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92화 (79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92화

마법과 몬스터가 존재하는 세계.

거대한 대륙의 중앙에는 드래곤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

그 거대한 산맥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들.

드래곤산맥과 가까이에 있는 크고 깊은 산맥들에는 크고 위험한 몬스터들이 각자의 영역을 차지해서 살고 있었고, 그보다 작은 산들에는 작은 몬스터들과 강한 동물들이 섞여 살고 있었으며, 인간들이 사는 마을과 가까운 숲에는 작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숲 깊이 들어가지 마라!/”

“/네에!/”

그렇게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경고하는 세계였다.

그런 위험천만한 세계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는 법.

여기 깊은 산속, 작은 몬스터들쯤은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회색늑대 무리에서도 새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잘 마른 풀들로 푹신하게 만들어진 산실.

그 앞을 아빠늑대가 이리저리 초조한 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같은 무리의 늑대들이 낄낄거리고 웃으며 초보 아빠늑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앉아 있어. 정신 사납다.”

“넵!”

대장늑대의 말에 진정한 듯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았으나, 짙은 회색 털로 풍성한 꼬리는 어찌할 줄 모르고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늑대 부부들의 새끼들은 며칠 전 태어났고, 아빠늑대의 아내만이 아직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안에서 끼웅- 하고 새끼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늑대는 벌떡 일어나 당장에라도 산실로 뛰어들어 갈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제 들어가도 됩니까?!”

“……기다려 봐.”

산실 안에서 대장늑대의 아내가 엄마늑대와 함께 있었다. 첫 출산인 만큼 마음의 안정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갓 태어난 새끼늑대들의 첫 숨이 터지면 곧바로 나와 몇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는지, 엄마늑대는 건강한지 알려줬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대장늑대는 한숨을 삼켰다.

뭔가 잘못된 듯하다.

‘……죽었나?’

죽은 새끼가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었다.

다른 늑대들도 상황을 파악한 듯 낄낄 웃던 것을 멈추고, 그저 기쁜 얼굴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네 발을 동동 굴리는 초보 아빠늑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게 자연이었고, 이들의 삶이었다.

잠시 후, 대장늑대의 아내가 산실에서 나왔다. 새끼가 죽어서 슬픈 표정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고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들어가 봐도 됩니까!?”

“……그래.”

대답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아빠늑대가 얼른 산실로 들어갔다.

대장늑대가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아내에게 대답을 듣기도 전에, 산실에서 아빠늑대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대장!”

노란빛이 도는 두 눈이 왕방울만 해져 있었다.

“새끼가 하얗습니다?!”

대장늑대는 물론이고, 다른 늑대들의 눈도 크게 떠졌다.

* * *

첫째. 암컷, 회색.

둘째. 수컷, 회색.

막내. 수컷, 흰색……?

끼웅- 끼웅-

거리며 엄마늑대 품속에서 꿈틀꿈틀거리는, 눈도 못 뜬 세 마리의 새끼늑대들을 본 늑대무리는 회의를 시작했다. 짜리몽땅하고 통통한 몸을 꿈틀거리고 있는 새끼들을 헤벌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아빠늑대도 산실에서 끌려 나왔다.

“검정은 드물게 태어났지만, 흰색은 처음인데?”

“어디 아픈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심각한 어른 늑대들의 이야기에, 내 새끼들 예쁘기도 하지! 하고 팔불출처럼 웃고 있던 아빠늑대가 정신을 차렸다.

“막내가 어디 아픈 겁니까!?”

“몰라. 우리도 저런 녀석은 처음이니까.”

“병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옮기라도 하면…….”

제법 지능이 있더라도, 동물은 동물.

아니, 지구에서도 ‘알비노’에 대해 몰랐을 때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더랬다.

“게다가 털이 흰색이라면 너무 눈에 띄어.”

“맞아. 우리 구역이라고 하지만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그럼 다른 늑대들까지 위험해져.”

“게다가 제대로 몸을 숨기지 못하면 사냥도 못 하잖아.”

새로운 가족들이 태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늑대무리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 침묵 속에 담긴 뜻을 알아챈 아빠늑대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얼른 말했다.

“갓 태어난 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자라다 보면 털 색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병이라면 어떻게 해?”

그에 아빠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안 쓰던 머리를 팽팽 굴린 아빠늑대가 간절한 눈빛으로 대장늑대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 그럼 대장이 안전하다고 판단 내릴 때까지 저희 가족만 조금 떨어져 따라서 가겠습니다. 막내가! 저희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 다시 무리에 합류하게 해주십시오!”

말 없는 대장 늑대의 모습에 아빠늑대가 얼른 덧붙였다.

“그때쯤이면 털 색도 회색으로 변할 겁니다!”

대장늑대는 생각에 잠겼다.

길어지는 침묵에 다른 늑대들도 조용해졌다. 대장늑대라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빠늑대의 새끼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대장늑대에겐 무리도 중요했다.

그때, 대장늑대의 아내가 꼬리로 대장늑대의 뒷발을 감쌌다.

“……좋다. 겨울이 올 때까지만이다.”

“예! 대장!”

아빠늑대가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 막내는 건강하고, 멋진 회색늑대다.

분명 먹이가 줄어들어 적들이 늘어나는 겨울 전까지는 훌륭한 회색늑대로 변할 터였다.

* * *

“막내 공격!”

“으와왕!”

민들레 홀씨처럼 부들부들한 회색 솜털로 뒤덮인 아기늑대 두 마리가, 구름처럼 몽실몽실한 새하얀 털을 가진 아기늑대에게로 달려들었다.

“끄아앙!”

웃음소리 같은 비명이 누나와 형에게 눌려 납작한 콩떡처럼 되어버린 새하얀 아기늑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에도 누나와 형은 꺄르르 웃으며 부드러운 막내의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막내 힘들겠다.”

그에 엄마늑대와 아빠늑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새끼 때를 지나, 이제는 제법 혼자 걸을 수 있게 된 세 마리 아기늑대들이, 저들도 늑대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사냥놀이를 하며 풀숲을 뛰어다녔다.

“이번엔 내 차례야!”

“도망쳐!”

“잡아봐!”

새하얀 털의 막내가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도망치는 누나와 형을 쫓았다.

어디 한 곳 아픈 곳도 없고, 오히려 그 누구보다 건강하지만 그런 막내를 보는 늑대부부의 노란색 눈동자에는 수심이 깃들어 있었다.

새하얀 털과 새빨간 눈동자.

막내가 눈을 뜬 후, 늑대가족과 무리와의 거리는 좀 더 멀어졌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도, 막내의 털은 여전히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얬다.

막내에 대한 차별도 눈에 훤히 보였다.

“--! -! 같이 놀자!”

멀리서 부르는 친구들의 울음소리에 막내와 놀던 누나와 형이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그에 막내가 웃으며 뚱땅뚱땅 엄마아빠의 곁으로 와 몸을 치댔다.

“누나랑 형은 가서 놀아! 난 엄마 아빠랑 놀 거야!”

“……응!”

“그래!”

아직 어린 누나와 형은 막내의 배려도 알지 못하고, 무리의 친구들과 놀러 신나게 앞쪽으로 달려갔다.

착한 우리 막내.

똑똑한 우리 막내.

어쩌면 빨리 죽을지 몰라서.

털이 회색으로 변할 그 날만을 기다리며.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우리 막내.

……겨울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 아빠는 걱정을 밀어두고 에헤헤 웃으며 엄마 아빠의 살랑살랑거리는 꼬리를 쫓아다니며 깨물려고 하는 새하얀 막내를 소중히 핥아주었다.

* * *

비가 오는 날이었다.

회색 늑대무리는 이동을 멈추고 비를 막을 수 있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서 무리의 새끼늑대들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우리는 왜 다른 가족들이랑 같이 안 가?”

조금 떨어진 나무구멍에 자리를 잡은 늑대가족.

형의 물음에 눈치 빠른 누나가 앞발을 휘둘러 형의 콧잔등을 내려쳤다. 악! 하고 두 앞발로 코를 감싸는 형.

“왜 때려!”

“입 다물고 있어.”

으르렁거리는 누나에 형이 입을 다물었다. 엄마 아빠가 쓰게 웃으며 누나! 나빠! 하고 끼잉, 우는 형을 달래주었다.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며, 막내는 아무 말 없이 두 앞발 위에 턱을 올려두고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똑똑한 막내는 ‘생의 도서관’의 책들과 늑대무리 어른들의 눈빛을 통해, 그 원인이 자신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히잉-’

막내의 새빨간 눈동자가 데굴 굴러 두 앞발로 향했다. 습기에 젖어 조금 축축한 새하얀 털. 앞발을 뒤집어보았다. 분홍빛이 도는 말랑말랑한 발바닥. 막내의 꼬리와 두 귀가 더욱더 아래로 내려왔다.

안타깝게도 매일같이 열심히 삶의 책을 읽고 있지만, 털 색과 눈 색을 바꿀 만한 능력은 없었다.

얼른 평범한 회색늑대가 되어서 가족과 함께 무리에 합류하고 싶었다.

그럼 누나랑 형이 엄청 좋아하겠지!

엄마랑 아빠도!

상상만 해도 신이 났는지, 제멋대로 새하얀 꼬리가 위아래로 살랑살랑거리며 움직였다. 눈앞에 움직이는 것이 있으니 늑대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막내는 사냥을 할 것처럼 새하얀 것을 주시했다. 자신의 꼬리인 건 알지만, 잡고 싶었다!

엄마 아빠한테 배운 대로 바짝 몸을 낮추던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막내의 새빨간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 아빠! 이것 봐!”

밤사이 비가 멈췄는지, 빗소리 대신 막내의 활기찬 목소리가 늑대 부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발랄한 막내의 목소리에 저절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막내가 검정늑대가 됐어!”

“우와아! 우리 막내 멋지다!”

부부보다 먼저 깨어난 누나와 형의 목소리에 늑대 부부가 뭐!? 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의 풍경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헤헤헤-”

축축한 진흙을 온몸에 바른 막내가 꼬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꼬리와 다리, 배와 등, 양쪽 귀와 머리, 주둥이까지. 얼마나 부지런히 진흙탕 속에서 뒹굴었는지 ‘흰색’의 ‘ㅎ’도 보이지 않았다.

후둑- 후두둑-

게다가 꼬리를 흔들 때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축축한 진흙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엣취-!”

새벽부터 차가운 진흙탕을 굴러서 추운지 재채기를 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털려다가 진흙이 떨어져 나갈까 봐 참는 막내의 모습에 늑대 부부는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진흙 범벅이 된 막내의 뒷덜미를 물고 물가로 향했다.

“씻으렴.”

“히잉-. 나 이제 회색늑대 됐는데…….”

말없이 엄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아빠에 막내는 주둥이를 삐죽거리며 물속으로 들어가 진흙을 털어냈다.

물과 함께 진흙들과 흙탕물이 씻겨 내려갔다.

그리고 언제 새까맸냐는 듯, 축축하게 젖은 흰색 아기늑대가 다시 나타났다.

꼬리를 말고 축 처진 막내의 뒷덜미를 물고 다시 나무구멍으로 데려온 늑대부부가 막내의 털이 빨리 마르도록 핥아주었다. 누나와 형도 어설픈 솜씨로 도와주었다.

“역시 막내는 흰색이 예뻐!”

“검은색도 멋졌지만!!”

히히히!

사랑과 애정을 가득 담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핥아주는 가족들에 막내는 기분 좋게 웃으며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자 누나와 형도 언제 의젓하게 핥아줬냐는 듯 막내와 함께 뒹굴뒹굴 굴러다녔다.

* * *

좀 더 시간이 흘러.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었다.

“이제 결정할 때다.”

대장늑대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엄마 아빠가 누나, 형과 노는 막내를 바라보았다.

아픈 곳 없이 잘 자란 막내지만, 역시 숲에서 흰색은 너무나도 눈에 띄는 색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회색늑대인 누나와 형도 생각해야 했다.

선택지는 둘.

현재의 무리와 떨어져 새 무리를 만들거나, 막내를 홀로…….

늑대부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아우우우-!!!

정찰 나갔던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에 대장늑대가 외쳤다.

“모두 도망쳐!!”

어린 늑대가 있는 가족도, 없는 가족도 그 외침에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무리와 떨어진 곳에 있던 세 남매와 늑대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늑대들이 도망침과 동시에, 산새들이 파드득거리며 떼를 지어 하늘로 날아갔다. 나무 위에 있던 다람쥐도, 다른 작은 동물들과 작은 몬스터들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막내는 엄마 아빠한테 배워 알고 있었다.

저 울음소리는, 늑대 무리로는 상대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적이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어떤 몬스터길래?

막내와 형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아빠늑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앞만 보고 달려!”

그에 막내와 형은 깨갱! 소리도 내지 못하고 열심히 달렸다.

그때, 숲 전체를 울리는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와아아아!!

몸을 떨게 하는 그 커다란 소리에 반사적으로 늑대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모두 노란 눈을 부릅떴다.

여기에 나타날 리가 없는 대형 몬스터, 오우거였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