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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91화 (79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91화

안다호의 계략(?) 덕분에 간발의 차로 서준에게 선택받게 되었지만, 아직은 알지 못하는 [뉴 이클립스]의 제작사 ‘뉴 에이지’는 배우 서준 리에게 캐스팅 제안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에게 섭외 연락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캐스팅팀 사무실은 그렇게 열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두 어딘가 기운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아-”

뉴 에이지의 캐스팅팀 직원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충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저,

“대답이 없어…….”

배우들이나 에이전시에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을 뿐이었다.

마치 꽉 막힌 벽을 향해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해는 가지만…….”

캐스팅 팀원 중 누군가의 혼잣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렬하게 망한 [이클립스]가 개봉한 것이 불과 4년 전.

10년, 아니, 5년도 넘지 않아 그 처참했던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 한데, 어떤 배우가 리메이크되는 영화에 참여하려고 할까.

‘너무 처참히 망해서, 본 관객들이 별로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아니,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클립스는 언제 영화화 한대? 클라우드는 했잖아.

=……했어.(이클립스 영화 정보 링크)

=아……

그저 배우 쪽에서 답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캐스팅팀 직원은 [이클립스]에 대한 인터넷 반응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흐흐흐 웃고 말았다. 홍보팀도 고생하겠다 생각하며.

물론, 자신들도 지금 남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럴까 봐 일부러 대본부터 완성했는데 말이지…….”

캐스팅팀 팀장이 한숨처럼 말했다.

참혹한 기록을 남긴 [망클립스]가 [뉴 이클립스]를 제작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칠 거라는 것은 제작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원작자 로라 웰튼과 감독 윌마 에반스, 각본가까지 머리를 한데 모아 끙끙 앓으며 [뉴 이클립스]의 대본부터 완성한 것이었다.

자!

대본을 보시면 저번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하고 주장하며 배우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제는,

“대본도 안 읽는다는 거지…….”

“그러니까요.”

캐스팅팀 직원들의 머리 위로, 뭉게뭉게 에이전시 사무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팀장님. 뉴 에이지에서 대본 들어왔어요.’

‘뉴 에이지? 어떤 작품인데?’

‘이클립스 리메이크라는데요?’

‘버려. 파쇄기로 갈아서 버려.’

상상 속 에이전시 팀장의 태도가 너무나도 단호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근데 이게 상상 속 일만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지.’

[이클립스] 리메이크화 소식을 들은 관계자들마다 ‘아니, 하필이면 그걸 왜??’ 하고 되묻던 기억이 떠오른 캐스팅팀 팀장은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대본을 읽어보면 저번 영화랑 다르다는 걸 알 텐데 말이죠.”

“저도 봤는데, 원작 소설이랑 크게 차이 안 나면서도, 영화라는 특색을 잘 살리신 것 같았습니다.”

배우들과 에이전시를 열심히 설득해야 하는 캐스팅팀으로서, 뉴 에이지 관계자 중 [뉴 이클립스]의 대본을 가장 먼저, 가장 열심히 읽어본 직원들이었다. 그래서 각본이 얼마나 훌륭하게 나왔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다.

진짜 재미있는데! 진짜 좋은데! 이건 정말로 흥행할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만 알면 뭐하나.

상대방이 전혀 읽어볼 생각도 안 하는데.

정말이지, 캐릭터에 어울리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고심해 목록을 적어준 감독님과 원작자님, 각본가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몇 번째까지 내려갈까요?”

섭외 1순위부터 10순위까지 적혀있는 배우들의 목록을 보며 직원 하나가 말했다.

‘거기에나 있으면 다행이지.’

팀장은 말을 삼켰다. 어쩌면 오디션을 봐야 할지도 몰랐다.

“리가 한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여전히 답변 없는 메일과 전화를 기다리며, 혼잣말하듯 말하는 다른 직원에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주인공 캐스팅 1순위, 배우 서준 리.

서준 리를 떠올린 캐스팅팀 직원들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연기는 할 것도 없고.”

“작품에 진심이라서 감독님을 열심히 갈아, 아니, 도와줄 테고.”

“듣기로는 성격도 좋아서, 다른 배우들과도 케미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촬영 현장 분위기도 좋대요.”

“리의 팬들만 봐도 흥행은 보장이잖습니까. 한국 팬들로만 한정해도 말이죠.”

“거기에 작품 보는 눈도 좋지.”

팀장이 덧붙였다.

“지금까지 출연한 한국, 미국 영화 중에 흥행 안 된 게 없잖아.”

서준 리가 선택한다면 [뉴 이클립스] 그 자체로도 좋은 작품이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이런 배우가 다른 좋은 작품들을 두고 [뉴 이클립스]에 출연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본이나 펼쳐 봤으면 좋겠다.

원작자 로라 웰튼의 동생, 그레이스 웰튼과 서준 리의 친분을 모르는 캐스팅팀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리만 캐스팅되면 다른 배우들도 쉽게 캐스팅될 것 같은데 말이죠.”

“홍보도 필요 없고요.”

서준 리가 출연한다고?

그 한마디에 세상이 떠들썩해질 거다.

지금 묵묵부답인 배우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출연하겠다고 연락할 테고, 남은 배역이 없나 기웃거리는 관계자들도 있을 터였다. 투자사들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스타 중의 스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배우 서준 리였다.

“……안 되겠지?”

“네. 안 될 것 같아요.”

모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데 다음 날.

뉴 에이지 캐스팅팀에 메일이 와 있었다. 캐스팅 제안을 뿌린 후 도착한 첫 답변이었다.

“어? 어어? 어어어!?!”

배우 서준 리의 출연 확답이었다.

* * *

브라운블랙의 막내, 최시윤의 집.

오랜만에 브라운블랙 형들과 놀게 된 서준이 주사위를 던졌다.

“왜! 다들 내 땅은 안 밟는 건데!!”

또 자신의 땅은 그냥 지나가는 모습에 황예준이 으흐흑 울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랜드마크까지 지었는데 그 누구도 자신의 땅들을 밟지 않았다.

그런 황예준의 모습에 서준과 박서진, 케빈 킴, 최시윤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예준이 형. 통행료 주세요.”

“그리고 왜 나만 걸리는 거냐고……!”

이러다 파산하겠다!

하고 외치는 황예준을 뒤로 하고 서준과 브블 세 명은 정답게 주사위를 굴렸다.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형들.”

“그래.”

서준은 거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귀에서 멀찍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할 거야!? 진짜 출연할 거야아!? 준!?/

친구, 그레이스 웰튼이었다.

‘지금 뉴욕이 몇 시더라.’

아마 새벽일 텐데, 들려오는 그레이스의 목소리는 마치 오후의 그것처럼 아주 생생하고 활기가 넘쳤다.

너무 힘이 넘쳐서 그런지, 주사위를 굴리고 있던 브라운블랙들까지 목을 쭉 빼고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의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서준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꿈틀거리는 입술만 봐도 서준을 놀리고 싶어 하는 게 보였다.

-/잘못 보낸 거 아니래?/

-/잘못 보낸 거 아니야!?/

옆에 로라 웰튼도 있는 것 같았다.

“/잘못 보낸 거 아니야. 대본 재미있었어요, 로라. 정말 출연하고 싶을 정도로요./”

-/와아아악!!/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에, 서준은 한 번 더 멀찍이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 귀는 좀 아프지만 그레이스와 로라가 기뻐하는 걸 보니 서준도 미소가 지어졌다.

“/계약서는 아마 며칠 내로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들고 뉴 에이지로 갈 거야./”

이 정도 말하는 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레이스가 함부로 퍼뜨릴 친구도 아니고.

-/와. 진짜 계약하는 거구나……./

-/으아아! 미국에 오면 맛있는 거 사 줄게! 준!/

-/언니가 너 오면 맛있는 거 사 준대!/

“/하하. 그래./”

목소리만으로도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게 느껴져 서준은 웃고 말았다.

“/그럼 이만 쉬어. 뉴욕 지금 새벽이잖아. 응. 그래./”

그렇게 그레이스와의 통화를 끝내고,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으흐흐 웃고 있는 브라운블랙과 눈을 마주쳤다.

“여자친구?”

“여자친구야?”

“우리 서준이에게 여자친구라니!”

“그레이스요. 그레이스.”

“에이. 여자사람친구가 여자친구가 되기도 하는 거지이~”

황예준의 말에, 박서진과 케빈 킴, 최시윤이 웃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형들. 저 갈게요. 재미있었어요.”

“안돼! 가지 마!”

“가지 마아!!”

황예준과 케빈 킴은 몸을 바닥으로 던져 서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고,

“오랜만에 모였는데!”

“서준아. 오렌지주스 먹을래? 수제야.”

최시윤은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박서진은 먹을 걸로 유혹했다.

참…… 다들 나이를 어디로 잡수셨는지.

형들인지, 친구들인지 모르겠다.

서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자리에 앉자, 서준의 바지를 붙잡고 있던 황예준과 케빈 킴이 ‘안 갈 거지?’ 하고 물으며 바지를 놓았고, 박서진과 최시윤은 얼른 주방에서 간식을 가지고 왔다.

“근데 무슨 이야기였어?”

와작와작.

간식을 씹어먹으며 하던 보드게임을 계속했다. 열심히 건물을 지었지만 아무도 그 땅에 걸리지 않은 덕분에 가장 먼저 파산한 황예준이 서준에게 물었다.

“차기작이요. 로라가 쓴 소설이 영화화하는데 제가 출연하기로 했거든요.”

오.

“쉐앤나 끝난 지 얼마 안 됐잖아?”

“준비하고 촬영하면 금방 시간이 지날 거예요.”

“로라 웰튼 작가님이면…… 어떤 소설?”

이것저것 많이 읽는 박서진이 물었다.

그에 데굴 눈을 굴린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형들의 반응이 예상이 갔다.

“이클립스요.”

“……뭐?”

……뭐라고?

두 눈은 물론이고 입까지 쩌억 벌린 브블 형들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그렇게 브블 형들과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뉴 이클립스] 대본 분석에 들어갔다.

아직 확실하게 계약한 것도 아닌데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싶지만, 계약이나 다른 문제가 있으면 코코아엔터와 다호 형, 태우 형이 알아서 해줄 테니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서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면 그냥 접어야겠지만, 로라 웰튼의 모습을 보면 그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늑대인간이라…….”

연극 [MOEB-436] 이후, 인외종족을 연기하는 게 얼마 만인지.

그것도 늑대인간이라니.

오른손에 쥔 펜을 빙글 돌리던 서준은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 * *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뜨자,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서준을 반겨주는 곳이 나타났다.

생의 도서관.

과거에 읽었던 책들과, 현재에 읽고 있는 책들, 그리고 미래에 읽을지도 모르는 책들로 가득한 곳.

여기 있는 모든 책들 속에 쓰여 있는 이야기들은, 현재 ‘이서준’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가 겪었던 전생의 삶들이었다.

“그러니까…….”

서준은 천천히 주변에 있는 책장들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목적지였던 한 책꽂이 앞에 섰다.

그 책꽂이에는 흰색으로 가득한 표지에, 약간의 회색빛이 도는 책들이 손도 대지 않은 듯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걸 발견한 건 조금 과거의 일.

아니, 조금이라기보다는…… 좀 더 오래전의 일.

생의 도서관의 ‘중상급 문’을 열었을 때였던 걸, 서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잊긴 힘들지.”

한숨처럼 혼잣말을 내뱉으며 볼을 긁적거리던 서준은, 당시 ‘단 한 번’ 꺼내 훑어보고는 그대로 꽂아두었던 백회색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걸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책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여긴 끊임없이 환생하는 ‘그’의 전생으로 가득한 곳, 생의 도서관.

그리고 ‘이서준’의 삶 또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이서준’으로 태어나기 바로 직전.

‘그’가 살았던 삶의 책도 여기 있다는 뜻이었다.

[알비노 늑대]

바로, 서준의 전생(前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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