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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94화 (79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94화

컁! 캬앙!

들려오는 울음소리들에 흰 늑대는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흰 늑대의 나무집 앞.

숨어들어오는 적들을 경계하기 편하도록, 근처 나무를 모조리 부숴 넓은 잔디밭으로 만들어놓은 앞마당에서, 붉은여우 새끼 두 마리가 한데 뭉쳐 붉은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따스한 햇볕. 푹신한 잔디밭.

새끼들이라면 신나게 놀 수밖에 없는 곳이긴 했지만, 저 작은 붉은여우 두 마리 때문에 조용하던 흰 늑대의 하루는 시끄러워졌다.

그렇다고 같이 살게 된 것은 아니고.

그래도 남의 굴에 함부로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사실은 배웠는지, 새끼 여우들은 흰 늑대의 집(나무구멍) 옆에 자그마한 굴을 파서 거기서 살고 있었다.

꺄르륵-

자기들끼리 놀고 있던 새끼 여우들을 보던 흰 늑대가 붉은 눈을 깜빡이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동생 하오와 놀고 있던 누나, 피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밥 먹으러 가?!”

“밥!”

누나의 아래에서 컁컁! 웃으며 네 발을 하늘로 높이 들고 바동거리고 있던 하오도 벌떡 일어났다.

……눈치도 빠르지.

흥, 하고 콧바람을 내쉰 흰 늑대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새끼 여우 두 마리가 쫓았다.

“아저씨. 오늘은 뭐 먹을 거야?”

“멧돼지! 멧돼지 먹자!”

“난 사슴이 좋아!”

“사슴도 좋아!”

이 녀석들.

흰 늑대는 자신의 발밑에서 열심히 걸으며 신나게 떠드는 새끼 여우들을 내려다보았다. 사냥하는 건 자신인데, 자기들이 사냥감을 고르고 있었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먹잇감을 사냥하려고 했던 흰 늑대는 한숨을 쉬며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슴 모습을 한 몬스터들의 서식지였다.

그렇게 이동하길 한참.

두 새끼 여우가 지칠 때쯤, 흰 늑대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시선을 고정하며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였다. 이름 모를, 사슴을 닮은 몬스터에게 자신의 냄새가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에 피네와 하오도 기척을 죽이고 흰 늑대를 따라 움직였다.

거대한 흰 늑대와 달리, 시야가 낮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흰 늑대가 사냥감을 발견한 것을 며칠간의 경험으로 안 것이었다.

그렇게 바람과 마주하는 곳에 자리를 잡은 흰 늑대가 새하얗고 거대한 몸을 낮추었다.

그에 두 새끼 여우도 작은 몸을 바짝 땅에 붙였다. 숨도 쉬지 않았다.

기척을 죽이는 새끼 여우들에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은 흰 늑대는, 다시 표정을 굳히고 앞을 바라보았다. 사냥감이 풀을 뜯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정석적으로 사냥하지 않고 그냥 한 방에 처리했을 텐데.

흰 늑대는 며칠 사이 변한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흰 늑대가 바람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흰 늑대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사슴형 몬스터가 놀라 발버둥 쳤지만, 어찌할 틈도 없이 기다란 몬스터의 목은 단번에 날카로운 송곳니에 꿰뚫렸다.

“와아아아!!”

일격으로 끝내버린 사냥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던 새끼 여우들이 펄쩍펄쩍 뛰며 튀어나왔다.

“아저씨 멋져!”

“멋져! 대단해!”

이 구역의 지배자인 거대한 흰 늑대에게 이런 사냥감은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칭찬을 들어도 기쁘지 않다.

……고 생각하는 흰 늑대와는 달리, 그의 새하얗고 풍성한 꼬리는 살랑살랑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흰 늑대의 옆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은 (첫날에는 눈치를 보더니, 지금은 그런 것도 없이 정신없이 먹기 바빴다.) 새끼 여우들은 다시 햇살이 비치는 흰 늑대의 앞마당으로 와 뒹굴뒹굴거리며 놀기 시작했다.

참.

태평한 녀석들이다.

컁컁!

소리를 들으며 흰 늑대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도 모른 채.

* * *

일이 터진 건.

그로부터 이틀 후.

인간이든 동물이든 몬스터든, 새끼에게서는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흰 늑대는 알지 못했다.

-.

바람계의 능력을 주로 얻고 사용해서 그런가.

이제는 거의 바람과 한 몸이 된 듯한 흰 늑대에게 그 작은 소리가 들린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낮잠을 자고 있던(정확히는 생의 도서관에서 삶의 책을 읽고 있던) 흰 늑대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건 익숙한 소리였다. 새끼 여우들의 울음소리.

“……자고 있을 텐데?”

흰 늑대는 느긋한 걸음으로 나무 굴을 나와, 제 앞발이 들어갈 정도로 작은 땅굴을 바라보았다. 새끼 여우들이 없었다. 조금 굳은 얼굴로 잔디밭이 펼쳐진 앞마당을 바라보았다. 나무와 바위는 모조리 부숴 숨을 곳도 없는데 붉은여우 새끼 두 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

또 한 번.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지워질 것만 같은 연약한 소리.

흰 늑대가 귀를 바짝 세웠다.

붉은 눈동자가 불타오르듯 빛났다.

네 다리와 몸의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흰 늑대는 달리기 시작했다.

새끼 여우들의 소리가 들린 쪽으로.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새끼 여우들이 눈에 안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다 죽어가는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온몸의 힘을 짜내서 달리고 있는 자신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다른 몬스터의 영역으로 향하는 자신이, 흰 늑대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석들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땅을 박차는 흰 늑대의 다리에는 바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딱딱한 땅에 깊게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씨!

아저씨이!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자신의 부르는 울음소리가.

살려줘어!

으아앙! 먹지 마아!

하오의 목소리에 첫 만남이 생각나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돼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잔디밭으로 꾸며진(?) 흰 늑대의 집 앞과 달리,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응?”

그 나무들 중 가장 큰 나무 위에서 커다란 앞발로 작은 새끼 여우들을 공 굴리듯이 굴리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길쭉한 송곳니 두 개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이 영역의 지배자 샤벨타이거였다.

서로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았던 터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두 지배자였다.

샤벨타이거도 흰 늑대를 알아차렸다.

녹색이 가득한 곳에서 저렇게 새하얀 털을 무시하긴 쉽지 않긴 했다.

고양잇과라서 그런지, 샤벨타이거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오? 내 영역에는 무슨 일…….”

“아저씨이!”

“으아아앙!!”

어디서봐도 눈에 띄는 흰색 털.

그 익숙한 털에 이미 울고 있던 하오는 물론이고, 꾸역꾸역 참고 있던 피네까지 안심이 된 듯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에 샤벨타이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흰 늑대와 새끼 여우들을 번갈아 보았다.

“아하, 얘들 네 거야? 비상식량? 인간들처럼 키우는 거야? 얘네는 키워봤자 한 입 거리도 안 될 것 같은데?”

!!

충격받은 새끼 여우들이 ‘아니야아아!’ 하고 울며 샤벨타이거의 두 앞발을 깨물어댔다. 아까까지만 해도 벌벌 떨던 놈들이 흰 늑대가 나타났다고 공격하는 꼴이 웃겼다. 뭐, 이빨은 나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한 마리는 나 줄래? 맛있어 보여.”

“!으아앙! 아저씨이!”

아가들아.

너희 아저씨는 너희들한테 관심 없단다.

옆 영역에 지내다 보니, 한 번도 만나지는 않았지만 흰 늑대의 성격은 대강 알고 있는 샤벨타이거였다. 영역 구분이 확실하고, 먹잇감 이외에는 사냥하지 않으며 다른 것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뭐,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이 새끼 여우들은 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곳은 샤벨타이거의 영역.

제 발로 넘어온 새끼 여우 한 마리 쯤이야 그냥 줄 게 분명했다.

‘딱히 새끼 여우한텐 관심 없지만.’

너무 작아서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으니, 뭐, 좀 가지고 놀다가 풀어줘야…….

!!

내리꽂는 살기에, 낄낄거리며 생각을 이어나가던 샤벨타이거가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뒤를 이어 콰아앙!! 커다란 소리가 났다.

산산조각이 나는 나무기둥 사이로 새하얀 털과 살벌한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샤벨타이거가 인식하기도 전에 흰 늑대의 거대한 앞발이 나무에 내리꽂아진 것이었다.

‘……미친……!’

몸에 쌓인 오랜 경험이 아니었다면 샤벨타이거는 저 앞발에 나무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을 거다.

“아저씨!”

“다친 곳은?”

“없어!”

“괜찮아!”

마치 코알라처럼 흰 늑대의 등에 딱 달라붙어 있는 붉은여우 새끼 두 마리가 보였다. 그런 어마무시한 공격을 하면서도 잘도 새끼 여우들을 구한 흰 늑대였다.

그런 흰 늑대가 조금 떨어진 나무 아래에 새끼 여우들을 조심히 내려놓고는 말했다.

“잠깐만 여기 있어라.”

……어? 잠깐만……?

샤벨타이거가 꼴깍 침을 삼켰다. 비상한 머리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응! 여기 꼭 붙어 있을게!”

“혼내줘! 아저씨!”

잠깐, 잠깐만요?

공격 한 번으로 흰 늑대와 자신의 차이를 알아버린 샤벨타이거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

흰 늑대가 몸을 돌렸다.

“아주 혼쭐을 내주마.”

“!장난, 장난이었어!”

숲을 모두 불태워 버릴 것만 같은 붉은 눈동자에, 샤벨타이거가 펄쩍 뛰며 외쳤다.

진짜! 맹세코! 장난이었다!

“잠깐 가지고 놀다가 풀어줄 생각이었……! 살려줘어!!”

쾅! 콰아앙! 콰아아앙!

끄아악!!

“사, 살려주세요! 형니임!!”

안전한 나무 아래.

붉은여우 피네와 하오는 꺄르륵 웃으며 흰 늑대의 일방적인 싸움을 즐겁게 구경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샤벨타이거(살아 있다.)의 영역에서 흰 늑대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길.

“왜 영역을 넘어간 거냐?”

지친 새끼 여우들을 등 뒤에 올려 걷고 있던 흰 늑대가 물었다.

“……아저씨 이름이 궁금해서.”

“저 아저씨는 알까 봐…….”

세상의 무서움을 안 새끼 여우들이 낑낑거리며 대답했다. 옆집 몬스터도, 흰 늑대 아저씨처럼 착할 줄 알았다.

그에 흰 늑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등에 올라간 새끼 여우들의 몸이 움츠려지는 게 느껴졌다.

“이름은 없다.”

회색늑대가 되는 날.

부모님이 지어주기로 했는데, 그런 날이 오지 않았다.

“그냥…….”

흰 늑대는 오래전 새끼였을 때를 떠올렸다. 친구들과 노는 누나와 형. 자신도 그 안에 있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회색늑대 무리 속에.

“대장이라고 불러라.”

“대장!”

“대장!!”

새끼 여우들이 신나게 ‘대장! 대장!’ 노래를 불러댔다.

자각하지 못한 외로움을 홀로 견디며 지내던 흰 늑대가 자신만의 무리를, 가족을 갖게 된 날이었다.

* * *

“대장. 나 왔어!”

“네놈까지 대장이라고 부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흰 늑대, 아니, 대장늑대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에이. 바로 옆에 사는데 올 수도 있지!”

샤벨타이거가 웃으며 잔디밭 위를 데굴 굴렀다. 넉살도 좋다. 대장늑대가 무섭지도 않은지, 한바탕 얻어맞은 이후로 자주 대장늑대의 영역으로 놀러 오는 샤벨타이거였다.

“진짜 여기 잔디밭이 너무 좋아.”

갸르릉.

턱을 울리던 샤벨타이거가 잔디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슬라임을 보며 물었다.

“근데 저 파란 슬라임은 뭐야?”

“잔디 깎기 겸 스프링클러 겸 로봇청소기.”

“……뭐?”

“산성액으로 잔디를 녹이고 알아서 물 주는 슬라임이라고.”

“오. 역시 대장. 똑똑해.”

‘삶의 책’ 덕분이다.

흥. 하고 콧바람을 내쉰 대장늑대가 앞마당을 둘러보았다.

혼자 지냈던 때보다 앞마당은 훨씬 넓어져 있었다. 동물이나 몬스터들도 많았다.

피네가 주워온 알에서 태어난 불새, 하오가 주워온 날개 다친 그리핀, 불새가 주워온 어딘가 바보 같은 강철뱀, 그리핀이 주워온…….

대장늑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대장! 대장!”

“……그래. 또 뭘 주워왔어?”

대장늑대가 몸을 일으켰다.

가족으로, 무리로 맞이하게 되면, 보호하기 위해 능력들을 사용하는 대장늑대였다.

피네도, 하오도, 불새도, 그리핀도, 강철뱀도……샤벨타이거도. 모두 안전을 위한 이런저런 능력들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게 아니라! 샤벨 아저씨가 옛날에 오우거를 만난 적 있대요!”

그리핀이 다 나은 날개를 파닥이며 신나게 말했다.

“……오우거?”

“에헴! 내 영역에 들어온 걸 쫓아냈지! 이렇게! 앞발로 공격해서 눈알 하나도…… 악! 왜 때려 대장!?”

너였냐!?!

대장늑대, 아니, 막내가 그날의 울분을 담아 샤벨타이거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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