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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95화 (79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95화

“내 짝이야. 대장!”

“짝?!”

붉은여우 피네의 말에, 피네가 또 뭘 주워왔나, 하고 태평하게 생각하며 잔디밭 위를 뒹굴거리던 샤벨타이거가 펄쩍 뛰었다.

“짝이라니?!”

정작 흐뭇하게 웃고 있던 대장늑대와 활짝 웃고 있던 피네가 짜게 식은 눈으로 샤벨타이거를 바라보았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가족도 아니고 네가? 하는 눈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피네의 짝, 붉은여우만이 홀로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아니, 기절했나?’

대장늑대는 웃으며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그에 짝여우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어여쁜 자신의 짝, 피네가 가족들을 소개한다길래, 양 앞발로 열심히 단장하고 쫄래쫄래 따라왔더니 거대한 흰 늑대와 샤벨타이거 그리고 많은 동물, 몬스터들이 한자리에 있었다.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지 않은 게 굉장한 일이었다.

그렇게 겁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온기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눈빛이 매우 따스했다. 피네가 얼마만큼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매우 흐뭇해 보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끄아악!”

용감하고 날렵한, 거기에 대장늑대에게 받은 능력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피네가 번개처럼 앞발로 바닥의 흙을 샤벨타이거 쪽으로 날렸고, 흙더미는 정확하게 샤벨타이거의 눈에 들어갔다. 몬스터도 피할 수 없었던 속도였다.

으아악! 나 죽네!

하고 소리치며 뒹구는 샤벨타이거.

대장늑대와 피네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애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제 독립하려고. 대장.”

“그래.”

이미 몇 번 겪었던 가족의 독립이지만, 붉은여우 피네는 대장늑대에게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처음으로 무리로, 가족으로 들인 녀석이었다. 아쉬움과 대견함이 뒤섞인 붉은 눈동자에, 피네가 씩씩하게 웃었다.

“자주 올게. 여기가 내 집이니까!”

“언제든지 오너라. 피네. 피네의 짝도.”

헤헤.

피네는 바짝 기합이 들어간 표정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는 짝과 함께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그사이, 동생 여우 하오가 샤벨타이거의 옆구리를 마구 쳤다. 파바바박!

“다른 가족이라면 몰라도, 아저씨가 무슨 자격으로!”

“맞아!”

피네까지 폴짝폴짝 뛰어가 악! 악! 소리를 지르고 있는 샤벨타이거를 자그마한 앞발로 때려댔다. 크기는 자그마한데 퍽! 퍽! 타격음이 대단했다.

“진짜 아파! 피네! 하오!”

“아프라고 때리는 거거든!”

아직 첫 만남 때의 원한을 잊지 않은 붉은여우 남매였다.

그렇게 피네가 대장늑대의 영역을 떠나고(독립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자주 찾아왔지만) 하오 또한 자신의 짝을 찾고. 두 남매 모두 저를 똑 닮은 붉은여우 새끼들을 낳았다.

“대장! 대장!”

“대장!”

엎드려 있는 대장늑대의 위를, 마치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오르는 듯 끙차끙차 올라가는(데굴데굴 굴러내려 오기도 했지만 꺄르륵 웃는 게 재미있어 보였다.) 새끼 붉은여우들.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던 샤벨타이거가 길다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대장늑대의 앞을 알짱거렸다.

그런 샤벨타이거가 눈에 들어온 새끼여우들이 목표물을 바꾸었다.

평상시에는 대장늑대가 하늘만큼 땅만큼 좋았지만, 놀 때만큼은 느긋하고 차분한 대장늑대보다 과격하게 놀아주는 샤벨타이거(그래서 엄마‘피네’한테 혼나지만)가 더 좋았다.

“샤벨 아저씨!”

“아저씨!”

데굴데굴 흰 설산에서 내려온 새끼여우들이 알록달록한 샤벨타이거의 털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으헤헤헤.”

한껏 풀어진 표정으로 웃는 샤벨타이거의 모습에, 대장늑대와 무리들이 웃고 말았다.

* * *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동물들의 시간은 짧다.

평범한 붉은여우들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대장늑대는 예전에 만들었던 어미여우의 무덤 옆, 그보다 작은 무덤 네 개를 바라보았다. 피네와 피네의 짝, 하오와 하오의 짝이 묻힌 곳이었다.

대장늑대는 무리의 가족들이 죽을 때마다, 독립한 녀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무집 근처에 표식을 만들었는데, 피네와 하오만큼은 꼭 여기에 묻어주고 싶었다.

대장늑대는 물고 온 꽃들을 놓고 무덤 앞에 잠시 앉아 입을 열었다.

“너희 자식들은 잘 지내고 있어.”

피네와 하오의 새끼들은 이제 장성해 제 짝들을 찾고 새끼들을 낳았고, 그 새끼들이 또 짝을 찾는다고 시끌벅적했다.

대장늑대의 영역이 아닌, 숲 바깥쪽 동물들이 사는 곳에서.

시간이 많이 흘러, 대장늑대의 영역에서 살기엔 이제 개체 수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찾아오는 것도 드물어지겠지.’

시간이란, 잊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도 새롭게 주워온(?) 가족들이 있으니 대장늑대의 무리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드증!”

봐라.

지금도 샤벨타이거가 새로운 녀석을 주워오지 않나.

근데 크기로 봐서는 좀 큰데, 먹이인가. 저녁거리는 되겠네……는 개뿔. 새빨간 눈동자를 번뜩인 대장늑대가 빛살같이 튀어 나가 샤벨타이거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대장이 늑대인데, 늑대를 잡아 오냐!?”

꾸에엑!

하고 입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던 회색늑대를 뱉어내는 샤벨타이거였다.

“잡아 온 거 아니야!”

눈동자가 그렁그렁한 샤벨타이거가 뒤통수를 감싸며 외쳤다.

“내 영역에서 헤매고 있길래 데려온 거라고! 뭐, 날 보자마자 도망쳐서 본능적으로 쫓긴 했지만……!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빙빙 돌긴 했지만……!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것뿐이야!”

어쩐지, 하늘에서 피네와 하오가 털을 바짝 세우고 컁컁! 거리고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샤벨타이거의 말대로 죽은 건 아니었던 모양인지 회색늑대는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대장늑대는 회색늑대의 눈을 보고 놀랐다. 노란 눈동자인 일반적인 회색늑대와는 달리,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대장늑대, 아니 자신과 같은 돌연변이였다.

쫓겨난 건가.

그렇다기엔 제법 큰 성체로, 무리에서 어릴 적 쫓겨나 고생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 자신처럼 특별한 힘을 갖고 있어서 일찌감치 독립한 건가?

대장늑대가 생각을 이어나가던 중, 샤벨타이거를 보고 놀라 도망치려던 회색늑대가 거대한 흰 늑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풍성한 회색 털이 가득한 꼬리를 빠르게 빙글빙글 돌려댔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붉은 눈동자도 순식간에 반짝반짝해졌다.

딱 봐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대장늑대와 샤벨타이거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안녕하세요! 흰 늑대님!”

게다가 태평하게 인사하는 모습은,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회색늑대의 모습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는 녀석이야, 대장?”

“……아니.”

샤벨타이거의 물음에, 대장늑대가 고개를 저었다. 그에 회색늑대가 대신 답했다.

“모르시는 것도 당연해요! 전 --무리의 늑대인 제크입니다!”

--.

……누나의 이름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을 들은 대장늑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님의?”

“네!”

‘누님? 대장한테 누님이 있었어?!’ 하고 경악하는 샤벨타이거를 뒤로한 채, 회색늑대 제크는 신나게 말을 이었다.

“저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시죠!”

“……그래.”

이렇게 들으니,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회색늑대 제크가 붉은 눈을 반짝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흰 늑대님이 --할머님이 독립하시기 전, 무리에서 있을 때부터 회색늑대들이 사는 영역을 지켜주셨다고요! 그리고 지금도 지켜주고 계시다고요!”

……어떻게 알았지?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회색늑대 영역으로 향하는 거대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대장늑대가 커다란 눈을 끔벅였다.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셨는데, 털이 흰색이라 다 보이셨대요!”

대장늑대의 의문을 알았는지, 제크가 신나게 대답했다.

오래전 잠이 들기 전이나 비가 와서 굴 밖으로 나가질 못할 때,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제크와 반대로,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대장늑대가 한숨을 삼켰다. 샤벨타이거가 뒤에서 낄낄 웃는 게 느껴졌다. 변명하자면, 그땐 사냥에 능숙하지 못했던 어렸던 시절이었다.

“다 보고 계셨구나…….”

대장늑대의 혼잣말에 제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가셨대요. 흰 늑대님일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대요! 흰 늑대님이 싸우실 때 엄청 멋있었고 또 도와주고 싶으셨는데 흰 늑대님이 꺼리실까 봐 못 가셨대요. -할아버님도요!”

-.

형의 이름이다.

형의 이름까지 들으니, 네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오래전 죽었을 부모님과 누나, 형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폭포수처럼 대장늑대에게로 쏟아졌다. 대장늑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님과 형님은 잘 지내셨다니?”

멀리 떨어진 수풀 속에서, 회색늑대 무리 속에서 함께하는 가족들이 흡족하면서도 저기에 자신도 있길 바랐다. 하지만 이질적인 자신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였는데…….

“네. 따로 독립하셔서 무리를 만들 정도로요! 지금도 저희 무리랑 -할아버님의 무리랑 엄청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

대장늑대가 미소를 지었다.

세 남매가 모두 한 무리의 대장이 되다니. 뿌듯한 일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자리를 옮길까? 이제 곧 해가 지기도 하고.”

“넵!”

대장늑대와 샤벨타이거, 회색늑대가 대장늑대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너 왜 내 영역에서 헤매고 있었냐? 내 영역이라서 다행이지, 다른 녀석 영역이었으면 뼈도 못 추릴 뻔했어.”

“아, 그게 원래는 흰 늑대님을 찾으려고 했는데, 어딘지를 몰라서…….”

샤벨타이거의 물음에 제크가 민망한 듯 이야기했다. 대장늑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

“네! 감사드리고 싶어서요!”

제크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눈동자가 다른 늑대들과 달리 붉은색이라서 다들 꺼렸는데, 할머니가 흰 늑대님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늑대님이 새하얀 털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고. 저도 언젠가 흰 늑대님처럼 강한 늑대가 될 거라고요!”

제크가 헤헤 웃었다.

“그 덕분에 무리에서 잘 지내고 있어서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대장처럼 강해지긴 힘들 텐데……’ 하고 말하며 초를 치는 샤벨타이거를 뒷발로 날려 버린 대장늑대가 새삼스러운 얼굴로 제크를 바라보았다.

분명 이질적이어야 하는, 무리에서 쫓겨나야 하는 붉은 눈의 늑대가, 무리 속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마치 대장늑대, 아니, 막내가 바랐던 것처럼.

“그건…….”

막내야! 우리 막내!

오랜 세월 속 잊었다고 생각한 가족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막내는 뻐근한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누님과 형님께 감사해야지.”

오래전부터 이야기라는 수단으로, 새하얀 털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늑대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누나와 형에게 말이다.

* * *

회색늑대 제크가 다녀간 이후, (안전을 위해 능력을 새겨주었다.) 한 번씩 회색늑대 무리들이 왔다 갔다.

“저희 할머니세요.”

“반갑습니다. 흰 늑대님.”

대장늑대는 누나를 닮은 할머니늑대와 그리움 가득한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자신을 보며 우와아아! 감탄하는 어린 늑대들의 눈빛도 한몸에 받으며 어색해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

기존의 가족들이 회색늑대들을 반기는 모습이 보였다. 샤벨타이거는 오래간만에 북적북적한 앞마당에 신난 듯 어린 늑대들과 뛰어다녔다. 근데 쟤 고양잇과 아니었나.

그렇게 자신의 무리와 회색늑대 무리가 뒤섞인 앞마당.

꿈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기한 기분이 든 대장늑대였다. 가슴 속이 한껏 따뜻해지고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어때, 막내야?’

‘누나랑 형이 최고지?’

……응. 최고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막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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