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89화
시끌벅적한 선배님들의 모습에 아이스크림을 뜯기만 하고 입에 대지 못한 버밀리온이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먹어도, 되는 건가?
그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난친 거야. 먹어도 돼.”
“그래, 빨리 먹어. 녹겠다.”
“내가 샀다는 건 잊지 말고!”
“넵!”
냠!
달콤한 아이스크림에 선배님들 앞에서 긴장하고 있던 것이 전부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추하다. 박이든.”
“박하다. 추이든.”
“내가 뭘!!”
정은성, 박이든과 웃고 떠들던 서준이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으로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있는 최태우에게 물어보았다.
“태우 형도 먹을래요?”
“……응. 하나 줘.”
서준은 최태우가 자주 먹는 걸로 골라 건네주었다.
최태우는 부스럭부스럭 포장을 까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단 게 입으로 들어가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꼭, 정말로, 단단히 몸조심, 건강 조심해야겠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박이든은 하나 더 먹었다.) 버밀리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각자의 스케줄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남은 건 휴게실 냉동실에 넣어둘 테니까 연습 힘들 때 먹어.”
“감사합니다!”
눈을 반짝이는 버밀리온에, 코밑을 쓰윽 하는 박이든의 모습에서 선배 느낌이 났다.
“무대 좋더라. 앞으로도 열심히 해.”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은성에게서도 선배미가 느껴졌다.
덕담 타임인가.
서준도 웃으며 말했다.
“다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보여서 좋더라. 앞으로도 첫 무대 때의 마음 잊지 않으면 다 잘될 거야.”
“넵! 잊지 않겠습니다!”
최태우가 그런 선후배들(엄밀히 말하자면 서준은 배우지만.)의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왕 만난 김에 기운도 나눠줘. 우리 블루문 무대 오를 때 받았거든!”
“아, 그때 무대 좋았지.”
박이든과 정은성의 말에 버밀리온 멤버들이 눈을 반짝였다.
슈퍼스타 이서준의 기운이라니. 꼭 받고 싶었다.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나.
무대에 오르기 전, 능력을 쓴다고 블루문 멤버들의 뺨을 양손으로 때렸던(?) 기억이 떠오른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그래.”
서준이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사용할 생각이기도 했으니까.’
눈을 끔벅이며 서준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버밀리온 리더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얼른 그 손을 맞잡았다.
“잘되길 바랄게.”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 (1/30)]
“감사합니다!”
우와! 하고 서준과 맞잡은 손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버밀리온 리더를 시작으로 서준은 다른 멤버들도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 등록했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 (7/30)]
이제 버밀리온 멤버들은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등급 상승은 없겠지.’
신인인 버밀리온이 브라운블랙이나 블루문, 제이슨 무어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겪었던 일들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극적인 음악적 경험을 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후후후.
낙담하고 있을 정령의 나무를 떠올리며, 서준은 악당처럼 웃었다.
“뭐야. 우리 때처럼 뺨 때리면서 기합 넣는 거 아니었어?”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리고 어린애들을 어떻게 때려?”
“아…….”
자신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기운을 나눠주는 서준에 잠시 의아해하던 박이든은,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고 ‘우와아아! 절대 안 씻어야지!’ 하고 감격하고 있는 버밀리온 아이들의 모습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못 때리겠네.”
“정확히 말하자면 때리는 건 아니지만.”
그냥 기합을 넣는 거잖아, 하고 정은성이 웃으며 덧붙였다.
버밀리온 리더가 그런 두 사람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선배님들의 기운도 나눠주실 수 있나요? 괜찮으시면 꼭 받고 싶습니다!”
“……응? 우리도?”
“넵!”
씩씩한 후배의 모습에 박이든과 정은성은 웃으며 흔쾌히 버밀리온 리더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다른 버밀리온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블루문 선배님들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으아아아.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과 박이든, 정은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저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고운 목소리였다.
“응?”
서준과 아이들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연습실을 문이 벌컥 열리고, 반짝이는 두 눈을 부릅뜬 소녀가 나타나 외쳤다.
“이서준 선배님! 박이든 선배님! 정은성 선배님! 저희에게도 기운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걸그룹 앰버의 리더였다.
* * *
조금 전, 연습실 안.
걸그룹 앰버의 네 멤버들은 언제나처럼 성실하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쉬는 시간이 되어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런 멤버들에게 앰버의 리더가 물병을 데구르르 굴려 주었다.
“으아아아. 죽겠다아.”
“나도.”
그때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었던 막내가,
“언니! 언니! 언니들!!”
외치며 눈 만난 강아지처럼 난리를 쳤다.
“왜?”
하지만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과 한 몸이 된 상태로 입만 열었다.
막내는 작은 일에도 큰 리액션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였다. 처음 몇 번 당한 뒤로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앰버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밖에 이서준 선배님이랑! 블루문 선배님들이랑! 버밀리온 오빠들이 있어!”
오히려 막내의 리액션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큰 사건이었다.
이서준 선배님이라니!
블루문 선배님들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이름들에, 연습실 바닥 차가워- 좋아- 안 일어날래- 하고 있던 앰버 멤버들이 벌떡 일어났다.
“뭐!?”
“진짜!?”
“정말!?”
“응! 응! 응! 다 같이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
……이 아이는 사실 아이스크림에 더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닐까.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시는 막내의 모습에, 세 언니는 생각했다.
하여튼.
앰버의 네 멤버는 연습실 문에 찰싹 달라붙었다. 조금 열린 틈으로 이야기가 들렸다.
“슈퍼스타의 기운! 나도 받고 싶어!”
“버밀리온 좋겠다…….”
데뷔일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연습생이 되어 친한 버밀리온 애들이 서준과 악수하는 모습에, 앰버 멤버들의 눈동자에는 부러움의 빛이 잔뜩 깃들었다.
“언니. 언니가 가서 부탁드리면 안돼?”
“맞아. 우리도 이서준 선배님 기운 받고 싶어.”
“나도!”
나도 그러고 싶단다. 동생들아.
앰버 리더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절대 안 씻어야지!’ 하고 외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안 씻을 자신 있는데…….
하지만 대뜸 부탁하기에는 이서준 선배님은 너무나도 먼 존재였다.
‘우리 이름도 아시고 오다가다 이야기도 나누고, 이서준 실드도 주셔서 잘 쓰고 있지만……!’
친하면서도 먼 존재랄까.
편하게 대하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저분은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인데!
“헉! 블루문 선배님들 기운까지!?”
“언니!”
“리더!”
악수가 끝나고, 금방이라도 자리를 떠날 것처럼 보이는 세 선배님들에 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자, 앰버 리더는 결심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렇게 앰버의 리더는 문을 열었고,
“……저기……!”
필살의 각오를 하고 외쳤다.
“이서준 선배님! 박이든 선배님! 정은성 선배님! 저희에게도 기운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부탁드립니다!”
앰버의 리더 뒤에서 ‘우리 언니 파이팅!’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던 세 멤버들도, 얼른 거들었다.
그에 갑작스러운 앰버의 등장에 조금 놀랐던 서준이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 아이스크림도 먹을래?”
“으아악!! 넵!”
“감사합니다!!”
시원한 서준의 대답에, 앰버 멤버들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었다.
* * *
“앞으로도 즐겁고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길 바랄게.”
“감사합니다!”
서준의 말에 앰버의 리더가 으아아아! 하고 감격해 외칠 것 같은 마음을 참으며, 꾸벅 인사하고는 박은성에게로 넘어갔다.
“으아아악!”
하지만 다음 차례인 막내는 참지 않았다.
그런 막내의 등을 가볍게 치며 진정시킨 앰버의 멤버가 씩씩하게 서준과 악수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악수를 하던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가지고 있길 잘했네.’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언제 앰버와 버밀리온을 만날지 몰라, 계속 가지고 다녔던 능력들이 지금 여기에서 사용되었다.
[(선)프리비앙의 합창(중급)이 발동합니다.]
[(선)프리비앙의 합창-중급-]
합창하는 습성을 가진 생명체, 프리비앙입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존재가 늘 때마다, 노래 실력이 배로 증가합니다.
현재 인원: 4
프리비앙은 종 모양의 꽃을 닮은 생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하나가 노래를 부르면 따라 노래를 부르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노래는 때로는 감미로운 자장가가 되기도 하고, 축복이 담긴 축가가 되기도 하며, 적을 죽이는 공격이 되기도 한다.
‘4명이니까 4배로 늘겠지.’
인원 수가 변경되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앰버의 실력은 계속 4배로 증가한 상태일 거다.
그렇다고 지금 버밀리온에게 새겨져 있는, 6배로 실력이 증가할 수 있는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보다 나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없어서 더 좋을지도.’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은 유대감이 높다면 최대 6배까지 노래 실력이 증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유대감이 낮다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서준이 고려한 사항이 있었다.
바로 해방감.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합창’인 만큼 나중에 능력이 해제됐을 때,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해제됐을 때만큼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찾느라 고생 좀 했지.’
그래도 악수 한 번으로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앰버 멤버들을 보면,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선)프리비앙의 합창]은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과 함께, 서준이 앰버와 버밀리온을 위해 준비한 능력이었다.
30명이 정원인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 앰버를 추가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안되는 일이었다.
‘두 개의 그룹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취급되어 버리니까.’
그렇게 된다면 전혀 다른 두 그룹의 무대에서, 마치 하나의 무대인 듯한 느낌이 날 터였다.
‘차라리 그게 낫지…….’
잘못하다가는 서로의 음악관이 맞지 않아, 유대감이 마이너스로 향할 수도 있었다.
‘뭐, 정령의 나무를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기도 하지만.’
“나 이제 연습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걸 너희만 받다니!”
“누나들이 연습실에 있을 줄은 몰랐지!”
“근데 아까 누나 나타날 때 완전 랩하는 줄 알았어.”
그렇다고 버밀리온과 앰버의 하나뿐인 미래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왠지 팬싸하는 기분이지 않았냐?”
“어. 그런 것 같더라.”
박이든과 정은성의 말에,
“음. 나중에 팬 사인회 한번 해볼까.”
서준이 손을 쥐었다 펴며 말하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준을 바라보았다.
“……나 미래가 보이나 봐. 피켓팅하고 있는 새싹들이 보여.”
“저도요. 완전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는……!”
아이들의 말에 작게 웃던 서준이,
“서준아. 준비할까?”
어느새 매니저 모드로 바뀐 최태우의 진지한 목소리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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