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97화
“그랬었지.”
오래전 일이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흰 늑대가 자신이고 자신이 흰 늑대라는 걸 알아서, 헤어짐이 시원시원했다는 것까지도.
서준은 웃으며 [알비노 늑대]의 삶의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넣었다.
‘늑대’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삶이라서 꺼내 훑어보긴 했지만, ‘늑대’가 아닌 ‘늑대인간’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다.
“게다가 능력도 대충 짐작이 가고.”
아마 가족이나 무리를 지키는 능력이 아닐까.
아니면,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는 능력일 수도 있었다. 하여튼 늑대와 관련된 능력은 십 중 십으로 아닐 것 같다는 게 서준의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잠깐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무리는 어디까지지?”
일단 가족들과 친척들, 친구들과 지인들, 새싹들, 그리고 작품을 봐주시는 관객분들. 우리랑 로키도 빼놓을 수는 없다.
“……어?”
떠올리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소중한 사람들(+고래들)을 생각하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던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대장, 나 큰일 난 것 같은데?”
이러다 지구 전체가 자신의 영역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청출어람.
대장늑대의 조언을 너무 잘 받아들여, 애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서준이었다.
* * *
>지후: 보답?
지후의 메시지에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보답이라기보다는 팬분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
<라는 거지.
무리의 대장으로서 말이다.
물론 지금은 인간이지만.
>지후: 그게 보답 아닌가?
>지윤: 서준이 넌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그대로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지오: 22 사고도 안 치잖아.
>미나: 미공개 영상을 올리는 건 어때?
미공개 영상이라.
서준이 볼을 긁적이다 휴대폰을 두드렸다.
<아기 때도 괜찮으려나?
흰 늑대의 삶의 책을 보고 와서 그런가.
저절로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지윤: 완전 좋지!
>미나: 아기 때라니! 귀엽겠다!
소꿉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서준은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아빠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나 아기 때 영상 있어?”
귤을 먹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대답했다.
“당연히 있지.”
“그건 왜?”
“너튜브에 올릴까, 하고.”
옛날 건데 화질은 괜찮으려나?
하고 혼잣말하는 서준에, 엄마 아빠가 눈을 반짝였다.
“괜찮아! 완전 괜찮아! 몇 년마다 보정하거든!”
“그리고 클라우드랑 외장하드랑 컴퓨터랑 노트북에 잘 저장되어 있어서 어디 하나 날아가도 괜찮아!”
마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조선 4대 사고(史庫)처럼,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들을 여기저기 저장해 놓은 서은혜와 이민준이었다.
“소중한 영상인데 잘 보관해야지!”
하하.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부모님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그사이 신이 난 서은혜와 이민준이 들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오늘은 서준이 아기 때 영상 볼까?”
“그거 좋지! 크으. 그립네. 이렇게 작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너튜브에 올릴 영상을 고를 겸, 가족이 모여 추억 여행을 떠나는 시간을 갖게 된 하루였다.
* * *
완벽하게 끝낸 WTV시상식에 기뻐한 새싹들은 서준의 차기작을 기다리며 일상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물론 얼마 전에 서준이가 뉴스에 나왔지만.”
“그건 진짜 상상도 못 했지…….”
그런 새싹들 중 하나인, 임예나와 송유정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꽤 익숙해졌어. 뉴스에 나오는 건.”
“원래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건데…… 서준이니까.”
송유정과 임예나가 동시에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연예인들의 팬들은 뉴스에 나온다고 하면 무슨 사고를 친 거냐고 기겁부터 할 텐데, 새싹들은 ‘아, 그래? 이번엔 무슨 일이래?’ 하고 평화롭게 뉴스를 켤 것 같았다. 그리고는 화질이 깨진 CCTV 영상 속에서 서준을 찾아 열심히 캡처하겠지.
“오늘은 뭐 볼래?”
“글쎄…….”
두 새싹은 침대를 뒹굴거리며 오늘 볼 서준의 작품을 골랐다.
오늘은 어렸을 때 서준이 연기한 작품을 보기로 한 두 새싹이었다.
왜냐하면 성인이 된 서준의 작품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테지만, 어린이 서준의 작품은 이게 전부니까 말이다. 하나하나 아주 소중한 보물들이었다.
“쉐도우맨 시리즈는 1편부터 정주행 해야 하니까 통과.”
“내의원도 편수가 많으니까 오늘은 통과. 연차 내고 봐야지.”
“일단 봄 보고 재수사 보자. 악령도. 어때?”
“좋아!”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서준의 작품들에 송유정과 임예나가 눈을 빛내며 빔프로젝터를 켜고 스크린을 내렸다.
어린이 연극 [봄]이 새하얀 스크린이 비쳤다.
중학생 최소영과 이다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쉽다. 목소리만 들려서.”
“그러게. 8살 서준이 엄청 귀여운데…….”
목소리만으로는 아쉽지만, 역시 서준이.
아직 어린데도 훌륭한 연기력으로 관객들 모두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본 것은 [재수사].
긴 호흡의 드라마였지만, 서준이 카메오로 참여했던 편만 볼 예정이었다.
재생되는 화면에 송유정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편은 진짜 이 자체로도 역사적 자료네.”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축구선수 최시혁, 지금도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스타 이지석 배우, 그리고 세계적인 슈퍼스타 서준의 어릴 때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상이었다.
특히,
“앞니 빠진 서준이 귀여워…….”
그래서 새싹들에게 더욱 귀하고 소중한 영상이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열심히 서준의 작품들을 정주행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관람 모드에 들어간 송유정과 임예나. 다음은 [악령]으로 서준이 처음 출연한 한국 영화였다.
“이거 다 보고 48시간 볼까?”
“응. 그러자!”
그렇게 똘똘하면서도 위엄있는 아기무당 서준이 나오는 [악령]을 보고, 아기는 태평하고 어른들이 우당탕거리는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을 시청하는 두 새싹이었다.
“아기 서준이 귀여워…….”
“여기가 내 무덤. 범인은 서준이.”
꺄아악!
하고 (지금의 송유정과 임예나보다 어린) 브라운블랙 멤버들 사이에서 방긋방긋 웃는 아기서준에 두 새싹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기 때 영상이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플 정도로 아기 서준이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코코아엔터에 메일 보낼까?”
“뭐라고?”
“꿍쳐둔 영상 풀라고. 사장이 삼촌이니까 휴대폰에 영상 하나둘 정도는 있겠지!”
진짜 하진 않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몇백 개고 메일을 보내고 싶은 임예나와 송유정이었다.
그리고 서준이 부모님께도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아주 구구절절이 아기 서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점을 적어 보내고 싶었다.
“진짜 10포인트로 A4용지 10장 가득 채울 수 있음.”
“나도. 띄어쓰기 안 하고.”
“……그건 좀 무서울 것 같은데.”
송유정과 임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엘리펀트 광고나 보자.”
“이 나이에 분유광고라니…….”
“안 볼 거야?”
“누가 안 본대?!”
그렇게 코끼리가 그려진 분유통을 안고 꺄아악! 하고 해맑게 웃는 아기 서준을 보며 끙끙 앓던 중, 알림이 울렸다. 너튜브 채널 [JUN]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는 알림이었다.
“! 뭐야? 뭔데?”
“잠깐만!”
두 새싹이 눈을 번쩍이며 노트북 앞에 바짝 붙어앉았다.
“새 영상이 올라왔어!”
“헐! 브이로그? 아님 차기작 이야기?”
하고 어른 서준을 생각했더니,
[아붑! 앙?]
아기 서준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아주아주 어린.
스크린에 비친, 주먹고기를 먹는 갓난아기 서준의 모습에 두 새싹이 입을 쩌억 벌렸다.
이 장면을 처음부터 이렇게 크게 볼 수 있다니.
예상치도 못한 공격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피가 1밖에 남지 않게 된 어마어마한, 크리티컬 공격을.
잠시 숨까지 멈추고, 오동통한 주먹을 입에 넣고 냠냠- 오물오물 대는 아기 서준을 보던 두 새싹은 영상이 끝나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서준이 어머님, 아버님 감사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배우 이서준, 아기 때 영상 너튜브 채널에 공개!]
[이 아기는 훗날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됩니다!]
[아기 이서준도 슈퍼스타? 옷, 인형, 치발기 등등 모두 품절 행렬!]
-오른손 발견한 서준이 너무 귀여워ㅠㅠㅠ
=왼손은 언제 발견할까 했는데, 바로 발견하뮤ㅠ
=아기 때부터 똑똑한 서준 오빠ㅠㅠ
=다리도 오른쪽 왼쪽 쭉쭉 뻗음ㅠㅠㅠ
-진짜 그 작은 손으로 두 발 잡을 때는 입을 틀어막았다ㅜㅜㅜ
=22 동글동글한 거 너무 귀엽잖아ㅠㅠ
=데굴데굴 굴러다니겠닼ㅋㅋㅋ
=주먹고기…… 주먹고기 너무 귀여워ㅠㅠㅠ
-머리쿵 쿠션 샀다.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샀어.
=난 불가사리. 아니 노란색이니까 별인가?ㅋㅋㅋ
=22 주변에 입을 아기도 없는데, 파닥파닥이 너무 귀여워서 안 살 수가 없었어……
=난 천사옷 샀다. 우리 강아지 입혀야지.
=ㅋㅋㅋㅋ
-저땐 아직 팔다리에 근력이 부족할 텐데???
=아기 때부터 근력과 체력이 장난 아닌 이서준.
=역시 운동을 했어야……(미련 남은 야구팬)
=다리 힘 보니 축구를……(미련 남은 축구팬)
-다 울고 있어서 너무 웃김ㅋㅋ
=새싹부터도 지금 완전 폭풍오열 중ㅋㅋㅋ
=그러면서 이서준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있음ㅋㅋ
=서준이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귀한 영상 남겨주셔서(업로드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ㅋ
=서준이 소꿉친구들이 올리면 좋을 거라고 했대요!
=소꿉친구분들 감사합니다ㅠㅠ
=앞으로 시합 열심히 볼게요! 박지오 선수!!
->>이 아기는 훗날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됩니다!<< 기사제목ㅋㅋ
=22 그것도 초등학생 때요.
=33 오스카상을 받죠.
-아기 이서준의 광고 효과도 아주 대단했다.
=회사가 없어져서 못 사는 건 있어도 품절 아닌 게 없엌ㅋㅋㅋ
=헐ㅋㅋ 단종된 제품도 다시 출시된대ㅋㅋ
=노 확실하게 젓는구만ㅋㅋㅋ
-아…… 너무 행복하다ㅠㅠ
=22 나 새싹도 너무 행복함ㅠㅠ
=33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ㅎㅎㅎ
* * *
안타깝게도.
새싹들의 행복을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꿔 버릴 회의가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사무실에서 진행 중이었다.
“팬…… 사인회요오?”
저도 모르게 삑사리가 나올 정도로 놀란 1팀 막내 직원의 모습에 다들 그저 미소만 지었다.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배우가 무대 위에 서고 팬들이 관객석에 앉아 보는, 행사장에 따라 인원을 늘릴 수 있는 팬미팅과 달리, 배우와 팬이 1대1로 만나서 짧게나마 이야기를 주고받는 팬사인회는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팬의 수가 대충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수팀 말로는 보통 100명 정도 만난다고 합니다.”
“……백 명……?”
“……백 명이요?”
최태우의 말에, 모두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백 명.
100명이란다.
“……한국 새싹들이 몇 명이었죠?”
“흐흐.”
대답 대신 어디선가 해탈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었던 직원도 딱히 답을 바라지 않았다. 세 살짜리가 봐도 비교조차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 새싹들뿐만이 아니라, 외국 새싹들도 팬사인회 신청을 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100명이라니. 거의 복권 당첨 수준의 확률이 아닌가.
1팀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최태우가 말했다.
“서준이는 3일 정도 하고 싶다고 합니다.”
“3일이면…… 300명?”
“하핫. 삼백 명, 삼백 명이요…….”
다행히도 인원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겨우 300명.
그걸 누구 코에 붙여……?
넋이 나간 1팀 직원들에, 부팀장이 짝! 하고 손뼉을 치고는 입을 열었다.
“먼저 적당한 장소부터 찾아봅시다.”
그에 1팀 직원들이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붙잡았다.
여긴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배우가 원하는 것이라면 범죄나 안전에 관련된 사항이 아닌 이상, 완벽히 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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