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87화
몇 시간 전.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사무실.
“네. 먼저 제안서를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회의를 해본 다음…….”
[쉐도우앤나이트]가 영화관에서 내려가고 WTV시상식이 끝났지만, 서준에 대한 러브콜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천만 배우라는 명성답게 쉐앤나는 천만을 훌쩍 넘었고.”
“WTV시상식에서도 최초의 공동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으니까요.”
“그게 아니라도 서준이를 섭외하려는 곳은 많지만 말입니다.”
배우로든, 게스트로든 말이다.
세상을 들썩거리게 하는 내 배우의 화제성과 인기에, 1팀 직원들이 흐뭇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으흐흐흐 웃었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업무 중인 매니저 최태우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서준이는 잘 가고 있겠죠?”
지이잉-
오늘도 사무실 한쪽, 프린터기에서 따끈따끈하게 프린트되어 쌓여가는 대본들과 시놉시스를 정리하던 직원이 말했다.
“이지석 배우랑 같이 가니까 괜찮을 거예요.”
“도착하면 연락해 주기로 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시계를 보며 말하는 최태우에 1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 시간까지 파악하는 매니저라니.”
“역시 안 이사님의 수제자답네요.”
“아니, 수제자라뇨…….”
당황하는 최태우의 모습에 1팀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안 이사님이 태우 씨를 서준이 매니저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게요. 이렇게 배우를 잘 케어해 주는 매니저도 흔하지 않죠.”
그저 제 할 일을 했을 뿐인 최태우는 1팀 직원들의 칭찬에 볼을 긁적였다.
“음. 그런가요?”
“네. 서준이도 별말 없고 안 이사님도 완전히 맡겨두고 계시잖아요. 그만큼 태우 씨를 믿고 있다는 거겠죠.”
“일도 참 잘하시고요.”
“맞아요! 보고서 완전 자세해서 미국에서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국에서도 잘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덕분에 안 이사님도 편하게 일하셨습니다.”
쏟아지는 칭찬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최태우는 민망하지만 조금 뿌듯한 얼굴로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밝은 분위기의 1팀 사무실.
최태우는 1팀 직원들과 안 이사님, 그리고 서준에게 더욱 도움이 되기 위해 기합을 넣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예상 도착 시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서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말이죠, 태우 형.
음……. 아…….
서준의 전화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1팀 직원들이 뭔가 복잡미묘한 최태우의 반응에 눈을 끔벅였다. 극장에 도착했다는 말일 텐데, 저런 반응이 나올 이유가 있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연극 잘 보고 와.”
그 말을 끝으로 최태우가 전화를 끊었다.
“서준이한테 무슨 일 있대요, 태우 씨? 반응이 미묘하던데?”
“그게……. 서준이랑 이지석 배우가 극장에 가던 길에, 트럭에서 떨어져 깨진 소주병들로 엉망이 된 도로를 치우는 걸 도왔다고 합니다.”
……으응?
의아해하는 1팀 직원들에게 최태우가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서 모자랑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고요.”
“……아하.”
최태우의 설명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한 1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들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떻게 극장 가는 길도 그냥 가질 않네요, 서준이는.”
“걸어 다니는 화제성이랄까요.”
“진짜 일반인이었으면 ‘저 사람 또 뉴스에 나왔네’ 할 것 같지 않아요?”
진짜 그럴 것 같다.
-아니, 저 사람 저번에도 용감한 시민상 받지 않았었나?
=22 임산부 구했다고 본 거 같은데?
=이번 건 다른 거ㅋㅋ
=하도 출연하신 뉴스가 많아서ㅋㅋㅋ헷갈림ㅋㅋ
-이 정도면 그냥 경찰 하시는 게?
=저 얼굴이면 그냥 연예인이 낫지 않음?
=내가 일반인을 덕질할 줄은 몰랐다!!
=데뷔 소취!!
그런 댓글들이 달릴 것 같았다.
“결국 연예인이 될 것 같지만요.”
“서준이 외모라면…….”
모두 웃으며 수긍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도 1팀 직원들의 손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눈은 모니터를 훑고 있었다.
“전 보도 자료 작성할게요.”
“인터넷과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없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안 이사님께 보고드릴게요.”
발 빠르게 움직이는 1팀 직원들을 보니, 어쩐지 최태우까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장매니저인 최태우가 여기에서 할 일은 없었다.
“그럼 전 회의실에서 새로 들어온 작품들 검토하고 있겠습니다.”
“네. 좋은 작품 찾길 바랄게요.”
1팀 부팀장의 말에 1팀 직원들도 웃으며 한마디씩 보탰다.
“우리가 고른 게 서준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숨어 있는 작품들을 잘 찾아오는지…….”
“태우 씨만 믿을게요!”
1팀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놉시스와 대본들을 두 손 무겁게 챙긴 최태우는 같은 층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여긴 회의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긴 하지만, 방음이 잘되어 있어 회의실보다는 대본과 시놉시스를 읽는 장소로 더 많이 사용되는 곳이었다.
조용한 회의실로 들어온 최태우는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시놉시스와 대본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눈가를 매만지더니 가장 위에 있는 대본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독립영화이지만 흥행한 상업영화만큼의 성적을 낸 [화].
OTT 작품이지만 음악 차트까지 점령한 [오버 더 레인보우: 포 마이 프렌드].
대학교 축제의 이벤트였지만 어마어마한 화제가 된 [신전 프로젝트].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쉐도우앤나이트]까지.
최태우가 입사하고 난 이후, 서준이 출연한 작품들이었다.
최태우가 테이블에 쌓여 있는 대본들을 보았다. 이 많은 것들 중 그 뒤를 이을 작품을 골라야 했다.
물론 서준은 흥행 같은 거 딱히 신경 안 써서 좋은 작품이라면 이제 막 시놉시스만 쓰인 것부터 캐스팅이 전혀 안 된 작품들까지, 전부 보여달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생각대로 되나.’
전 회사에서 일하면서 연예계 맨 밑바닥에 있는 연예인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대하는 방송국 관계자들의 무시하는 태도를 봐왔던 최태우로서는, 앞으로도 서준이 삐끗하지 않았고 꽃길만 걷기를 바랐다.
서준은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전혀 신경 안 쓰겠지만 말이다.
‘아니, 가시밭길도 꽃길로 만들어버리는 건가.’
작게 웃은 최태우가 살짝 느껴지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첫 대본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또 한 번 [화]의 대본을 골랐을 때와 같이, 내 배우가 좋은 작품을 만나 활짝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 * *
몇 시간 후, 1팀 사무실.
“그러고 보니 태우 씨 어제 대본 한 박스 들고 집에 가지 않았어요?”
일하고 있던 직원 중 하나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맞아요. 그거 다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와! 일 엄청 열심히 하네요. 태우 씨. 한 박스 다 읽으려면 밤새워야 했을 텐데.”
그에 누군가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제 태우 씨가 대본 한 박스 들고 가는 거 본 것 같습니다만?”
또 누군가의 증언이 이어졌다.
“엊그제도 그만큼 들고 갔어요. 그리고 다 읽었다고…… 했는데…….”
잠시,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상황을 파악한 1팀 부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태우 씨 며칠 동안 밤새 대본만 읽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바로 회의실로 달려간 1팀 부팀장은 대본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있는 최태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태우 씨!!”
* * *
최태우가 쓰러졌다는 1팀 부팀장의 전화에 서준은 놀라고 당황했다.
그동안 능력을 사용한 덕분에, 주위에 아팠던 사람이 없어서 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서준’이라는 생을 살면서 최초로 지인이 쓰러진 상황이 아닌가.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주변 사람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놀라긴 하겠지만 말이다.
“서준아. 일단 침착하고.”
“아, 네.”
김종호가 서준을 진정시켰다. 그에 서준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빠르게 진정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도…… 전생에서는 누가 죽는 게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놀랐는지도 모른다.
생명이란 건 질기면서도, 아주 가볍게 사라지니까 말이다.
휴대폰 건너에서 1팀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아픈 건 아니고, 과로래. 며칠 쉬면 낫는대.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서준에게 연락하기 전에, 병원에 가서 검사까지 끝낸 것 같았다.
“후우. 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서준에, 김종호와 이지석, 김상우도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갈 거예요. 네. 네.”
그렇게 대답하던 서준이 통화를 끝냈다.
“아무래도 저 먼저 가봐야겠어요. 종호 삼촌, 지석이 형.”
서준의 말에 김종호와 이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가게? 데려다줘?”
“다호 형이 데리러 온대요. 거의 다 왔대요. 그리고 태우 형 어디 아픈 건 아니고 과로래요. 며칠 쉬면 낫는대요.”
“다행이네.”
서준의 말에 세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임 못 가서 어쩌죠?”
“괜찮아. 다음에 만나면 되지. 갑자기 잡힌 약속이기도 했고.”
“그래. 신경 쓰지 마.”
미안해하는 서준의 모습에, 김종호와 이지석이 괜찮다고 말했다. 제일 아쉬우면서도 초조한 사람은 서준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서준아.”
“다호 형!”
안다호가 왔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조심해서 가.”
“최 매니저님한테 안부 전해주고.”
김종호와 이지석, 김상우에게 인사한 서준과 안다호는 함께 차로 향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묻는 서준에, 안다호가 차에 시동을 걸며 설명했다.
“네 차기작 찾는다고 대본 읽느라 계속 늦게 잤대. 몸은 건강한데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하더라고. 이 정도 피로면 보통 몸에 뭔가 반응이 나타났을 텐데, 의사가 희한하다고 하더라.”
“아…….”
몸 건강은 자주 체크하는데, 스트레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기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괜찮았을 텐데…….’
그 ‘어느 정도’보다 스트레스나 피로가 넘치는 바람에, 건강하던 몸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 버린 것 같았다.
오히려 겉 상태가 좋아서 눈치를 못 챘는지도 모른다.
다크서클이 있다거나 얼굴이 초췌했다면 태우 형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먼저 이상을 알아챘을 테니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 *
서준과 안다호가 최태우의 병실로 들어갔다.
최태우는 휴식하기 편하게 1인실을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최태우는 오히려 비싼 1인실에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서준과 안다호 이사가 오면서 더욱 강해졌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맞고 있는 최태우의 모습에 서준의 표정이 흐려졌다.
“태우 형. 괜찮아요?”
그에 최태우가 당황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누워요’ 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서준과 안다호에 깨갱 하고 침대에 누웠다.
“응. 괜찮아. 하루만 쉬면 된대.”
상체를 일으켜 앉은 최태우의 모습에 서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열심에도 정도가 있어요, 형.”
“미안…….”
“차기작이 중요하다지만, 어떻게 매일 늦게까지 대본을 볼 생각을 해요.”
“죄송…….”
“몸이 건강해도 적당히 해야죠. 형이 아프면 제가 걱정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정말 죄송합니다아…….”
……걱정하는 거 맞겠지?
잔소리를 하는 서준과 시무룩해진 최태우에, 안다호가 작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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