학년, 초등학교에서는 의젓한 선배인 은수가 바닥을 굴렀다. 서준과 수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지?! 저번엔 안 이랬는데!”
자칭 도둑잡기의 고수, 은수가 바닥을 내려치며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중1 수빈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서준이 형이 봐준 거니까.”
“……응?”
그 말에 은수가 고개를 들어 서준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사촌 동생의 눈동자에 서준이 짐짓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이제 곧 6학년이기도 하고, 세상의 쓴맛을 알 나이가 됐지.”
“……?”
“이제부터는 안 봐줄 거야.”
“!?!?”
배신감이 가득한 은수의 표정에, 서준과 수빈이가 빵 터지고 말았다.
* * *
[제목: 엄마한테 등짝 맞음ㅋㅋㅋㅋ]
서준오빠 팬사인회과 팬미팅가고 싶어서 신청날+당첨날까지 정화수 떠놓고 새벽기도 하려고 했거든? 하느님, 부처님, 청룡님, 아기천사님, 성녕대군마마님, 천지신명님!! 제발 당첨되게 해주세요! 하고(진지)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물 떠넣고 베란다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나온 엄마가 꺄아아악!!하고 비명지름ㅋㅋㅋ
밖에서 뭔가 달그락거리길래, 얘가 또 냉장고에서 꺼내먹나? 하고 나왔는데, 귀신이 앉아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대ㅋㅋㅋ
당시 내 모습: 새하얀 잠옷+갓 일어나서 엉망진창인 긴 머리카락+ 핸드폰 손전등 켜놓음+무릎 꿇음+간절히 중얼거리며 기도 중+거실 창문에 비친 그림자
엄마: 꺄아아악!!
나: (뒤돌아봄)? 엄마?
엄마: 까아아악!? (정신차림) 야! 이놈의 기지배야!! 새벽부터 뭐해?
그리고는 이유(서준 오빠 팬사인회 or 팬미팅 당첨 기도 중) 듣고는 등짝 때림(아직도 아파ㅠㅠㅠ)
엄마: 시험 기간 때나 이 시간에 일어나서 공부를 해봐!!
나: 그건 못 하지.(진지)
엄마: (뒷목잡)
하여튼. 오늘도 새벽기도 했당!!
+)당첨발표 날까지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제발 당첨시켜주세요ㅠㅠㅠ
-첫문단부터 웃김ㅋㅋㅋㅋ
=22 중간에 이상한 거 있잖아ㅋㅋ‘청룡님, 아기천사님, 성녕대군마마님’은 뭐냐고ㅋㅋ
=근데 청룡님은 이해함. 어릴 때부터 워낙 엄마아빠와 유치원 선생님들한테, 여의주와 청룡님한테 세뇌? 훈련?이 되어 있어서 진짜 있는 것 같음.
=22 뭔가 산타클로스 같은 느낌이랄까.
=33 ㅋㅋㅋ없는 거 아는데 묘하게 있을 법한ㅋㅋ
=요새도 ‘봄’ 안 보고 크는 애들 없다는 거……ㅋ
-어머님 한겨울에 납량 체험ㅋㅋㅋ
=그러니까ㅋㅋㅅㅂ 근데 이유가 웃겨ㅋㅋ‘얘가 또 냉장고에서 꺼내먹나?’ㅋㅋㅋ
=우린 ‘또’에 집중해야한닼ㅋㅋ
=상습범ㅋㅋㅋ
-당시 모습도 왜 하필 하얀색 잠옷이야ㅋㅋ
=머리도 풀고 중얼거렸다니ㅋㅋ진짜 무서웠겠다ㅋㅋㅋ
=창문에 비친 모습까지 완벽★
=ㅋㅋㅋㅋㅋ
-근데 손전등은 왜 켰어?
=ㄱㅆ)어두워서ㅎ 거실 불 켜면 엄마아빠 일어날까 봐.
=ㅋㅋ착한 의도였지만 역으로 조명효과까지 써버린ㅋㅋ불속성 효녀ㅋㅋㅋ
-밑에도 불효녀ㅋㅋ시험 기간에는 못 한대ㅋㅋㅋㅋ근데 인정. 시험 기간엔 못 하지.(진지)
=22 시험 기간에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엄마.
=33 이건 서준 오빠 팬사인회인걸?? 팬미팅인걸??
=44 비교도 안 돼!!
=ㅋㅋ여기 불속성만 모였냐고요ㅋㅋ
-내일도 할 거야?ㅋㅋㅋ
=ㄱㅆ) 당연!!?ヽ(•̀ω•́ )ゝ✧
서준의 첫 팬사인회와 1년 만의 팬미팅으로, 전 세계의 새싹들이 들썩였다.
-불교는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절이 있어서 108배 하러 갔습니다. 스님이 ‘아이고. 시주님. 오셨습니까.’하고 기쁘게 반겨주셨습니다. 왠지 당첨발표 후에도 절에 계속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ㅋㅋㅋㅋ
-난 착하게 살려고 노력 중. 그럼 산타 할아버지나 청룡님이 선물 주시겠지!!
=22 저 착하니까 (어른이지만) 선물 주세요ㅠㅠ
-팬사인회는 12월이고 팬미팅은 2월이니까, 중복 당첨 되도 갈 수 있겠네!!
=ㄴㄴㄴ아예 콬아에서 컷한대. 팬사인회, 팬미팅 둘 중 하나만 갈 수 있음.
=왜ㅠㅠ?! 둘 다 가고 싶은데ㅠㅠ
=금손 표 2개, 똥손(너와 나) 표 0개.
=이해 완료.
=이해하냐고ㅋㅋㅋ
-다들 신청하시고 놀고 계시는 건가요? 조금 전에 신청 홈페이지 열렸어요!
=!!갑니다!!
=바로 신청해야지!
-모두 주소랑 휴대폰번호 잘 적으세요. ㅠㅠ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지옥문이 열리는 겁니다ㅠㅠ
=+)신청하고 신청 페이지 캡처 or 사진 찍어놓으면 나중에 ‘내가 잘 적었나? 아냐. 잘못 적은 것 같은데?!? 안돼ㅠㅠ’하고 미치고 펄쩍 뛸 것만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ㅋ
=ㅋㅋㅠㅠ웃픔
=감사합니다ㅠㅠ캡쳐 해놔야지ㅠ
배우 이서준의 팬사인회&팬미팅 신청 홈페이지가 전 세계 동시에 열렸고.
언제나 그렇듯 [한국 새싹부터]의 지휘 아래, 각자의 시간대를 정하고 그때만 접속해서, 자체적으로 신청 홈페이지가 터지지 않게 주의했다.
-다른 사이트는 몰라도 이건 터지면 안 돼.
=22 서준이 팬사인회, 팬미팅 신청 사이트잖아요.
=(여러 번 터진) WTV시상식: 나는 왜ㅠㅠㅠ
=ㅋㅋㅋㅋㅋ
* * *
“……많네요.”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사무실.
신청 기간이 끝나고, 팬사인회와 팬미팅을 신청한 새싹들의 수를 보는 서준과 직원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팬카페는 가입하고 활동을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허수가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여기 모인 신청자분들은 전부, 계속 ‘새싹’으로 활동하는 분이라는 거네요.”
서준의 감탄에, 부팀장이 덧붙였다.
“신청자들뿐만이 아니지.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외국에서 한국으로 올 수 없는 새싹 분들을 생각하면, 뭐…….”
어마어마하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괜히 죄송해지는걸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새싹들 중에서, 팬사인회에 참여할 300명과 팬미팅에 참여할 사람들을 뽑으라니. (물론 랜덤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서준과 1팀이었다.
뭐랄까.
자신의 팬이 많고 열정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확인받은 느낌이랄까. 가슴이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해외새싹들이 신청한 비율을 보면 양심이 콕콕 찔렸다. 한 번도 해외에서 팬미팅과 연극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부팀장님.”
“응?”
서준의 목소리에 모니터를 보며 감탄하고 있던 부팀장과 최태우, 1팀 직원들이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미국에서 촬영할 때, 팬미팅 가능할까요?”
그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 * *
얼마 후.
배우 이서준의 팬사인회&팬미팅 당첨자가 발표되었다.
신청한 모든 새싹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그중에는 인기 너튜버이자 새싹으로도 유명한 영화객도 있었다.
청룡 님과 아기천사 님께 기도를 끝낸 영화객이 말했다.
“그럼 이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번엔 동생님 찬스도 쓸 수 없는 완전 추첨제ㅋㅋ
-확실하게 떨어진다에 1표.
-2222
“그래도 하늘이 절 불쌍하게 여길 확률이 있지 않을까요?”
마우스커서를 확인 버튼으로 가져다 대며 말하는 영화객에 몇몇 시청자들이 핵심을 짚었다.
-근데 영화객님 똥손이라고 하는데, 우리보다 서준이 많이 봄.
-222 팬미팅도 가고. 칸에서도 보고.
-33 연극도 봤잖아.
-?그러네?
-그러네?그러네?그러네?그러네?
-!!기만자다!!
-기만자다아아악!!
화르르륵!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채팅창에 영화객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럼 얼른 확인해 보겠습니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자.
영화객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서준 배우님의 팬사인회]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다아앙첨!! 팬사인회 당처엄!!”
팬사인회애액!!
하고 라이브 중이라는 것을 잊은 영화객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고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ㅅㅂ기만자라니까!!!
-ㅠ좋겠다ㅠ난 못가는데ㅠㅠ
-기만자!! 기만자!!
-팬사인회라니! 팬사인회라니!!!
온갖 사납고 무시무시한 댓글들이 올라왔지만, 영화객 라이브의 채팅창을 관리하는 매니저는 막지 않았다.
-매니저: 야 이 $#!^$!&)%
그 또한 시청자들과 함께 광분하는, 새싹이었다.
잠시 후.
진정한 영화객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물론 완전히 진정한 것은 아닌 모양인지 입꼬리가 들썩이고 있었다.
“크흠. 제가 팬사인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조옿겠다.
-족겠다.
-조겠네요.
욕인지 뭔지 모를 댓글들에도 영화객은 그저 기쁘기만 했다.
“그럼 다음 달, 12월 팬사인회에 다녀와서 후기 방송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전까지 이번 방송의 댓글로 이서준 배우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적어주세요. 3개를 뽑아 팬사인회에서 물어보겠습니다!”
-와아아악!!
-영화객 최고!!!
-영화객님밖에 없어요!!
“그럼 실물 티켓이 오는 대로 방송 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영화객의 라이브 방송이 켜졌다.
“자! 이게 바로 이서준 배우의 첫 사인회 티켓입니다! 무려 300명의 새싹만 받을 수 있는 티켓이죠!”
중요 정보를 가린 영화객이 티켓을 카메라에 비추며 자랑했다.
-부럽다ㅠㅠㅠ
-진짜 부럽ㅠ
부러움으로 채팅창이 넘쳐흘렀다.
“저는 금요일에 갑니다. 첫날이죠. 둘째 날도 마지막도 좋지만 역시 인생 첫 사인회는 첫날! 배우도 팬들도 설렘이 가득한 첫날! 아니겠습니까!!”
-으아아아. 나도 가고 싶어!!
-222나도 데려가라!!
-가방에 넣어서 데려가줘어어!
“그러기엔 가방이 너무 작을 것 같네요. 흐흣.”
정말 즐거워 보이는 영화객의 모습에 보는 시청자들은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그럼 이 티켓은 소중히 보관하고…… 조금 있으면 배달이 오니까 먹으면서 같이 서준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영화객이 티켓을 꺼냈던 봉투에 다시 조심스럽게 넣으며 말했다.
-오늘 서준이 특집ㅋㅋㅋ
-영화 리뷰어는 기쁘면 리뷰를 한다ㅋㅋ
-진짜 리뷰인지 덕토크인지는 모르겠지만ㅋㅋ새싹으로서는 좋네요ㅋㅋㅋ
영화객은 곧 배달 올 음식을 올려놓기 위해 책상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띵동- 하고 벨이 울렸다.
“저녁 왔네요. 그럼 얼른 가지고 오겠습니다!”
영화객이 희희낙락 웃으며 화면에서 사라졌다.
-영화객 저녁 뭐 시킴?
-육회+비빔밥
-오오. 육회 존맛.
-나도 육회 시켜야지!
비닐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화객이 나타났다. 봉투 안에서 육회와 비빔밥 그릇을 꺼내고 작은 양념장 그릇도 꺼냈다.
“수저는 집에 있는 걸 쓰겠습니다.”
다시 또 화면 밖으로 나간 영화객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왔다. 그리고는 육회비빔밥을 슥슥 비벼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서준이 차기작이요? 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연극이었으면 좋겠네요.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3년마다 졸업시즌이라서 연극을 했었잖아요. 근데 지금은 대학교인데다가 군대도 다녀와서…….”
-애매하네.
-그래도 언젠간 하겠지!
-내 자리는 없겠지만ㅋㅋㅠㅠㅠ
“저는 동생이 있습니다!”
-내놔. 내 언니.
-누님 내놓으십쇼!
영화객은 시청자들과 킬킬거리며 맛있게 저녁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플라스틱 그릇을 씻어 버리기 위해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럼 오늘 라이브 방송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흐흐. 모두 행복한 밤 보내세요. 저는 서준이 팬사인회 티켓을 보며, 보며……?”
영화객이 책상을 바라보았다. 방금 막 치워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뻘뻘 식은땀도 났다.
영화객은 허리를 숙여 책상 아래를 살피다가 아예 무릎을 꿇고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아직 켜져 있는 카메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
-왜 저래??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영화객이 허겁지겁 두 손으로 옷을 더듬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고, 입고 있던 겉옷의 양쪽 주머니를 뒤집어 꺼내기도 했다.
-물건 잃어버린 내 모습 같은데?
-……어? 그러고 보니??
-그게 없네??
-그거?
“없어……없다고……!”
-티켓!!
“내 티케엣!!”
사색이 된 영화객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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