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96화 (79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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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늑대가 처음 대장늑대를 만난 날, 전해주었던 엄마 아빠가 지은, 지금까지 전해진 막내의 이름.

“이제부터는 이름으로 불러줄까?”

샤벨타이거의 말에 대장늑대가 웃었다.

“아니. 대장으로도 충분하다.”

이름이 있든 없든, 털이 흰색이든 회색이든, 눈동자가 붉든 노랗든.

나는 영원히 가족의 막내이고,

“대장! 화염 드레이크가!”

“샤벨!”

“간다아!”

이 무리의 대장늑대이니까 말이다.

* * *

“그런 전생이었지.”

삶의 책을 훑어보니, 가지고 있던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초등학생 때 쓴 일기를 읽으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느낌?

그래도 그때의 감정까지 전부 전해지지는 않는 느낌?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고 옛날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느낌?

초등학생, 아니, 몇 달 전의 자신이라도 그럴진대.

“전생의 일기장이라면 더 그렇지, 뭐.”

서준이 웃으며 [알비노 늑대]의 책표지를 소중히 매만졌다.

“난 잘 지내고 있어. 대장.”

* * *

이건 오래전.

‘그’가 ‘이서준’이라는 존재로 막 태어났던 때의 이야기.

‘아기’의 무의식 속에는 두 존재가 있었다.

거대한 흰 늑대의 모습을 한 ‘전생의 자아’와 아직 제대로 형체도 갖추지 못한 작고 동그란 ‘현생의 자아’.

이곳에서 앞으로의 ‘생’이 결정된다.

이대로 거대한 흰 늑대의 자아가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현생의 자아를 흡수해 버린다면 ‘지휘봉의 요정’과 같은, 전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현생이 시작될 것이었고, 흰 늑대의 자아가 얌전히 사라진다면 다른 생들처럼 ‘현생의 자아’만의 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작고 동그란 ‘현생의 자아’로서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도울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무의식의 세계였다. 모든 것은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전생의 자아’의 마음에 달렸다.

다행히도 전생의 자아, 거대한 흰 늑대는 자그마한 현생의 자아를 품고 풍성한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일 뿐이었다. 현생의 자아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인 것도 모르고 그 풍성한 꼬리를 쫓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흰 늑대가 미소를 지었다.

아주 활달하고 밝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이제 슬슬 어떤 종족으로 태어났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종족?”

흰 늑대의 말에, 꼬리와 놀고 있던 연초록빛 자아가 고개를 돌려(동그란 모양이라 티는 안 났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흰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래.”

밝은 아이이니 선 성향의 몬스터로 태어난 거라면 좋겠지만, 그건 흰 늑대나 저 아이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악 성향의 몬스터로 태어난 거라면,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일찌감치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걱정이 담긴 흰 늑대의 표정과 달리, 어린 자아는 그저 신나 보였다.

두 자아의 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새롭게 태어난 몸이 눈을 뜬 것이었다.

“나 눈 떴어!”

몸을 지배하고 있는 어린 자아가 들떠 말했다. 어느새 연한 초록색에 두 개의 점이 콕콕 박혀 있었다. 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렴.”

“주변? 알았어!”

어린 자아의 생각에 따라, 눈과 고개가 움직인다. 흰늑대도 그것을 따라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거의 땅바닥에 붙은 것 같은 낮은 시야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시야도 흐릿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아니. 몸이 안 움직여…….”

흰 늑대의 물음에, 어린 자아가 끙끙거리며 노력했다. 하지만 몸에 달린 것들이 바둥바둥거리는 느낌은 나는데, 무언가에 묶인 듯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흐음…….”

두 앞발에 턱을 괸 흰 늑대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태어나자마자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이나 몬스터류로 태어난 건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움직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종족들. 그런 종족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좀 더 있다가 파악해 봐야겠군.”

“그럼 나 꼬리랑 놀아도 돼?”

“그래.”

어느새 콩알 같은 두 눈이 생긴 연녹색 자아가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흰색 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흰 늑대가 웃고 말았다.

“/아. 서준이 다시 자네./”

“/눈 뜬 것도 엄청 귀여웠어!/”

“/자는 것도 귀엽고!/”

부드러운 흰색 천으로 꽁꽁 감싸진 아기가 다시금 눈을 감자, 서은혜와 이민준이 아쉬워하면서도 잘 자는 아기 서준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 * *

시간이 흘러.

제법 시야가 정확해지고 몸을 제법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흰 늑대는 간간이 어린 자아와 함께 어떤 종족으로 태어났는지 확인해 보았다.

“이젠 제법 움직일 수 있지?”

“응!”

“그럼 먼저 앞발을 들어보자. 오른쪽 앞발.”

“오른쪽?”

그에 흰늑대가 커다란 오른쪽 앞발을 들어 보였다.

“이쪽.”

“알았어!”

어린 자아가 힘차게 오른쪽 앞발을 들었다. 그러자 시야로 살구색의 짜리몽땅하고 통실통실한(아기의 시야에서 보면 길다.) 무언가가 나타났다.

“우와! 내 앞발!”

“앞발이 아니라 손.”

오른손을 흔들며 감탄하는 어린 자아에, 흰 늑대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익숙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일어났나 봐. 헉! 오른손을 발견했어!/”

“/카메라! 카메라!/”

“/귀여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워하는 듯했다.

“그럼 이제 왼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른쪽과 비슷한 모습이겠지만 확인해 봐야 했다.

“왼손!”

흰 늑대의 말에, 어린 자아가 번쩍 왼손을 들었다.

“/으아아아! 왼손도 발견했어!/”

“/우리 아들 너무 귀엽다아!/”

꺄아아악!

짜리몽땅한 두 팔을 번쩍 들고 흔드는 아기 서준에, 바닥으로 쓰러져 버린 서은혜와 이민준이었다. 물론,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 * *

“오늘은 하체를 살펴보자.”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이종족일 수도 있었지만, 상체는 인간형이지만 하체는 전혀 다른, 뱀이나 슬라임이나 말 같은 모습을 한 몬스터들일 수도 있었다.

“하체!”

“오른쪽 다리, 들 수 있겠어?”

“응!”

어린 자아가 오른쪽 다리를 번쩍 들었다. 살굿빛 손과 팔처럼 오동통한 인간 형태의 다리가 보였다.

“왼쪽 다리!”

똑똑한 어린 자아는 흰 늑대의 지시가 없어도 왼쪽 다리를 들어 보였다. 왼쪽 다리도 별다를 것 없이 오동통한 인간형의 다리였다.

“물갈퀴는 없는 것 같고…….”

흐음.

용인족이나 수인족처럼 꼬리가 달렸으려나.

“/헉! 서준이가 발을 발견했어!/”

“/귀여워 죽을 것 같아……!/”

아기가 조금만 움직여도 허둥지둥 소란스러운 이들은 내버려 두고.

흰 늑대가 입을 열었다.

“꼬리 볼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어!”

어린 자아가 짧은 두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늘로 높게 뻗은 두 발을 힘껏 잡았다.

‘나도 대장처럼 꼬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어린 자아는 힘차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둥글게 말아 엉덩이를 보려고 했으나, 아기의 몸이 아직 그 정도로 발달하진 않은 상태였다.

“……안 돼……힘드러…….”

지친 어린 자아가 털썩 쓰러졌다. 흰 늑대가 웃었다.

“그럼 다음에 하자.”

“응!”

그래도 현재의 모습을 대강 파악해서 그런지, 연녹색 구체이던 어린 자아는 마치 인간의 아기처럼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린 자아가 제법 성숙해졌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흰 늑대가 떠나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떠나지 않으면 ‘요리와 상업의 신 파르비타’가 ‘미식가 오크’에게 그랬던 것처럼, 본의 아니게 어린 자아에게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터였다.

‘그래도 본인이 어떤 종족인지, 어떤 생의 도서관을 선택해야 하는지까지는 알려주고 싶은데…….’

어느새 어린 자아까지 제 무리에 넣은, ‘가족 사랑, 무리 사랑’의 1인자, 대장늑대의 붉은 눈동자는 걱정과 염려로 가득했다.

그런 흰 늑대의 걱정은 전혀 모르는 엄마아빠는, 손을 뻗어 두 발을 잡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끙끙거리다가 잠이 든 귀여운 아들을 보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찍었어?/”

“/찍었어!/”

물론, 그 와중에도 동영상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봐봐. 서준아. 여기 서준이 친구 있네!/”

거울이다.

크고 선명한 거울을 보니 꽤나 과학이 발달한 곳인 것 같았다.

정 안 되면 연못이나 물웅덩이에 몸을 비춰볼 생각을 하고 있던 흰 늑대는 만족스러워하며 어린 자아와 함께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흰 늑대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벌이었나?”

“벌!”

거울에 비친, 바닥에 엎드린 ‘아기의 몸’의 모습은 분명 인간과 비슷했는데, 등 뒤에 노랗고 갈색의 꿀벌무늬와 흰색의 조그마한 날개가 보였다.

“/크흡. 좀 이르지만 꿀벌 쿠션 사길 잘했다!/”

“/너무 귀여워……!/”

언제나처럼 바닥을 치며 난리인 엄마아빠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은 한쪽 귀로 흘린 흰 늑대는 탄식했다.

“이런 종족은 처음 보지만…… 내가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넌 꿀벌이구나, 아가.”

“꿀벌!”

“나중에 나는 연습도 해야겠구나.”

하고 웃으며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거울에 비친 아기의 모습에 흰 늑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기의 얼굴만 빼꼼 나온 불가사리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꿀벌……이었잖아?

“나 달라졌어.”

어린 자아도 놀란 듯한 표정으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파닥파닥거렸다. 그러자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듯 거울 속의 불가사리도 뾰족한 네 다리(?)를 파닥거렸다.

“……불가사리였나 보다. 아가.”

“불가사리!”

어쩌면 꿀벌에서 불가사리로 변형하는 종족일지도 몰랐다.

그런 종족이 있나 싶지만…… 흰 늑대가 모든 세계의 몬스터들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파닥파닥하는 서준이 너무 귀여워!/”

“/우리 서준이한텐 안 어울리는 옷이 없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엔 천사 옷이야! 아들!/”

“/으아아아!! 고개 갸웃하는 서준이 너무 귀여워……!/”

거울에 비친 천사 날개와 새하얀 옷, 머리 위의 금색 링에 생각하길 포기한 흰 늑대였다.

* * *

“……옷이었구나.”

최대한 어린 자아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만 간섭했던 게, 흰 늑대가 착각하게 만들었다.

또 변명하자면, 저런 실용성이라고는 1도 없는 옷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흰 늑대였다. 숲 깊은 곳에는 사냥꾼이나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 같은 인간들만 오니까 말이다.

‘부모로 보이는 이들도 평범한 옷을 입고 있으니까.’

부모를 보면 어떤 종족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지만, 흰 늑대는 그 가능성은 일찌감치 삭제했다. 왜냐하면,

‘인간이잖나.’

인간.

인간이다.

무한한 환생을 겪으면서도 ‘그’가 단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었던 ‘인간’.

그래서 친부모가 아니거나, 폴리모프 등의 마법을 사용했거나 안드로이드 같은 보모형 기계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흰 늑대가 어린 자아를 바라보았다.

두 손과 두 발, 둥근 귀.

날개도 없고 꼬리도 없다. 물갈퀴도 비늘도 없다.

이제 확연하게 제 몸을 가진 자아는 누가 보아도 인간 그 자체였다.

“아가. 넌 인간이구나.”

“인간? 나 인간이야?”

어린 자아의 눈과 입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린 자아도 알고 있었다. ‘그’가 인간으로 태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래.”

흰 늑대의 확답에, 어린 자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느 도서관으로 가야 해?”

선의 도서관과 악의 도서관.

‘인간’은 어느 도서관으로 가야 하나.

앞으로의 생을 결정 지을 중요한 선택이었다.

흰 늑대는 어린 자아의 부모를 떠올렸다. 흰 늑대가 봐도 두 인간 모두 선해 보이며 아기를 사랑하는 것이 보였다.

“선의 도서관으로 가렴.”

“선의 도서관?”

큰 눈을 끔벅이는 어린 자아에, 흰늑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엘프의 기초호흡법도 익히고.”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 자아의 얼굴에 제 얼굴을 비볐다. 부드러운 흰색 털에 어린 자아가 꺄르르 웃었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렴. 네 무리의 안에 들어온 이들도.”

흰 늑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은 것을 어린 자아에게 전해주었다.

“그럼 너도 행복해질 거란다.”

가족과 무리가 있어서 행복했던 흰 늑대의 까만 코끝을, 짧은 두 팔로 껴안은 어린 자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가는 거야?”

“그래. 이제 가야지.”

흰늑대가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어린 자아의 얼굴을 비볐다. 어린 자아가 다시 한번 꺄르륵 웃었다.

“건강하게 지내렴.”

“응! 잘 가!”

그 시원스러운 인사를 마지막으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던 흰늑대의 몸이 밝게 빛났다. 그리고 마치 신기루처럼,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천천히 어린 자아의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흰 늑대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스며든 것이었다.

그렇게 어린 자아는,

“고마웠어, 대장.”

‘이서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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